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답다. 그들에게도 아름다울까
‘소박한 꿈’ 위해 싸우는 이랜드 노동자들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암살 직전에 정원에서 꽃을 감상하던 부인을 떠올리며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이탈리아의 영화인 로베르토 베니니는 그 이야기를 모토로, 홀로코스트 속에서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면서 <인생은 아름다워>를 제목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정말로 인생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그 질문을 던졌을 때,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비정규직의 아픔에 신음하다가, 결국 불안이 현실로 드러나 어느날 갑자기 해고됐고, 그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들에게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일까?
홈에버 서울 면목동 매장 앞에, '문화제'를 열기 위해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학생 및 시민들이 지난 8월 12일 오후 6시 무렵에 나타났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어느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왜 이렇게 사는게 힘들기만 한지, 누가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 건지.”
그렇다. 그들은 1년 여가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소박한 꿈’을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꿈이 무엇이기에 소박한 것일까? 단지, 그들은 살기 위해 싸워온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 싸워온 것이다.
부당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싸워온 것이다.
소박한 꿈을 위해 계속하는 싸움
서울 면목동 홈에버 매장 앞, 이랜드 일반노조의 문화제. 많아야 수십이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응원나온 학생들과 시민들이 있어 수십이 될 수 있었다. 많지 않았다. 그 수십의 인원에 대해 이랜드 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은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조합원 자체는 200명이 넘어요. 그런데, 다들 하루하루가 급한 사람들이에요. ‘돈’ 때문에 이탈한 분들도 많습니다. 오늘만 해도 ‘아르바이트’하는 분들이 못나오셨어요. 위원장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죠.”
그렇게 찾아온 수십명의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과 학생 및 시민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전경과 ‘용역’이었다. 현장에는 2대의 전경버스가 서 있고, 대여섯 가량의 전경이 방패를 들고 매장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용역’도 지근거리에서 대기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김경욱 위원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마디로, 경찰이 문제 많은 기업의 ‘사설경비’로 전락한 것 아닙니까. 안타깝습니다. 돈 한 푼 안들이고 공권력으로 시설을 보호하자는 꼴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남았던 것일까? ‘문화제 진행’을 맡아 마이크를 잡았을 때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에는 ‘마피아’라는 범죄집단이 있었습니다. 지금 경찰은 그 ‘마피아’를 지켜주는 꼴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찰이 ‘나쁜 사람들’이 아닌 노동자를 지켜주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세상을 놀라게 했던 ‘비정규직의 반란’은 시간의 흐름과 ‘촛불’의 여파 속에서 그렇듯 무관심 속에서도 ‘소박한 꿈’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현행법 상으로도 2년 이상 일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용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계약서 수정’까지 당하면서 결국 어느날 갑자기 해고됐던 그들, 그들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과연 그들은 ‘구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시위현장 취재에서 내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은 그 시위를 바라보는 주변의 반응이다. 시위의 이유가 그만큼 절박하고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인 경우도 있다. 그 ‘촛불시위’만 해도 ‘광우병 위험’은 누구에게 닥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커져갔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나에게 닥쳐올 현실일 수도 있으며, 내 부모에게, 혹은 내 자녀에게 닥쳐올 현실일 수도 있다. 아니, 이미 닥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 앞에서는 누구나 방관자로 변해버리고 만다. 무심한 얼굴로 매장 안에 들어가 물건이 담긴 카트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잘 해봐야 담배를 꼬나물고 팔짱을 끼며 ‘심심하던 차에 만난 구경거리’ 정도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문화제 자체보다 이 시선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과연 이 시선들이 바라보는 세상, 이 시선들이 바라보는 꿈은 무엇일까? 매장 앞에 주저앉은 저들의 이야기가 당장의 내 이야기가 아니기에 무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자녀를 국제중학교나 특수목적고, 명문대에 진학시켜 ‘상류층’이 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비정규직’은 그저 피하고 싶기만 한 남의 일인 것일까?
시민들의 관심이 시들해진 정도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분위기가 말하듯 아예 ‘군중 속 그들’이었던 그네들이 싸워야 하는 또 하나의 대상은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로울수록 강해질 수도 있다. 김경욱 위원장이 전했던 조합원들의 반응은 이렇다고 한다.
“힘들어한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하루 빨리 ‘끝장’ 보기를 원한다.”
