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는 ‘날라리’가 아니에요”
은밀한 미각과 이색적인 여가를 선사하는 칵테일의 마술사, 바텐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곳에 앉아 피곤한 맘을 달래고 싶었다. 말할 수 없이 우아한 봄의 전령은 곳곳에 찾아왔건만 기자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짐짓 사소하고 진부한 이유일지 모르겠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낱낱이 따지고 캐물어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이 가끔은 부담스러운 때가 있다고 하면 손가락질하려나. 역시 시시콜콜한 이유다. 어떤 일이든 쉽지 않고, 고단한 노동 없이 풍성한 열매를 딸 수 없다. 하지만 하루 종일 그저 그렇고 그런 기분에 젖어들 때면 술 한 잔 마시면서 털어버리는 게 기자의 스타일이다. 이래저래 신경 쓴다고 풀릴 일이 아닐 땐 더욱 그렇다. 삶이 삭막하게 느껴질 땐 푸릇푸릇한 초원을 거닐면서 자연의 속삭임을 듣는 것이 좋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 구수한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들이키거나 자그마한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
달빛이 하얀 그늘을 드리운 밤, 왠지 모르게 각양각색의 맛과 빛깔이 근사한 기분을 선사하는 칵테일이 당겼다. 익숙하지 않은 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홀로, 천천히 시간을 향락하기에는 칵테일이 제격이다. 특히 멋스러운 바(bar)에 앉아 바텐더와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울다 웃다 취하다보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것만 같다.
연갈색 조명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클래식 바에 들어갔다. 겉모습만으로도 황홀한 탄성이 터져나올 만큼 내부 인테리어가 유려했다. 취재를 위해 들린 몇몇 바들도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다. 생각보다 무척 조용하고 은은해 정답게 대화를 나누며 칵테일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단 술값이 조금 비싼 게 흠이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색다른 즐거움과 은밀한 미각을 경험하고 싶을 때는 주머니 사정은 잠시 놓아두는 것도 좋을 듯싶다.
바에는 기자의 눈을 황홀하게 만드는 강렬한 포인트가 곳곳에 연출돼 있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유럽풍의 가구에는 갖가지 모양의 이름 모를 술병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고, 가구 칸칸마다 노란 불빛이 쏟아져 나와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마치 은은한 노을이 내려앉은 이탈리아 플로렌스강의 아치교를 보는 것 같았다. 가구 옆에는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이 걸려 있었는데, 술집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그림들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야릇한 몽상을 경험하게 했다. 술과 예술은 젊으면서도 영원히 나이를 먹는 존재이지 않은가.
음악은 흐느적거렸다. 거의 잊어버리고 말았던 그 옛날의 가냘픈 멜로디가 가슴깊이 파고들었다. 피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노래들도 이곳에서는 회상과 환상의 길을 열어주었다. 슬플 정도로 달콤했다. 아마도 칵테일이라는 술이 주는 마력이리라. 다른 바에서는 무명 피아니스트의 소나타가 흘러 나왔다. 역시 라이브 음악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보다 더욱 보드랍고 촉촉한 감동을 선사했다. 기자는 음악의 첫 소절을 아주 주의 깊게 듣는 편이다. 음악의 힘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첫 소절의 애절함이 커다랗게 물결쳐 마지막에 전율을 만들어준다고 믿는 까닭이다.
현란한 조명과 비트가 강한 댄스풍의 음악이 마음을 흥분시키는 ‘플레어 바’로 자리를 옮겼다. 빛과 빛 사이를 물결치는 파도처럼 상쾌하고 명랑한 곳이었다. 한편으로는 변화무쌍한 여름 날씨처럼 정신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젊고 자유분방한 열기는 삶의 긴장감을 금방 누그러뜨려주기 충분했다. 아우. 신난다.
플레어 바에서는 바텐더들의 환상적인 칵테일 쇼가 매일 펼쳐진다. 한 명이 혹은 여러 명이, 일렬로 혹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어깨 너머로, 등 뒤로, 다리 사이로 병을 던지고 잽싸게 낚아챈다. 크기가 다른 컵을 탑처럼 쌓아놓고 술을 따르면서 불을 붙이기도하고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아찔한 광경도 연출된다. 덩달아 손님들도 난장이다. 현란한 곡예에 마음을 빼앗긴 어린 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세상의 모든 불안과 방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이다.
