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만 해선 다 문 닫습니다”
경제부침속에서 버텨온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들
●●● 우리 경제는 위기인가? 학자마다 그리고, 경제생활을 하는 이들의 처지에 따라 누구는 위기라고 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는 대목에서는 한 목소리를 낸다. 중소기업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상대적 약자들에게 어려움은 더 크다. 중소기업의 경기는 작년 4/4분기를 정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작년 자영업의 잉여는 0.9%밖에 증가하지 않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적자장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인해 작년 한해 자영업자는 무려 8만5천명이 줄었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노출돼 있는 비정규직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이들의 외침은 상투적 구호가 아닌 절박한 현실의 반영이다.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60일 넘게 목숨 걸고 단식을 하지 않았던가?
●●● 반면, 대기업과 금융자본 등은 어려운 경제현실 상황에서도 성장곡선을 그리며 달콤한 열매를 따 먹고 있다. 성장의 양극화라 부를 수도 있겠다. 아니 일극성장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각 경제주체가 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부가 이미 부를 소유한 집단에 편중되고 있는 것이 어려움의 본질이다. 그래서 『말』은 고용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 전체 취업자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자영업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이들은 우리 경제 어디에 있었는지. 경기 상승과 하락의 부침속에서 어떻게 버텨왔는지 살펴봤다.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 주식회사 구성E&C 대표이사실에서 만난 윤종구(46) 대표는 기자가 자리에 앉자 중소기업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기업군 중에서도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수출산업은 성장하지만 건설 등 내수시장에 기반을 둔 기업들은 고전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명암이 명확합니다. 신정부 들어서도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펼쳐 중소기업을 포함해 내수시장에 기반을 둔 기업들은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윤 대표는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10년간 설계업무를 하다 95년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1년간은 수주도 제대로 못 따고 어려운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다 회사가 자리를 잡으며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97년 11월까지는 일이 넘쳐 철야를 밥 먹듯이 했다. 당시 회사직원이 28명으로 어엿한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윤 대표도 외환위기는 피해갈 수 없었다. 98년 1월, 35억원에 달하던 설계수주물량 중 진행할 수 있는 것이 3억원에 불과했다. 설계물량을 줬던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사업을 중단한 것.
“당시에 이렇게 간다면 직원들 먹여 살리기도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TAB라고 마감공정중 하나인 계측업을 병행했습니다. 설계는 선행작업이라 경기에 민감한데 설계 이후의 공정은 환경이 안 좋아진다고 올스톱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자금을 투입해서 사업을 진행하죠. 여기에 착안해 설계 이외의 사업을 보강하며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윤 대표는 설계부터 시작해서 건설업, 주택공급업 등 계속 사업을 다각화했다. 3년전부터는 에너지전문기업으로 토대를 갖추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자산가치가 꽤 높은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고, 은행에서는 회사로 찾아와 자금을 써달라고 한다. 여기까지 들으니 중소기업의 어려움과 윤 대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윤 대표는 고개를 젓는다. 사업다각화로 어려운 환경을 헤쳐나가고 있을 뿐, 대기업 중심의 우리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인이 겪는 어려움은 똑같다는 것.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자산규모가 취약합니다. 그러다보니 외부자본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고 이자지출이 발생하죠. 이런 상황에서 경쟁력이 취약해지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몇 가지 통계만 살펴보면 윤 대표의 말이 금새 다가온다. 2007년 말부터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재고 증가로 인해 운전자금이 필요해진 중소기업들이 대출 확대를 꾀했다. 올해 6월말 잔액기준 중소기업 대출은 398조8천억원으로 전체 기업대출의 89%가 중소기업 대출이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대기업과 금리격차를 벌리며 지난 5월 7.14%까지 올랐다.
이에따라 이자부담이 가중되고 수익성이 나쁜 기업은 연체를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금 수입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31.3%로 파악돼, 3개 기업 가운데 한 개 기업은 돈을 벌어 이자도 갚지 못한다.
