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주도의 금융화 시대의 개막

[월간말]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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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자동차 회사인 현대차 그룹은 지난 2월 신흥증권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그것도 시가(1주당 2만9,500원)의 2배에 가까운 대가(1주당 6만481원)를 지불했다. 현대차 뿐 아니다. 재벌로 불리는 기업집단들은 너나없이 증권-보험사를 비롯한 금융기업 인수전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두산이 BNG증권중개를, 롯데가 대한화재를, 아주는 대우캐피털을, 유진은 서울증권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의 경우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양대 계열로 정립되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그럴만한 것이 2008년 초 현재, 외국계를 뺀 국내 증권사 39개 중 11곳이 산업자본(재벌) 계열이다.
은행/증권/보험으로 나눌 수 있는 기존의 금융업계도 각각 다른 업종을 인수하거나 심지어 신설하면서 ‘덩치 키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은행은 증권사나 보험사 인수합병에 나서고, 증권사들은 지금까지의 중개 업무에서 기업 인수합병 등 투자은행 업무로 업무영역을 넓히면서 해외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보험사들 역시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 관련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하면서 ‘덩치 키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필자가 묘사한 움직임은 △ 산업/금융 간 장벽의 해체와 △ 금융산업 내 장벽(은행/증권/보험)의 해체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장벽의 해체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 상호간 결합 혹은 각각의 부문 내 결합으로 초대형화된 형태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우리는 이명박 정권기에, 그동안 말이나 글로만 듣고 읽어왔던, 초대형 산업-금융 복합체가 화려하게 등장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향이 이명박 집권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움직임은 김영삼 정권 당시 태동되어, 김대중-노무현 정권기에 성숙되고, 급기야 이명박 시대엔 그동안의 모든 장애물을 떨어내면서 자기 발로 서게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하에서는 ‘금융 서비스산업 중점 육성론’을 중심으로 이 같은 경향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명박 정부가 이런 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어떤 ‘개혁 조치’를 취할 것인지 서술하기로 하겠다.

‘금융서비스산업 육성론’의 계승자로서 이명박 정권
삼성생명
ⓒ 월간말
이명박 정부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 등의 문헌과 각종 보고를 통해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산업 부문’(이하 금융 서비스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중점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위계 서열에서 강력한 제조업 공장 중 하나였던 한국을 금융 서비스산업국가로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제조업 중심에서 금융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재편하자는 논리의 선구자는 김영삼 정권으로 볼 수 있다. 김영삼 정부가 1990년대 초중반, 제기했던 세계화 담론에는 한국경제의 산업구조를 ‘제조업 중심’에서 ‘비즈니스(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이행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이는 이후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이란 용어로 수렴된다.
김대중 정부 당시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화 전략’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제출된 것이었다. 이 전략의 윤곽은 한국을 ‘세계 유수기업 거점 + 물류 거점 + 금융 거점’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출범 초기 ‘동북아 경제중심’ 전략을 선언했다가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비판의 대상이 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동북아 금융허브론’으로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정부를 이어 이명박 정부에 도달하는 하나의 일관된 움직임이 있었던 셈이다.

금융서비스산업 육성과 신자유주의 개혁
이런 정책 노선은 물론 이명박 정권에 이르는 4개 정부가 독자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1970년대 하반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세계자본주의 차원의 경향에 나름대로 적극적인 적응을 모색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전개되고 IMF 사태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은 대체로 어떤 형태를 띠었는가. 이 글의 논의와 관련된 부분을 대충 추리면,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기업과 은행의 상품화:기업(은행) 그 자체의 거래를 통해 수익 추구가 가능
두 번째, 이를 위한 자본시장 육성 및 국제화:기업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
세 번째, 이와 관련된 노동시장 유연화
네 번째, 금융산업의 본질 변화:실물경제지원 사업에서 고수익 생산 산업으로
다섯 번째, 국가적 차원의 금융산업 육성:거대 종합금융그룹에 대한 전략적 육성
여섯 번째, 공기업 민영화 및 서비스 산업의 상업화

필자는 이런 흐름을 시론적이나마 ‘금융화’라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금융화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이런저런 사회경제적 요소(기업, 노후생계 등)를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배분의 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존재 양태(소유지배구조 등)를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식으로 바꾸는 것을 금융화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IMF 사태 이전엔 기업, 특히 국민경제와 고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IMF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개한 개혁의 핵심은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기업 경영권 시장의 형성, 소유지배구조 개혁과 주식시장 자유화). 또한 이런 거래를 한국인이나 국내에서뿐 아니라 외국인과 국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주식시장 개방). 결국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을 넘어 ‘기업 그 자체’를 상품화하고 국내외적으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과정을 ‘기업의 금융화’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장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려면, 구조조정을 통해 비핵심 부문과 노동자들을 해당 기업 밖으로 자유롭게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국가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의 법률로 지원한다. 또한 투자자들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고 그 과실을 본국으로 송금하려면 외환시장이 자유화되어야 한다. 투자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바로 소액주주운동이고, 이 같은 투자자 보호는 한미 FTA 등에서의 투자자-국가 소송제 조항으로 절정에 달한다.
