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왜 미국을 싫어하나
김진웅 경북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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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웅 경북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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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을 ‘가장 오랫동안’ 미워해 온 것은 바로 유럽이다. 유럽유학이나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유럽인들, 특히 지식인층의 미국에 대한 반감을 일상에서 느낀다. 미국 억양의 영어는 경멸의 대상이며(역설적으로 미국에서는 영국식 영어가 존중의 대상이다), 할리우드 영화 등 미국 상업문화는 천박함으로 읽힌다. 우디 앨런이나 ‘화씨 9/11’ 감독 마이클 무어와 같이 ‘미국스럽지 않은’ 미국인들이 거의 유일하게 유럽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유럽 대중문화는 미국문화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영국이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축구와, 소위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란 말까지 만들어낸 음악뿐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한국인의 반미감정> <반미> 등의 저서를 통해 반미감정, 반미주의를 집요하게 파헤쳐온 경북대 김진웅 교수가 이번에는 ‘유럽 반미주의’의 뿌리를 캔 안드레이 S. 마코비츠의 저서 <미국이 미운 이유/원제 Uncouth Nation:Why Europe Dislikes America/일리>를 번역해 내놓았다.
김 교수는 우선 반미감정과 반미주의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미감정의 경우 “미국에 의해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 피해를 준 사건에 대한” 일과적 감정이고 “그 사안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옅어지는 성질의 것이라면, 반미주의는 말 그대로 이데올로기화 된 반미를 뜻한다는 것. 한국에서 SOFA 문제, 농산물 수입개방 압력, 미선이. 효순이 미군장갑차 압사사건 등이 대표적인 ‘반미감정’ 촉발의 사례라 할 만한다.
반면 유럽의 경우는 지식인층에 의해 이데올로기화된 ‘반미주의’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유럽이 무기력하고 미국이 너무 강하다는 것, 즉 강자에 대한 저항감과 열등의식의 반영”이 바로 유럽식 반미주의. 책에 언급되어 있듯이 이는 신대륙을 발견한 그 순간부터 ‘단순하고 직감적인 두려움과 반감’으로 시작된 뿌리 깊은 것이다. 미국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을 때 이미 “미국이 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데 대한 혐오증을 유럽 지식인들은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유럽은 고대 그리스라면 미국은 로마제국이다. 그리스는 철학, 문학, 연극, 정치 등 찬란한 문명을 이루고도 분열로 인해 로마에 정복당했다”고 설명한다. 유럽 패권주의자들은 “강해지려면 유럽이 통합되어야 하는데 역사와 전통,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반미주의를 유럽 통합의 촉진제로” 이용하고 있다.
반면 일반 대중은 “무한한 신천지를 동경하고 있었으며, 유럽의 문화처럼 고답적이지 않고 보편성을 지닌 미국의 대중문화”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카우보이’ 부시 행정부의 등장은 이러한 엘리트층과 일반 대중의 간극을 좁혀 ‘반미’라는 공통분모를 만들어냈다. 또 “어떠한 사안에서도 극과 극을 달리는 유럽 좌파 지식인과 우파 지식인”도 ‘반미주의’를 통해 하나가 되었다.
‘반미주의’는 미국 문화, 미국식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로 표현된다. “영혼이 없는 미국 상업문화, 낙후한 사회보장 제도와 극심한 빈부격차, ‘전쟁의 신 마르스’에 비유할 만한 호전성과 세계경찰 노릇” 등에 대해 유럽 지식인들은 상대적 우월감을 느낀다. “유럽의 진정한 후계자가 아닌” 미국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 두려움과 경멸감이 범벅이 되어 반미주의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유럽인들의 반미주의는 그들이 견뎌내야 하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 미국의 희생자라는 느낌, 미국의 보호를 받는 영원한 소인이란 의식, 항상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업신여긴 나라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자책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책 중에서
여기에서 결정적인 종속물이 등장한다. 이 책의 저자가 반미주의와 ‘쌍둥이’의 대열에 올려놓은 것은 바로 반유대주의. 김 교수는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논쟁적”이라고 평가한다. 유대인이기도 한 저자 스스로가 유럽의 반유대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편적인 인권을 중시하는 좌파 또한 우파의 전유물인 반유대주의를 갖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 책은 “유럽 대륙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낸” 역사의 수치심과 50년 간 침묵해야 했던 반유대주의가 19세기 말 ‘새로운 반유대주의’ ‘정치적 반유대주의’로 등장하면서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모습으로 유럽의 반미주의를 동반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미국과 유대인들이 가진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비판” 때문이었으며, “기성의 전통과 가치들에 적대적인 현대성이 불러일으킨 불안감”이었다.
이어서 “오늘날 담론에서 반유대주의와 반시온주의는 상당히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아예 반유대주의 그 자체이거나 반유대주의의 표현 수단 내지 그러한 반유대주의적 표현들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반시온주의가 있다”고 반미주의-반유대주의-반시온주의의 관계를 분석하기도 한다.
“독일인들은 거꾸로 유대인의 지배를 받는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을 대량 학살했다고 역습함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 우선 그들은 미국인들을 나치와 같은 반열에 놓음으로써 미국인들이 독일인들을 비판할 도덕적 권리는 빼앗는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인들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비판하는 것은 특히 홀로코스트로 인한 죄의식에서 해방을 의미하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책 중에서
김진웅 교수는 이 책을 내기 바쁘게 내년 출간을 목표로 영어로 된 ‘한국사’를 집필하고 있다. “버지니아 군사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마땅한 한국사 교재가 없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이 책을 6년째 쓰고 있다”고 한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8-04-21 12:16:42
- 최종편집: 2008-04-28 16: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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