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의 ‘선거불패’ 후 베네수엘라에 울려 퍼진 경고포격
차베스 대통령을 악마로 만들려는 국내외 언론의 노력은 현실에 부딪혀 또 한 번 수포로 돌아갔다. 잠재적 독재자로 소개되었던 차베스가 2007년 12월 2일의 헌법부분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 반대결과(50.7%)에 민주적으로 승복한 것이다. 이 반격은 볼리바르 혁명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차베스 지지자들을 심사숙고하도록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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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재선 당시부터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인 ‘21세기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해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결국 2007년 8월 15일, 수많은 보고서를 참조하고 장기간의 비공개 조사를 거쳐 발의된 33개 조항의 개헌안은 친 차베스 진영을 제외한 베네수엘라 사회 전체를 혼란과 의혹 속으로 몰아넣었다. 대통령 개헌안 심의·수정을 위해 소집된 국회가 경쟁적으로 36개 항목을 추가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최종적으로 헌법 350개 조항 중 69개 조항을 대상으로 한 개헌안은 4개의 중요한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참여민주정치 강화, 사회통합, 경제발전에서의 ‘신자유주의 반대’ 형태 지지, 그리고 중앙정부의 권력 강화가 그것이다.
참여민주정치와 사회형평성과 관계된 조항들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다. 이 조치들을 보면, 새로 창설된 시의회의 권한 확대(1), 투표권 취득 연령 18세에서 16세로 하향 조정, 성별 혹은 건강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의 금지, 공직에서의 평등체제, 자영업자와 인포멀 경제 분야를 위한 사회보장기금조성, 무상 고등교육, 그리고 아프리카 출신 베네수엘라인의 인정 등이다.
부족한 홍보캠페인
그 실제적 내용에 있어서나 반대진영에서 해석한 내용에 있어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경제개혁과 대통령 권한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개헌안에는 특히 중앙은행의 자율권 폐지, 석유관련사업의 사유화 금지, 농지개혁 강화가 들어있었고, 그에 덧붙여 새로운 사회권 보장과 주 44시간에서 36시간으로 근무시간 단축, 단체소유권 장려 등이 포함돼 있었다.
정부중앙권력 강화와 관계된 것으로는,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2회 이상 연임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이었다. 새 헌법은 국민투표 국민발의에 필요한 서명 수를 늘림으로써 이를 더 어렵게 만들었고, 경제특구 창설 권한과, 읍·면·도 단위의 선거구 분할을 새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또한 대통령이 장교를 직접 승진시킬 수 있게 하고, 비상사태 시에 알 권리를 제한하도록 했다.
차베스는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11번의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2). 2007년 12월 7일의 국민투표에서 예기치 못했던 패배(1.3%의 근소한 차이)는 차베스 대통령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12월 3일부터 대통령과 측근들은 선거패배에서 여러 교훈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비록 반대진영보다 차베스 지지 진영에서의 기권율이 좀 더 높기는 했지만(3), 2006년 선거에서 차베스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2007년 선거에서 등을 돌리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우파에 반대해 차베스에게 투표’하는 것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헌법 개정을 위해 결집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개헌안이 완성된 방식과, 특히 신생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과 전체 분위기에 대한 홍보부족이 국민투표에서의 패배를 설명하는 원인으로 분석됐다. 처음 이 개헌안은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 참모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위원회에서 입안된 것이다. 국회에서 심의가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국회의원들은 외부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 등을 열었다. 이러한 의견수렴과정은 2개월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조급하게 행해졌고, 결국 몇몇 주제에 관해서는 피상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투표에서 찬성을 끌어내기 위한 캠페인은 11월 2일, 그러니까 국민투표가 있기 한 달 전에서야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광범위하고 복잡한 개혁안의 상세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 개헌안에는 공공소유권(국가), 사회소유권(국민), 단체소유권(사회단체), 개인소유권(개인), 혼합소유권(공공, 사회, 단체, 개인 영역이 혼합된 소유권) 등 각기 다른 5가지 유형의 소유권이 도입됐다. 다시 말해 ‘국민의 권한’, ‘지자체의 권한’, ‘국가의 권한’, 그리고 ‘민족의 권한’으로 나누어진 불확실한 권력 형태가 도입됨으로써, 이전의 정치단위가 제거되지 않은 채 새로운 정치단위가 옛것을 대체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반대진영은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벌였고, 개헌안의 여러 가지 성격을 왜곡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례로 야당은 이 개헌이 사유재산권을 문제 삼을 것이며, 수용에 대한 전반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사실 보통의 사유재산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개헌안은 식량부족 시 식료품 생산자의 수용을 통한 국가권력 강화와 토지개혁을 통한 라티푼디움(광대한 사유 농지)의 재분배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반대진영의 전단지와 연설들은 국가가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둥, 머지않아 사회주의만이 유일하게 허용되는 정책방향이 될 것이라는 둥, 이런 방법들은 효율성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둥,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공갈 협박을 퍼트렸다.
