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 건설한 ‘다스’
21년 어용노조 마감 … MB도 긴장할까
지난 대선 때 이명박의 실소유주 논란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주)다스. 바로 그 다스에서 노동자들이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연상케 하는 힘찬 기세로 투쟁에 나서 21년 어용노조 세월을 마감하고 민주노조 건설에 성공했다.
1987년 설립된 다스는 현대자동차 등에 자동차 시트를 공급하는 1차 부품업체로 경주공장과 아산공장에 1천 명 정도가 일하며, 2007년 매출액이 4천억을 넘는 ‘잘 나가는’ 회사다. 회장을 맡고 있는 큰 형 이상은(46.85%)과 처남 김재정(48.99%)의 지분을 합하면 이명박 일가가 95.84% 지분을 갖고 있다.
다스 노동자들, “어용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 건설”
2008년 7월 15일 오전 7시 20분, 퇴근을 10분 앞두고 기습적으로 시작된 힘찬 선동과 함께 다스 경주공장 야간조 조합원들이 식당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 주간조 조합원들도 총회를 열자는 힘찬 선동에 너나없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7시 50분 무렵, 모여든 조합원 수가 전체 조합원 686명의 과반수를 넘어서자 총회가 시작되었다.
총회 안건은 두 가지. 18년 동안 혼자서 왕처럼 군림하며 사측과 함께 조합원들을 탄압해 온 위원장 불신임 건과 한국노총 금속노련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상급단체(조직형태) 변경 건이었다.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은 420명. 전격적으로 열린 총회였지만 경주공장 조합원 542명의 77.5%, 전체 조합원의 61.2%가 총회에 참석한 것이었다. 투표 결과 불신임 건은 414표(98.6%), 상급단체변경 건은 405표(96.4%)를 얻어 압도적으로 가결되었다. 사측과 어용노조의 탄압으로 숨죽여 살던 조합원들은 솟구치는 용암처럼 분노를 터뜨렸다.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조직한 연대투쟁의 힘
7시 20분 다스 노동자들이 기습적인 현장 선동을 시작할 무렵,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산하 17개 지회에 지금 당장 다스 근처로 총집결하라는 긴급 연락을 취했다. 8시가 넘어서자 출근길을 돌려 화급히 달려온 간부들이 70명을 넘었다.
9시 무렵 상급단체변경 건이 가결되자, 금속노조 경주지부 대오가 다스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 통근버스 2대와 20여 명의 관리자들이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정문이 뚫리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스 조합원들이 모인 식당에 금속노조 경주지부 대오가 도착하자 천둥 같은 환호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금속노조 대오가 정문과 식당 주변을 방어하는 가운데, 다스 조합원들은 총회를 이어갔다. 지회규칙 제정 건은 407명 투표에 407표(100%), 이번 ‘거사’를 주도한 동지들로 구성된 임원 선출 건은 402표(98.8%)를 얻어 역시 압도적으로 가결되었다.
총회를 마무리한 다스 조합원들은 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부서별로 조 편성에 들어갔다. 오후에 들어서면서는 체력을 소진한 야간조 조합원들이 휴식에 들어갔다.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오후 1시부터 확대간부 파업에 들어가면서 다스에 들어온 연대 대오는 200명 수준까지 올라갔다.
12시간 만에 무릎꿇은 사측, “완승으로 끝난 1차전”
사측은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다. 어용노조 아래서 영원히 고분고분하게 숨죽여 살줄 알았던 조합원들이 일거에 솟구쳐 올라오자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절차상 불법을 주장하며 공권력 투입 요청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조합원들의 뜻과 힘이 워낙 분명하게 결집된 만큼 목소리에 전혀 힘이 없었다.
사측은 “불신임은 인정할 테니, 상급단체 변경은 하지 말고 대화로 풀어보자”고 나왔다. 그러나 사측의 우스운 잔꾀는 단호하게 거부되었다.
