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결판내자"

[인터뷰] 단식농성하는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재진 기자 / besties@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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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업이 굉장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죽었다고 판단합니다. 죽음에 대한 애도의 표현인 것이죠, 동시에 농업은 죽었지만 종자는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농업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식탁의 80%는 외국산입니다. 광우병 파동, 멜라민 파동, 꽃게파동이 터졌습니다. 그 80%가 과연 안전한 것인지, 고민할 수 있도록 상복을 차려입고 국민들이 진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17일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이 국회 정문 앞에서 상복을 입고 한겨울 찬바닥에 틀어 앉아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오전에 열린 '쌀직불금 불법수령 및 한미FTA 국회비준 규탄대회'에서 머리까지 삭발한 상태다. 공교롭게도 이날 서울의 날씨는 올 겨울 들어 최저 온도를 기록했다.

공교로운 일은 또 있다. 이날 정부(감사원)는 부당 수령 의혹자 28만명 명단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명단에는 직업분류가 빠져있어 부당 수령자를 가리는 것은 모래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지지부진한 쌀직불금 부당수령 국정조사를 지켜봤던 그는,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꺼내들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원칙적으로 경자유전의 법칙을 살려야 하는데 그러면 농민들은 유리걸식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농지를 불법으로 소유한 것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되지만....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땅은 없지만 농사를 실제 짓고 있는 소작농들이 이번 파동으로 또다른 피해자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한 의장의 생각이다.

“농지가 있는 사람이 소작농에게 주지 않고 그동안 직불금을 받아갔는데, 이번 파동으로 좀 캥기기야 하겠지만 ‘다들 그렇게 하는구나’하고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또 직불금 파동으로 소작농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하면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농사하는 시늉으로 씨만 뿌려놓고 세감면 혜택만 받으며 농토를 버리는 것입니다.”

실제 이 같은 문제는 농촌 현장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례로 전농은 ‘직불금 피해사례’를 접수한다며 제보를 받고 있지만 직불금을 땅 주인으로부터 뺏긴 소작농들의 신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고를 했다가 땅주인으로부터 소작을 받지 못할까봐 신고를 꺼리는 것이다. 이번 쌀직불금 파동으로 고위 공직자의 도덕 불감증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그 이면에는 '농사할 땅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묻고 있는 것이다.

한 의장은 그러기에 쌀직불금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어렵겠지만’라는 단서를 단 그는 “쌀직불금 부당 수령자는 1년간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강제규정을 둬야 한다던지 농촌공사가 땅을 매입해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땅을 내줘야 한다. 무엇보다 농사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우리 농토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쌀직불금 파동 뿐 아니라 한미 FTA 비준도 그에게는 심각한 고민꺼리다. 정부가 한미FTA 체결 비준 동의안을 거론하면서 빠지지 않은 것이 농업 등 피해분야에 대한 대책이다. 하지만 한 의장은 한미FTA 체결은 곧 식량 위기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전 사회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의 구구절절한 말을 들어보자.

“필리핀은 이모작하는 하는 나라입니다. 당연히 곡물 생산량이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코스 정권은 중농정책을 썼고, 식량 자급률이 100% 넘어서 수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르코스 정권 이후 자유무역의 문이 열리고 외국자본이 밀려와 플랜트(대규모) 농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농민들은 자신들이 지은 농산물을 팔려도 해도 외국의 싼 농산물에 밀려 차라리 외국의 플랜트 농장에서 돈을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플랜트 농장은 필리핀 농민들의 땅도 사버렸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곡물이 모자라게 됐습니다. 베트남에 가서 구걸하다시피 해서 3개월분 식량을 구한 것이 필리핀입니다. 학자들은 얘기합니다. 한미FTA가 비준되면 농업의 직접경제 효과가 36조원인데 딱 그 절반인 17조원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 말은 농업이 50% 없어진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 농토도 버려지는 것입니다. 정부는 농촌 계층을 분할시켜 결국 부농 중심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돈이 안되면 농업을 책임지겠습니까?”

25일 농민대회를 앞둔 한 의장은 그래서 이번 농민대회를 농촌을 살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농민대회에서 지식인, 종교인, 정치지도자, 교수들이 일제히 ‘상소’를 써 올리는 ‘만인소(萬人疏)’를 기획하고 있다는 그는 “농업을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결판을 내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30여분간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후 “오늘따라 날씨가 매우 춥다”는 기자의 어린 말에 그는 호탕하게 웃어 보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용기를 더욱 내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배삼태 한국가톨릭농민회 회장 단식농성
  • 17일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배삼태 한국가톨릭농민회 회장이 국회 앞에서 25일 농민대회까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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