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결과로 본 민주노동당의 '미래모델'
[월간 말_특집]현장에서 본 진보진영 총선 성적표
‘경악’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당혹’과 ‘부정’이었다. 방송사 출구조사가 나온 직후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표정은 확실히 그랬다. ‘설마…, 다섯 석은 나올 텐데….’ 몇 시간 뒤 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라고들 이야기한다. ‘체면은 차렸다’라는 소리도 들린다. 바로 이 때문에 이번 총선은 최악이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죽어야 할 때 죽어야 거듭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지역구 후보에겐...
창당 이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입만 열면 ‘의석수를 늘리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다.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의석이 늘어나야 당내 갈등과 긴장을 외부로 돌릴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자리가 넉넉하면 당내 갈등 역시 관대해질 테니까. 그러나 의석수를 늘리는 문제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선거의 세 요소는 정당, 후보, 유권자다. 여기에 조직과 자금이 붙고, ‘간판’과 ‘바람’이 뒤따른다. 이 점에서 보면, 2000년 ‘신생’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선거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만이 예외였다. 다행히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에 ‘낭보’가 날아든다. 정당명부제의 도입이 그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최소 다섯 석 이상’의 의석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당의 인지도는 ‘원내정당’이 돼 어느 정도 해결되었는데, 후보의 그것은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 잘 나갈 때 정당 지지율은 20%대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절대 다수의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들은 기껏해야 ‘지지율 5%’의 벽을 넘지 못했다. 후보의 ‘캐릭터’가 워낙 약해서일까.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더 크고 본원적인 이유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아무리 올라가도 지역구 후보에게는 ‘프리미엄’이 안 된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아무리 내려가도 정당명부 득표율 3% 이하로 추락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비유가 적절치는 않지만, 상품으로 치면 국회의원은 ‘생필품’이다. 내구성 소비재는 아니고, 사치성 소비재는 더더욱 아니다. 생필품을 출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일한 품질과 정량.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가격이 아무리 낮고 포장지가 예뻐도 높은 시장점유율은 기대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후보라는 상품은 ‘균질’했는가. 그 대답은 지금까지는 부정적이다. 최소한 시장에 갓 나온 상품을 구매한, 13.1%의 ‘얼리 어댑터들’의 판단은 그랬다. 심상정과 노회찬은 똑똑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헷갈리게 된다. 이게 한 공장에서 나온 제품이 맞나….
정책이란 무엇이었나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상품에 ‘정책’이라는 브랜드를 달아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데 노동자와 농민의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이 이윤율을 올리는 ‘정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물론 유럽의 사회민주당은 그럴 수 있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초과이윤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이윤율, 다시 말해 ‘경제 살리기’에 나선다면, 그것은 착취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확인시키는 꼴이 되거나 혹은 ‘아류 제국주의’가 되자고 선동하는 ‘좌파’가 된다.
결국 민주노동당에게 있어서 ‘정책’이란 ‘총생산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예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정책에서 이 문제는 간과되었다. 오히려 원내진출 이후 의원단과 보좌진이 제일 먼저 한 ‘정책공부’에서 ‘정책’은 보수 정당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정치에서 ‘정책’이란 현실적으로는 ‘양보’가 된다. 보수 정당의 ‘양보’는 ‘조삼모사’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빼앗거나 지킨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다수당은 커녕 ‘극소수당’이었다. 물론 학교 급식 같은 이슈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보수 정당도 내줄 태세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슈가 비정규직 같은 문제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것은 이미 ‘싸움’이다. 민주노동당이 학교 급식 이슈를 처리할 때는 ‘명쾌한’ 반면, 비정규직 이슈를 처리할 때는 ‘명쾌하지 않은’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철폐’ 정책은 결코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아무튼 민주노동당은 ‘정책’을 내세웠다. 그것도 곁가지가 아닌 큰 줄기로. 그 결과 소비자는 ‘재구매’를 주저하게 되었다. ‘덕양갑 마트’와 ‘노원병 마트’에서는 살 용의가 있어도, ‘구로 마트’나 ‘동대문 마트’에서는 안 산다. 국회의원이 아닌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후보들은 설령 그 자신이 똑똑하더라도 그것을 ‘어필’ 할 수단이 없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자’를 밀어내버린 것이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헌신’이라는 브랜드를 채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방면의 ‘QC’는 아직까지는 민주노동당의 영역이 아니었던가! ‘마트’는 달라도 제품은 같다. 이렇게 되면,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후보들은 민주노동당 현역 국회의원들이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를 ‘프리미엄’으로 얻게 된다. 심상정, 노회찬의 활약으로 이 상품에는 ‘헌신적이면서도 똑똑한’이라는 덤도 있다. ‘성장에 분배를 섞고, 개발에 복지를 엮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기상천외의 공약, 따라서 지키지도 못하고 들어주지도 않는 공약을 만드느라 안달복달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저도 싸우겠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면 유권자는 그가 ‘홍길동’이든 ‘장길산’이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어디로 갔어야 했나
두 번째 패착은,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지만,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역구로 내몬 것이었다. 이념정당 또는 계급정당을 표방한 민주노동당 소속 지역구 후보의 당락을 결정짓는 것은 우선 대중조직이다. 그 외에는 ‘고정표’를 기대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정표’는, 예를 들어 당선권이 5만표 안팎이라면 적어도 1만표 이상은 돼야 한다. 그래야 유의미한 ‘3자 구도’로 시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국 245개 선거구 가운데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역은 울산 북구, 경남 창원갑과 창원을, 경남 거제의 네 곳에, ‘고정표’의 성격은 다르지만 경기 성남 중원까지 합쳐 다섯 곳이다.