다스 물량이 끊기면서 현대자동차 시트공장 라인이 오전 10시 무렵부터 오후까지 하나 둘 멈춰섰다. 최종조립 라인은 재고 물량을 소화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야간조부터는 최종조립 라인마저 서게 될 상황이었다.
오후 5시, 조합원들은 노조 사무실에 쫓아 올라가 그때까지 버티고 있던 어용노조 위원장과 한국노총 관계자들을 몸으로 밀쳐 몰아냈다. 마침내 어용들은 조합원들의 야유와 환호 속에 그들의 소굴에서 쫓겨났다. 조합원들은 노조 앞마당에서 한국노총 산하 다스노조 깃발을 불태우고 위원장 명패를 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이어서 본관 앞마당으로 몰려간 조합원들은 어용노조 위원장을 둘러싸고 총회 결과를 인정하는 합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반항하는 조합원에겐 사실상 해고권까지 휘두르던 어용노조 위원장. 어제까지 고개도 쳐들지 못하던 조합원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터뜨리는 거센 분노 앞에서 그는 망연자실했다. “찍/어/라! 찍/어/라!” 아무리 악질이지만 그로서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분 남짓 버티던 그는 전 조합원이 보는 앞에서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제 사측이 절차상 문제를 거론할 명분도 사라졌다. 오후 7시 교섭을 요청한 사측은 금속노조 경주지부와 다스지회가 요구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1. 회사와 임직원은 7월 15일 노동조합의 총회 결정을 존중하여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 변경된 것을 인정하며 향후 조합과 성실히 교섭에 임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교섭을 거부하지 않는다.
5. 회사는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기 이전 조합(조합간부) 및 조합원의 인사, 배치전환, 징계에 대해 조합과 합의 없이 할 수 없다. 또한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확약하고 이를 행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중징계에 처한다.
6. 회사와 임직원은 오늘 총회와 관련된 일체의 사항에 대해 조합 및 조합원에 대해 민형사상 그 어떤 소송도 제기하지 않으며 신분상 인사상 재산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리고 향후 본 합의와 관련하여 합의 불이행으로 인해 발생되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도 민형사상(신분상, 인사상, 재산상) 책임을 묻지 않으며, 손배·가압류를 제기하지 못한다. 또한 합의 불이행으로 발생한 쟁의기간의 임금손실에 대해서는 위약 당사자가 감수하며, 조합원들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주었는가?
다스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 투쟁은 훌륭한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사측은 치밀하게 반격을 준비할 것이며, 다스 노동자들이 치러야 할 2차전, 3차전은 1차전보다 훨씬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1차전을 완벽한 승리로 끝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1차전의 완승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다스 노동자들 속에 민주노조를 세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의 시급이 법정 최저임금에 걸릴 정도로 열악한 임금 수준과 처우, 관리자들의 횡포, 어용노조의 독단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는 깊은 분노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기습적으로 열린 총회에 조합원들이 보낸 뜨거운 열기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다스 노동자들은 2004년에도 반나절 작업거부에 돌입한 경험이 있었다. 위원장 선거에서 투표함을 바꿔치기한 부정선거가 저질러진 것에 항의하며 한 노동자가 신나를 끼얹고 본관으로 쳐들어가자 전체 조합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치밀한 준비와 방향, 결의 없이 시작된 작업거부는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끝났고, 당시 투쟁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강제 사직을 당해야 했다. 만일 이번에도 노동자들의 강렬한 열망에만 의존했다면 역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2004년 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어렵게 살아남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현대자동차 상주원으로 ‘귀양살이’를 가는 등 힘겨운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밑에서 노동자들을 규합했다. 몇 년의 노력 끝에 다시 형성된 주체세력은 4월 치러진 대의원 선거에 대거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들은 2004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철저한 보안 속에 투쟁을 준비해 왔다. 방향이 뚜렷하지 못했던 2004년과 달리 민주노조 건설과 민주노총 가입이라는 명확한 방향을 세우고 금속노조 경주지부 등과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다. 그렇게 명확한 방향과 확고한 결의를 가진 소수 노동자들의 치밀한 준비 덕분에 다스 노동자들은 2004년의 패배를 딛고 자랑찬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보여준 강력한 연대투쟁 또한 승리를 이끌어낸 결정적인 힘이었다. 2천400여 조합원을 가진 경주지부는 15일 오후 200여 명을 다스로 집결시켜 냈다. 경주지부는 이전에도 몇 차례 지역 총파업을 단행하며 개별 사업장 투쟁에 힘을 집중하여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다. 경주지역에 소중하게 살아있는 지역 연대투쟁의 전통은 노동자들의 힘을 극대화시켜 자본을 굴복시키는 위력을 다시 한 번 발휘했다.
