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라시 나우’가 미국 좌파에 목소리를 제공하다
독립 라디오,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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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아이오와 주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5일 후에는 뉴햄프셔 주에서 수십만 명의 미국 유권자들이 미 대통령을 뽑는 경선의 개막을 알리게 된다. 비록 두 개 주 인구가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들의 선택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눈사람처럼 부풀려질 것이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이러한 집중 선전과 조작들에 저항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라크 전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 지역은 아주 보수적입니다. 공화당이 정치와 라디오를 지배하고 있지요. 우파와 복음주의자들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곳에서는 공화파들이 아닌 극소수의 사람들이 너무나 소외된 느낌을 갖고 있기에, 진보주의자인 우리에게 속한 이 협소한 공간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조셉 피트새너키스(Joseph Fitsanakis), 테네시 주 트리시티즈의 라디오 프로그램 ‘데모크라시 나우’의 전투적인 사회자
2년 전 테네시 주 북동부의 한 시골 공동체에서 일군의 투사들이 70명이 서명했던 간결한 청원서를 통해 지역 라디오방송이 ‘데모크라시 나우’ 프로그램을 방송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데모크라시 나우’는 진보주의 성향의 라디오 프로였는데, 기존의 민영 라디오 프로그램들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팔래치아 산맥 깊숙이 들어박힌 이 지역은 이러한 시도를 하기에 전혀 이상적인 장소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1) 광산과 농업이 주축인 이 지역은 대다수가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었다.(지난 대선에서 공화당 지지 비율이 무려 75%였다.) 조셉 피트새너키스 씨는 “이곳에서 30년 전에 허용된 유일한 정치활동이 KKK단이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그와 다른 투사들은 최근 ‘데모크라시 나우 트리시티즈(DNTC)’라는 단체를 창설했는데, 2005년부터 규칙적으로 송출되고 있는 프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 프로는 청취자들의 기부금으로 주로 운영되는 지역 라디오방송인 WETS가 최근 주파수 허용 취소를 요구받은 후 위협을 받고 있다. WETS가 방송을 내보내는 지역의 분위기는 아주 보수적이다. 이런 곳에서 투쟁한다는 일은 때로 창문으로 돌 던지기, 개에 독약을 먹이기 등 물리적 공격을 받을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산업에서 투쟁을 전개한 지역 노조주의자들은 당신에게 이야기해줄 거리가 많을 겁니다.”라고 피트새너키스가 알려준다. 프로는 방해를 받기도 했다. 작년 8월 13일 한 총알이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데모크라시 나우’를 내보내고 있는 라디오방송국의 창문을 관통하기도 했는데, 사회자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름에 어울리는 토론
그러나 ‘데모크라시 나우’의 성공은 최상의 방어를 의미한다. WETS 사장인 웨인 윙클러 씨에 따르면, “청취자들의 반응은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코멘트가 훨씬 더 많습니다. 프로 때문에 라디오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청취자들을 사람들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실 후원금과 자원봉사 제안이 답지하고 있다.(아래 박스기사 참조) 저널리스트인 아미 굿맨과 파시피카(Pacifica) 라디오가 1996년에 창설한 ‘데모크라시 나우’는 빠른 시간에 이 방송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사 프로가 되었다. 하지만 1999년 내부의 불화가 이러한 모험을 끝장낼 뻔했다.2) 일들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을지라도 굿맨과 그의 협력자들은 자율성을 지키기 위하여 2002년에 독립방송이 되기를 택했다. 두 주역은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파시피카 라디오는 여전히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중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두 개의 새 라디오방송국 혹은 TV방송국이 매주 자신들 프로그램에 ‘데모크라시 나우’를 추가하고 있다. 중계 네트워크는 현재 대학방송국, 협회 방송,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p. 9 하단의 박스기사 참조), 케이블 및 위성방송을 골고루 포함하고 있으며, 프로가 비디오, 오디오 및 텍스트 형태로 방영되는 인터넷을 추가할 수 있다. ‘데모크라시 나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30개 방송국에 의해서만 채택되었지만, 현재 이 숫자는 7백 개로 늘어난 상태이다. 스페인어로 번역된 프로그램 일부는 미국 및 남미의 히스패닉 계열의 수십 개 라디오방송을 통해 송출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미국 인구의 상당수가 비판적 저널리즘과 ‘데모크라시 나우’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토론에 기초하여 시사 문제에 대한 진보주의적 견해를 듣기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대 매스미디어의 시사 프로그램을 본 따 이 프로는 하루 동안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정리한다. 