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기적’ 경남 사천에 진보의 싹을 틔우다
[월간 말_특집]현장에서 본 진보진영의 총선 성적표:경남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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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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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수©민중의소리
당선이 확정된 직후, 강기갑 후보가 토로한 대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였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고가 있기 마련이다. ‘승전보’는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것이 아니었다.
강기갑과 민주노동당 지지율
2006년 12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강기갑은 자신이 사는 곳인 경남 사천시에 사무실을 하나 냈다. “비례대표 의원은 자동적으로 지역 출마를 해야 한다”는 평소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무실을 냈다고 해서 강기갑 의원의 일상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농민 의원’, ‘한복 입은 털보 의원’, ‘투사 의원’은 여전히 밥을 굶고, 농성을 했다.
한편, 강기갑 의원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사천시에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났다. ‘진보의 불모지’라고도 할 수 있는 사천에 ‘사천진보연합’이 생기고, 민주노총 경남본부 사천연락사무소가 만들어지고, 여성회도 떴다. 강기갑 후보 선대본의 이상헌 상황실장의 말처럼 “이번에야말로 표를 세는 선거를 해볼 기회”였다.
사천의 인구구성 변화도 고무적인 징조였다. 사천군 사남면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 조성되기 시작한 진사공단(진주사천공업단지의 줄임말)이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과 같은 첨단산업이 있는가 하면, 하청업체까지 합쳐 6천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SPP조선소도 있다. 공단이 들어서면 노동자가 늘고, 노동자가 늘면 봉건적 권위는 해체된다.
“2~3년 전부터 지역일반노조를 중심으로 싸움이 만들어지고 이기는 경험도 생기고 해서, 지역에 노동운동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사천지부(공식적 명칭은 사천연락소)가 발족한 게 지난해 7월입니다. 사천은 급격하게 노동자 숫자가 팽창되고 있고, 올해 안에 노동문제상담소를 만드는 게 공식적 사업으로 잡혀 있습니다.” 김종간 민주노총 사천지부 의장의 말이다.
사천의 진보세력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고 있던 강기갑 의원을 내세워 야금야금 동심원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16대 대통령선거 때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경남 사천에서 받은 표는 2천269표. 5%에도 못 미치는 3.58%의 지지율이었다. 그랬던 사천이, 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7천572표로 14.37%의 정당명부 비례대표 득표율을 기록하더니,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비례대표 득표율이 각각 18.5%와 18.9%로 올라, 1명의 지역구 시의원과 1명의 비례대표 시의원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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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강기갑 의원의 주소지인 두량1리가 속한 사천읍 제4투표소의 개표 결과다. 17대 국회의원선거 때 이곳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정당명부 비례대표 득표율은 무려 47.68%로, 당시 민주노동당의 인지도를 감안하면 경이적인 수치다. 이번 총선에서 강기갑 후보는 이곳에서 70.88%의 몰표를 받았다. 후보가 사는 동네라는 프리미엄이 있다고 하지만,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한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강기갑 후보가 지역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사천읍 제4투표소는 사실상 강기갑 승리를 예고하는 진앙지의 역할을 했다.
발로 뛰는 털보 강기갑
한편, 선거 전문가들의 도움을 빌린 것은 아니었지만, 강기갑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직후부터 자신만의 일관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간다. 초기 농민 → 한복 → 털보로 이어진 이 이미지는, 한미FTA 반대투쟁 등을 거치면서 형성된 투사 → 헌신의 코드까지 더해져, ‘강기갑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강기갑이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굳이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선거를 두 달 앞두고 강기갑 의원은 <민중의 소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몰라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내가 국회 가서 장관들한테 호통 많이 치고 있는데, 하얀 두루마기에 수염 기르고 호통 치면 산신령 같이 생겨서 꼼짝을 못한다. 수염 깎아 버리면 내가 미남이라 40대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럼 호통 치기 힘들다. 꼭 깎아야 되나’라고 물으면, 함부로 깎지 말라고 합니다. 수염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결국 계속 호통도 치고, 농민 외면 안 하도록 고함 많이 지르라면서 수염 안 깎기로 (주민들하고) 정리를 했습니다.(웃음)”
없던 조직이 생기고, 강력한 이미지도 얻었지만, 여전히 사천에서 민주노동당과 강기갑은 열세였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었다. ‘발로 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정보고회를 착실하게 열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천에서 한번, 삼천포에서 한번 하는 식으로 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서는 찾아오는 유권자 외에는 만날 수 없는 법이다. 결국 강기갑 의원은 스스로 마을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을 단위로 찾아가야 밑바닥에 있는 분들, 사회출입 안 하시는 분들, 연세 많으신 분들, 그런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선 전에 200개 넘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게 마을마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국회의원이 우리 마을에 온 거는 처음 봤다’는 겁니다. 기초노령연금제, 한미FTA, 이런 주제로 우리가 활동했던 거를 말씀드리니까 ‘정말 몰랐다’며 대환호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지난해 12월 2일, 우연하게도 강기갑 의원측과 이방호 의원측이 거의 동시에 여론조사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두 여론조사 결과 모두 5% 안팎의 오차범위 내에서 여론이 갈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방호 의원 사무실에 비상이 걸렸다. 부랴부랴 시의원들을 동원하고 의정보고회를 열었지만, 두 의원의 의정보고회는 겉모습부터 너무나 달랐다.