다스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에 담긴 뜻
이명박 집안의 돈줄 다스는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힘차게 민주노조를 세운 사업장이 되었다. 다스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과 자랑찬 승리는 지금 물밑에 숨어있는 거대한 노동자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모두 알고 있듯이 1987년 6월 민중항쟁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5월부터 이어진 촛불시위가 예상을 뛰어넘어 거대하게 솟구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노동자 민중이 벼랑으로 내몰리면서 엄청난 분노를 가슴 속에 쌓고 있기 때문이었다. 민주노조 건설과 파업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훨씬 더 위력적으로 분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점을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들이 깨닫고 승리의 경험을 전해 들으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촛불시위로 드러났던 노동자들의 분노는 1987년과 같은 거대한 노동자 투쟁의 불길이 되어 솟구쳐 올라올 것이다.
세계자본주의가 빠르게 위기로 빠져드는 상황은 그 대가를 누가 지불할 것인가를 놓고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운명을 건 대회전을 피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거대한 분출과 조직된 노동자들의 과감한 투쟁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결합되어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운명적인 대회전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뚜벅뚜벅 나아가야 할 길이다. 다스 노동자들의 성공적인 민주노조 건설 투쟁은 그 길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1987년 설립된 다스는 현대자동차 등에 자동차 시트를 공급하는 1차 부품업체로 경주공장과 아산공장에 1천 명 정도가 일하며, 2007년 매출액이 4천억을 넘는 ‘잘 나가는’ 회사다. 회장을 맡고 있는 큰 형 이상은(46.85%)과 처남 김재정(48.99%)의 지분을 합하면 이명박 일가가 95.84% 지분을 갖고 있다.
다스 노동자들, “어용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 건설”
2008년 7월 15일 오전 7시 20분, 퇴근을 10분 앞두고 기습적으로 시작된 힘찬 선동과 함께 다스 경주공장 야간조 조합원들이 식당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 주간조 조합원들도 총회를 열자는 힘찬 선동에 너나없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7시 50분 무렵, 모여든 조합원 수가 전체 조합원 686명의 과반수를 넘어서자 총회가 시작되었다.
총회 안건은 두 가지. 18년 동안 혼자서 왕처럼 군림하며 사측과 함께 조합원들을 탄압해 온 위원장 불신임 건과 한국노총 금속노련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상급단체(조직형태) 변경 건이었다.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은 420명. 전격적으로 열린 총회였지만 경주공장 조합원 542명의 77.5%, 전체 조합원의 61.2%가 총회에 참석한 것이었다. 투표 결과 불신임 건은 414표(98.6%), 상급단체변경 건은 405표(96.4%)를 얻어 압도적으로 가결되었다. 사측과 어용노조의 탄압으로 숨죽여 살던 조합원들은 솟구치는 용암처럼 분노를 터뜨렸다.
-
- 사진 더 보기
- ⓒ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조직한 연대투쟁의 힘
7시 20분 다스 노동자들이 기습적인 현장 선동을 시작할 무렵,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산하 17개 지회에 지금 당장 다스 근처로 총집결하라는 긴급 연락을 취했다. 8시가 넘어서자 출근길을 돌려 화급히 달려온 간부들이 70명을 넘었다.