따라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지역구 출마 방침이 의석수를 늘리려는 방안이었다면, ‘현역 프리미엄’을 갖고 있는 의원단은 최우선적으로 이 다섯 곳에 배치해야 한다. 2004년 국회 비례대표 의원단에 거제의 백순환과 성남의 정형주가 이름을 올렸더라면 이번 총선에서 이 지역의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 보면 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고정표’가 있는 지역에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당한 상황에서 지역구로 내몰린 비례대표 의원단은,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농민 출신인 강기갑 의원과 현애자 의원, 그리고 울산 출신인 이영순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의 답은 다음과 같은 순서였다. ‘인지도를 높여라’ → ‘영호남은 안 된다’ →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 → ‘언론의 반응에 민감한 계층이 누구냐’ → ‘고학력 중산층’ → ‘서민도 있고, 조직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되는 곳은?’ → ‘수도권 베드타운’ → ‘…’.
양극화는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 내에도 있었다. 비례대표 의원단이 열 명의 보좌진과 억대의 후원금을 활용해 이미지를 구축하고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유 범위를 넓히며 지역구를 고르는 동안, 다른 지역구 후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만유인력과 삼투압의 법칙
자연의 법칙은 선거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고정표’가 너무 적으면 ‘유력한 후보군’에 들지 못한다(만유인력의 법칙). 더 열렬한 지지자를 갖고 있는 쪽이 유리하다(삼투압의 법칙).
민주노동당은 만유인력도 삼투압도 작용할 수 없는 신생정당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그렇다고 맨손으로 출발한 1997년 이전의 진보정당과도 달랐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도움으로 태어났다. 이것은 그 직전의 경험, 즉 민중의 당과 민중당이 ‘반면교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역한 지식인들의 집단’으로는 보수정당이 유권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견디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노동부문할당제 같은 것도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민주노동당을 만든 사람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인력(引力)’은 민주노동당을 ‘원내 진입’시키는 데까지가 한계였다.
여기에서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인력’으로 확보한 자산인 의원단을 다시 민주노총의 ‘인력’을 키우는 데 ‘집중투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여러 곳에 ‘분산투자’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민주노동당의 포트폴리오는 좁지만 깊어지고, 후자의 경우는 넓지만 얕아진다. 과연 어느 쪽의 ‘수익율’이 더 높을까. 민주노동당은 후자를 선택했다. 의원단의 동선만 보더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이번 총선 때 권영길 후보에게 쏠린 지역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볼멘소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게 “4년 동안 현장에 몇 번 왔나”였을 정도다. 민주노동당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정당명부제가 ‘독약’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대 초반. 민주노총 조합원이 80만 명이라고 할 때 조합원 10만 명 늘리는 일은 대단한 인내와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강기갑 후보는 6개월 동안 2백 곳이 넘는 자연부락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의원단은 4천 곳이 넘는 공장과 사무실을 찾아야 한다. 그럼 ‘공중전’은 언제 하나…. 반면,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정당명부 득표수는 2백77만4천여표. 조금만 노력하면 3백만표는 기정사실이고, 5백만표도 꿈이 아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는 것보다 지역정서에 좌우되지 않는 수도권 대도시의 ‘불특정’ 유권자를 상대하는 게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결과는 민주노동당의 선택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었는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민주노동당이 받은 정당명부 득표는 97만3천여표. 분당을 감안해도, ‘새로 개발한 표’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심상정과 노회찬에게 그것이 돌아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이 얻은 표는 50만4천여표. 둘을 합쳐도 17대 총선에서 얻은 표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 나머지 표는 어디에 갔을까.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창조한국당에 갔다. ‘시간’(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는 일)으로 풀어야 할 일을 ‘꾀’(또 다른 ‘진보적’ 국민정당을 소개하는 일)로 풀려다가, 4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 된 것이다.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민중경선제가 부결된 것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지역구에서의 민주노동당 모델
민주노동당이 대도시 중산층에게 호감을 얻는다 해도 그들은 쉽게 뭉쳐지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급진과격’의 딱지를 스스로 뗀다고 해도 그 딱지를 문제 삼았던 유권자들은 바로 돌아서지 않는다. 이러한 지지층 확대 방안으로는 민주노동당의 ‘인력’을 키울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인력’은 대중조직에서 나오고, 이 때 유의미한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하는 대중조직뿐이다.
노동조합과 농민회,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무주택자동맹’, ‘영세자영업자동맹’, ‘빈곤가정재가(在家)주부동맹’ 같은 대중조직들이야말로 바로 민주노동당의 ‘인력’을 키울 힘의 원천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디어나 실천에는 몇몇 사람과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열을 올리지 않았다.
삼투압도 올라가지 않았다. 삼투압을 올리는 것, 즉 지지자를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감동’이다. 이 대목에서 다음의 경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권력은 쓰라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확보한 권력을 어디에 써야 했을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데, 민주노동당의 의석으로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주먹’이 돼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유권자가 준 권력을 쓰지 않은 것이다. 감동이 있을 리 없었다. 삼투압을 올리는 데 실패한 민주노동당은 투표율 하락도 막지 못했고, 문국현이라는 ‘인력’을 가진 창조한국당에게 65만여표나 빼앗겼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후 세 번의 총선을 치렀다. 그 경험에서 눈에 띄는 몇 개의 모델이 있다. 창원을, 울산 북구, 경남 사천, 경기 성남, 서울 중구 등이 그것이다.
