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코'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월간말]

서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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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진지하고 객관적이다. 재미있고 극적이며 충격적이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하다. 이런 미국 영화가 국내에선 단 스무 곳 정도에서만 개봉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SICKO, 환자 혹은 앓던 이라는 뜻)’다. 이 영화는 첫 머리에 의료보험이 없어 찢어진 자기 살을 직접 의료용 실과 바늘로 능숙하게 꿰매는 사람과 전기톱에 절단된 두 손가락을 들고 병원에 갔더니 중지 봉합은 6만 달러, 약지는 18만 달러가 들어 손가락 하나는 갈매기의 먹이로 던져 준 사람을 소개한다. 그러나 관객은 여기에서 너무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이후로도 충격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을 많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쉰 살이 넘은 래리 스미스와 도나 스미스 부부는 ‘몇 달이나 계속 아이들 집에 산다면 좀 곤란하다’는 푸대접을 받으며 결혼한 딸의 집 창고에서 살게 됐다.
도나는 전직 일간지 편집장이었고, 래리는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였다. 이들 부부는 보험에 가입됐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암과 심장병에 걸리면서 파산에 직면했다.
일흔 아홉의 프랭크 가딜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노환에 필요한 약도 일을 해야만 무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딜 씨는 “황혼기가 없다니 사는 게 좀 서럽지”라고 자조한다.
로라 버넘은 교통사고를 당해도 엠뷸런스 이용료가 보장되지 않아 엠뷸런스를 타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자궁경부암에 걸린 스물 두 살의 애드리안은 ‘그 병에 걸리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라며 보험 적용이 거절됐다. 베키는 ‘당신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만 말했던 보험회사 전화상담원 직업 때문에 자괴감에 빠졌다. 어떤 사람은 말라서, 어떤 사람은 뚱뚱해서 보험가입을 거절 당한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그늘에 살고 있다.
성실하게 다달이 보험료를 내던 미국 시민이 막상 병을 얻어 보험보장이 필요하게 됐을 때, 어떻게든 이 돈을 떼어 먹으려는 대형 보험회사들의 행태는 가히 엽기적이다.

사는 게 서러운 미국 시민들
식코 포스터
ⓒ 민중의소리
마리아는 일본 여행 중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이 뇌종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피보험자로 가입된 블루실드 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는 뇌종양이 없다고 우겼다. 당연히 블루실드 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보험회사에 소속된 의사들은 보험금 지급 거절 결정을 많이 내릴수록 보너스를 받는다. 보험 회사는 피보험자의 개별 사정을 일일이 듣지도 않고 ‘전문가가 안된다고 했다’며 덮어 놓고 지급불가 처리를 한다. 꼼짝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게 된 보험사를 위해 리 아이넘 같은 ‘솎아내기 전문가’도 있다. 그는 최소한 5년 치의 의료기록에서 피보험자가 기억조차 못할 사례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연고를 바르고 금방 나아 버렸기 때문에 보험 가입당시 자신도 기억을 못해서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어떤 피부병 같은 것이다. 이런 것조차도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보험 계약 해지를 위한 구실로 이용한다.
미국의 의료보험 회사들이 백주대낮에 이런 횡포를 벌일 수 있는 것은 보험회사들에게 극도로 유리한 보건의료 관련법 때문이다. 법은 의회가 만들지만 의회는 이들 보험 회사들로부터 막대한 후원금을 받는 의원들이 만든다. 미국 의사당 안에는 의원들의 수보다 4배나 많은 의료보험 회사의 로비스트들이 있다. 클린턴 정부시절 대통령 직속 의료정책 개혁 추진위의 위원장이자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모두를 위한 의료’를 주창했다. 이후 그는 미 의회에서 의료보험 회사들로부터 기부금을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상원의원이 되었고 의료개혁의 ‘개’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 빌리 토진 하원 의원은 제약회사들이 약값을 자유롭게 책정토록 하고 대형 보험사의 책임을 작은 개인의료보험 회사로 분산토록 허용하는 법안을 주도했다. 법안이 통과되자 그는 즉시 의회에 사표를 내고 ‘파르마 제약’에 연봉 20억 원을 받는 고문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식코’는 민간 보험회사에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의 의료 체계가 최악의 수준이라는 것을 캐나다, 영국, 프랑스, 쿠바와 비교하며 폭로한다.
절단된 손가락 2개 봉합수술이 미국에서는 18만 달러나 든다. 캐나다에선 다섯 손가락 봉합이 무료다. 미국에서 120달러하는 천식 치료제를 쿠바에서는 5센트에 살 수 있다. 미국 의사들이 환자에게 보험금 지급 거절을 많이 내릴수록 보너스를 받는다면 프랑스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가 병이 낫거나 금연을 하게하면 보너스를 받는다. 9.11 사태가 벌어지고 난 후 분진더미 현장에서 일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영웅 칭호는 받았지만 치료비 지원은 받지 못했고, 어떤 이는 그 때 얻은 병 치료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열 여덟 살부터 13년을 미국에서 살다가 보험 없이 뇌종양을 얻어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알렉시스는 돈도 없고 신분증명도 불가능 했지만 무료로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는 병을 완전히 고친 후에도 3개월 간 급여의 100%를 받는 유급병가를 누렸다. 영국의 병원에도 계산대가 있는데, 병원을 오가며 교통비가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내어 주는 곳이다. 돈을 받는 계산대는 없다.

치료 받고 돈도 받는 영국 국민
지금까지 본 것처럼 영화는 단순히 미국 망신주기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고질적인 환자로 꼽힌 것은 바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다.
영화에서 영국의 토니 벤 의원은 “지배자들은 건강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자신들을 대변하는 후보에 투표하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 빚을 지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투표를 하지 않으며 시키는 대로 소박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국민들을 절망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벤 의원은 “대처나 블레어 수상이 국민건강보험 폐지를 주장한다면 그야 말로 나라가 뒤집힐 일”이라고 덧붙였다. 무어 감독은 이 말을 대학 졸업 후 학자금 대출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는 미국 교육제도, 약에 의지해 노동을 하며 다시 약을 사게 만드는 미국의 자본주의화 사회복지제도 등을 비판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또 평범한 프랑스 사람들과 티타임을 가지며 미국 민주주의에 관한 그들의 비판을 담았다. “이 나라를 움직이는 힘은 바로 정부가 국민들을 무서워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오히려 사람들이 정부라면 꼼짝을 못한다. 튀는 걸 싫어하는 거다. 반대도 싫어하고 거기서 빠져나와 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화씨911’ ‘볼링포콜롬바인’도 이성이 마비된 폭력적 미국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수작이었다. 그러나 마이클 무어 감독에게 그것들은 잽에 불과했다. 그는 ‘식코’를 통해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확실히 녹다운 시켰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며 영화를 마쳤다.
“세상은 우리의 세상이지 나의 세상이 아닙니다.”
앞의 두 영화가 폭로성 영화라면 ‘식코’는 다분히 선동성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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