바의 내부는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서구풍의 액세서리로 꾸며져 있었다. 서부영화에서 나오는 술집처럼 전체를 원목으로 꾸며 놓은 가게도 있고, 영화 포스터나 스포츠 용품, 이국적인 악기나 장식품들을 전시해 놓거나 포켓볼을 즐길 수 있도록 당구대를 설치한 곳도 있었다.
바텐더를 불렀다. 물론 “바텐더”가 아니라 “저기요”였다. 좀 방정맞고 교양 없는 행동 같았다. 이럴 땐 그냥 안면 몰수다.
기자는 칵테일을 잘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진토닉, 핑크레이디, 싱가폴 슬링, 데킬라 선라이즈, 섹스 온 더 비취, 마티니, 블랙 러시안 정도.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이름들이다. 어떤 스타일의 칵테일이 좋을지 바텐더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듯싶었다.
“어떤 칵테일이 좋을까요? 추천 좀 해주세요.”
“칵테일이 처음이시군요. 과일맛, 단맛, 신맛 중 어느 쪽이 좋으세요?”
“과일이요.”
“술은 많이 하세요?”
“예. 많이 합니다.”
“딸기, 코코넛, 망고 중 어느 것이 좋으세요? 아니면 키위, 딸기, 바나나가 들어가는 칵테일도 있는데요.”
“코코넛이나 망고가 좋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해변에 가신 것처럼 시원한 칵테일을 준비해드려도 될까요?”
“예. 좋습니다.”
“코코넛과 망고가 들어가고 후레쉬한 과일 바나나가 들어가는 ‘붐바붐바’라는 칵테일 있습니다. 저희만이 가지고 있는 칵테일인데요.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손님께서 알코올을 많이 원하시니까 사탕수수로 만든, ‘럼’이라는 술을 써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첫 눈에도 사람 좋아 보이는 바텐더 박준혁(34세) 씨와의 문답이다. 무조건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몇 번의 수식이 더 오갔을 판이다.
칵테일은 정말 명쾌한 술이다. 어떤 면에서는 깐깐하고 복잡해 보이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를 골라 넣고 빼는 오묘한 재미를 곁들일 수 있어 유쾌했다. 박 씨는 “칵테일을 모를 때는 전문 바텐더에게 물어보고 손님의 취향에 맞는 술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면서 “쑥스러워하거나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다.
바텐더 김선응(33세) 씨도 “바는 서구문화”라면서 “칵테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에 맞게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분식점에서 김밥을 주문할 때 ‘단무지는 빼고 시금치는 2개, 햄은 3개 넣어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럼 너 나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샌드위치 하나를 시켜도 ‘달걀은 반숙으로 해주고, 설탕과 마요네즈는 넣고 케첩은 빼 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다. 이처럼 칵테일도 자신의 취향을 바텐더에게 말하는 게 올바른 주문법이라 할 수 있다.
칵테일은 섬세하고 예민한 술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만들 수 없다. 칵테일은 정해진 방법을 따라 이것저것을 섞어 만들어내는 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취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도록 세밀하고 꼼꼼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창조적 산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바텐더에 대한 시선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서비스 정신이 필요한 전문직이지만 사람들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잡부’로 낮잡아본다.
쉐라톤 워커힐 호텔 클래식 바 ‘시로코’의 캡틴 박준혁(34세) 씨도 바텐더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 때문에 속병을 앓았던 눈치다.
“편견이요. 들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칵테일은 술과 예술이 복합된 문화인데 한국 사람들은 먹고 죽자는 식으로, 소주처럼 원샷 하는 문화로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바텐더는 남들 쉴 때 일해야 하고, 야간 근무까지 하니까 무작정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졌어요. 강의를 나가봐도 젊은 학생들의 생각이 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해요. 모든 서비스업은 똑같겠지만 바텐더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에요. 조리사가 음식을 만들듯이 바텐더는 술로서 나만의 음식을 고객들에게 내주는 것이죠. 제가 개발한 칵테일을 마시고 고객이 만족할 때 기쁨을 느껴요.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청담동 플레어 바 ‘서클’의 매니저 김선응(33세) 씨도 보이지 않는 사회의 곁눈질을 많이 느껴왔다. 바텐더를 술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다.