윤 대표는 인력 문제도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우리가 필요한 인력 구하는 것만도 어렵습니다. 급료나 복지가 대기업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취업을 해도 빠르게 이직을 합니다. 저희만 해도 이직률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아픈 경험 한 가지를 얘기한다. “저희 회사는 기술사 2명을 배출할 정도로 교육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성과가 있어서 기업발전의 원동력이 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교육시켜서 잘 키워놓고 결국 인력을 대기업에 빼앗기죠. 인력유지가 어렵습니다. 저희 기술사 2명도 전부 대기업으로 갔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한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죠.”
원자재가격 폭등, 대출금리 상승으로 중소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횡포는 좀더 오래된 문제다. “한 가지 사업만 해서 직원들 교육시키고 전문화시켜서 고부가가치 만들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한 가지 사업만 하신 분들은 거의 문을 닫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비전이 보여야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윤 대표의 말이다.
“사업하다 보니 땅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김윤식(49) 온누리침구 대표를 만난 것은 구로역 앞에 정차해 놓은 그의 봉고차량에서였다. 그는 구로시장 거래처에 전기요를 납품하러 가는 길이었다. 김 대표는 양천구 신월동에 세를 얻어 조그맣게 가게를 한다. 이부자리, 창가림, 수예소품 등을 취급하는데, 직접 파는 소매보다는 소매점에 물건을 대주는 도매를 주로 한다. 전체 취업자 중 김 대표와 같은 자영업주 및 무급가족종사자의 비율은 30%를 넘는다. 자영업주 중 40~50대의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중고령 노동자들이 외환위기 이후 임금근로자로의 재취업 어려움과 미래불안 등으로 자영업 형태의 취업을 많이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표의 경우 진작부터 장사에 눈을 뜬 경우다.
“친척 어른이 서울에서 등산장비 도매업을 했어요. 이 분한테 등산용 지팡이, 버너, 토치램프를 외상으로 받아다가 팔았죠. 물건 값은 설날과 추석 때 완불했습니다. 오토바이 한 대 몰고 전라북도 지역을 돌면서 체육사, 등산용품점에 납품했는데 한 달에 일주일만 일하고도 물건을 다 팔았습니다.”
김 대표는 취업을 하느니 사업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취업준비를 접고 부모님께 1백만원을 빌려 중고 오토바이 한 대를 사서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1년만에 8천만원 매출을 올렸다. 1천만원은 연수익으로 떨어졌다. 은행직원 월급이 30만원 하던 시절이다.
“가능성이 보여서 부모님께 부탁해 농협에서 1천500만원 대출을 받았습니다. 전주에 보증금 500만원, 월세 20만원짜리 가게를 하나 얻고, 나머지 1천만원 들고 서울에 올라와 등산용품 덤핑을 잡았습니다. 5톤 트럭 2대 분량이었죠. 나중에 보니 다 흠있고 하자있는 물건이었어요. 보수해서 좀 멀쩡한 것은 팔았는데 역시 덤핑을 잡으니까 고생한 보람이 없는 거예요. 다음부터는 정품에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김 대표는 3~4년만에 기반을 잡고 한 달 매출을 2억까지 올리는 등 꽤 성공했다. 그러나 어음을 막지 못해 85년 부도를 내고 말았다. 무일푼으로 서울로 올라온 그는 4년동안 방황한 끝에 99년 현재의 일을 시작했다.
“서울에 와서도 사기를 당해 1억원을 뜯겼지만 현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여건이 되면 다시 시골로 내려가서 내 땅에 내 건물 지어서 물건을 좀 더 싸게 팔고 싶습니다.”
자영업자인 김 대표가 가장 문제라고 느끼는 것은 바로 ‘땅’이다.