세상을 뒤흔든 진압과 물대포, 그들은 이미 겪었다
촛불시위에서 행해졌던 경찰의 폭력적인 강경진압과 ‘물대포 분사’에 대해 강한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비정규직 아줌마’들은 이미 ‘홈에버 매장 점거’ 당시에 겪은 바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홈에버 상암점 및 뉴코아 강남점 점거를 벌였던 지난해 7월 20일 당시 그들은 공권력 투입 속에서 스크럼도 짜본 바 있으며, 소위 말하는 닭장차 투어도 다녀온 바 있다. 촛불시위 참가자들처럼 비닐 비옷을 입고 경찰의 물대포를 그대로 소화한 바 있으며, ‘방패찍기’로 상징되는 경찰의 폭력진압도 온몸으로 감당한 바 있다. 촛불시위 당시 다수의 대중들이 겪고 놀랐던 바 있는 그 숱한 강경진압을 그들은 이미 겪어온 것이다.
‘매장 점거는 불법’이기에 투입된 공권력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김경욱 위원장의 언급처럼 “경찰이 문제 많은 기업의 ‘사설경비’로 전락한 것”이 이미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기에 투입된 공권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매장 점거’에 나서면서 진압을 당하기까지 지었던 죄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힘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돈’ 없고 ‘빽’ 없는 서민들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촛불에 대한 절망’이 진심이었다고 하는 김경욱 위원장. 어쩌면 질리도록 겪은 일에 대해서는 새삼 놀라면서 그들이 이제껏 당한 것에 대해서는 세상이 무관심하고 무감각했기에 절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일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일한 것에 대한 당당한 신분과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품게 되는 ‘소박한 꿈’이다. 단지 ‘소박한 꿈’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들은 방패에 찍혔고 물대포에 맞았다.
일하는 동안 그들은 화장실도 쉽게 갈 수 없었다. ‘고객님’의 엉뚱한 항의도 그대로 감당해야 하면서도 ‘불친절’이라는 명분으로 회사의 윽박에 시달렸다. 립스틱 색도 “회장이 좋아하는 색”이란 소문이 있던 빨간색을 강요당했으며, 1인당 하루 400명 이상의 고객을 상대해야했다. 또 인간이라면 한 두 번 이상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도 ‘점프 교육’이라는 이름의 ‘인사교육’을 창피 속에서 3시간 이상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부당한 해고와 근육통, 위장 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업무상 후유증, 그리고 위기에 몰릴대로 몰린 생계뿐이었다.
그 속에서 그들이 꾸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말 그대로 ‘소박한 꿈’이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자 했으며 희망이자 미래인 자식들을 잘 키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홈에버’를 선택하고 ‘비정규직’을 감수한 것. 단지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당신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라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심한 반응과 함께 사측의 교활하고 악랄한 대응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나온 것이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경고’를 남기고 있었다.
“이게 우리들만의 일인 것 같아? 아니야.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특히, 김경욱 위원장은 네티즌에게도 ‘경고’를 남겼다.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내 뇌리에는 “다음은 당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시 한 수가 떠올랐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로의 시 ‘다음은 우리다’-
하지만, 정말로 인생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그 질문을 던졌을 때,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비정규직의 아픔에 신음하다가, 결국 불안이 현실로 드러나 어느날 갑자기 해고됐고, 그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들에게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일까?
홈에버 서울 면목동 매장 앞에, '문화제'를 열기 위해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학생 및 시민들이 지난 8월 12일 오후 6시 무렵에 나타났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어느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왜 이렇게 사는게 힘들기만 한지, 누가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 건지.”
그렇다. 그들은 1년 여가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소박한 꿈’을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꿈이 무엇이기에 소박한 것일까? 단지, 그들은 살기 위해 싸워온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 싸워온 것이다.
부당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싸워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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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꿈을 위해 계속하는 싸움
서울 면목동 홈에버 매장 앞, 이랜드 일반노조의 문화제. 많아야 수십이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응원나온 학생들과 시민들이 있어 수십이 될 수 있었다. 많지 않았다. 그 수십의 인원에 대해 이랜드 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은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조합원 자체는 200명이 넘어요. 그런데, 다들 하루하루가 급한 사람들이에요. ‘돈’ 때문에 이탈한 분들도 많습니다. 오늘만 해도 ‘아르바이트’하는 분들이 못나오셨어요. 위원장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죠.”