야당의 주장들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나가자 사전조사에서 60%의 지지율을 보이던 여론은 급격히 추락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개헌국민투표를 자신의 집권에 대한 신임투표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캠페인을 수정했다.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개헌안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차베스 자신의 인기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해 보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슬로건은 “개헌안에 찬성하는 것은 나에게 투표하는 것”이 되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여론의 의심을 과소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개헌을 지지했던 라울 바두엘 전 국방장관이나 차베스의 전 부인이었던 마리사벨 로드리게스 여사, 사회민주당인 포데모스(Podemos) 등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특히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망설임 때문에, 나중에 개헌 반대를 표명함으로써 의혹은 가중됐다.
무엇보다도, 일부 차베스 지지자들이 차후 차베스 행정부가 비효율적인 정부가 될 것으로 간주하고, 이 선거를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할 기회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인 프로베아(Provea)가 발간한 보고서(4)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미션’이라고 불렀던 차베스 정부에 대한 사회적 종합평가는 2006년 엄청나게 약화되었다. 국민건강, 문맹퇴치, 주택문제, 식량지원, 토지 재분배, 고용문제와 협동조합 창설 등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지난 4년 동안 사회프로그램 예산은 엄청나게 증가했고 극빈층들은 이를 박수갈채로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에 대해 낙담하고 좌절을 느끼고 있다(5). 이들의 실망은 특히 관료주의적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들의 비효율적 방식과 모든 층위에 존재하는 권력주변의 부패와 관련된 것이다. 야당에 의해 조직되었건 아니건 간에 최근의 우유부족사태도 차베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10월과 11월 거의 내내 사실상 신선한 우유를 구할 수 없었고, 분유와 다른 유제품들을 구입하기도 매우 힘들었다.
차베스 진영의 투표기권 이유들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상황들에서는 유권자들이 총동원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과연 개헌이 필요했을까? 자영노동자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노동시간 단축, 시의회 예산 증액, 정치적 평등, 무상 고등교육 같은 모든 조치들은 정상적인 입법을 통해 채택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적으로 개헌이 요구되는 사항들은 대통령 권한강화, 임기제한 폐지, 행정구역 재조정, 국민투표에 대한 제약, 군대 내의 승진 문제, 비상사태와 관계된 것들이다.
새로운 도약?
달리 말하면, 겉으로 보기에 일부 차베스 대통령 지지자들이 야당의 허울 좋은 논리를 믿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마디로 차베스 대통령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개혁 절차를 강화하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증대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볼리바르개혁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개헌 실패는 ‘21세기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반격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회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개헌안이 근소한 차이로 채택되었다면 반대진영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고, 또 다시 격렬한 시위와 모의부정행위를 시도하면서 정국불안을 야기했을 것이 뻔하다. 벌써 확실한 증거도 없이, ‘반대’ 진영은 이번 국민투표에서의 승리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보다 더 많은 표 차이로 승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차베스 정부에게는 이 짧은 기간 동안의 실패보다 무기력한 승리 다음에 올 심각한 정국불안 야기 캠페인이 더 해로운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란 법은 없다.