“사업하다보니 땅이 가장 큰 문제더군요. 실컷 팔아서 번 돈을 건물주한테 다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땅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종로, 명동 등 화려한데로만 찾아가려고 하는데, 외지더라도 월세가 싼데서 머리를 쓰면서 장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의 꿈은 고향인 전주에 노동자 백화점을 만드는 것이다. 마진을 많이 남기지 않고 적절한 가격에 물건을 공급하는 것에 뜻이 맞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 저렴한 땅을 구입, 백화점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갑부의 땅이 아닌 노동자 서민들이 5~10만원씩 모아서 만든 땅이니까. 물건을 저렴하게 팔 수 있습니다. 아직은 힘이 없어서 못하지만 1만명만 모이면 노동자 백화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꿈으로 그칠지도 모르지만 제 꿈입니다.”
“자영업자들은 지원받을 곳이 없습니다”
방승현(42) 씨의 명함에는 직함이 없다. 발레복 현대의상 맞춤·대여 ‘키트리’. 업체로고와 사업분야를 설명하는 문구와 그의 이름 석자만 있다. 키트리가 가족 중심의 가내수공업체이기 때문이다.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2층짜리 키트리 건물 앞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월세 때문에 장사를 못하겠더라구요. 60평을 썼는데 월세가 350~400만원 정도였습니다. 작년에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고, 인원을 줄여서 이쪽으로 이전했습니다.”
98년 창업한 키트리는 2003년에는 인원이 12명이나 됐다.
“활황이다보니 사람을 많이 썼는데, 실제 바쁜 것은 몇 개월이라 남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가족중심으로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6명이 일하는데 1명을 빼고 모두 가족입니다.”
방 씨는 “자영업자들은 지원받을 곳이 없다”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우리나라는 은행 돈 쓰기 힘들잖아요. 소규모다 보니까 공장 하나 지을래도 힘들고. 자영업하는 사람들이 엄청 힘듭니다. 너무 많아서 망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특히 영세 수공업자들이 많은 문래동 같은데 가보면 정말 힘들어요.”
키트리는 인원감축, 지방 이전 등을 통해 비용을 감축하는 한편, 인터넷을 통한 판로 개척, 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며 어려운 상황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사실 중소기업, 자영업주를 상대로 취재를 준비하며 취재원을 섭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별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이 와서 귀찮게 한다는 반응들이었다. 어렵사리 만난 위 업체들은 사업다각화, 혁신 등을 통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기반을 탄탄히 만들어가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자금력, 인력난, 정책적 지원 부재 등 여느 중소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고 있었다.
●●● 반면, 대기업과 금융자본 등은 어려운 경제현실 상황에서도 성장곡선을 그리며 달콤한 열매를 따 먹고 있다. 성장의 양극화라 부를 수도 있겠다. 아니 일극성장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각 경제주체가 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부가 이미 부를 소유한 집단에 편중되고 있는 것이 어려움의 본질이다. 그래서 『말』은 고용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 전체 취업자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자영업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이들은 우리 경제 어디에 있었는지. 경기 상승과 하락의 부침속에서 어떻게 버텨왔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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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기업대출의 89%가 중소기업 대출. 3개 기업 가운데 하나는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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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 주식회사 구성E&C 대표이사실에서 만난 윤종구(46) 대표는 기자가 자리에 앉자 중소기업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기업군 중에서도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수출산업은 성장하지만 건설 등 내수시장에 기반을 둔 기업들은 고전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명암이 명확합니다. 신정부 들어서도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펼쳐 중소기업을 포함해 내수시장에 기반을 둔 기업들은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윤 대표는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10년간 설계업무를 하다 95년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1년간은 수주도 제대로 못 따고 어려운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다 회사가 자리를 잡으며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97년 11월까지는 일이 넘쳐 철야를 밥 먹듯이 했다. 당시 회사직원이 28명으로 어엿한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윤 대표도 외환위기는 피해갈 수 없었다. 98년 1월, 35억원에 달하던 설계수주물량 중 진행할 수 있는 것이 3억원에 불과했다. 설계물량을 줬던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사업을 중단한 것.