그렇게 찾아온 수십명의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과 학생 및 시민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전경과 ‘용역’이었다. 현장에는 2대의 전경버스가 서 있고, 대여섯 가량의 전경이 방패를 들고 매장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용역’도 지근거리에서 대기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김경욱 위원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마디로, 경찰이 문제 많은 기업의 ‘사설경비’로 전락한 것 아닙니까. 안타깝습니다. 돈 한 푼 안들이고 공권력으로 시설을 보호하자는 꼴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남았던 것일까? ‘문화제 진행’을 맡아 마이크를 잡았을 때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에는 ‘마피아’라는 범죄집단이 있었습니다. 지금 경찰은 그 ‘마피아’를 지켜주는 꼴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찰이 ‘나쁜 사람들’이 아닌 노동자를 지켜주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세상을 놀라게 했던 ‘비정규직의 반란’은 시간의 흐름과 ‘촛불’의 여파 속에서 그렇듯 무관심 속에서도 ‘소박한 꿈’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현행법 상으로도 2년 이상 일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용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계약서 수정’까지 당하면서 결국 어느날 갑자기 해고됐던 그들, 그들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과연 그들은 ‘구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시위현장 취재에서 내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은 그 시위를 바라보는 주변의 반응이다. 시위의 이유가 그만큼 절박하고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인 경우도 있다. 그 ‘촛불시위’만 해도 ‘광우병 위험’은 누구에게 닥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커져갔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나에게 닥쳐올 현실일 수도 있으며, 내 부모에게, 혹은 내 자녀에게 닥쳐올 현실일 수도 있다. 아니, 이미 닥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 앞에서는 누구나 방관자로 변해버리고 만다. 무심한 얼굴로 매장 안에 들어가 물건이 담긴 카트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잘 해봐야 담배를 꼬나물고 팔짱을 끼며 ‘심심하던 차에 만난 구경거리’ 정도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문화제 자체보다 이 시선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과연 이 시선들이 바라보는 세상, 이 시선들이 바라보는 꿈은 무엇일까? 매장 앞에 주저앉은 저들의 이야기가 당장의 내 이야기가 아니기에 무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자녀를 국제중학교나 특수목적고, 명문대에 진학시켜 ‘상류층’이 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비정규직’은 그저 피하고 싶기만 한 남의 일인 것일까?
시민들의 관심이 시들해진 정도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분위기가 말하듯 아예 ‘군중 속 그들’이었던 그네들이 싸워야 하는 또 하나의 대상은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로울수록 강해질 수도 있다. 김경욱 위원장이 전했던 조합원들의 반응은 이렇다고 한다.
“힘들어한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하루 빨리 ‘끝장’ 보기를 원한다.”
세상을 뒤흔든 진압과 물대포, 그들은 이미 겪었다
촛불시위에서 행해졌던 경찰의 폭력적인 강경진압과 ‘물대포 분사’에 대해 강한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비정규직 아줌마’들은 이미 ‘홈에버 매장 점거’ 당시에 겪은 바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홈에버 상암점 및 뉴코아 강남점 점거를 벌였던 지난해 7월 20일 당시 그들은 공권력 투입 속에서 스크럼도 짜본 바 있으며, 소위 말하는 닭장차 투어도 다녀온 바 있다. 촛불시위 참가자들처럼 비닐 비옷을 입고 경찰의 물대포를 그대로 소화한 바 있으며, ‘방패찍기’로 상징되는 경찰의 폭력진압도 온몸으로 감당한 바 있다. 촛불시위 당시 다수의 대중들이 겪고 놀랐던 바 있는 그 숱한 강경진압을 그들은 이미 겪어온 것이다.
‘매장 점거는 불법’이기에 투입된 공권력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김경욱 위원장의 언급처럼 “경찰이 문제 많은 기업의 ‘사설경비’로 전락한 것”이 이미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기에 투입된 공권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매장 점거’에 나서면서 진압을 당하기까지 지었던 죄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힘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돈’ 없고 ‘빽’ 없는 서민들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촛불에 대한 절망’이 진심이었다고 하는 김경욱 위원장. 어쩌면 질리도록 겪은 일에 대해서는 새삼 놀라면서 그들이 이제껏 당한 것에 대해서는 세상이 무관심하고 무감각했기에 절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일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일한 것에 대한 당당한 신분과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품게 되는 ‘소박한 꿈’이다. 단지 ‘소박한 꿈’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들은 방패에 찍혔고 물대포에 맞았다.
일하는 동안 그들은 화장실도 쉽게 갈 수 없었다. ‘고객님’의 엉뚱한 항의도 그대로 감당해야 하면서도 ‘불친절’이라는 명분으로 회사의 윽박에 시달렸다. 립스틱 색도 “회장이 좋아하는 색”이란 소문이 있던 빨간색을 강요당했으며, 1인당 하루 400명 이상의 고객을 상대해야했다. 또 인간이라면 한 두 번 이상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도 ‘점프 교육’이라는 이름의 ‘인사교육’을 창피 속에서 3시간 이상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부당한 해고와 근육통, 위장 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업무상 후유증, 그리고 위기에 몰릴대로 몰린 생계뿐이었다.
그 속에서 그들이 꾸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말 그대로 ‘소박한 꿈’이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자 했으며 희망이자 미래인 자식들을 잘 키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홈에버’를 선택하고 ‘비정규직’을 감수한 것. 단지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당신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라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심한 반응과 함께 사측의 교활하고 악랄한 대응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나온 것이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경고’를 남기고 있었다.