필자가 위에서 말한 ‘신자유주의 개혁의 요소’ 중 첫 번째에서 세 번째까지가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어느 정도 이뤄졌다면, 네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를 본격화하는 것이 이명박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개방된 국제경쟁 환경에서 미래 성장동력인 금융산업을 초고수익 대형 부문으로 육성하고 이에 친화적인 환경을 위해 추가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산업의 발전과 ‘공기업 민영화 및 서비스 산업의 상업화’는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공기업 민영화는 ‘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일반적 목적과 함께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공기업은 대개 전기, 물, 물류, 금융 등 수요가 광범위하고 안정적인 기초생활재를 공급하는 거대 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민영화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국내외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고 이에 따라 자본시장의 거래매물 규모도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의료, 교육 등 공공성 강한 사회 서비스 부문을 상업화한다는 것 역시 국내 서비스산업을 국제경쟁에 노출시키는 한편 국제금융시장의 자금을 이 부문에 유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료, 교육 등의 사회공공적 서비스 역시 수요가 광범위하고 안정적인데다, 무엇보다 금융시장에 크게 노출되지 않은 신대륙이다. 국내외 자본의 입장에서는 군침을 흘릴 부문일 수밖에 없다. 결국 서비스 산업 강화는 이 부문을 ‘고수익 추구가 가능한 장소로 만들어’(즉, 민영화해서), 국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재벌 주도의 금융화
이명박 정부의 금융서비스산업 육성 전략은 큰 줄거리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하지만, 각론에서는 많이 다르다. 이는 조금 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가 친재벌적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의 금융화는 대기업의 상품화로 자본시장을 성장시키는 측면을 가졌는데, 이는 재벌의 그룹 소유지배구조를 공격하는 성격을 자연스럽게 띠게 되었다. 즉, 재벌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재벌들은 IMF 사태 이후 돌변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계열사 지배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는데, 이는 SK와 LG의 지주회사화로 나타난 바 있다. 재벌들의 입장에서는 ‘금융화와 타협’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을 비롯한 일부 그룹의 경우는 지주회사 형태를 취하려고 해도 공정거래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으로 인해 계열 제조업체나 금융기업을 포기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가문의 지배권 수호와 상속을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해왔고 이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공중에 드러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재벌들이 원했던 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줄 것이다. 즉, 재벌들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기존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는 한편 미래성장 산업이라는 금융 부문으로 진출하려 할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이런 움직임을 지원할 것이다. 다음에서는 이런 경향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공기업 민영화 및 서비스 산업의 상업화
기획재정부의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금융서비스산업 육성의 의의로 △ 경상수지 흑자기반 조성과 △ 신성장동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국민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을 제조업에서 금융서비스산업 부문으로 옮기는 한편 이를 외화벌이용 수출산업으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금융서비스산업 육성 방법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 부문의 상업화(민영화), 대형화이고 이를 위한 개방이다.