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타 방송들과는 달리 이 프로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막론하고 해당부처의 선언과 결정들을 심층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제작자이자 스타 사회자인 굿맨은 위대한 저널리스트인 이시도르 페인슈타인 스톤이 자신의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표현을 좋아한다. “만약 너희들이 3개 단어만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그건 ‘정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프로를 송출하는 네트워크의 다양함도 재정 독립과 마찬가지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TV에서 일하는 몇 안 되는 좌파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인 빌 모이어스의 지적처럼, ‘데모크라시 나우’는 “그런 식으로 하나의 제도로 화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3)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등장한 무수한 독립 미디어들과 달리 이 ‘네트워크’는 가상적인 것이 전혀 없다. 또한 인터넷을 훨씬 넘어서서 존재한다. 매스미디어 전문가인 로버트 맥체스니는 “‘데모크라시 나우’를 차별 짓는 것은 성공의 크기입니다. 10년 전 소수의 방송국들에 의해 송출되던 프로는 현재 광범위한 대중에게 제공되고 있으며, 양호한 중계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우리에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모크라시 나우’는 미국 매스미디어 시스템의 바깥에 위치해 있다.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을 과시하는 - 종종 지나치게 남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 방송계에서 이 프로는 편들기 혐의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영리적 목적이 없이, 정당과 인연을 맺지 않고서, 광고나 기업의 후원 혹은 공공재정으로부터 돈을 끌어다 쓰는 일이 없이 시사문제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보다 더 나은 프로를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 프로의 수입은 오직 청취자와 협회들로부터의 후원금, 중계업자들이 지불하는 저작권, DVD 및 티셔츠 판매로부터 나온다. 테네시 주 북동부 쪽으로 가기 이전에 피트새너키스 씨는 주도(州都)인 내슈빌에서 ‘데모크라시 나우’가 송출될 수 있도록 애쓰는 투사들과 함께 일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우리는 3천에서 4천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은 청원서를 준비했습니다. 송출 요구를 받은 방송국은 서명자 숫자가 많기는 해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대답했지요. 그들 눈에 이 프로는 지나치게 ‘당파적’이었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이러한 타입의 비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20년 전부터 미국의 매스미디어들을 쓸어버린 집중 현상을 머릿속에 입력시켜야 한다. 그리고 언론의 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일부 재벌들이 로비에 쏟아 붓는 막대한 금액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지배력이 항상 더 원하도록 하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정부 책임자들이 규정들을 고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대학 사회학 교수인 에릭 클리넨버그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현상은 빌 클린턴 대통령 재직 시(1993-2001) 가결된 법들 때문에 1990년대 동안 더욱 심화되었다. 당시 “정부는 시장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지’ 않은 대신, 오히려 민간 회사들이 점점 더 많은 채널, 신문 및 방송국들을 소유할 수 있도록 시장을 ‘재조정했다’.”4) 예를 들어 1996년의 법은 라디오의 다양성을 억제하는 가혹한 결과를 낳았는데, 한 회사가 해당지역에서 방송국을 8개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5)
획일적인 사설을 쓰게 하고 편집부 인원을 감소시켜버렸을지라도 일부 재벌에 의한 정보의 과점(寡占)은 자신들 프로그램 편성에서 중립성을 지킨다는 착각을 품게 했고, 독립 매스미디어들에 대해 ‘당파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들에게 좋은 수단이 되었다. 맥체스니는 그러한 비난이 명백히 프로퍼갠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데모크라시 나우’ 역시 사실들의 존중에 대해 염려합니다. 매스미디어가 사적 이익에 종속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국가에서 정치 저널리즘은 지배자들의 이익에 대해 비판정신을 상실했습니다. 그러기에 ‘데모크라시 나우’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가리지 않고 권력의 모든 소유자들을 동일하게 불신합니다.”
인터넷에의 중요한 의존
‘데모크라시 나우’가 거둔 성공은 다른 미디어가 지나치게 관대하게 다루는 정보를 기피한 덕분이기도 하다. 굿맨은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거대 매스미디어들은 모든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늘 같은 ‘자칭’ 전문가들을 항상 불러 모읍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기본 규칙 중 하나는 국가가 내린 정치적 선택의 결과들을 감내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데 있습니다.”6) 그녀에 따르면 이러한 규칙을 조직적으로 지키지 않는 모습이 “변화에 대한 엄청난 갈증”을 만들어낸다.