창원을. 18대 총선을 기준으로(이하 동일) 이곳의 유권자수는 17만7천562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8만9천559명(투표율 46.6%)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에 따르면 이 선거구에는 직계가족 가운데 선거권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 민주노총 조합원의 직접 영향권 내에 있는 유권자가 1만명 이상이다. 후보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고 당대표와 대통령후보를 차례로 거친 현역 의원이었다. 선거 결과는 4만2천809표(48.19%)를 얻어 당선, 정당명부 득표율은 17.34%(창원시 전체).
울산 북구. 이곳의 유권자는 11만77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5만2천642명(47.8%)이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에 따르면 이 선거구에는 직계가족 가운데 선거권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의 직접영향권 내에 있는 유권자가 1만5천명 이상 거주한다. 후보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간부 출신으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일원이었다. 선거 결과는 1만6천621표(31.84%)를 얻어 낙선(2위), 정당명부 득표율은 23.60%.
경남 사천. 이곳의 유권자는 8만7천843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5만640명(57.6%)이다. 이 선거구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1천5백여명, 농민회 회원이 150여명 거주한다. 후보는 농민 출신의 현역 의원으로 ‘헌신적인 농민투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선거 결과는 2만3천864표(47.69%)를 얻어 당선, 정당명부 득표율은 23.43%.
경기 성남 중원. 이곳의 유권자는 20만6천957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8만1천71명(39.2)이다. 이 선거구는 지역활동가들이 조직한 ‘지지자 블럭’이 1만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후보는 학생운동 출신으로 일찌감치 지역에 터를 잡았으며, 이 선거구에만 다섯 차례 출마한 바 있다. 선거 결과는 1만941표(13.60%)를 얻어 낙선(3위), 정당명부 득표율은 9.89%.
서울 중구. 이곳의 유권자는 10만6천880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5만1천571명(48.3%)이다. 이 선거구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몇 명 사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후보는 학생운동 출신으로 ‘신인’이다. 선거 결과는 1천111표(2.16%)를 얻어 낙선(5위), 정당명부 득표율은 3.88%.
권영길 없는 창원은 불가능하다
권영길 후보는 창원을 선거구에서 세 번 출마했다. 16대 총선 때는 3만6천579표를 얻어 5천여표 차이로 낙선(2위), 17대 총선 때는 5만2천758표를 얻어 1만2천여표 차이로 당선, 18대 총선 때는 4만2천809표를 얻어 3천여표 차이로 당선했다. 정당명부 득표율은 17대 총선 24.04%, 18대 총선 17.34%였다. 상대 후보는 16대 총선 때는 판사 출신 신인, 17대 총선 때는 초선 의원, 18대 총선 때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신인이었다.
이 지역의 ‘고정표’는 당선권의 20% 안팎에서 출발했고, 당은 이 선거구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후보의 캐릭터는 선거를 거듭하면서 무게감을 더했다. 하지만, ‘현역 프리미엄’을 갖고 있고 상대 후보가 지난 선거 때보다 더 ‘약체’였음에도 2위와의 표차는 9천여표나 줄어들었다. 민주노동당에게 가장 중요한 정당명부 득표율 역시 7%p 이상 떨어졌다. 이것은 이 선거구의 승부를 결정지은 게 정당보다는 후보였다는 사실, 그런 만큼 이 선거구에서 민주노동당의 영향력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창원을에서 민주노동당이 의석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노동당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한 당대표나 대통령후보 정도의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다면 창원을의 ‘수성’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권영길 의원의 대통령선거 출마는, 당내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그 자신이 주변에 밝혔던 것처럼, 지역구 재선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창원을은 당의 ‘모든 것’, 이를테면 대선 후보급의 인물과 전당적 지원을 쏟아부을 때만 성립할 수 있는 모델이고,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없다.
울산 북구에서 당선되려면
민주노동당은 울산 북구에도 세 번 후보를 냈다. 16대 총선 때 최용규 후보는 1만8천867표를 얻어 5백여표 차이로 낙선(2위), 17대 총선 때 조승수 후보는 2만7천212표를 얻어 8천여표 차이로 당선, 18대 총선 때 이영희 후보는 1만6천621표를 얻어 7천여표 차이로 낙선(2위)했다. 정당명부 득표율은 17대 35.03%, 18대 총선 23.60%였다. 이 지역구의 ‘고정표’는 당선권의 무려 50%에 육박하고, 후보는 중소기업 노동조합 출신에서 학생운동 출신으로, 다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출신으로 바뀌었다. 상대 후보는 세 번 모두 같았다.
여기서 울산 북구에서 민주노동당이 당선되기 위한 조건을 알 수 있다. 첫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비토’ 하는 후보는 안 된다. 둘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내 특정 정파가 ‘비토’ 하는 후보도 안 된다. 셋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울산 북구의 선거가 민주노동당의 문제라기보다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문제라는 사실을 뜻한다. 이 점에서 울산 북구는 대기업 노동조합운동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모델이고,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이 될 경남 사천
경남 사천은 이번 총선 최대의 ‘이변’ 선거구다. 농민 출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인 강기갑 후보가 2만3천864표를 얻어 178표차로 신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여당 사무총장인 이방호 후보를 꺾었다. 민주노동당은 이 선거구에 처음으로 후보를 내보냈고, 정당명부 득표율은 17대 총선 14.37%, 18대 총선 23.43%였다. 지역구 의석을 1석 추가하고, 정당명부 득표율도 7%p 이상 끌어올렸다.