“이게 우리들만의 일인 것 같아? 아니야.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특히, 김경욱 위원장은 네티즌에게도 ‘경고’를 남겼다.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내 뇌리에는 “다음은 당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시 한 수가 떠올랐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로의 시 ‘다음은 우리다’-
- 인터뷰 |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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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사회의 부를 독점하고
좌지우지 하는 이들과도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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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욱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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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도 여론의 지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회적 파문 정도는 일어날 수 있겠다’ 싶은 정도였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0개월 계약’까지 강요하는 일도 있었고, 그런 일들과 맞물린 결과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홈에버 매장 점거 등에 대해서는 사측이나 언론도 예상을 못했던 것 같았다. 매장 점거 등에 대해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지지도 있었던 것 같다.”
- 오랜 시간이 지났다. 조합원들도 많이 힘들어할 것 같다.
“힘들어한다. 승리든 패배든 하루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많다.”
-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
“물론 ‘돈’이다. 1천만원 이상 빚이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떤 조합원의 경우에는 집의 전기까지 끊겼다가 이제야 들어온다고 한다. 우리는 한 달에 80만원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만큼 생계가 절박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400일 넘게 투쟁이 이어지면서 생계가 거의 끊어진 상황이다. 그 돈 때문에 이탈한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탈자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오늘만 해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문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조합원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위원장으로서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 조금 민감한 이야기를 해보자. 위원장은 “촛불을 보며 절망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발언으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다고 보는 게 맞겠다. 발언의 정확한 취지를 알리고 싶어 다시 물어본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언론에서 그 말만 부각해 크게 보도하더라. 물론 촛불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촛불시위 이후로 우리가 오히려 더 소외돼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보운동진영도 사실상 촛불에 ‘올인’하면서 우리가 더욱 초라해진 느낌이었다. 그 수많은 촛불 인파가 우리에게도 주목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도 촛불시위 현장에 자주 나갔다. 그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의 현실을 알리고자 했을 때, 일부 시민들은 오히려 ‘시끄럽다’는 반응도 보이더라.”
- 홈에버 매장은 오늘도 용역과 공권력을 동원한 것 같다.
“경찰이 ‘문제 기업’의 ‘사설경비’로 전락한 것 아니냐. 늘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본다. 문제기업이 돈 한 푼 안들이고 공권력으로 시설을 보호하고 있다. 사실 용역은 저들도 저게 먹고 사는 ‘업’이 아닌가. 살기 위해 우리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이해한다. 물론, 그중 일부는 깡패로 의심되는 ‘외부 용역’도 있었지만….”
- 이랜드 노조가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여전히 체감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 오랜시간동안 비정규직 투쟁을 해오면서 느껴온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당장 우리가 싸우는 이랜드 박성수 회장을 비롯한 회사 측 관계자들을 기억해보자.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천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힘의 싸움이다. 우리는 힘이 없다. 기륭전자든 우리 이랜드일반노조든 힘이 없다. 퇴로까지 막혀있지 않나. 한나라당에는 한국노총 출신 노동계 인사들이 꽤 있다. 그 사람들에게조차도 우리에 대한 내부 목소리가 들릴 정도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우리는 방송 보도 등을 통해 상대적인 주목을 받아 그 수혜를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요즘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방송 기자들도 ‘입장은 이해하지만 현안이 달라진 게 없어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당시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정부든 사측이든 대응이 강해질 것이란 예상을 하지는 않았나.
“노동자들에게는 안 좋은 상황이 많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예전과는 특별히 다른 탄압은 없다. 사실, 이명박이든 노무현이든 하층 노동자 입장에선 차이가 없지 않나. 오히려 홍준표 원내대표의 경우와 같이 여당이나 정부 관계자들과 뭔가 면담을 갖기에는 노무현 정권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노무현 정권 때는 이목희겳荑鞭캅?같이 ‘노동 타이틀’을 앞세웠던 사람들이 더 침묵했다. 아무래도 한나라당의 ‘정치적 이해’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들은 ‘부자 정당’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의식하지 않나. 그 목적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정권 때보다는 오히려 더 적극적이다. 그에 비하면, 노무현 정권 때는 우리를 아예 외면했다."
- 끝으로 누리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광우병 쇠고기가 위험한가, 이명박이 위험한가. 그리고 이명박이 위험한가, 대기업·재벌이 위험한가. ‘촛불’은 대기업·재벌을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이 사회의 부를 독점하면서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촛불이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우리와 직접 부대끼며 싸웠던 용역과 구사대가 촛불시위 현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하나인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내가 촛불을 보며 절망한 이유는 ‘과연 저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인가’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9-01 18:01:42
- 최종편집: 2008-09-06 12: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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