게다가 개헌 실패는 1998년 이래 성공을 거듭해 온 볼리바르 운동보다 더 진지한 자기비판과 분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오랫동안 비판의 소리들은 대통령의 귀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비판 부재의 이유는 볼리바르 운동과 그 리더 사이에 존재하는 끈끈한 관계 때문이다. 볼리바르 운동은 차베스 대통령에 달려 있고, 차베스는 이 운동에 달려 있다. 이 밀접한 관계로 인해 대통령의 결정을 문제 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운동의 일관성을 위험에 빠트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운동의 일관성이란 체제전복을 시도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 야당(미국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에 맞서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1998년 이래 처음으로 차베스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그들 실패의 내적 원인을 분석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들은 개헌절차가 너무 빨랐고 너무 광범위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고, 권력을 지나치게 개인화시킨 결과라거나 현재 존재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효율성 부족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직면함으로써 아마 ‘21세기 사회주의’는 새로운 도약의 단계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레고리 윌퍼트/번역 · 김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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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여민주정치와 대중의 정권 구현, 그리고 시의회는 각각의 시 행정단위가 자신의 공공정책을 수립, 평가, 시행하고 예산을 통제할 수 있게 해 준다.
2) 1. 1998년 12월 6일 대선
2. 1999년 4월 25일 제헌국회 성립을 위한 국민투표
3. 1999년 7월 25일 제헌국회의원 선거
4. 1999년 12월 5일 새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5. 2000년 7월 30일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의원들(시의원 제외)의 ‘거대 선거’
6. 2000년 12월 시의원 선거
7. 2004년 8월 15일 차베스 대통령소환 국민투표
8. 2004년 10월 광역의원 선거
9. 2005년 8월 시의원 선거
10. 2005년 12월 4일 총선
11. 2006년 12월 3일 대선
3) 야당은 2006년에 비해 212만 표로 득표수가 올라간 반면 차베스는 280만 표를 잃었다. 기권율은 44.1%에 달한다.
4) www.derechos.org.ve/publicaciones/infanual/2006_07/index.html
5) 1998년 국내총생산의 8.2%를 차지하던 사회비용은 2005년에는 13.2%로 증가했다(출처, 개발계획부, 카라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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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재선 당시부터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인 ‘21세기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해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결국 2007년 8월 15일, 수많은 보고서를 참조하고 장기간의 비공개 조사를 거쳐 발의된 33개 조항의 개헌안은 친 차베스 진영을 제외한 베네수엘라 사회 전체를 혼란과 의혹 속으로 몰아넣었다. 대통령 개헌안 심의·수정을 위해 소집된 국회가 경쟁적으로 36개 항목을 추가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최종적으로 헌법 350개 조항 중 69개 조항을 대상으로 한 개헌안은 4개의 중요한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참여민주정치 강화, 사회통합, 경제발전에서의 ‘신자유주의 반대’ 형태 지지, 그리고 중앙정부의 권력 강화가 그것이다.
참여민주정치와 사회형평성과 관계된 조항들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다. 이 조치들을 보면, 새로 창설된 시의회의 권한 확대(1), 투표권 취득 연령 18세에서 16세로 하향 조정, 성별 혹은 건강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의 금지, 공직에서의 평등체제, 자영업자와 인포멀 경제 분야를 위한 사회보장기금조성, 무상 고등교육, 그리고 아프리카 출신 베네수엘라인의 인정 등이다.
부족한 홍보캠페인
그 실제적 내용에 있어서나 반대진영에서 해석한 내용에 있어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경제개혁과 대통령 권한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개헌안에는 특히 중앙은행의 자율권 폐지, 석유관련사업의 사유화 금지, 농지개혁 강화가 들어있었고, 그에 덧붙여 새로운 사회권 보장과 주 44시간에서 36시간으로 근무시간 단축, 단체소유권 장려 등이 포함돼 있었다.