이 지역의 ‘고정표’는 ‘인력’을 형성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당선의 첫번째 비결은 ‘강기갑’이었고, 두 번째 비결은 한나라당의 ‘분열’과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지원’이었다. 경남 사천의 선거는 전국적 차원의 홍보수단을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후보(의원단)가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 모델은 후보의 ‘헌신’을 토대로 성립한 모델이고, ‘반한나라당’ 헤게모니가 철저히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쥐어져 있었다는 사실에서,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 중 하나이다.
성남 중원이 중요한 이유
정형주 후보는 경기 성남 중원 선거구에 모두 다섯 차례 출마했다. 18대 총선에서 정 후보는 1만941표를 얻어 3위를 기록했고, 1위보다 2만3천여표 뒤졌다. 17대 총선에서 정 후보는 2만2천640표를 얻어 3위를 기록했고, 1위보다 2만여표 뒤졌다. 16대 총선에서 정 후보는 1만9천781표를 얻어 3위를 기록했고, 1위보다 2만여표 뒤졌다. 정당명부 득표율은 17대 총선 15.81%, 18대 총선 9.89%였다.
성남 중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정형주 후보는 ‘고정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확보하지 못했고, 이 지역 ‘토박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 후보는 1996년의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1만표 가까운 득표를 과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는 ‘조직’밖에 없다. 정 후보와 함께 이 지역을 개척한 ‘조직’의 구성원들이 민주노동당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를 근거로 정 후보는 어린이집, 방과후 학교 같은 사업부터 투쟁 동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지역활동을 펼쳤다.
문제는 득표가 2만여표를 고비로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고정표’가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한 대중조직을 경유하지 못함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발품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지지자 블럭’을 꾸리느라 정 후보 자신의 캐릭터를 관리할 여유를 갖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러나 시사점은 있다. 이 선거구는 13대 총선 이래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었다가, 2005년 보궐선거 이후부터는 한나라당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바로 옆의 선거구인 성남 수정구도 비슷하다. 실제로 이번 총선 직후 이 지역의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 때문에 더 이상 출마 못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유주의 개혁노선이 서민에게 버림을 받은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10% 이상의 유권자를 빼앗아가니, 민주당 후보는 버티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성남 중원 모델이 중요하다. 이 모델은 당원의 헌신성을 토대로 성립했다. 정 후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캐릭터가 특별히 더 강점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할 때 당원의 헌신성만 담보된다면 다른 지역의 후보들도 10%의 ‘고정표’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헌신도 노동조합 같은 대중조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당선권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만, 정 후보가 지난 십년 동안 이 ‘고정표’를 지켰기 때문에 장차 이 선거구에 전통의 ‘한나라당-민주당’ 구도가 ‘한나라당-민주노동당’ 구도로 변화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성남 중원 모델은 노동조합의 ‘고정표’가 적고, 후보가 국회의원이 아니어서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의 민주노동당 후보들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1차 관문이 된다. 그리고 정 후보의 ‘지지자 블럭’은 구성원의 대부분 ‘일용직’이고 성남 중원의 서민계층의 생활이 대도시의 평균보다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조직 건설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이 모델은 집중적으로 분석되고 차용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민주노동당은 이 모델에 점수를 주는 것에 인색한 듯하다.
계륵이 되어버린 대도시의 신인 후보들
민주노동당 의견그룹 중 하나인 ‘다함께’의 대표적 인사인 김인식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출마해 얻은 표는 1천111표(2.12%)다. 17대 총선에서는 다른 후보가 나왔는데, 얻은 표는 2,523표였다. 정부명부 득표율은 17대 총선 9.47%, 18대 총선 3.88%였다.
이 모델은 젊은 학생운동 출신이 ‘신인 후보’로 나선 거의 모든 대도시 선거구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패턴이다. 3% 이하의 득표율이란 선거에서는 유의미한 숫자가 아닌데, 그들은 왜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을까. 우선, 지역에 대중조직이 없고, 후보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활인’이 아니어서 지역여론을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남 중원의 경우처럼 ‘십년에 걸친 헌신’도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 때 피케팅을 열심히 한다는 것과 평상시 지역주민을 만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겉만 보면 전자가 더 화려하고 헌신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실제의 강도와 충성도를 따지면 전자는 후자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7대 총선 때 민주노동당이 얻은 13.1%의 정당명부 지지율은 이 모델에 힘입은 바 적지 않다. ‘신생정당’이었기에 더 그렇다. 그러나 이제 민주노동당은 전국적 인지도와 지명도를 갖고 있다. 지역에 후보를 내나 안 내나 정당명부 득표율에는 그리 차이가 없다. 서울 중구가 성남 중원의 모델을 경과한다면 모를까, 선거 전후 1달만 정치를 하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는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없다.
의석수를 늘린다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과정, 다시 말해 의석수를 늘리는 프로그램이다. 생산대중의 민주주의와 참여를 확대시키고 강화시키는 것인지, 그렇지 아닌지. 그것이 알파이고 오메가다.