예컨대 금융서비스산업이 강화되려면 이 부문의 기업을 대형화하고 겸업화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처럼 진입규제가 심한 상황에서는 국내외 자본이 이 부문에 투자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규제완화와 민영화, 개방을 통해 이 부문의 기업에 국내외 자본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해외 기업과 경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경영 합리화 및 효율화를 추진하자는 논리다.(결국 민영화 혹은 상업화는 공적 소유 및 규제를 허물어 이 부문을 수익성 추구가 가능한 영역으로 만들어 투자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거꾸로 공기업 민영화와 사회 서비스의 영리법인화 등이 자본시장 활성화 혹은 금융빅뱅을 위한 주요 수단이라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의료 교육기관을 영리법인화하는 경우 해당 기관은 주식회사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투자은행들은 이런 기관의 자금모집과 기업공개, 합병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의료 교육 부문의 주식회사가 발행한 주식은 수많은 종류의 파생상품과 펀드 등으로 형태를 변환하며 자본시장을 키우게 되는데 이는 금융투자업, 보험업 등의 발전에 긴요하다. 다른 한편, 이 같은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의 양극화와 그 결과인 ‘부유 계층’의 탄생은 자산운용업이나 웰스 매니지먼트, 헤지펀드업 등의 육성에 도움이 된다. 물론 이 같은 변화는 공공성이 강한 의료겚냅?서비스, 기초생활재(예컨대 물) 등의 생산-소비를 주주가치의 원리에 종속시킴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격화시키겠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에겐 그리 중요한 측면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금융산업 정책 기조
이명박 정부에게 금융산업은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 도약을 위한 핵심적인 신성장 동력”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역시 김대중 이래 한국 정부가 주장해온 ‘금융의 글로벌 스탠더드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노무현 정부 당시 제정된 자본시장통합법을 차질 없이 시행하겠다고 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금융중심지 구축’은 노무현 당시 ‘금융허브 구축’과 그 명칭은 물론 내용도 완벽하게 동일하다. 한편 이를 위한 인프라로 노무현 당시 예정된 외환자유화 계획을 앞당겨 시행하고 외국환 거래법령도 개편할 계획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 당시 보다 진일보한 것도 있다. △ 금융회사 진입요건 완화와 △ 헤지펀드 도입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를 높이는 측면이 강해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금융회사 인허가 절차를 단순화하고 처리기간도 단축시키기로 했다. 이는 주식중개회사 등 이른바 ‘전문화된 금융회사’의 신규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인터넷 전문은행, 인터넷 통신판매 전문 보험사 등 신업종의 설립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인터넷 전문은행 등 신금융기업의 건전성이나 준법성을 어떻게 감시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 있지 않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사모펀드 규제 완화 및 헤지펀드 도입도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고위험 고수익 금융투자시장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헤지펀드의 경우 1단계는 기관투자자와 고소득층 개인 등에게만 상품 판매를 허용하는 ‘적격 투자자 헤지펀드’이지만, 일반 투자자에게도 ‘사모’헤지펀드(50인 미만의 경우엔 헤지펀드 참여를 허용), 공모형 재간접 헤지펀드(Fund of Hedge Fund: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간접투자 펀드) 등의 제도로 참여를 허용할 계획이다. 이는 리스크가 매우 높은 헤지펀드 투자에 대한 일반인의 참여를 사실상 권장하는 것으로 전체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크게 높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처럼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높이는 조치와 함께 이명박 정부가 ‘국가 리스크’를 엄청나게 높이는 언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성이 엄청나게 강한 금융자본의 중심지를 조성하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이와 동시에 △ 개성공단-비핵화 연계 발언 △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처신 △ 김태영 합참의장의 선제타격 발언 등 국가 리스크를 확대시키는 아마추어적 행태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이채로운 현상이다.

재벌 주도 금융화 시대의 개막
이명박 시대에 크게 달라질 것은 지난 10년 동안 금융 개혁의 ‘대상’이었던 재벌이 이명박 시대의 ‘금융 중심지 구축’에는 주도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기업집단’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 재벌이 비금융 기업과 함께 금융 기업까지 계열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산업 내에서 이전의 은행/증권/보험 간의 장벽이 무너지는 한편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비금융기업/금융기업 간의 장벽이 제거될 태세이다.
기업집단들은 이미 보험업과 증권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통해 그룹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총선 이후 이명박 정부의 법률 제개정 절차가 마무리되면, 상당수의 재벌들은 지주회사란 기업형태로 비금융사와 금융사를 모두 거느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재벌이 말썽 많은 모회사-자회사 체제에서 지주회사로 가지 못한 이유는 이 경우 상호채무보증을 해소해야할 뿐 아니라 산업지주회사의 경우엔 금융기업을, 금융지주회사의 경우엔 비금융기업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 부분을 말끔히 해결, 재벌이 자유롭게 지주회사를 만들게 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에 대신하여:이명박 정부의 모순적 성격
지금까지 봤듯이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은 ‘재벌 주도의 금융화’로 명명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금융화 정책의 개혁 대상이었던 재벌이 ‘이명박 금융빅뱅’에서는 주체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는 금산분리법, 공정거래법,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증권법 등에 대한 제개정을 올해 안에 끝내 재벌의 금융산업 소유에 대한 법적 준비를 완료하려할 것이다.
