삶터 쫓겨난 설움딛은 대추리의 꿈

이주단지 연말께 완공, 행정명은 대추리 그대로

신용철 기자

“대추리 사태는 현재의 미국 2보병 사단과 용산 미군 기지를 2008년 말에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원으로 이전하여, 확장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해당 지역 주민 및 시민운동단체와 국방부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이다. 넓은 의미로는 2004년 미군기지 이전결정 이후 벌어진 주민, 시민단체의 반발과 경찰과의 충돌을 이르고, 좁은 의미로는 2006년 5월 4일 이후 경찰과 군이 투입된 행정대집행으로 인한 대규모 충돌을 이른다.” (위키백과)

대추리
  • 행정대집행으로 무너진 대추초등학교. 폐허가 된 학교터에 주민들이 꽂아놓은 '평화'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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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택했다면 미군기지 확장 막아내요
참으로 오랜 싸움이었다. 의식 있는 풀뿌리 민초들부터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까지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여러 곳에서 뜻을 함께 하여 대추리 주민들의 힘겨운 싸움에 힘을 실어줬다. 대추리 지킴이 활동가들은 이 곳 주민들을 한테서 낯선 농사일까지도 배우며 어떻게든 ‘자연 그대로의 자연’ 대추리를 지켜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거대 패권주의 미국에 민족자존을 굴종시킨 정권은 평택 대추리를 지키는 평화의 상징이자 투쟁의 거점이 됐던 대추초교를 국방부에 팔고 물밑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삶의 기반이었던 농사를 못 짓게 하기 위해 수로를 끊었고 농사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농부들의 마음에 왜곡된 희망을 불어넣고 협의 매수를 했다. 결국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가족같이 살뜰하게 지냈던, 시골 인심 가득한 그들의 마음에 반목과 질시를 심어 놓았다.

아름다운 생명의 공동체 대추리
대추리는 거대권력의 압력 때문에 싸움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더 싸울 수 있었지만 주민 분들이 대부분 연로했다. 보수 언론들과 정권은 대추리를 갈등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오히려 그들은 그 갈등의 현장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평화의 공동체, 연대의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갔다.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했던 어느 판화가는 “철조망이 쳐지고 사람들이 오지 못하는 그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네 땅 내 땅도 없이 공동 경작하고, 촛불집회와 문화공연을 하는 일상들은 완벽한 공동체였어요. 무정부 사회에서 사람들끼리 법을 만들어서 사는 그런 곳 이었어요”라고 회상한다.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벼랑 끝에 몰려 쫓겨난 후, 일주일 만에 고향 땅을 밟은 그들은 대추초교 운동장에 땅을 깊이 파고 너도나도 송판에 글씨를 새겨 묻었다. ‘대추리 떠나기 싫다. 김월순’, ‘황새울 들판이여 영원하시오. 우리 모두는 꼭 돌아오리오. 사랑한다. 송재국’, ‘미국놈 몰아내고 후손에게 평화의 땅 물려주자. 사랑하는 정든 고향 언제 찾으리. 고향이여 영원하라’ 모두들 눈시울 뜨거워 힘이 없어 당하기만 한 서러움과 억울함에 꺼이꺼이 목 놓아 울기만 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현재 대추리 주민들은 대추리 이주단지 송화리에 43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미군들의 사택으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미군들에 의해 쫓겨난 이들의 임시 거주지가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은 대추리 주민들이 팽성읍 노와리에 정착하기 전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이다. 노와리 이주단지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완공될 예정이며, 행정명은 ‘대추리’를 그대로 쓰기로 했다.
“다들 어차피 부득이하게 이렇게 나오게 된 거 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요. 처음에 정부에서 도면을 그려온 거 보고 마음에 안 들었어요. 농촌 속의 농촌을 만들어야 제대로 된 것인데 그런 느낌이 안 드는 설계도였어요. 다행히 ‘대추리평화마을조성위원회’가 꾸려지고 위원회 위원장님이신 신왕선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님께서 모두가 흡족할 설계도면을 가져왔어요. ‘한번쯤은 저 마을에 살고 싶다’ 그런 마을 말이에요.”
김택균 전 팽성대책위 사무국장의 말이다. 그는 “이쪽에 있는 어르신들은 빨리 이사 가길 바래요. 연세가 드셔서 말이에요. 80% 이상이 70~80대 노인 분들이지요. 다들 잘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뿐이에요. 이 분들이 돌아가신 후에도 타지로 떠난 대추리 식구들이 다시 들어와 살고 싶은 그런 마을로 만들고 싶어요.”
신종원 대추리 이장도 “송화리 임시거주단지에 이주 한지 여러 달 지났음에도 당신들 집이 아니라 마음을 두지 못하시고 오랜 터전을 잃고 나온 현실 때문에 다들 마음에 한이 쌓여서 속병이 많이 있으셨는데 그래도 다행히 그 분들만의 보금자리가 생긴다는 생각에 새롭게 조성될 대추리에 대한 어르신들의 기대가 굉장히 크다”라고 말했다. 신 이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다 그냥 송화리에서 죽는 게 아니냐’고 푸념하던 주민들이 최근 들어 ‘(노와리에 조성 될)평화예술마을 대추리에서 다시 공동체를 꾸리고 살아야 한다’며 부쩍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신 이장은 “행정구역이 어떻게 되든 대추리는 그냥 대추리”라면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만들어질 대추리를 ‘신(新)대추리’가 아닌 그 옛날 노을이 멋있게 지던 ‘그 때 그 대추리’로 여겨달라”고 당부했다.
대추리평화마을조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있는 신왕선 교수는 “행정구역에 상관없이 대추리는 이미 평화예술 마을로 모두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주되게 고민했다”며 “대추리를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생태마을로 조성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 교수는 “생태마을이란 자연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자연과 하나되어 사는 것을 말한다”며 “평화예술마을이 추구해야할 개념은 생명이 순환하는 새로운 삶의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평화예술마을은 평화를 사랑하는 대추리의 정신을 구현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이고 아름다운 마을, 단지 주민들의 삶터로서만이 아닌 외부인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열린 마을의 컨셉을 가진다. 조성안을 보면 마을에는 주거공간과 텃밭, 그리고 주민뿐만 아니라 대추리를 기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추리 기념관, 전시장, 운동장이 들어선다. 외부오염원을 최소화 하기위해 빗물과 생활하수를 저장할 수 있는 연못도 만들어진다.