“당시에 이렇게 간다면 직원들 먹여 살리기도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TAB라고 마감공정중 하나인 계측업을 병행했습니다. 설계는 선행작업이라 경기에 민감한데 설계 이후의 공정은 환경이 안 좋아진다고 올스톱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자금을 투입해서 사업을 진행하죠. 여기에 착안해 설계 이외의 사업을 보강하며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윤 대표는 설계부터 시작해서 건설업, 주택공급업 등 계속 사업을 다각화했다. 3년전부터는 에너지전문기업으로 토대를 갖추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자산가치가 꽤 높은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고, 은행에서는 회사로 찾아와 자금을 써달라고 한다. 여기까지 들으니 중소기업의 어려움과 윤 대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윤 대표는 고개를 젓는다. 사업다각화로 어려운 환경을 헤쳐나가고 있을 뿐, 대기업 중심의 우리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인이 겪는 어려움은 똑같다는 것.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자산규모가 취약합니다. 그러다보니 외부자본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고 이자지출이 발생하죠. 이런 상황에서 경쟁력이 취약해지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몇 가지 통계만 살펴보면 윤 대표의 말이 금새 다가온다. 2007년 말부터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재고 증가로 인해 운전자금이 필요해진 중소기업들이 대출 확대를 꾀했다. 올해 6월말 잔액기준 중소기업 대출은 398조8천억원으로 전체 기업대출의 89%가 중소기업 대출이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대기업과 금리격차를 벌리며 지난 5월 7.14%까지 올랐다.
이에따라 이자부담이 가중되고 수익성이 나쁜 기업은 연체를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금 수입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31.3%로 파악돼, 3개 기업 가운데 한 개 기업은 돈을 벌어 이자도 갚지 못한다.
윤 대표는 인력 문제도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우리가 필요한 인력 구하는 것만도 어렵습니다. 급료나 복지가 대기업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취업을 해도 빠르게 이직을 합니다. 저희만 해도 이직률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아픈 경험 한 가지를 얘기한다. “저희 회사는 기술사 2명을 배출할 정도로 교육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성과가 있어서 기업발전의 원동력이 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교육시켜서 잘 키워놓고 결국 인력을 대기업에 빼앗기죠. 인력유지가 어렵습니다. 저희 기술사 2명도 전부 대기업으로 갔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한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죠.”
원자재가격 폭등, 대출금리 상승으로 중소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횡포는 좀더 오래된 문제다. “한 가지 사업만 해서 직원들 교육시키고 전문화시켜서 고부가가치 만들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한 가지 사업만 하신 분들은 거의 문을 닫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비전이 보여야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윤 대표의 말이다.
“사업하다 보니 땅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김윤식(49) 온누리침구 대표를 만난 것은 구로역 앞에 정차해 놓은 그의 봉고차량에서였다. 그는 구로시장 거래처에 전기요를 납품하러 가는 길이었다. 김 대표는 양천구 신월동에 세를 얻어 조그맣게 가게를 한다. 이부자리, 창가림, 수예소품 등을 취급하는데, 직접 파는 소매보다는 소매점에 물건을 대주는 도매를 주로 한다. 전체 취업자 중 김 대표와 같은 자영업주 및 무급가족종사자의 비율은 30%를 넘는다. 자영업주 중 40~50대의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중고령 노동자들이 외환위기 이후 임금근로자로의 재취업 어려움과 미래불안 등으로 자영업 형태의 취업을 많이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표의 경우 진작부터 장사에 눈을 뜬 경우다.
“친척 어른이 서울에서 등산장비 도매업을 했어요. 이 분한테 등산용 지팡이, 버너, 토치램프를 외상으로 받아다가 팔았죠. 물건 값은 설날과 추석 때 완불했습니다. 오토바이 한 대 몰고 전라북도 지역을 돌면서 체육사, 등산용품점에 납품했는데 한 달에 일주일만 일하고도 물건을 다 팔았습니다.”
김 대표는 취업을 하느니 사업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취업준비를 접고 부모님께 1백만원을 빌려 중고 오토바이 한 대를 사서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1년만에 8천만원 매출을 올렸다. 1천만원은 연수익으로 떨어졌다. 은행직원 월급이 30만원 하던 시절이다.