재벌의 입장에서 금융기업 소유는 △ 미래유망 사업에 대한 접근 △ 그룹 자금 조달 △ ‘(사실상의) 은행’ 소유의 숙원 등 이유도 있지만, 그룹에 대한 재벌 가문의 소유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금융중심지와 재벌 경영권 보호 간의 모순
이처럼 ‘재벌의 참여’는 금융빅뱅을 가속화할 것이지만, 그 내적 모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재벌들이 금융중심지 정책과 상충 관계인 경영권 보호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도 포이즌 필, 차등 의결권제 등 국내 기업의 경영권 안정을 위한 적대적 M&A 방어책을 법률적으로 수립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금융중심지(허브) 정책과 경영권보호 수단 도입은 매우 상충되는 제도이다. 금융중심지의 핵심은 해외 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마음 놓고 돈놀이’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 경영권을 보호한다는 것은 이 같은 ‘돈놀이의 공간’을 광범위하게 좁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벌의 금융기업 소유는 자금시장의 두 주체인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간에, ‘일정한 거리(arm's length)’를 제거하는 대단히 반시장적인 조치이다. 더욱이 재벌가문의 지배력 확장에 예금(투자)자의 자금을 유용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처럼 특별한 준법감시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시스템을 치명적으로 파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금융공기업 민영화 조치는 오히려 금융산업에서 국가 부문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기획재정부가 추진 중인 메가뱅크 설립안(우리은행+산업은행+기업은행)이 그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와 초대형 국유금융기관 설립 간의 모순
기획재정부의 메가뱅크안은 우리은행과 산업은행, 기업은행을 합병해서 초대형 금융지주회사를 만든 뒤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메가뱅크의 자산규모는 무려 600조원으로 아시아 10대 은행, 세계 30대 은행에 들어갈 수 있다. 다른 한편, 자산규모 600조 은행의 등장은 그 자체 한국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으로 대형은행들의 추가적 인수합병에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다른 대형은행들은 살아 남기위해서라도 증권 보험사 등을 인수 신설하거나 다른 은행을 합병해서 덩치를 키워야 한다. 최근의 금산분리 완화 예고는 이 같은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한편 ‘은행 이외 금융공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관은 KIF(한국투자펀드)가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KIF는 당초 중소기업지원 전담펀드로 구상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KIF의 역할을 대폭 넓히기로 한 것 같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대통령에게 “대북경협이나 자원외교 등 공적 기능은 KIF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해서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이는 물론 산업은행의 민영화로 상실되는 정책금융 기능(대북경협, 자원외교)을 KIF로 이전하자는 것인데, KIF의 역할을 펀드에서 다목적 금융기관으로 키우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KIF가 이렇게 정책금융 기능의 블랙홀로 자리매김 된다면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도 그 파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는 양손에 두 개의 깃발을 들고 있다. 오른쪽 깃발엔 ‘공기업 민영화’라고 씌어 있다. 왼손에서 펄럭이는 깃발엔 ‘초대형 국유 금융기관’이라고 새겨져 있다. 예컨대 우리은행 매각이 그토록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면, 메가뱅크 역시, 설사 금산분리가 해체된 상황에서도, 그 매각이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상당 기간 동안 국유은행으로 남아있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이명박 대통령 임기 이후엔 어떨까?). KIF도 만만치 않다. 납입 자본금만 20~30조 원에 달하는데다 모든 정책금융 기능을 총괄한다지 않는가. 이에 더해 KIC(한국투자공사)는 자산규모를 20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로 확장한, 초대형 국부펀드로 등장할 전망이다. KIC와 함께 국부펀드 역할을 맡게 된, 이른바 한국판 테마섹(Temasek) 역시 자산규모가 최소한 50조원은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 이후는 현존하는 국유은행-민간은행-은행 이외의 국책금융기관-제2 금융권 회사들이 민간 부문과 공적 부문에 각각 허용된 얼마 안 되는 생존 티켓을 두고 아비규환을 벌이는 시대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봤듯이, 이명박 정부의 금융 서비스산업 정책은 매우 급진적이고 과격한 동시에 만만치 않은 내적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이에 더해 한국의 ‘후발 금융화’ 정책이 국제경제 정세와 얼마나 조응할지도 만만치 않은 걱정거리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자유화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방안이 발표되는 등 1980년대 이후 30여년에 걸친 금융자유화에 제동이 걸릴 낌새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같은 국제정세 가운데서 과격한 금융빅뱅이 진행될 한국의 운명이 대단히 불투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참여사회연구소가 펴낼 <시민과세계> 2008년 상반기(제13호)에 실릴 예정인 ‘재벌 주도 금융화 시대의 개막’을 월간『말』이 요약해 소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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