경쟁자들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수단들을 보유한 ‘데모크라시 나우’는 광범위한 여론조사에 돈을 댈 수도, 상당히 중요한 고급정보를 기대할 수도 없다. 공영 라디오의 뉴스 사회자는 굿맨보다 거의 다섯 배나 더 봉급을 받고, 상업적 TV 사회자들은 100배나 더 받는다. 2005년 1년 동안 굿맨은 5만9천 달러를 받았는데, NPR 사회자는 30만 달러를, NBC, CNN 등 거대 민영방송 사회자들은 4백만에서 1천5백만 달러를 받았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25명 정규직 중에서 대다수가 중견 저널리스트들이다. 하지만 고품질의 뉴스를 매일 준비해야하기에 그들은 현장 조사를 수행할 수 없다. 하지만 ‘데모크라시 나우’의 힘은 초대자의 선택과 거대 매스미디어가 다루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사문제들을 분석하는데 있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의지한다. 특히 인터넷이 선호된다. 동원 가능한 다수의 정보들은 그들로 하여금 거대 매스미디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주제와 접근방식을 선택하도록 해주지만, 주의주장을 훨씬 더 강경하게 펼치는 결과도 낳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남미에서도 상당히 호응을 얻고 있는 뉴스 초반부의 10-15분 동안은 하루 동안 일어난 소식들을 전한다. 이것은 노트북을 지참한 단 한 사람의 작품이다. ‘데모크라시 나우’는 통신사에 가입되어 있으나, 시사문제를 다루는 십여 개의 인터넷 사이트,
비정부기구 사이트들 및 블로그로부터도 기사거리를 길어낸다. 그 대부분은 영어권 사이트들이다. 뉴스 초반에 요약 제공되는 15개 내외의 주제들 중에서 3-4개 정도는 그 어떤 거대 매스미디어에서도 다루지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다른 매체가 다룬 뉴스 역시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1974년 8월부터 1977년 1월까지 미 공화당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제럴드 포드가 2006년 12월 26일 서거했을 때 미국 언론은 이 인물을 워터게이트 사건과 러처드 닉슨의 해임 이후 처음 “국가를 자신과 화해시킬 줄 알았던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그러나 ‘데모크라시 나우’는 서슴지 않고 이 ‘영웅’과 그의 국무부장관이던 헨리 키신저가 동(東)티모르에서 학살을 자행할 때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1975년에 “인도네시아 독재자인 수하르토 장군이 동티모르를 침공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장본인이 바로 포드였다.”
뉴스들을 전한 후 프로그램 말미에 스튜디오 대담이 벌어질 때면 사회자들은 뉴스들을 재미있게 꾸미기 위하여 어떤 익살을 부려야낼지 알지 못하기에 민영 매스미디어에서 자주 구사하는 재담들을 청취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초대자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신들을 표현하도록 내버려둔다. ‘데모크라시 나우’는 전문 저널리스트들, 평범한 시민들, 지식인들, 국회의원들, 투쟁가들, 참여예술가들, 비정부기구 대표들을 출연시킨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전파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일지라도 거대 매스미디어의 초대를 받지 못한다. 노엄 촘스키, 나오미 클라인, 로버트 피스크, 아룬다티 로이, 에드워드 사이드(2003년 사망), 랠프 네이더, 에보 모랄레스, 우고 차베스 등이 ‘데모크라시 나우’에 출연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출연자 리스트가 보여주듯 프로는 방송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진보주의적 감수성을 표현해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데모크라시 나우’는 미국 좌파의 공명실이 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권력자나 대기업 대표들이 일반적으로 초대에 응하지 않는 반면, 옛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공화당)은 <노 로고>7)를 쓴 여성 대안세계주의자인 나오미 클라인과 토론하기를 수락했다.
2000년 11월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전화 초대에 응했다. 그는 당시 부통령이던 앨 고어에게 투표하라고 청취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굿맨은 클린턴이 프로를 독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당신은 사람들이 투표하러 가도록 권유하면서 라디오방송국들을 찾습니다. 두 개 정당이 사적 이익을 위해 매수된 형편에 투표가 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으십니까?” 격렬한 토론이 뒤를 이었고, 이라크에 대한 제재, 사형제에 대한 민주당 일부(클린턴과 고어 포함)의 지지에 대해서도 토론이 벌어졌다. 흥분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적대적이고도 공격적인” 질문을 던진다면서 굿맨을 비난했다. “천만에요, 그 질문들은 비판적인 감각을 보여줄 따름입니다.”라고 그녀가 응수했다.