“가능성이 보여서 부모님께 부탁해 농협에서 1천500만원 대출을 받았습니다. 전주에 보증금 500만원, 월세 20만원짜리 가게를 하나 얻고, 나머지 1천만원 들고 서울에 올라와 등산용품 덤핑을 잡았습니다. 5톤 트럭 2대 분량이었죠. 나중에 보니 다 흠있고 하자있는 물건이었어요. 보수해서 좀 멀쩡한 것은 팔았는데 역시 덤핑을 잡으니까 고생한 보람이 없는 거예요. 다음부터는 정품에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김 대표는 3~4년만에 기반을 잡고 한 달 매출을 2억까지 올리는 등 꽤 성공했다. 그러나 어음을 막지 못해 85년 부도를 내고 말았다. 무일푼으로 서울로 올라온 그는 4년동안 방황한 끝에 99년 현재의 일을 시작했다.
“서울에 와서도 사기를 당해 1억원을 뜯겼지만 현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여건이 되면 다시 시골로 내려가서 내 땅에 내 건물 지어서 물건을 좀 더 싸게 팔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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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역 지하상가. 세를 얻어 장사하는 이들에겐 높은 월세가 큰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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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말
자영업자인 김 대표가 가장 문제라고 느끼는 것은 바로 ‘땅’이다.
“사업하다보니 땅이 가장 큰 문제더군요. 실컷 팔아서 번 돈을 건물주한테 다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땅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종로, 명동 등 화려한데로만 찾아가려고 하는데, 외지더라도 월세가 싼데서 머리를 쓰면서 장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의 꿈은 고향인 전주에 노동자 백화점을 만드는 것이다. 마진을 많이 남기지 않고 적절한 가격에 물건을 공급하는 것에 뜻이 맞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 저렴한 땅을 구입, 백화점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갑부의 땅이 아닌 노동자 서민들이 5~10만원씩 모아서 만든 땅이니까. 물건을 저렴하게 팔 수 있습니다. 아직은 힘이 없어서 못하지만 1만명만 모이면 노동자 백화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꿈으로 그칠지도 모르지만 제 꿈입니다.”
“자영업자들은 지원받을 곳이 없습니다”
방승현(42) 씨의 명함에는 직함이 없다. 발레복 현대의상 맞춤·대여 ‘키트리’. 업체로고와 사업분야를 설명하는 문구와 그의 이름 석자만 있다. 키트리가 가족 중심의 가내수공업체이기 때문이다.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2층짜리 키트리 건물 앞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월세 때문에 장사를 못하겠더라구요. 60평을 썼는데 월세가 350~400만원 정도였습니다. 작년에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고, 인원을 줄여서 이쪽으로 이전했습니다.”
98년 창업한 키트리는 2003년에는 인원이 12명이나 됐다.
“활황이다보니 사람을 많이 썼는데, 실제 바쁜 것은 몇 개월이라 남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가족중심으로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6명이 일하는데 1명을 빼고 모두 가족입니다.”
방 씨는 “자영업자들은 지원받을 곳이 없다”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우리나라는 은행 돈 쓰기 힘들잖아요. 소규모다 보니까 공장 하나 지을래도 힘들고. 자영업하는 사람들이 엄청 힘듭니다. 너무 많아서 망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특히 영세 수공업자들이 많은 문래동 같은데 가보면 정말 힘들어요.”
키트리는 인원감축, 지방 이전 등을 통해 비용을 감축하는 한편, 인터넷을 통한 판로 개척, 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며 어려운 상황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사실 중소기업, 자영업주를 상대로 취재를 준비하며 취재원을 섭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별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이 와서 귀찮게 한다는 반응들이었다. 어렵사리 만난 위 업체들은 사업다각화, 혁신 등을 통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기반을 탄탄히 만들어가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자금력, 인력난, 정책적 지원 부재 등 여느 중소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고 있었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9-01 15:37:57
- 최종편집: 2008-09-06 12: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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