정부중앙권력 강화와 관계된 것으로는,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2회 이상 연임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이었다. 새 헌법은 국민투표 국민발의에 필요한 서명 수를 늘림으로써 이를 더 어렵게 만들었고, 경제특구 창설 권한과, 읍·면·도 단위의 선거구 분할을 새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또한 대통령이 장교를 직접 승진시킬 수 있게 하고, 비상사태 시에 알 권리를 제한하도록 했다.
차베스는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11번의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2). 2007년 12월 7일의 국민투표에서 예기치 못했던 패배(1.3%의 근소한 차이)는 차베스 대통령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12월 3일부터 대통령과 측근들은 선거패배에서 여러 교훈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비록 반대진영보다 차베스 지지 진영에서의 기권율이 좀 더 높기는 했지만(3), 2006년 선거에서 차베스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2007년 선거에서 등을 돌리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우파에 반대해 차베스에게 투표’하는 것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헌법 개정을 위해 결집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개헌안이 완성된 방식과, 특히 신생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과 전체 분위기에 대한 홍보부족이 국민투표에서의 패배를 설명하는 원인으로 분석됐다. 처음 이 개헌안은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 참모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위원회에서 입안된 것이다. 국회에서 심의가 이루어지고 난 후에야 국회의원들은 외부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 등을 열었다. 이러한 의견수렴과정은 2개월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조급하게 행해졌고, 결국 몇몇 주제에 관해서는 피상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투표에서 찬성을 끌어내기 위한 캠페인은 11월 2일, 그러니까 국민투표가 있기 한 달 전에서야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광범위하고 복잡한 개혁안의 상세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 개헌안에는 공공소유권(국가), 사회소유권(국민), 단체소유권(사회단체), 개인소유권(개인), 혼합소유권(공공, 사회, 단체, 개인 영역이 혼합된 소유권) 등 각기 다른 5가지 유형의 소유권이 도입됐다. 다시 말해 ‘국민의 권한’, ‘지자체의 권한’, ‘국가의 권한’, 그리고 ‘민족의 권한’으로 나누어진 불확실한 권력 형태가 도입됨으로써, 이전의 정치단위가 제거되지 않은 채 새로운 정치단위가 옛것을 대체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반대진영은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벌였고, 개헌안의 여러 가지 성격을 왜곡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례로 야당은 이 개헌이 사유재산권을 문제 삼을 것이며, 수용에 대한 전반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사실 보통의 사유재산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개헌안은 식량부족 시 식료품 생산자의 수용을 통한 국가권력 강화와 토지개혁을 통한 라티푼디움(광대한 사유 농지)의 재분배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반대진영의 전단지와 연설들은 국가가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둥, 머지않아 사회주의만이 유일하게 허용되는 정책방향이 될 것이라는 둥, 이런 방법들은 효율성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둥,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공갈 협박을 퍼트렸다.
야당의 주장들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나가자 사전조사에서 60%의 지지율을 보이던 여론은 급격히 추락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개헌국민투표를 자신의 집권에 대한 신임투표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캠페인을 수정했다.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개헌안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차베스 자신의 인기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해 보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슬로건은 “개헌안에 찬성하는 것은 나에게 투표하는 것”이 되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여론의 의심을 과소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개헌을 지지했던 라울 바두엘 전 국방장관이나 차베스의 전 부인이었던 마리사벨 로드리게스 여사, 사회민주당인 포데모스(Podemos) 등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특히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망설임 때문에, 나중에 개헌 반대를 표명함으로써 의혹은 가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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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야네스 |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무엇보다도, 일부 차베스 지지자들이 차후 차베스 행정부가 비효율적인 정부가 될 것으로 간주하고, 이 선거를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할 기회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인 프로베아(Provea)가 발간한 보고서(4)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미션’이라고 불렀던 차베스 정부에 대한 사회적 종합평가는 2006년 엄청나게 약화되었다. 국민건강, 문맹퇴치, 주택문제, 식량지원, 토지 재분배, 고용문제와 협동조합 창설 등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지난 4년 동안 사회프로그램 예산은 엄청나게 증가했고 극빈층들은 이를 박수갈채로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에 대해 낙담하고 좌절을 느끼고 있다(5). 이들의 실망은 특히 관료주의적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들의 비효율적 방식과 모든 층위에 존재하는 권력주변의 부패와 관련된 것이다. 야당에 의해 조직되었건 아니건 간에 최근의 우유부족사태도 차베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10월과 11월 거의 내내 사실상 신선한 우유를 구할 수 없었고, 분유와 다른 유제품들을 구입하기도 매우 힘들었다.
