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통미봉남'의 시대가 온다

단시간에 문제 해결 안돼...'신뢰' 회복이 급선무

배혜정 기자 / bhj@vop.co.kr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글자 크기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다. 북한이 미리부터 예고한 '남북관계 전면차단'이 머지 않은 듯 보인다.

심상치 않은 북의 움직임

북한은 지난 12일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에 대한 남측의 입장 등을 문제삼으며 남북 군사분계선의 통행을 12월1일부터 엄격히 제한.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당국간 소통의 채널이었던 판문점 적십자 직통전화선을 차단했다. 북한의 이같은 조치들은 그나마 남북을 이어주고 있는 개성관광과 개성공단의 앞날 마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앞서 개성공단을 시찰하러 온 김영철 단장을 비롯한 군부 관계자들을 대면했던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유창근 부회장은 "북한이 단순히 경고용이 아니라 일종의 시나리오를 갖고 준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북측이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
  • 북측이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
  • 사진 더 보기

그동안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통일운동단체나 민주노동당 등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에서도 과거와는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10.4정상선언 1주년 즈음해 6.15남측위원회측이 강력하게 제안한 남북 공동행사는 북측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성사되지 못했다. 표면상으론 촉박한 시간이 문제인 듯 했지만 북과 실무회담을 했던 6.15남측위 관계자는 "북은 처음부터 공동행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 19일부터 4박 5일 평양방문을 한 민주노동당 대표단도 북한의 냉랭한 반응에 퍽 놀란 눈치다. 강기갑 대표도 "우리 생각과 북측 생각이 전혀 달랐다는 점을 깜짝 놀랄 정도로 느끼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민노당 대표단에게 '이명박 정권의 심부름꾼으로 왔느냐'는 식의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는 전언도 들린다. 앞서 2005년과 2006년 방북 때마나 만났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은 성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김영대 조선사민당 위원장은 공항으로 마중 나오지도 않았다.

일련의 흐름들을 보면 북한이 남측의 통일운동단체나 민주노동당과 같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단체들과도 서서히 거리를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과거 '통미봉남(通美封南)'은 보통 북미관계가 진전하는데 반해 남북관계는 답보하고 있을 때나 한국정부가 북미관계에서 소외되는 듯한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통미봉남 자체가 북한의 '정책'은 아니었단 뜻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과거와는 달리 '통미봉남'을 정책화시키고 현실화시키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시한일로 정한 12월1일을 전후해 개성공단을 중단시킬지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의 낙관..그러나

북한의 강경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 듯 보인다.
  • 북한의 강경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 듯 보인다.
  • 사진 더 보기


상황은 이렇지만 정부 내의 기류는 여전히 낙관론이 우세한 듯 보인다.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의연한 버티기'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기준선'을 제시해 줬듯이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북한이 대화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공식 멘트다.

그러면서 정부는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전임 정부 초반에도 남북대화 중단 시기가 있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지난 7월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하는 시기에도 총 5번의, 32개월가량의 남북대화 중단기가 있었다"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서 초기 3~4개월 동안 이런 상황인 건 어떤 면에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년을 기다린 다음에야 대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에게 '최악의 남북관계'란 바톤을 이어받은 김대중 정부가 초기에 냉각기를 가졌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도 이미 미국 부시 행정부와 북한 사이에 2차 북핵문제가 불붙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와 '스타트 라인'부터가 달랐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변경하면서 북핵문제는 해결돼가고 있던 상황에다가 10.4선언이라는 남북간 합의사항도 이미 마련돼 있는 등 훨씬 좋은 환경에서 남북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전임 정부의 전례'를 이유로 드는 것은 남북관계 관리 소홀에 대한 변명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데에는 '북미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어짜피 북한에 자금을 댈 곳은 우리 뿐'이라는 착각에도 기인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판단의 기저에는 '경제 대통령'답게 북한이 결국엔 돈줄을 잡고 있는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올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주관적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북핵문제 진전과 북미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미국의 대북식량 50만 톤 지원도 약속대로 내년 5월말까지 계속될 예정이고,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차관을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를 뒤집어 보면 남측 정부의 지원이 더이상 대북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도 지난 4월1일 노동신문 '논평원 글'을 통해 "우리는 지난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남조선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더군다나 그동안 숱하게 아사자를 내고도 외부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던 전사(前史)를 봤을 때 과연 돈이나 경제재건이 북한의 최종 목적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한미관계가 좋은데 북한 문제가 무슨 걱정이냐'고 되풀이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과거 김영삼-클린턴 정부 시기 를 돌아보자. 김영삼 정부는 '한미동맹'을 명분삼아 북미 1차 고위급 회담이나 미국이 '포괄적 접근방안'을 고려했을 때 등 북핵 협상의 고비마다 이의를 제기해 미국의 대북협상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진전된 건 북미관계요, 깨진 건 한미관계였다. 클린턴 정부는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맺고, 경수로 설비 의무만 한국에 짐지웠다.