선거는 또 온다. 이번에 졌다고 다음에도 또 진다는 법은 없지만, 지고도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음엔 웃음거리로만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고, 경남 사천 모델과 경기 성남 중원 모델을 접합시키는 고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말로 하는 정치’가 아닌 ‘몸으로 하는 정치’를 위해 의원단을 거리로 내보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라고들 이야기한다. ‘체면은 차렸다’라는 소리도 들린다. 바로 이 때문에 이번 총선은 최악이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죽어야 할 때 죽어야 거듭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지역구 후보에겐...
창당 이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입만 열면 ‘의석수를 늘리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다.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의석이 늘어나야 당내 갈등과 긴장을 외부로 돌릴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자리가 넉넉하면 당내 갈등 역시 관대해질 테니까. 그러나 의석수를 늘리는 문제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선거의 세 요소는 정당, 후보, 유권자다. 여기에 조직과 자금이 붙고, ‘간판’과 ‘바람’이 뒤따른다. 이 점에서 보면, 2000년 ‘신생’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선거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만이 예외였다. 다행히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에 ‘낭보’가 날아든다. 정당명부제의 도입이 그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최소 다섯 석 이상’의 의석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당의 인지도는 ‘원내정당’이 돼 어느 정도 해결되었는데, 후보의 그것은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 잘 나갈 때 정당 지지율은 20%대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절대 다수의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들은 기껏해야 ‘지지율 5%’의 벽을 넘지 못했다. 후보의 ‘캐릭터’가 워낙 약해서일까.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더 크고 본원적인 이유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아무리 올라가도 지역구 후보에게는 ‘프리미엄’이 안 된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아무리 내려가도 정당명부 득표율 3% 이하로 추락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비유가 적절치는 않지만, 상품으로 치면 국회의원은 ‘생필품’이다. 내구성 소비재는 아니고, 사치성 소비재는 더더욱 아니다. 생필품을 출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일한 품질과 정량.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가격이 아무리 낮고 포장지가 예뻐도 높은 시장점유율은 기대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후보라는 상품은 ‘균질’했는가. 그 대답은 지금까지는 부정적이다. 최소한 시장에 갓 나온 상품을 구매한, 13.1%의 ‘얼리 어댑터들’의 판단은 그랬다. 심상정과 노회찬은 똑똑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헷갈리게 된다. 이게 한 공장에서 나온 제품이 맞나….
정책이란 무엇이었나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상품에 ‘정책’이라는 브랜드를 달아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데 노동자와 농민의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이 이윤율을 올리는 ‘정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물론 유럽의 사회민주당은 그럴 수 있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초과이윤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이윤율, 다시 말해 ‘경제 살리기’에 나선다면, 그것은 착취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확인시키는 꼴이 되거나 혹은 ‘아류 제국주의’가 되자고 선동하는 ‘좌파’가 된다.
결국 민주노동당에게 있어서 ‘정책’이란 ‘총생산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예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정책에서 이 문제는 간과되었다. 오히려 원내진출 이후 의원단과 보좌진이 제일 먼저 한 ‘정책공부’에서 ‘정책’은 보수 정당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정치에서 ‘정책’이란 현실적으로는 ‘양보’가 된다. 보수 정당의 ‘양보’는 ‘조삼모사’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빼앗거나 지킨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다수당은 커녕 ‘극소수당’이었다. 물론 학교 급식 같은 이슈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보수 정당도 내줄 태세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슈가 비정규직 같은 문제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것은 이미 ‘싸움’이다. 민주노동당이 학교 급식 이슈를 처리할 때는 ‘명쾌한’ 반면, 비정규직 이슈를 처리할 때는 ‘명쾌하지 않은’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철폐’ 정책은 결코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아무튼 민주노동당은 ‘정책’을 내세웠다. 그것도 곁가지가 아닌 큰 줄기로. 그 결과 소비자는 ‘재구매’를 주저하게 되었다. ‘덕양갑 마트’와 ‘노원병 마트’에서는 살 용의가 있어도, ‘구로 마트’나 ‘동대문 마트’에서는 안 산다. 국회의원이 아닌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후보들은 설령 그 자신이 똑똑하더라도 그것을 ‘어필’ 할 수단이 없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자’를 밀어내버린 것이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헌신’이라는 브랜드를 채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방면의 ‘QC’는 아직까지는 민주노동당의 영역이 아니었던가! ‘마트’는 달라도 제품은 같다. 이렇게 되면,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후보들은 민주노동당 현역 국회의원들이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를 ‘프리미엄’으로 얻게 된다. 심상정, 노회찬의 활약으로 이 상품에는 ‘헌신적이면서도 똑똑한’이라는 덤도 있다. ‘성장에 분배를 섞고, 개발에 복지를 엮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기상천외의 공약, 따라서 지키지도 못하고 들어주지도 않는 공약을 만드느라 안달복달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저도 싸우겠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면 유권자는 그가 ‘홍길동’이든 ‘장길산’이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어디로 갔어야 했나
두 번째 패착은,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지만,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역구로 내몬 것이었다. 이념정당 또는 계급정당을 표방한 민주노동당 소속 지역구 후보의 당락을 결정짓는 것은 우선 대중조직이다. 그 외에는 ‘고정표’를 기대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정표’는, 예를 들어 당선권이 5만표 안팎이라면 적어도 1만표 이상은 돼야 한다. 그래야 유의미한 ‘3자 구도’로 시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국 245개 선거구 가운데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역은 울산 북구, 경남 창원갑과 창원을, 경남 거제의 네 곳에, ‘고정표’의 성격은 다르지만 경기 성남 중원까지 합쳐 다섯 곳이다.
