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 붉은 산사태가 몰아친다

M.K.바드라쿠마르 | 전 인도 외교관·번역 | 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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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민주화 운동이 네팔을 휘감은 다음인 지난 4월 10일, 601석의 제헌의회를 선출하는 네팔 총선에서는 모택동주의자들이 승리했다. 그날 이후 남아시아에서는 전무후무한 정치적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완전히 발표되기 전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네팔모택동주의공산당이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은 지난 4월 14일까지 공개된 162석 중 89석을 확보했다. 반면 네팔의회당과 네팔마르크스레닌주의공산당 같은 기존 거대정당들은 저만치 뒤로 밀려나고 있다. 240년이나 영속되어 온 힌두교적 군주제에 뿌리를 두고 있던 왕족들은 그 뿌리 째 뽑히고 말았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이 유일 거대정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다음 정부를 이끌 것이라는 불가능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지난 10년간 무장 투쟁을 포기한 채 2년 전부터는 부단히 민주적 방식으로 세력을 넓혀 온 옛 반군들의 위대한 공덕 때문이다.

이 충격은 네팔의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남아시아의 정치지형 및 지리정치학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지난 총선은 네팔 정치제도의 골격을 잡는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그런데 모택동주의공산당의 승리로 네팔은 되돌릴 수 없는 공화주의의 길로 접어들었다. 제한되었으나마 입헌군주제하에서 왕의 역할이라는 것도 논외의 문제로 보인다. 또한 그 결과는 기성 정당들에 느끼는 대중들의 염증이 곪을 대로 곪았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대중들의 그런 폭발적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실책을 스스로 해명해야 했다. 사람들은 너무 명확히 ‘변화’에 표를 던졌다. 모택동주의공산당에 대한 지지의 해일은 이 지역을 관통하며 쭉쭉 퍼져나갔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의 지도자 푸쉬파 카말 다할(일명 프라찬다)은 자신들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내가 속한 정당의 승리는 영원한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숙원이며 민주공화주의의 완성이자 쾌속적인 경제 발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설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외쳤다. “사람들은 ‘이 모택동주의공산당이란 도대체 뭐지?’라고 묻습니다. 국제사회는 ‘모택동주의공산당이 승리를 거둔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고 묻습니다. 이 모든 두려움들은 쓰잘 데기 없는 것들입니다.” 프라찬다는 또 “우리는 선거 이후 다른 모든 정당들과 함께 더욱 거대한 전국연합을 구성할 것”이라며 모택동주의공산당의 향후 계획이 변화의 시기에 다른 정당들과 일을 해 나가는 것임을 확인했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은 또 전직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칭송을 듣기도 했다. 외국인 선거 참관단을 지도하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카트만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옛 반군들이 민주화의 길에 모든 헌신을 다했다”는 소신을 밝혔다.

지난 4월 10일, 네팔의 첫 총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카트만두의 집집마당 방문을 하며 환영을 받는 네팔모택동주의공산당 지도자 프라찬다
ⓒ 월간 말


내전 때보다 온건해진 모택동주의공산당

남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네팔이 갑작스레 이 지역 민주화와 정치적 변동의 선봉대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더 일찍이 민주적인 삶의 은총을 받던 인도는 비교적 조금 낡고 지루한 나라로 보이게 됐다. 민주적 다원주의가 별다른 장애물을 만나지 않았던 지난 60년이 지난 후, 인도사회에 등장한 방대한 정치세력들은 이제야 정치적 권한이 자신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네팔 국민들은 부르주아 정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인도를 앞지르며 치고 나온 것이다.

인도에서 정치는 여전히 카스트제도와 파벌주의 사이에 난 위태로운 길을 따라 진행되고 있으며 종교적 극단주의와 힌두교 국가주의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네팔에서 카스트 상위계층인 힌두교 엘리트들은 인도 정치 엘리트들과 왕왕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은 네팔에도 숨겨진 카스트적 정치를 확 뒤집어 놓았다. 인도에서 선거란 여전히 관념적이며 해묵은 세속적 정치에 힘을 주는 수단에 그치고 있다. 인도에서 민주주의가 아주 조금만 후퇴하더라도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 이런 인도가 네팔의 선거를 목도했다. 당연하게도 인도의 최대 야당세력이며 힌두교 근본주의적인 극우적 바라티야야나타당은 충격에 빠진 채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세계 유일의 힌두교 왕국이라고 진심으로 소중이 여긴 네팔이 세속적 민주주의를 따르기로 한 것에 무척 슬퍼하고 있다.

모택동주의공산당 정부는 네팔 봉건제도의 뼈대를 제거하고 분배 정의와 평등주의에 기반한 정치 제도 및 급진적 경제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지금부터 얼마 후 동안 빈곤에 내몰린 히말라야 산맥 아래지역 인도인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네팔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인도의 각 지방들은 그곳 자치정부의 악정으로 유명한 곳들이다.

네팔에서 모택동주의공산당의 승리는 그런 인도의 정치체제에 적잖은 도전이 될 것이다. 인도 당국은 모택동주의공산당의 압도적인 승리에 유별나게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도 정치체제는 전통적으로 네팔의회당과 교류를 많이 해 왔다. 따라서 어떤 부류들은 모택동주의공산당이 인도 내에서도 혁명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불안한 전망을 내 놓고 있다.