다음날 굿맨이 토론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면서 백악관의 언론담당부처가 불만을 토했다. 그녀는 “그게 어떤 것들이지요?”라고 반문했다. 대통령의 전화가 사전에 약속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어떤 ‘규칙’도 사전에 정해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화 상대자를 너무 오랫동안 몰아붙이면서 ‘투표를 독려하기’라는 애초 주제 바깥으로 토론을 일탈시켜버렸다고 굿맨에 대해 비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막강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원할 때 전화를 끊으면 됩니다.”라고 그녀는 응수했고, 이 사건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끄집어냈다. “나는 권력자들에 대해 그 어떤 호의도 베풀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민의 피고용인들이니까요.”8)
‘데모크라시 나우’는 선거철을 맞아 미국 매스미디어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태도를 거부한다. 선거 캠페인 지휘부들은 자신들의 전략적 결정들에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언론을 조종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당 후보를 뽑는 경선기간 동안 힐러리 클린턴이 여론조사에서 어려움을 겪자 힐러리의 보좌관들은 그녀가 보다 ‘공격적인’ 제스처를 취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즉시 미디어들은 이러한 태도의 변화로부터 이익을 취했고, 힐러리는 자신의 새로운 개성을 드러낼 모든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반면 ‘데모크라시 나우’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그 ‘사건’을 취재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2004년의 대선 기간동안 ‘데모크라시 나우’는 여론조사와 당일의 뉴스를 청취자들에게 제공하면서도 기본을 더 중시했다. 유리한 입후보자 두 명(조지 W. 부시와 존 F. 케리)이 방송을 독점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이 프로는 ‘군소 입후보자들’의 따돌림 현상을 강조했고, 수백만 명의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민주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모습(너무나 먼 투표소, 법률적 궤변들, 선거권의 박탈)을 부각시켰다.
9.11 테러가 발발한 후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지지하는 입장을 택했다. 2001년 10월 21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빈 라덴의 꼬마친구인 사담 후세인’이 저널리스트 및 정치지도자들을 겨냥한 탄저병 공격의 주범이라고 저널리스트인 제프 스타인이 주장하자, ‘데모크라시 나우’는 다음과 같이 경고를 보낸다. “부시 행정부와 미디어들은 9.11 테러와 탄저병 공격의 책임을 이라크에 조직적으로 전가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이 프로는 영국 언론에 실린 뉴스를 청취자들에게 보도한 몇 안 되는 매체 중 하나였다. 그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여러 회원국들의 전화통화 내용을 도청했다는 것이다. 또 ‘데모크라시 나우’는 미국의 참전을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문제 삼는 유일한 매체이다. 힐러리가 미국의 참전에 찬성한 후 그녀 사무실이 점거당한 사실이 항의 형태 중 하나였다. 가열된 ‘애국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과연 ‘데모크라시 나우’가 아닌 그 어떤 매체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뉴스를 내보냈을 수 있었을까? “한 남자가 하이퍼마켓에서 체포되었다. ‘평화에 기회를 부여하라’라는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150명 이상의 사람들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항의 차 현장을 방문했다.”
공식 라인 뒤에서 줄을 서는 것을 거부하고 다양한 정보망을 이용하는 방식은 ‘데모크라시 나우’ 프로로 하여금 청취자들에게 이라크에서 준비 중인 것에 대해, 그리고 자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보다 믿을 만한 이미지를 구축하게 해주었다. 미디어 감시기구 ‘페어 앤 애큐러시 인 리포팅(FAIR)’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한 후 최초 3주 동안(2003년 3월부터 4월까지) 6개의 주요 TV방송들은 비판적으로, 또 충분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이라크 침공을 분석하는 단 하나의 인터뷰도 내보내지 않았다.9) ‘데모크라시 나우’가 무려 30명의 인물을 인터뷰한 데 비해.
이러한 노력은 때때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2004년 3월 아이티에서 발발한 쿠데타가 부패한 독재자에 맞선 민중봉기와 동일시되고 있을 때, ‘데모크라시 나우’는 망명 중인 대통령인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와의 독점 인터뷰를 내보냈다. 아리스티드는 자신을 납치하기 이전에 미국 군대가 자신을 강제로 해임시켰다고 털어놓았다. 이 ‘특종’ 뉴스는 다른 매스미디어들로 하여금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면서 사건에 재검토하도록 만들었다. 굿맨은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조롱한다. “우리가 다른 매체들을 오염시켰습니다.”