“30대, 40대, 50대 초반까지는 괜찮은데 50대 후반에서 60대 분들은 아직도 바텐더를 ‘날라리’라고 생각해요. 술의 역사는 길지만 술 문화가 정립되지 않아서 그래요. 사람들은 비싼 술이나 외국에서 먹어본 특이한 술을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술은 분위기에 맞는 것이 최고예요. 한 여름에 힘든 일을 마치고 지나가는데 생맥주에 바비큐가 있어요. 그게 최고죠. 비가 내리는 날은 동동주에 파전. 또 소주에 어울리는 안주. 다들 소주 먹는 분위기인데 나는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와인을 먹지 않잖아요. 바텐더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에요.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한 번에 드러나는 직업이기 때문에 끼가 있다면 더욱 좋죠. 저의 꿈은 바텐더가 아니라 영화배우였어요. 모델 학원도 다니고, SBS신인탤런트 선발대회에도 나갔는데 군대가 발목을 잡았죠. 하지만 연기는 지금도 가끔씩 해요. 손님을 만나면서 기분이 좋다, 나쁘다, 그런 것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거든요. 때로는 기분이 나빠도, 개인적인 일이 있어도 연기를 해요.”
칵테일은 민감한 술이지만 바텐더들은 민감해서는 안된다. 격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도에 넘치지 않도록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손님들이 편안하게 쉬면서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대한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 또 자신을 믿고 칵테일을 맡긴 손님이 원하는 술을 제대로 만들어줄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도 필요하며, 술에 취해 실수하는 손님들도 이해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박준혁 씨는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워커힐에 입사해 전문적인 바텐더 교육을 별도로 받았다. 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외국 경험이 풍부하고 손재주가 좋은 전문 바텐더들에게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았고, 외국에 나가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박 씨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바텐더의 최고 덕목이라고 여겼다. 손님에게 무엇을 건질까 생각하기 보다는 무엇을 먼저 해줄지 고민한다는 것. 하지만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스타일의 손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술을 판매하는 곳은 다 똑같은 문제점이 있을 것”이라고 웃어버렸다.
“욕도 들어보고, 맞아보기도 했어요. 오바이트 하는 손님, 주무시는 손님 업어보기도 하고, 휠체어에 태워 룸 잡아다 눕혀 드리고, 택시도 태워드렸죠. 하지만 그렇게 힘들거나 싫어할만한 손님은 없었어요. 자기 의지와는 다르게 술이라는 것 때문에 생각이 나지 않고 함부로 할 수 있거든요. 요즘은 예전과 달라져서 그런 분들이 없어요. 있다 해도 서너 달에 한두 번 정도에요.”
“칵테일 맛 때문에 깐깐하게 구는 손님도 있지요?”
“당연히 하죠. 우리나라 레시피(recipe)가 고객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거든요. 옛날에는 칵테일을 마시는 분들이 적었어요. 지금은 외국에도 많이 나가고 유학 다녀온 분들도 많아서 손님들 입맛을 맞추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저희가 그 맛을 내준다면, 저희가 정성을 다해 만든다면 그분들은 더 만족하실 거예요.”
박 씨가 좋아하는 칵테일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다. 잔도 크고, 술도 여러 가지 들어가는데다 먹고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만 들어도 시원하지 않느냐”고 되물으면서 “스트레스가 많은 분들, 좋은 일이나 행복한 일을 만끽하러 온 분들, 모두 오셔서 그 분위기에 맞게 마음을 해소하고, 더 행복해져서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로코 스타일의 클래식 바 ‘시로코’는 ‘사막에 이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유럽풍의 우아한 장식이 현대적인 음악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곳은 TV드라마 촬영장소로 자주 사용됐다. 호텔리아, 황태자의 첫사랑, 로비스트 등이다. ‘시로코’에서는 특별 이벤트로 12가지 다양한 안주, 팝과 재즈를 넘나드는 다양한 라이브 음악, 늦은 밤까지 제공되는 무제한 와인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금요일 밤의 파티’를 열고 있다.
김선응 씨의 바텐더 입문은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직접 업소에 들어가 바닥부터 시작했다. 그 당시 국내에는 바텐더 교육기관이 한 곳 있었지만 정작 그는 알지 못했다.