차베스 진영의 투표기권 이유들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상황들에서는 유권자들이 총동원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과연 개헌이 필요했을까? 자영노동자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노동시간 단축, 시의회 예산 증액, 정치적 평등, 무상 고등교육 같은 모든 조치들은 정상적인 입법을 통해 채택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적으로 개헌이 요구되는 사항들은 대통령 권한강화, 임기제한 폐지, 행정구역 재조정, 국민투표에 대한 제약, 군대 내의 승진 문제, 비상사태와 관계된 것들이다.
새로운 도약?
달리 말하면, 겉으로 보기에 일부 차베스 대통령 지지자들이 야당의 허울 좋은 논리를 믿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마디로 차베스 대통령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개혁 절차를 강화하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증대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볼리바르개혁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개헌 실패는 ‘21세기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반격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회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개헌안이 근소한 차이로 채택되었다면 반대진영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고, 또 다시 격렬한 시위와 모의부정행위를 시도하면서 정국불안을 야기했을 것이 뻔하다. 벌써 확실한 증거도 없이, ‘반대’ 진영은 이번 국민투표에서의 승리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보다 더 많은 표 차이로 승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차베스 정부에게는 이 짧은 기간 동안의 실패보다 무기력한 승리 다음에 올 심각한 정국불안 야기 캠페인이 더 해로운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란 법은 없다.
게다가 개헌 실패는 1998년 이래 성공을 거듭해 온 볼리바르 운동보다 더 진지한 자기비판과 분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오랫동안 비판의 소리들은 대통령의 귀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비판 부재의 이유는 볼리바르 운동과 그 리더 사이에 존재하는 끈끈한 관계 때문이다. 볼리바르 운동은 차베스 대통령에 달려 있고, 차베스는 이 운동에 달려 있다. 이 밀접한 관계로 인해 대통령의 결정을 문제 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운동의 일관성을 위험에 빠트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운동의 일관성이란 체제전복을 시도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 야당(미국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에 맞서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1998년 이래 처음으로 차베스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그들 실패의 내적 원인을 분석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들은 개헌절차가 너무 빨랐고 너무 광범위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고, 권력을 지나치게 개인화시킨 결과라거나 현재 존재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효율성 부족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직면함으로써 아마 ‘21세기 사회주의’는 새로운 도약의 단계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레고리 윌퍼트/번역 · 김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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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여민주정치와 대중의 정권 구현, 그리고 시의회는 각각의 시 행정단위가 자신의 공공정책을 수립, 평가, 시행하고 예산을 통제할 수 있게 해 준다.
2) 1. 1998년 12월 6일 대선
2. 1999년 4월 25일 제헌국회 성립을 위한 국민투표
3. 1999년 7월 25일 제헌국회의원 선거
4. 1999년 12월 5일 새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5. 2000년 7월 30일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의원들(시의원 제외)의 ‘거대 선거’
6. 2000년 12월 시의원 선거
7. 2004년 8월 15일 차베스 대통령소환 국민투표
8. 2004년 10월 광역의원 선거
9. 2005년 8월 시의원 선거
10. 2005년 12월 4일 총선
11. 2006년 12월 3일 대선
3) 야당은 2006년에 비해 212만 표로 득표수가 올라간 반면 차베스는 280만 표를 잃었다. 기권율은 44.1%에 달한다.
4) www.derechos.org.ve/publicaciones/infanual/2006_07/index.html
5) 1998년 국내총생산의 8.2%를 차지하던 사회비용은 2005년에는 13.2%로 증가했다(출처, 개발계획부, 카라카스).
기사입력 : 2008-03-19 19:12:33
최종편집 : 2008-03-21 11:01:32
최종편집 : 2008-03-21 11:01:32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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