이명박 정부도 김영삼 정부 때처럼 한미동맹에만 의존해 대북정책을 구사하려다가는 오바마 정부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과거와 다른 국제정세..한국만 '왕따'될 수 있어

이는 국제정세의 변화와도 연관된다. 부시 정부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양축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는 전략을 구사했다면 차기 오바마 정부의 동북아 정세의 초점은 '미중 협력'이다.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에 맞닥뜨린 미국으로선 중국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미국이 중국을 협력자 관계로 상정할 경우 북한 문제를 놓고도 미중간 이견 해소가 가능해진다. 미국은 무리하게 MD구축을 강행하지 않고 중국과 협력해 북핵문제 해결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목적 수행이 앞섰던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위상은 하락하게 된다.

오바마 당선자는 최근 외교원칙과 관련해 적성국과 우방모두에 대한 '강경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천명했다. 차기 미 행정부가 북핵해결을 위해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 오바마 당선자는 최근 외교원칙과 관련해 적성국과 우방모두에 대한 '강경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천명했다. 차기 미 행정부가 북핵해결을 위해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 사진 더 보기

일각에선 북미 정상회담 이후를 더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가 최근 외교원칙과 관련해 적성국과 우방모두에 대한 '강경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천명하면서 차기 미 행정부가 북핵해결을 위해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아울러 오바마 당선자의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는 "출범 100일 내 대북 특사를 파견하라"고 제안하고 있어 이같은 수순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대북특사파견→북미정상회담를 거쳐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까지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들이 현실성 있게 제시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에 대한 걱정은 이 부분에서 제기된다. 휴전협정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북한, 중국, 미국 외에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서 한국이 끼어들 틈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 종전선언의 관련 당사자로 한국이 참여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져 왔다.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10.4선언은 이런 국제적 공감대에 한번 더 못을 박는 효과를 냈다. 그러나 이제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북한, 중국, 미국 가운데 누구라도 한국의 참여를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체이면서도 객체로 전락되는 최악의 수를 맞을 수 있다.

통미봉남, 무엇이 문제인가

통미봉남이 지속될 경우 국제정세와는 달리 남북간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 대북전문가는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내년 봄 꽃게잡이철 때 서해 상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라며 "남북간 핫라인도 단절된 상황에서 물리적 충돌이 있을 경우 어떻게 확전될 지 모를 일"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두 차례의 서해교전에서도 그랬듯 남북간의 충돌은 미국도 관여하지 않는다. 제한적이나마 남북간 충돌이 발생해 한반도에 긴장상태가 조성되면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는 더욱 커지게 된다. 이는 곧 상당한 경제적 가치의 손실로 이어지게 되고, 경제위기 돌파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통미봉남으로 인해 남한 내부의 정치 논쟁이 가속화 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햇볕정책 10년의 성과를 목도했던 대다수 국민들과 야당은 통미봉남 상황을 반이명박 전선에 활용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현재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를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통미봉남에 따른 '코리아 리스크'는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정작 마땅한 해결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년동안 불신이 쌓이고 쌓여 여기까지 왔다면, 1년 혹은 그 이상의 해소과정이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전문가는 "북한의 입장에서 지난 1년은 결국 남측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온 기간이었다"면서 "이를 만회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걸릴 지 모를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북한과 돈으로 흥정할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을 살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컨텐트 링크

민중의소리를 후원하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컨텐트 링크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