김 씨는 ‘바’라는 공간이 일상탈출의 이미지가 크기 때문에 고객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을 철칙처럼 지킨다. 나이가 몇 살이냐, 사는 곳이 어디냐, 이런 질문보다는 시사나 다른 화제를 꺼내 철저하게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얘기를 하게 되고 친해진다는 것. 이러한 직업정신은 싫어하는 스타일의 손님을 대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일단 저희 바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고맙죠. 그래서 실수를 하고 화가 나도 이해합니다. 맞아본 적도 있어요. 그래도 무슨 힘든 일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해 더 잘해줍니다. 난장을 피는 손님도 충분히 달래서 보내고요.”
“술 먹고 테이블에 엎어져 자거나 이런 종류의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합니까?”
“자니까 다행이죠.(웃음) 오바이트는 치우면 되고요. 일단 고객이 자면 술 깨는 시간이 있으니까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에서 2시간 숙면을 취하도록 해요. 손님이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들 때 깨워서 보내죠. 목에 얼음찜질도 해드리고요. 바텐더는 쓰리디(3D)를 다 가지고 있어요. 때로는 지저분하고, 사람 상대하는 것도 어렵고요.”
“술 취한 손님 때문에 힘드신 적 없었습니까?”
“힘든 것은 힘들었으니까 지나가는 거예요. 추억은 간직하기 때문에 오래가죠. 힘든 것은 별로 없었는데 기억 속에 남은 추억은 많아요. 하루 벌어 하루 술값으로 다 내는 분이 있었어요. 노동일을 하는 분이셨는데 하루에 5만원, 6만원 벌어서 날마다 그만큼 술을 먹었지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정말 안타까웠지요. 그래서 제가 하루에 술 먹는 양을 정해줬어요. 하루에 1만원에서 2만원어치만 먹게 하고, 정 안되면 제가 사주고요. 술은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빠져드는 것보다 즐길 줄 알아야 멋진 거라고 생각해요. 자제력을 가지고 즐기면 좋겠어요. 때론 술 취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죠.”
그는 바에서 칵테일 쇼도 한다. 직접 시범도 보여주었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연습을 했는지 몸과 병이 하나로 보였다. 그는 “바에서 공연을 할 때는 분위기를 잘 타야한다”면서 “최고의 분위기가 아니면 하지 않으며, 어설프게 하려면 안하게는 좋다”고 귀띔했다.
모던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수준 높은 컨텐츠로 인기가 높은 ‘써클’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베컴과 할리우드 이슈메이커 패리스 힐튼이 들려 유명세를 탄 플레어 바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공연 관람과 함께 춤도 출 수 있으며, 호텔에서나 마실 수 있는 ‘모이토(mojito)’등 특별한 칵테일들도 음미할 수 있다.
취재를 마치고 강남의 한 바에 들렀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검은 빛깔의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한 외국인. 저 칵테일의 이름은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칵테일인지 너무 궁금했다. 취재 여파였다. 바로 옆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지적이고 선량한 눈빛을 가진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자리를 건너 술이 좀 돼 보이는 한 남자가 칵테일 잔을 손에 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씩 술을 홀짝 홀짝 들이키는 것을 보면 잠이 든 상태는 아니었다.
그의 친구로 보이는 한 남자는 담배를 꼬나물고 음악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팔다리는 제멋대로였다. 건너편에 앉은 한 남자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처럼 거만하게 앉아 웨이터를 불러 얼음을 채워달라고 요구했다. 바텐더는 상냥한 얼굴로 잔에 얼음을 넣고 하얀 행주로 물기 어린 테이블을 훔쳤다.
한쪽 구석에는 넥타이 부대 10여명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건강을 빌며 술잔을 들었다. 식당이나 호프집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었다. 이밖에도 몇몇 사람들이 시선을 끌었다. 긴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도 있었고, 헐렁한 청바지를 골반에 걸친 힙합 스타일의 남자도 있었다.
아무래도 ‘바’는 서양식 주점이다 보니 외향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점잖고 정적인 동양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술은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는 매개다. 다른 종류의 술을 마셔도 취한 순간만큼은 서로의 체질과 문화적 특성을 뛰어 넘어 본능적인 뭔가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매력이나 어리고 유치한 감정, 잇속을 떠나 마음을 여는 힘까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그 이상한 힘이 술에는 숨어있다.