따라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지역구 출마 방침이 의석수를 늘리려는 방안이었다면, ‘현역 프리미엄’을 갖고 있는 의원단은 최우선적으로 이 다섯 곳에 배치해야 한다. 2004년 국회 비례대표 의원단에 거제의 백순환과 성남의 정형주가 이름을 올렸더라면 이번 총선에서 이 지역의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 보면 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고정표’가 있는 지역에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당한 상황에서 지역구로 내몰린 비례대표 의원단은,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농민 출신인 강기갑 의원과 현애자 의원, 그리고 울산 출신인 이영순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의 답은 다음과 같은 순서였다. ‘인지도를 높여라’ → ‘영호남은 안 된다’ →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 → ‘언론의 반응에 민감한 계층이 누구냐’ → ‘고학력 중산층’ → ‘서민도 있고, 조직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되는 곳은?’ → ‘수도권 베드타운’ → ‘…’.
양극화는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 내에도 있었다. 비례대표 의원단이 열 명의 보좌진과 억대의 후원금을 활용해 이미지를 구축하고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유 범위를 넓히며 지역구를 고르는 동안, 다른 지역구 후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만유인력과 삼투압의 법칙
자연의 법칙은 선거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고정표’가 너무 적으면 ‘유력한 후보군’에 들지 못한다(만유인력의 법칙). 더 열렬한 지지자를 갖고 있는 쪽이 유리하다(삼투압의 법칙).
민주노동당은 만유인력도 삼투압도 작용할 수 없는 신생정당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그렇다고 맨손으로 출발한 1997년 이전의 진보정당과도 달랐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도움으로 태어났다. 이것은 그 직전의 경험, 즉 민중의 당과 민중당이 ‘반면교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역한 지식인들의 집단’으로는 보수정당이 유권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견디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노동부문할당제 같은 것도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민주노동당을 만든 사람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인력(引力)’은 민주노동당을 ‘원내 진입’시키는 데까지가 한계였다.
여기에서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인력’으로 확보한 자산인 의원단을 다시 민주노총의 ‘인력’을 키우는 데 ‘집중투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여러 곳에 ‘분산투자’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민주노동당의 포트폴리오는 좁지만 깊어지고, 후자의 경우는 넓지만 얕아진다. 과연 어느 쪽의 ‘수익율’이 더 높을까. 민주노동당은 후자를 선택했다. 의원단의 동선만 보더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이번 총선 때 권영길 후보에게 쏠린 지역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볼멘소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게 “4년 동안 현장에 몇 번 왔나”였을 정도다. 민주노동당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정당명부제가 ‘독약’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대 초반. 민주노총 조합원이 80만 명이라고 할 때 조합원 10만 명 늘리는 일은 대단한 인내와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강기갑 후보는 6개월 동안 2백 곳이 넘는 자연부락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의원단은 4천 곳이 넘는 공장과 사무실을 찾아야 한다. 그럼 ‘공중전’은 언제 하나…. 반면,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정당명부 득표수는 2백77만4천여표. 조금만 노력하면 3백만표는 기정사실이고, 5백만표도 꿈이 아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는 것보다 지역정서에 좌우되지 않는 수도권 대도시의 ‘불특정’ 유권자를 상대하는 게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결과는 민주노동당의 선택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었는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민주노동당이 받은 정당명부 득표는 97만3천여표. 분당을 감안해도, ‘새로 개발한 표’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심상정과 노회찬에게 그것이 돌아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이 얻은 표는 50만4천여표. 둘을 합쳐도 17대 총선에서 얻은 표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 나머지 표는 어디에 갔을까.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창조한국당에 갔다. ‘시간’(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는 일)으로 풀어야 할 일을 ‘꾀’(또 다른 ‘진보적’ 국민정당을 소개하는 일)로 풀려다가, 4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 된 것이다.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민중경선제가 부결된 것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지역구에서의 민주노동당 모델
민주노동당이 대도시 중산층에게 호감을 얻는다 해도 그들은 쉽게 뭉쳐지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급진과격’의 딱지를 스스로 뗀다고 해도 그 딱지를 문제 삼았던 유권자들은 바로 돌아서지 않는다. 이러한 지지층 확대 방안으로는 민주노동당의 ‘인력’을 키울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인력’은 대중조직에서 나오고, 이 때 유의미한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하는 대중조직뿐이다.
노동조합과 농민회,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무주택자동맹’, ‘영세자영업자동맹’, ‘빈곤가정재가(在家)주부동맹’ 같은 대중조직들이야말로 바로 민주노동당의 ‘인력’을 키울 힘의 원천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디어나 실천에는 몇몇 사람과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열을 올리지 않았다.
삼투압도 올라가지 않았다. 삼투압을 올리는 것, 즉 지지자를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감동’이다. 이 대목에서 다음의 경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권력은 쓰라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확보한 권력을 어디에 써야 했을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데, 민주노동당의 의석으로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주먹’이 돼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유권자가 준 권력을 쓰지 않은 것이다. 감동이 있을 리 없었다. 삼투압을 올리는 데 실패한 민주노동당은 투표율 하락도 막지 못했고, 문국현이라는 ‘인력’을 가진 창조한국당에게 65만여표나 빼앗겼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후 세 번의 총선을 치렀다. 그 경험에서 눈에 띄는 몇 개의 모델이 있다. 창원을, 울산 북구, 경남 사천, 경기 성남, 서울 중구 등이 그것이다.