또 다른 여러 ‘오염들’이 그 뒤를 따랐다. 2007년 2월 ‘데모크라시 나우’는 BBC 소속 저널리스트인 그렉 팰리스트에게 개발도상국들을 망치는 기금10)에 대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가난한 국가들의 부채를 경감시켜줄 목적을 띤 공공차관이 남반부의 여러 국가들에 대해 민간회사들이 지고 있는 부채를 갚는데 쓰이도록 백악관이 허락해주었다고 팰리스트는 설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의원이 이러한 기금 전용 문제를 G8 정상회담의 의제 중 하나로 채택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미 의회의 숱한 멤버들이 청취하는 ‘데모크라시 나우’의 조사를 접하기 이전에 두 명의 의원은 돈이 그런 식으로 유용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라고 팰리스트는 강조했다.
배급망이 복잡한 문제 때문에 ‘데모크라시 나우’의 실질적인 청취자와 청취자들의 정치적 성향은 알아내기 힘들다. 물론 가장 충실한 청취자들은 진보주의적 감수성을 지닌 자들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나 보스턴에 거주하는 보보스족[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미국의 새로운 상류계급을 가리키는 용어로,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이다. - 옮긴이] 타입의 미국 좌파는 더 이상 아니다. 청취자들은 사회의 전 계층에 속하는 자들이다.”라고 맥체스니는 강조한다. 테네시 주 북동부 같은 공화당 지지 지역에서 ‘데모크라시 나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좌, 우파를 망라한 수많은 미국인들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대한 대기업들과 정부의 영향력을 점점 더 못 견뎌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민영 미디어들이 내버려둔 공간을 우리가 차지하게 되었지요.”라고 굿맨은 생각한다. 심지어 공화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백악관의 거짓말, 스캔들, 군사적 이면, 통제받지 않는 지출에 대해 극도로 실망하고 있다. 언론 역시 이러한 거짓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약속으로 충만한 지역
피트새너키스 씨에 따르면,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는 모습에 대항하기 위하여 공화당 지지자들도 DNTC에 합류했다. 이 주제는 프로에서 자주 다루고 있다. 보수주의자 선거인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협회에 알렸다. ‘데모크라시 나우’가 옹호하는 사상과 상당부분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현 정부에 대해 심각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데모크라시 나우’ 속에서 “국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거의 합리적이고 정직한 시각”을 찾아냈다.
굿맨은 미국의 미디어 매체들이 좌파와 우파간의 차이를 과장한다고 생각한다. “두 진영은 상당히 유사한 관심사를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진보주의자들처럼 보수주의자들도 사생활에 대한 침해와 대기업들이 행사하는 막대한 힘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병사를 둔 가정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딸들이 지불한 대가에 경악합니다. 반면 권력자의 자제들은 전쟁을 치르지 않지요.” 정보를 얻는 도구로서 인터넷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 지역에서, “‘데모크라시 나우’가 자신들 관심을 진정으로 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프로라고 그들은 이야기합니다.”라고 피트새너키스 씨는 믿고 있다.
이 지역에서 DNTC는 진보주의 진영을 움직이기 위해 청취자들의 힘을 빌린다. 피트새너키스 씨는 이러한 연습의 의미를 알고 있다. “먼저 청취자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거의 1백만 가구가 프로를 수신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수많은 사람들은 산악지방 혹은 접근이 아주 힘든 지역에서 아주 고립된 채 삽니다. 그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프로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창설 후 6개월 동안 협회는 150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이라크 침공 4주년을 맞이한 날 전쟁에 반대하는 여덟 차례 시위를 조직했다. 가장 전투적인 광산노조와 접촉하기 위하여 우라늄으로 탄약을 만드는 한 공장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행동은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을 따름이다. 피트새너키스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조원들이 우리에게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경찰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생각에 불안해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낙관적입니다. 이 지역이 약속으로 충만하기 때문이지요...”
다니엘 폴레/토마 부트
* 다니엘 폴레는 프랑스 파리 제8대학 영국학과 강사이자 연구원이고, 토마 부트는 영화인이자 사진가이다. 필자들은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 다비드 람(David Ramm) 씨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사진 설명:레이몽 베르다게, <데모크라시 나우>(2007)
각주)-----------------
Cf.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조지 W. 부시의 미미한 백성들(Le petit peuple de George W. Bush)”, Le Monde diplomatique, 2004년 10월호.