바텐더 박준혁 씨가 좋아한다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하루 피로가 싹 가시듯 시원하고 짜릿한 칵테일이었다.
달빛이 하얀 그늘을 드리운 밤, 왠지 모르게 각양각색의 맛과 빛깔이 근사한 기분을 선사하는 칵테일이 당겼다. 익숙하지 않은 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홀로, 천천히 시간을 향락하기에는 칵테일이 제격이다. 특히 멋스러운 바(bar)에 앉아 바텐더와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울다 웃다 취하다보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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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클럽 서클 매니저 김선응 |
ⓒ 월간 말 |
연갈색 조명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클래식 바에 들어갔다. 겉모습만으로도 황홀한 탄성이 터져나올 만큼 내부 인테리어가 유려했다. 취재를 위해 들린 몇몇 바들도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다. 생각보다 무척 조용하고 은은해 정답게 대화를 나누며 칵테일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단 술값이 조금 비싼 게 흠이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색다른 즐거움과 은밀한 미각을 경험하고 싶을 때는 주머니 사정은 잠시 놓아두는 것도 좋을 듯싶다.
바에는 기자의 눈을 황홀하게 만드는 강렬한 포인트가 곳곳에 연출돼 있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유럽풍의 가구에는 갖가지 모양의 이름 모를 술병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고, 가구 칸칸마다 노란 불빛이 쏟아져 나와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마치 은은한 노을이 내려앉은 이탈리아 플로렌스강의 아치교를 보는 것 같았다. 가구 옆에는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이 걸려 있었는데, 술집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그림들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야릇한 몽상을 경험하게 했다. 술과 예술은 젊으면서도 영원히 나이를 먹는 존재이지 않은가.
음악은 흐느적거렸다. 거의 잊어버리고 말았던 그 옛날의 가냘픈 멜로디가 가슴깊이 파고들었다. 피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노래들도 이곳에서는 회상과 환상의 길을 열어주었다. 슬플 정도로 달콤했다. 아마도 칵테일이라는 술이 주는 마력이리라. 다른 바에서는 무명 피아니스트의 소나타가 흘러 나왔다. 역시 라이브 음악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보다 더욱 보드랍고 촉촉한 감동을 선사했다. 기자는 음악의 첫 소절을 아주 주의 깊게 듣는 편이다. 음악의 힘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첫 소절의 애절함이 커다랗게 물결쳐 마지막에 전율을 만들어준다고 믿는 까닭이다.
현란한 조명과 비트가 강한 댄스풍의 음악이 마음을 흥분시키는 ‘플레어 바’로 자리를 옮겼다. 빛과 빛 사이를 물결치는 파도처럼 상쾌하고 명랑한 곳이었다. 한편으로는 변화무쌍한 여름 날씨처럼 정신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젊고 자유분방한 열기는 삶의 긴장감을 금방 누그러뜨려주기 충분했다. 아우. 신난다.
플레어 바에서는 바텐더들의 환상적인 칵테일 쇼가 매일 펼쳐진다. 한 명이 혹은 여러 명이, 일렬로 혹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어깨 너머로, 등 뒤로, 다리 사이로 병을 던지고 잽싸게 낚아챈다. 크기가 다른 컵을 탑처럼 쌓아놓고 술을 따르면서 불을 붙이기도하고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아찔한 광경도 연출된다. 덩달아 손님들도 난장이다. 현란한 곡예에 마음을 빼앗긴 어린 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세상의 모든 불안과 방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이다.
바의 내부는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서구풍의 액세서리로 꾸며져 있었다. 서부영화에서 나오는 술집처럼 전체를 원목으로 꾸며 놓은 가게도 있고, 영화 포스터나 스포츠 용품, 이국적인 악기나 장식품들을 전시해 놓거나 포켓볼을 즐길 수 있도록 당구대를 설치한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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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라톤 워커힐 호텔 시로코 캡틴 박준혁 |
ⓒ 월간 말 |
바텐더를 불렀다. 물론 “바텐더”가 아니라 “저기요”였다. 좀 방정맞고 교양 없는 행동 같았다. 이럴 땐 그냥 안면 몰수다.