9시 무렵 상급단체변경 건이 가결되자, 금속노조 경주지부 대오가 다스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 통근버스 2대와 20여 명의 관리자들이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정문이 뚫리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스 조합원들이 모인 식당에 금속노조 경주지부 대오가 도착하자 천둥 같은 환호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금속노조 대오가 정문과 식당 주변을 방어하는 가운데, 다스 조합원들은 총회를 이어갔다. 지회규칙 제정 건은 407명 투표에 407표(100%), 이번 ‘거사’를 주도한 동지들로 구성된 임원 선출 건은 402표(98.8%)를 얻어 역시 압도적으로 가결되었다.
총회를 마무리한 다스 조합원들은 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부서별로 조 편성에 들어갔다. 오후에 들어서면서는 체력을 소진한 야간조 조합원들이 휴식에 들어갔다.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오후 1시부터 확대간부 파업에 들어가면서 다스에 들어온 연대 대오는 200명 수준까지 올라갔다.
12시간 만에 무릎꿇은 사측, “완승으로 끝난 1차전”
사측은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다. 어용노조 아래서 영원히 고분고분하게 숨죽여 살줄 알았던 조합원들이 일거에 솟구쳐 올라오자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절차상 불법을 주장하며 공권력 투입 요청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조합원들의 뜻과 힘이 워낙 분명하게 결집된 만큼 목소리에 전혀 힘이 없었다.
사측은 “불신임은 인정할 테니, 상급단체 변경은 하지 말고 대화로 풀어보자”고 나왔다. 그러나 사측의 우스운 잔꾀는 단호하게 거부되었다.
다스 물량이 끊기면서 현대자동차 시트공장 라인이 오전 10시 무렵부터 오후까지 하나 둘 멈춰섰다. 최종조립 라인은 재고 물량을 소화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야간조부터는 최종조립 라인마저 서게 될 상황이었다.
오후 5시, 조합원들은 노조 사무실에 쫓아 올라가 그때까지 버티고 있던 어용노조 위원장과 한국노총 관계자들을 몸으로 밀쳐 몰아냈다. 마침내 어용들은 조합원들의 야유와 환호 속에 그들의 소굴에서 쫓겨났다. 조합원들은 노조 앞마당에서 한국노총 산하 다스노조 깃발을 불태우고 위원장 명패를 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이어서 본관 앞마당으로 몰려간 조합원들은 어용노조 위원장을 둘러싸고 총회 결과를 인정하는 합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반항하는 조합원에겐 사실상 해고권까지 휘두르던 어용노조 위원장. 어제까지 고개도 쳐들지 못하던 조합원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터뜨리는 거센 분노 앞에서 그는 망연자실했다. “찍/어/라! 찍/어/라!” 아무리 악질이지만 그로서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분 남짓 버티던 그는 전 조합원이 보는 앞에서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제 사측이 절차상 문제를 거론할 명분도 사라졌다. 오후 7시 교섭을 요청한 사측은 금속노조 경주지부와 다스지회가 요구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1. 회사와 임직원은 7월 15일 노동조합의 총회 결정을 존중하여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 변경된 것을 인정하며 향후 조합과 성실히 교섭에 임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교섭을 거부하지 않는다.
5. 회사는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기 이전 조합(조합간부) 및 조합원의 인사, 배치전환, 징계에 대해 조합과 합의 없이 할 수 없다. 또한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확약하고 이를 행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중징계에 처한다.
6. 회사와 임직원은 오늘 총회와 관련된 일체의 사항에 대해 조합 및 조합원에 대해 민형사상 그 어떤 소송도 제기하지 않으며 신분상 인사상 재산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리고 향후 본 합의와 관련하여 합의 불이행으로 인해 발생되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도 민형사상(신분상, 인사상, 재산상) 책임을 묻지 않으며, 손배·가압류를 제기하지 못한다. 또한 합의 불이행으로 발생한 쟁의기간의 임금손실에 대해서는 위약 당사자가 감수하며, 조합원들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못한다.