물론 인도 당국도 네팔의 민주화를 수용하고 있다. 인도는 네팔 정치에 민감한 이해가 걸려 있었고 인도가 네팔에 간섭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기대하기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젠 네팔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핵심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이런 경우 인도 당국은 네팔의 발전을 자세히 지켜보되, 점잖은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들을 강구하는 냉철한 자세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네팔 정국에서 새로운 정치 현실에 맞춘 구조조정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고 정책 방향의 전면 수정은 피할 수 없다.

네팔은 인도에게 너무 소중한 이웃 나라인데, 그런 네팔이 중국과의 관계를 급속도로 증대시킨다면 인도 정부의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중국의 대(對)네팔 정책은 군주제하의 마지막 왕인 자넨드라 국왕의 직접적인 통치가 거의 끝날 때까지 네팔 정치는 네팔의 내부 문제라고 인식하면서 이데올로기적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현재 매우 탁월한 실용주의로 네팔의 급작스러운 민주화의 흐름에 재빨리 적응했고 모택동주의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들과 점진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네팔에서 중국의 이해관계는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중국이 네팔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문제는 미국이 네팔 정치에서 매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티베트의 발전도 네팔이 중국에게 무척 중요한 지역으로 꼽히게 된 요인이다. 네팔에 있는 티베트 활동가들은 특히 거슬리는 존재였던 것이다.

네팔을 향해 뻗는 중국과 인도의 손

프라찬다의 결정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시간을 두고 그가 마르크스의 서적에 천착하는 교조주의자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보여줄 것이다. 또한 프라찬다가 자신이 내세운 개혁안을 완수하도록 그에 걸 맞는 지위, 즉 대통령 자리를 안겨 줄 것이다. 그는 이미 훌륭한 전략가임을 증명했다. 그는 네팔의 빠른 경제적 발전계획을 보강하기 위해 인도와 중국 정부에게 쓸 수 있는 모든 호의를 표시할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연설에서 프라찬다는 “네팔은 인도가 지도하는 ‘새로운 관계’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국가 사이에는 유사한 문화와 역사적 관계가 있음을 강조했고 인도와 좋은 이웃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도에 대한 선의의 이해는 인도와의 연대를 위한 새로운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즉 그는 네팔이 정치적 문제에서 인도나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중국은 티베트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네팔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의 이런 메시지에 화답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중국의 중앙아시아 정책이 어떤 식으로든 진행되어야 한다면, 중국은 장차 네팔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테러리즘과 종교적 극단주의, 분리주의라는 세 ‘악마’를 저지시키려 할 것이다. 또 네팔에는 중국에 유용한 자원이 풍부하다. 기간산업 개발지구나 수력발전소는 물론 네팔이 선구적인 중국 회사들을 위해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제안한 제조업 공단 같은 지역이 얼마간 있다. 네팔은 중국이 인도 시장으로 진출하는 통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이 네팔 정가에서 권력을 잡게된 것은 인도 당국도 생산적인 목표를 마주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네팔 정부가 인도의 호의를 사려고 안달복달 할 것이라고 인도 정부가 뿌듯하게 기대하던 그런 옛날은 이제 가고 없다. 인도가 한 발 앞서서 민첩하고 경쟁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이제 생긴 것이다. 네팔이 인도의 이웃 나라들처럼 잠재적인 반인도(印度)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반면, 네팔에 대한 중국의 소프트파워(군사력이 아닌 경제, 문화 등의 힘)는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전과 질병, 화재, 굶주림과 추위를 견뎠던 10년 정글생활을 청산하고 총선 전 카트만두에서 집회를 개최한 네팔모택동주의공산당 지지자들.
ⓒ 월간 말


미국 외교, 남아시아에서도 패배

네팔이 인도의 안보에서 중요한 뒷마당이 된다거나 인도의 영향권 내에 있다는 가정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만약 인도가 네팔에게 조금이라도 압박을 가한다면 이를 알아차린 모택동주의공산당은 그들의 정치적 힘을 기반으로 중국과 더욱 굳게 손을 잡는 쪽으로 가버리고 마는 역효과만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네팔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은 인도가 생산적인 외교를 하도록 이끄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인도는 여전히 지리, 문화, 민족, 역사, 경제, 사회적 관계에서 네팔과 맞물린 부분이 많다. 따라서 네팔의 선거 결과 때문에 인도가 혼란스러워 해야 할 필요가 진짜 있지는 않다.

모택동주의공산당은 불평등한 운영구조로 계속 주장되어 온 인도와의 1950년 평화우호조약을 파기하고 싶을 게 거의 확실하다. 인도 정부도 그 조약이 네팔과의 관계에서 지금까지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제공해 주긴 했지만 역시 그 조약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한 번 권력을 잡은 모택동주의공산당은 인도의 그런 태도에 매우 감사할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조약의 재협상은 앞으로 네팔과 인도, 중국을 주인공으로 하는 ‘평등한 3자 관계’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미국과 인도는 근래에 서로 협력적인 남아시아 정책을 구축해야할 공통의 이익들을 발견하게 됐다. 그들에게 이번 네팔 선거 결과는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인도는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팔에 대해 좀 더 열린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의 정책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네팔을 이용하여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취약 지역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매우 소아적 생각이 됐다. 네팔은 부시 미 행정부의 연이어진 외교정책 실패 사례에서 가장 최근에 연결된 또 하나의 고리다. 네팔 모택동주의자들은 여전히 미 국무성의 테러조직 명단에 올라 있다.

그러나 프라찬다는 미국에게도 체면을 구기지 않는 출구를 제시할 것이다. 지난 13일 한 언론과 나눈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어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매우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미국이 모택동주의자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은 내겐 매우 웃기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월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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