기자는 칵테일을 잘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진토닉, 핑크레이디, 싱가폴 슬링, 데킬라 선라이즈, 섹스 온 더 비취, 마티니, 블랙 러시안 정도.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이름들이다. 어떤 스타일의 칵테일이 좋을지 바텐더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듯싶었다.
“어떤 칵테일이 좋을까요? 추천 좀 해주세요.”
“칵테일이 처음이시군요. 과일맛, 단맛, 신맛 중 어느 쪽이 좋으세요?”
“과일이요.”
“술은 많이 하세요?”
“예. 많이 합니다.”
“딸기, 코코넛, 망고 중 어느 것이 좋으세요? 아니면 키위, 딸기, 바나나가 들어가는 칵테일도 있는데요.”
“코코넛이나 망고가 좋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해변에 가신 것처럼 시원한 칵테일을 준비해드려도 될까요?”
“예. 좋습니다.”
“코코넛과 망고가 들어가고 후레쉬한 과일 바나나가 들어가는 ‘붐바붐바’라는 칵테일 있습니다. 저희만이 가지고 있는 칵테일인데요.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손님께서 알코올을 많이 원하시니까 사탕수수로 만든, ‘럼’이라는 술을 써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첫 눈에도 사람 좋아 보이는 바텐더 박준혁(34세) 씨와의 문답이다. 무조건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몇 번의 수식이 더 오갔을 판이다.
칵테일은 정말 명쾌한 술이다. 어떤 면에서는 깐깐하고 복잡해 보이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를 골라 넣고 빼는 오묘한 재미를 곁들일 수 있어 유쾌했다. 박 씨는 “칵테일을 모를 때는 전문 바텐더에게 물어보고 손님의 취향에 맞는 술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면서 “쑥스러워하거나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다.
바텐더 김선응(33세) 씨도 “바는 서구문화”라면서 “칵테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에 맞게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분식점에서 김밥을 주문할 때 ‘단무지는 빼고 시금치는 2개, 햄은 3개 넣어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럼 너 나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샌드위치 하나를 시켜도 ‘달걀은 반숙으로 해주고, 설탕과 마요네즈는 넣고 케첩은 빼 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다. 이처럼 칵테일도 자신의 취향을 바텐더에게 말하는 게 올바른 주문법이라 할 수 있다.
칵테일은 섬세하고 예민한 술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만들 수 없다. 칵테일은 정해진 방법을 따라 이것저것을 섞어 만들어내는 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취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도록 세밀하고 꼼꼼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창조적 산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바텐더에 대한 시선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서비스 정신이 필요한 전문직이지만 사람들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잡부’로 낮잡아본다.
쉐라톤 워커힐 호텔 클래식 바 ‘시로코’의 캡틴 박준혁(34세) 씨도 바텐더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 때문에 속병을 앓았던 눈치다.
“편견이요. 들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칵테일은 술과 예술이 복합된 문화인데 한국 사람들은 먹고 죽자는 식으로, 소주처럼 원샷 하는 문화로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바텐더는 남들 쉴 때 일해야 하고, 야간 근무까지 하니까 무작정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졌어요. 강의를 나가봐도 젊은 학생들의 생각이 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해요. 모든 서비스업은 똑같겠지만 바텐더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에요. 조리사가 음식을 만들듯이 바텐더는 술로서 나만의 음식을 고객들에게 내주는 것이죠. 제가 개발한 칵테일을 마시고 고객이 만족할 때 기쁨을 느껴요.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청담동 플레어 바 ‘서클’의 매니저 김선응(33세) 씨도 보이지 않는 사회의 곁눈질을 많이 느껴왔다. 바텐더를 술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다.