“마을 방송도 부탁하고, 저희들 차가 방송도 하고, 가기 전에 전화도 일일이 하고, 1시간 전쯤에는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방문해서 나오시라고 하고…. 직접 주민들을 모았죠. 어디에서 했냐고요? 마을회관에서도 하고, 때로는 마을 앞마당에 서서 말씀드리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조직된(?)’ 마을 의정보고회에는 마을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참여했다. 마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고작해야 열다섯 명 안팎의 청중 앞에서 강기갑 의원은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부흥회’를 열었다. 이 의정보고회의 진가는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드러났다. 민주노동당이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연령층인 50대와 60대에서 강기갑 후보가 이방호 후보를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다.
의정보고회의 후과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강기갑 의원에게 직접 묻고 답을 들은 경험을 확보한 주민들이 입에서 입으로 나른 ‘강기갑이 이랬다더라’는 이야기가 사실상 ‘구전 홍보단’의 역할을 한 것이다. 싸움은 ‘지역개발을 누가 했느냐’를 놓고 붙었다. 진주에서 사천을 거쳐 삼천포로 이어지는 국도 3호선 확장공사 예산 문제였다.
“민주노동당이 도로공사 예산 땄다고 홍보하는 게, 사실 부끄러운 일인데, 선거 때마다 보수정당 의원들이 예산 따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제가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위원으로 들어가서 장관이랑 실국장 다 모인 자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국도 3호선 예산만큼은 내가 당당하게 요구하겠다. 여기 출퇴근 시간에 헬리콥터 한번 띄워서 봐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천시에서 저에게 단 한번도 이 예산 확보 건을 부탁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도 FTA나 농업 문제 같은 큰 부분 챙기기 위해서 마음을 쓰지 못했는데, 예결위 들어가서 제가 직접 선언하고 챙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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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을 지지하는 사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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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단식하고 농성하는 ‘농민투사’가 다른 것도 아니고 예산 나눠달라고 하자, 관료들과 거대정당 의원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 되었다. 안 나눠주면 또 싸울 태세이고, 그렇다고 굳이 안 나눠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싸움만 하는 줄 알고 있던 강기갑 의원은 지역에 예산 보따리를 챙겼는데, 엉뚱하게도 강기갑 의원이 지역에 내려와 보고도 하기 전에 이방호 의원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전단지까지 만들어 뿌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방호 의원은 대망신을 당했고, 이것이 ‘놀부 이방호’와 ‘흥부 강기갑’의 대립구도를 최종적으로 완성시켰다.
강기갑, 몸의 정치로 승리하다
강기갑은 어떻게 이겼을까. 상대방 후보에게 패착이 너무 많았고, 박사모나 옛 열린우리당 지지세력의 도움이 있었던 게 결정적인 승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강기갑의 승리는 선거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고전적인 패턴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정책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너무 이상적이다, 급진적이다, 이런 비판들을 많이 받지 않습니까? 우리가 힘도 모자라고요. 그래서 국민들이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 다른 의원들도 잘하셨는데, 여기 지역주민들이 느끼는 부분은, 능력이나 똑똑한 거는 부족한 게 많았지만, 열정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특히 서민의 대변자로서 인정을 해주셨던 게, 민주노동당 지지율과 밀접한 연관고리를 갖고 있는 게 아니냐….”
신문지면이나 영상에 노출된 것은 강기갑 의원의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그는 입으로 정치를 한 게 아니라 몸으로 정치를 했다. 보수정당의 선거전문가들 입장에서 보면 ‘얄미울 정도로’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했다. 의정보고회를 여는 방식이나 심지어 예산을 따내는 과정까지, 강기갑 의원은 항상 상식과 예측을 뛰어넘었다. 그것이 그의 ‘진정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권자들에게는 매우 유쾌하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강기갑의 승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강기갑의 승리를, 농민과 서민의 승리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4-26 20:48:00
- 최종편집: 2008-04-28 10: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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