창원을. 18대 총선을 기준으로(이하 동일) 이곳의 유권자수는 17만7천562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8만9천559명(투표율 46.6%)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에 따르면 이 선거구에는 직계가족 가운데 선거권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 민주노총 조합원의 직접 영향권 내에 있는 유권자가 1만명 이상이다. 후보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고 당대표와 대통령후보를 차례로 거친 현역 의원이었다. 선거 결과는 4만2천809표(48.19%)를 얻어 당선, 정당명부 득표율은 17.34%(창원시 전체).
울산 북구. 이곳의 유권자는 11만77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5만2천642명(47.8%)이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에 따르면 이 선거구에는 직계가족 가운데 선거권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의 직접영향권 내에 있는 유권자가 1만5천명 이상 거주한다. 후보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간부 출신으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일원이었다. 선거 결과는 1만6천621표(31.84%)를 얻어 낙선(2위), 정당명부 득표율은 23.60%.
경남 사천. 이곳의 유권자는 8만7천843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5만640명(57.6%)이다. 이 선거구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1천5백여명, 농민회 회원이 150여명 거주한다. 후보는 농민 출신의 현역 의원으로 ‘헌신적인 농민투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선거 결과는 2만3천864표(47.69%)를 얻어 당선, 정당명부 득표율은 23.43%.
경기 성남 중원. 이곳의 유권자는 20만6천957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8만1천71명(39.2)이다. 이 선거구는 지역활동가들이 조직한 ‘지지자 블럭’이 1만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후보는 학생운동 출신으로 일찌감치 지역에 터를 잡았으며, 이 선거구에만 다섯 차례 출마한 바 있다. 선거 결과는 1만941표(13.60%)를 얻어 낙선(3위), 정당명부 득표율은 9.89%.
서울 중구. 이곳의 유권자는 10만6천880명이고 투표한 사람은 5만1천571명(48.3%)이다. 이 선거구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몇 명 사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후보는 학생운동 출신으로 ‘신인’이다. 선거 결과는 1천111표(2.16%)를 얻어 낙선(5위), 정당명부 득표율은 3.88%.
권영길 없는 창원은 불가능하다
권영길 후보는 창원을 선거구에서 세 번 출마했다. 16대 총선 때는 3만6천579표를 얻어 5천여표 차이로 낙선(2위), 17대 총선 때는 5만2천758표를 얻어 1만2천여표 차이로 당선, 18대 총선 때는 4만2천809표를 얻어 3천여표 차이로 당선했다. 정당명부 득표율은 17대 총선 24.04%, 18대 총선 17.34%였다. 상대 후보는 16대 총선 때는 판사 출신 신인, 17대 총선 때는 초선 의원, 18대 총선 때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신인이었다.
이 지역의 ‘고정표’는 당선권의 20% 안팎에서 출발했고, 당은 이 선거구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후보의 캐릭터는 선거를 거듭하면서 무게감을 더했다. 하지만, ‘현역 프리미엄’을 갖고 있고 상대 후보가 지난 선거 때보다 더 ‘약체’였음에도 2위와의 표차는 9천여표나 줄어들었다. 민주노동당에게 가장 중요한 정당명부 득표율 역시 7%p 이상 떨어졌다. 이것은 이 선거구의 승부를 결정지은 게 정당보다는 후보였다는 사실, 그런 만큼 이 선거구에서 민주노동당의 영향력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창원을에서 민주노동당이 의석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노동당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한 당대표나 대통령후보 정도의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다면 창원을의 ‘수성’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권영길 의원의 대통령선거 출마는, 당내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그 자신이 주변에 밝혔던 것처럼, 지역구 재선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창원을은 당의 ‘모든 것’, 이를테면 대선 후보급의 인물과 전당적 지원을 쏟아부을 때만 성립할 수 있는 모델이고,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없다.
울산 북구에서 당선되려면
민주노동당은 울산 북구에도 세 번 후보를 냈다. 16대 총선 때 최용규 후보는 1만8천867표를 얻어 5백여표 차이로 낙선(2위), 17대 총선 때 조승수 후보는 2만7천212표를 얻어 8천여표 차이로 당선, 18대 총선 때 이영희 후보는 1만6천621표를 얻어 7천여표 차이로 낙선(2위)했다. 정당명부 득표율은 17대 35.03%, 18대 총선 23.60%였다. 이 지역구의 ‘고정표’는 당선권의 무려 50%에 육박하고, 후보는 중소기업 노동조합 출신에서 학생운동 출신으로, 다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출신으로 바뀌었다. 상대 후보는 세 번 모두 같았다.
여기서 울산 북구에서 민주노동당이 당선되기 위한 조건을 알 수 있다. 첫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비토’ 하는 후보는 안 된다. 둘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내 특정 정파가 ‘비토’ 하는 후보도 안 된다. 셋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울산 북구의 선거가 민주노동당의 문제라기보다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문제라는 사실을 뜻한다. 이 점에서 울산 북구는 대기업 노동조합운동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모델이고,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이 될 경남 사천
경남 사천은 이번 총선 최대의 ‘이변’ 선거구다. 농민 출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인 강기갑 후보가 2만3천864표를 얻어 178표차로 신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여당 사무총장인 이방호 후보를 꺾었다. 민주노동당은 이 선거구에 처음으로 후보를 내보냈고, 정당명부 득표율은 17대 총선 14.37%, 18대 총선 23.43%였다. 지역구 의석을 1석 추가하고, 정당명부 득표율도 7%p 이상 끌어올렸다.