“30대, 40대, 50대 초반까지는 괜찮은데 50대 후반에서 60대 분들은 아직도 바텐더를 ‘날라리’라고 생각해요. 술의 역사는 길지만 술 문화가 정립되지 않아서 그래요. 사람들은 비싼 술이나 외국에서 먹어본 특이한 술을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술은 분위기에 맞는 것이 최고예요. 한 여름에 힘든 일을 마치고 지나가는데 생맥주에 바비큐가 있어요. 그게 최고죠. 비가 내리는 날은 동동주에 파전. 또 소주에 어울리는 안주. 다들 소주 먹는 분위기인데 나는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와인을 먹지 않잖아요. 바텐더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에요.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한 번에 드러나는 직업이기 때문에 끼가 있다면 더욱 좋죠. 저의 꿈은 바텐더가 아니라 영화배우였어요. 모델 학원도 다니고, SBS신인탤런트 선발대회에도 나갔는데 군대가 발목을 잡았죠. 하지만 연기는 지금도 가끔씩 해요. 손님을 만나면서 기분이 좋다, 나쁘다, 그런 것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거든요. 때로는 기분이 나빠도, 개인적인 일이 있어도 연기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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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클럽 서클 매니저 김선응 |
ⓒ 월간 말 |
칵테일은 민감한 술이지만 바텐더들은 민감해서는 안된다. 격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도에 넘치지 않도록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손님들이 편안하게 쉬면서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대한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 또 자신을 믿고 칵테일을 맡긴 손님이 원하는 술을 제대로 만들어줄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도 필요하며, 술에 취해 실수하는 손님들도 이해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박준혁 씨는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워커힐에 입사해 전문적인 바텐더 교육을 별도로 받았다. 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외국 경험이 풍부하고 손재주가 좋은 전문 바텐더들에게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았고, 외국에 나가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박 씨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바텐더의 최고 덕목이라고 여겼다. 손님에게 무엇을 건질까 생각하기 보다는 무엇을 먼저 해줄지 고민한다는 것. 하지만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스타일의 손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술을 판매하는 곳은 다 똑같은 문제점이 있을 것”이라고 웃어버렸다.
“욕도 들어보고, 맞아보기도 했어요. 오바이트 하는 손님, 주무시는 손님 업어보기도 하고, 휠체어에 태워 룸 잡아다 눕혀 드리고, 택시도 태워드렸죠. 하지만 그렇게 힘들거나 싫어할만한 손님은 없었어요. 자기 의지와는 다르게 술이라는 것 때문에 생각이 나지 않고 함부로 할 수 있거든요. 요즘은 예전과 달라져서 그런 분들이 없어요. 있다 해도 서너 달에 한두 번 정도에요.”
“칵테일 맛 때문에 깐깐하게 구는 손님도 있지요?”
“당연히 하죠. 우리나라 레시피(recipe)가 고객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거든요. 옛날에는 칵테일을 마시는 분들이 적었어요. 지금은 외국에도 많이 나가고 유학 다녀온 분들도 많아서 손님들 입맛을 맞추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저희가 그 맛을 내준다면, 저희가 정성을 다해 만든다면 그분들은 더 만족하실 거예요.”
박 씨가 좋아하는 칵테일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다. 잔도 크고, 술도 여러 가지 들어가는데다 먹고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만 들어도 시원하지 않느냐”고 되물으면서 “스트레스가 많은 분들, 좋은 일이나 행복한 일을 만끽하러 온 분들, 모두 오셔서 그 분위기에 맞게 마음을 해소하고, 더 행복해져서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로코 스타일의 클래식 바 ‘시로코’는 ‘사막에 이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유럽풍의 우아한 장식이 현대적인 음악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곳은 TV드라마 촬영장소로 자주 사용됐다. 호텔리아, 황태자의 첫사랑, 로비스트 등이다. ‘시로코’에서는 특별 이벤트로 12가지 다양한 안주, 팝과 재즈를 넘나드는 다양한 라이브 음악, 늦은 밤까지 제공되는 무제한 와인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금요일 밤의 파티’를 열고 있다.
김선응 씨의 바텐더 입문은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직접 업소에 들어가 바닥부터 시작했다. 그 당시 국내에는 바텐더 교육기관이 한 곳 있었지만 정작 그는 알지 못했다.
김 씨는 ‘바’라는 공간이 일상탈출의 이미지가 크기 때문에 고객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을 철칙처럼 지킨다. 나이가 몇 살이냐, 사는 곳이 어디냐, 이런 질문보다는 시사나 다른 화제를 꺼내 철저하게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얘기를 하게 되고 친해진다는 것. 이러한 직업정신은 싫어하는 스타일의 손님을 대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일단 저희 바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고맙죠. 그래서 실수를 하고 화가 나도 이해합니다. 맞아본 적도 있어요. 그래도 무슨 힘든 일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해 더 잘해줍니다. 난장을 피는 손님도 충분히 달래서 보내고요.”