대추리
  • 군부대를 투입, 멀쩡한 농토에 철조망을 치고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만든 것에 항의하기 위해 짚단을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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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택시를 탔다. 인적도 드물고 교통도 불편한 여기엔 무슨 일로 왔냐는 택시기사의 질문에 최근 대추리의 근황이 궁금해 취재차 왔다고 했더니 “대추리를 먼저 나온 사람들과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가 별로 안 좋아요”라고 말한다. 택시기사의 말에 취재 준비를 하며 읽은 기사에서 본 한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뭐가 제일 무섭고 더럽냐면 동네 사람들끼리 경계를 두고 패가 갈려 싸우는 것이여. 어디 가서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렇게 의좋고 인심 좋던 마을이 이놈의 미국 놈들 때문에 반으로 쪼개진 것이여. 이런 시상에 더런 놈의 미국 놈들하고 그 발바닥에서 노는 정부가 우리를 이렇게 망쳐버린 거여.” 그 말을 듣고 기자가 그럼 무얼 바라느냐고 질문하자 “바라는 게 뭐 있겠어. 땅 지키고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게 소원이지.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보상을 더 받으려 한다고 별 소리를 다하는데 처음부터 보상받을 생각이었으면 여기서 이렇게 안 살지.”
일평생 농사만 짓고 농사밖에 모르며 살던 분들에게 얼마의 보상이 크나큰 위로와 만족이 될 수 있을까. 먼저 대추리를 떠난 분들 중에는 협의 매수하고 받은 돈을 자식이 들고 가 탕진해버리고 마을에 살지도 못한 채 오갈 데가 없어진 분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남아 있는 이들이 보상을 더 받으려고 남아 있다고도 했다. 그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망가뜨리고 황폐하게 했을까.
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평생을 뿌리내리고 살던 땅을 강탈당하고 쫓겨난 그들은 보상보다 이 땅을 지키며 살고 싶은 것뿐이었다. 대추리 신종원 이장의 말마따나 그저 ‘주민들이 고향땅에서 늘 행복하게 농사짓고 사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군산이나 제주의 강정마을에서는 평택과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불법적인 기지 확장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 2012년, 더 많은 미군부대가 이전한다. 10조 원이 넘는 이전비용이 든다. 그 돈이면 대학생들이 1년 등록금을 내지 않고도 교육받을 수 있다고 한다. 더 이상 미군기지 건물 짓는데 우리나라가 계속 돈을 댈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