이 지역의 ‘고정표’는 ‘인력’을 형성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당선의 첫번째 비결은 ‘강기갑’이었고, 두 번째 비결은 한나라당의 ‘분열’과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지원’이었다. 경남 사천의 선거는 전국적 차원의 홍보수단을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후보(의원단)가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 모델은 후보의 ‘헌신’을 토대로 성립한 모델이고, ‘반한나라당’ 헤게모니가 철저히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쥐어져 있었다는 사실에서,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 중 하나이다.
성남 중원이 중요한 이유
정형주 후보는 경기 성남 중원 선거구에 모두 다섯 차례 출마했다. 18대 총선에서 정 후보는 1만941표를 얻어 3위를 기록했고, 1위보다 2만3천여표 뒤졌다. 17대 총선에서 정 후보는 2만2천640표를 얻어 3위를 기록했고, 1위보다 2만여표 뒤졌다. 16대 총선에서 정 후보는 1만9천781표를 얻어 3위를 기록했고, 1위보다 2만여표 뒤졌다. 정당명부 득표율은 17대 총선 15.81%, 18대 총선 9.89%였다.
성남 중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정형주 후보는 ‘고정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확보하지 못했고, 이 지역 ‘토박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 후보는 1996년의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1만표 가까운 득표를 과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는 ‘조직’밖에 없다. 정 후보와 함께 이 지역을 개척한 ‘조직’의 구성원들이 민주노동당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를 근거로 정 후보는 어린이집, 방과후 학교 같은 사업부터 투쟁 동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지역활동을 펼쳤다.
문제는 득표가 2만여표를 고비로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고정표’가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한 대중조직을 경유하지 못함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발품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지지자 블럭’을 꾸리느라 정 후보 자신의 캐릭터를 관리할 여유를 갖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러나 시사점은 있다. 이 선거구는 13대 총선 이래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었다가, 2005년 보궐선거 이후부터는 한나라당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바로 옆의 선거구인 성남 수정구도 비슷하다. 실제로 이번 총선 직후 이 지역의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 때문에 더 이상 출마 못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유주의 개혁노선이 서민에게 버림을 받은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10% 이상의 유권자를 빼앗아가니, 민주당 후보는 버티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성남 중원 모델이 중요하다. 이 모델은 당원의 헌신성을 토대로 성립했다. 정 후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캐릭터가 특별히 더 강점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할 때 당원의 헌신성만 담보된다면 다른 지역의 후보들도 10%의 ‘고정표’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헌신도 노동조합 같은 대중조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당선권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만, 정 후보가 지난 십년 동안 이 ‘고정표’를 지켰기 때문에 장차 이 선거구에 전통의 ‘한나라당-민주당’ 구도가 ‘한나라당-민주노동당’ 구도로 변화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성남 중원 모델은 노동조합의 ‘고정표’가 적고, 후보가 국회의원이 아니어서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의 민주노동당 후보들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1차 관문이 된다. 그리고 정 후보의 ‘지지자 블럭’은 구성원의 대부분 ‘일용직’이고 성남 중원의 서민계층의 생활이 대도시의 평균보다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조직 건설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이 모델은 집중적으로 분석되고 차용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민주노동당은 이 모델에 점수를 주는 것에 인색한 듯하다.
계륵이 되어버린 대도시의 신인 후보들
민주노동당 의견그룹 중 하나인 ‘다함께’의 대표적 인사인 김인식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출마해 얻은 표는 1천111표(2.12%)다. 17대 총선에서는 다른 후보가 나왔는데, 얻은 표는 2,523표였다. 정부명부 득표율은 17대 총선 9.47%, 18대 총선 3.88%였다.
이 모델은 젊은 학생운동 출신이 ‘신인 후보’로 나선 거의 모든 대도시 선거구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패턴이다. 3% 이하의 득표율이란 선거에서는 유의미한 숫자가 아닌데, 그들은 왜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을까. 우선, 지역에 대중조직이 없고, 후보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활인’이 아니어서 지역여론을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남 중원의 경우처럼 ‘십년에 걸친 헌신’도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 때 피케팅을 열심히 한다는 것과 평상시 지역주민을 만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겉만 보면 전자가 더 화려하고 헌신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실제의 강도와 충성도를 따지면 전자는 후자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7대 총선 때 민주노동당이 얻은 13.1%의 정당명부 지지율은 이 모델에 힘입은 바 적지 않다. ‘신생정당’이었기에 더 그렇다. 그러나 이제 민주노동당은 전국적 인지도와 지명도를 갖고 있다. 지역에 후보를 내나 안 내나 정당명부 득표율에는 그리 차이가 없다. 서울 중구가 성남 중원의 모델을 경과한다면 모를까, 선거 전후 1달만 정치를 하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는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없다.
의석수를 늘린다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과정, 다시 말해 의석수를 늘리는 프로그램이다. 생산대중의 민주주의와 참여를 확대시키고 강화시키는 것인지, 그렇지 아닌지. 그것이 알파이고 오메가다.
선거는 또 온다. 이번에 졌다고 다음에도 또 진다는 법은 없지만, 지고도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음엔 웃음거리로만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고, 경남 사천 모델과 경기 성남 중원 모델을 접합시키는 고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말로 하는 정치’가 아닌 ‘몸으로 하는 정치’를 위해 의원단을 거리로 내보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기사입력 : 2008-04-26 20:44:11
최종편집 : 2008-04-28 10:09:32
최종편집 : 2008-04-28 10: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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