“술 먹고 테이블에 엎어져 자거나 이런 종류의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합니까?”
“자니까 다행이죠.(웃음) 오바이트는 치우면 되고요. 일단 고객이 자면 술 깨는 시간이 있으니까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에서 2시간 숙면을 취하도록 해요. 손님이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들 때 깨워서 보내죠. 목에 얼음찜질도 해드리고요. 바텐더는 쓰리디(3D)를 다 가지고 있어요. 때로는 지저분하고, 사람 상대하는 것도 어렵고요.”
“술 취한 손님 때문에 힘드신 적 없었습니까?”
“힘든 것은 힘들었으니까 지나가는 거예요. 추억은 간직하기 때문에 오래가죠. 힘든 것은 별로 없었는데 기억 속에 남은 추억은 많아요. 하루 벌어 하루 술값으로 다 내는 분이 있었어요. 노동일을 하는 분이셨는데 하루에 5만원, 6만원 벌어서 날마다 그만큼 술을 먹었지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정말 안타까웠지요. 그래서 제가 하루에 술 먹는 양을 정해줬어요. 하루에 1만원에서 2만원어치만 먹게 하고, 정 안되면 제가 사주고요. 술은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빠져드는 것보다 즐길 줄 알아야 멋진 거라고 생각해요. 자제력을 가지고 즐기면 좋겠어요. 때론 술 취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죠.”
그는 바에서 칵테일 쇼도 한다. 직접 시범도 보여주었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연습을 했는지 몸과 병이 하나로 보였다. 그는 “바에서 공연을 할 때는 분위기를 잘 타야한다”면서 “최고의 분위기가 아니면 하지 않으며, 어설프게 하려면 안하게는 좋다”고 귀띔했다.
모던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수준 높은 컨텐츠로 인기가 높은 ‘써클’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베컴과 할리우드 이슈메이커 패리스 힐튼이 들려 유명세를 탄 플레어 바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공연 관람과 함께 춤도 출 수 있으며, 호텔에서나 마실 수 있는 ‘모이토(mojito)’등 특별한 칵테일들도 음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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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라톤 워커힐 호텔 시로코 캡틴 박준혁 |
ⓒ 월간 말 |
취재를 마치고 강남의 한 바에 들렀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검은 빛깔의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한 외국인. 저 칵테일의 이름은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칵테일인지 너무 궁금했다. 취재 여파였다. 바로 옆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지적이고 선량한 눈빛을 가진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자리를 건너 술이 좀 돼 보이는 한 남자가 칵테일 잔을 손에 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씩 술을 홀짝 홀짝 들이키는 것을 보면 잠이 든 상태는 아니었다.
그의 친구로 보이는 한 남자는 담배를 꼬나물고 음악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팔다리는 제멋대로였다. 건너편에 앉은 한 남자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처럼 거만하게 앉아 웨이터를 불러 얼음을 채워달라고 요구했다. 바텐더는 상냥한 얼굴로 잔에 얼음을 넣고 하얀 행주로 물기 어린 테이블을 훔쳤다.
한쪽 구석에는 넥타이 부대 10여명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건강을 빌며 술잔을 들었다. 식당이나 호프집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었다. 이밖에도 몇몇 사람들이 시선을 끌었다. 긴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도 있었고, 헐렁한 청바지를 골반에 걸친 힙합 스타일의 남자도 있었다.
아무래도 ‘바’는 서양식 주점이다 보니 외향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점잖고 정적인 동양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술은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는 매개다. 다른 종류의 술을 마셔도 취한 순간만큼은 서로의 체질과 문화적 특성을 뛰어 넘어 본능적인 뭔가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매력이나 어리고 유치한 감정, 잇속을 떠나 마음을 여는 힘까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그 이상한 힘이 술에는 숨어있다.
바텐더 박준혁 씨가 좋아한다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하루 피로가 싹 가시듯 시원하고 짜릿한 칵테일이었다.
기사입력 : 2008-04-21 12:11:51
최종편집 : 2008-04-29 09:49:22
최종편집 : 2008-04-29 09: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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