무엇이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주었는가?
다스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 투쟁은 훌륭한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사측은 치밀하게 반격을 준비할 것이며, 다스 노동자들이 치러야 할 2차전, 3차전은 1차전보다 훨씬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1차전을 완벽한 승리로 끝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1차전의 완승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다스 노동자들 속에 민주노조를 세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의 시급이 법정 최저임금에 걸릴 정도로 열악한 임금 수준과 처우, 관리자들의 횡포, 어용노조의 독단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는 깊은 분노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기습적으로 열린 총회에 조합원들이 보낸 뜨거운 열기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다스 노동자들은 2004년에도 반나절 작업거부에 돌입한 경험이 있었다. 위원장 선거에서 투표함을 바꿔치기한 부정선거가 저질러진 것에 항의하며 한 노동자가 신나를 끼얹고 본관으로 쳐들어가자 전체 조합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치밀한 준비와 방향, 결의 없이 시작된 작업거부는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끝났고, 당시 투쟁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강제 사직을 당해야 했다. 만일 이번에도 노동자들의 강렬한 열망에만 의존했다면 역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2004년 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어렵게 살아남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현대자동차 상주원으로 ‘귀양살이’를 가는 등 힘겨운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밑에서 노동자들을 규합했다. 몇 년의 노력 끝에 다시 형성된 주체세력은 4월 치러진 대의원 선거에 대거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들은 2004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철저한 보안 속에 투쟁을 준비해 왔다. 방향이 뚜렷하지 못했던 2004년과 달리 민주노조 건설과 민주노총 가입이라는 명확한 방향을 세우고 금속노조 경주지부 등과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다. 그렇게 명확한 방향과 확고한 결의를 가진 소수 노동자들의 치밀한 준비 덕분에 다스 노동자들은 2004년의 패배를 딛고 자랑찬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보여준 강력한 연대투쟁 또한 승리를 이끌어낸 결정적인 힘이었다. 2천400여 조합원을 가진 경주지부는 15일 오후 200여 명을 다스로 집결시켜 냈다. 경주지부는 이전에도 몇 차례 지역 총파업을 단행하며 개별 사업장 투쟁에 힘을 집중하여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다. 경주지역에 소중하게 살아있는 지역 연대투쟁의 전통은 노동자들의 힘을 극대화시켜 자본을 굴복시키는 위력을 다시 한 번 발휘했다.
-
- 사진 더 보기
- ⓒ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다스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에 담긴 뜻
이명박 집안의 돈줄 다스는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힘차게 민주노조를 세운 사업장이 되었다. 다스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과 자랑찬 승리는 지금 물밑에 숨어있는 거대한 노동자 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모두 알고 있듯이 1987년 6월 민중항쟁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5월부터 이어진 촛불시위가 예상을 뛰어넘어 거대하게 솟구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노동자 민중이 벼랑으로 내몰리면서 엄청난 분노를 가슴 속에 쌓고 있기 때문이었다. 민주노조 건설과 파업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훨씬 더 위력적으로 분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점을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들이 깨닫고 승리의 경험을 전해 들으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촛불시위로 드러났던 노동자들의 분노는 1987년과 같은 거대한 노동자 투쟁의 불길이 되어 솟구쳐 올라올 것이다.
세계자본주의가 빠르게 위기로 빠져드는 상황은 그 대가를 누가 지불할 것인가를 놓고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운명을 건 대회전을 피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거대한 분출과 조직된 노동자들의 과감한 투쟁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결합되어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운명적인 대회전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뚜벅뚜벅 나아가야 할 길이다. 다스 노동자들의 성공적인 민주노조 건설 투쟁은 그 길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9-01 17:09:39
- 최종편집: 2008-09-06 12:35:12


© Copyright 2000~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