바르바라 엡스타인(Barbara Epstein), “KPFA, 저항하는 캘리포니아 라디오(KPFA, la radio californienne qui r?siste)”, Le Monde diplomatique, 1999년 10월호 참조.
www.democracynow.org/article.pl?sid=07/04/25/1414222
Eric Klinenberg, Fighting for Air:The Battle to Control America's Media, 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07을 참조할 것.(<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2007년 1월호에 ‘훌륭한 서류들’ 부분을 게재했다. 또 같은 저자가 쓴 “미국 매스미디어를 위한 10명의 거장(Dix ma?tres pour les m?dias am?ricains)”, Le Monde diplomatique, 2003년 4월호도 읽어볼 것.
미국 매스미디어 매체들을 제어하는 기구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러한 방식의 집중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다. 그러나 2003년에 거센 대중시위가 FCC의 정책을 후퇴시켰다. 이러한 반응은 FCC로 하여금 비영리적인 목적을 띤 협회들에 수백 개의 FM 채널을 허용한다고 선언하게 만들었다. 특히 농촌지역이 “비상업적이고 교육적인” 성격의 프로그램들을 배포하기 위한 주 고려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채널들 중 다수가 종교단체들에 배정될 위험에 처해 있다.
리지 래트너(Lizzy Ratner)가 인용, “Amy Goodman's empire”, The Nation, New York, 2005년 5월 6일자.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노 로고. 상표의 폭정(No Logo. La Tyrannie des marques)>, J'ai lu, Paris, 2007.
앤서니 비올란티(Anthony Violanti)와의 대담. Buffalo News(뉴욕 주), 2004년 5월 9일자.
Cf. Fairness and Accuracy in Reporting(FAIR), “Amplifying officials, squelching dissent”(www.fair.org/index.php?page=1145). 단지 몇 초 동안의 ‘소리들’까지 고려할 경우, 설문에 응한 71%의 미국인들이 전쟁에 찬성하고 3%가 반대했다.
이냐시오 라모네(Ignacio Ramonet), “탐욕(Voracit?)”, Le Monde diplomatique, 2007년 11월호를 읽어볼 것.
각주)-----------------
1월 3일 아이오와 주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5일 후에는 뉴햄프셔 주에서 수십만 명의 미국 유권자들이 미 대통령을 뽑는 경선의 개막을 알리게 된다. 비록 두 개 주 인구가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들의 선택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눈사람처럼 부풀려질 것이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이러한 집중 선전과 조작들에 저항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라크 전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 지역은 아주 보수적입니다. 공화당이 정치와 라디오를 지배하고 있지요. 우파와 복음주의자들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곳에서는 공화파들이 아닌 극소수의 사람들이 너무나 소외된 느낌을 갖고 있기에, 진보주의자인 우리에게 속한 이 협소한 공간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조셉 피트새너키스(Joseph Fitsanakis), 테네시 주 트리시티즈의 라디오 프로그램 ‘데모크라시 나우’의 전투적인 사회자
2년 전 테네시 주 북동부의 한 시골 공동체에서 일군의 투사들이 70명이 서명했던 간결한 청원서를 통해 지역 라디오방송이 ‘데모크라시 나우’ 프로그램을 방송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데모크라시 나우’는 진보주의 성향의 라디오 프로였는데, 기존의 민영 라디오 프로그램들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팔래치아 산맥 깊숙이 들어박힌 이 지역은 이러한 시도를 하기에 전혀 이상적인 장소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1) 광산과 농업이 주축인 이 지역은 대다수가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었다.(지난 대선에서 공화당 지지 비율이 무려 75%였다.) 조셉 피트새너키스 씨는 “이곳에서 30년 전에 허용된 유일한 정치활동이 KKK단이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그와 다른 투사들은 최근 ‘데모크라시 나우 트리시티즈(DNTC)’라는 단체를 창설했는데, 2005년부터 규칙적으로 송출되고 있는 프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 프로는 청취자들의 기부금으로 주로 운영되는 지역 라디오방송인 WETS가 최근 주파수 허용 취소를 요구받은 후 위협을 받고 있다. WETS가 방송을 내보내는 지역의 분위기는 아주 보수적이다. 이런 곳에서 투쟁한다는 일은 때로 창문으로 돌 던지기, 개에 독약을 먹이기 등 물리적 공격을 받을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산업에서 투쟁을 전개한 지역 노조주의자들은 당신에게 이야기해줄 거리가 많을 겁니다.”라고 피트새너키스가 알려준다. 프로는 방해를 받기도 했다. 작년 8월 13일 한 총알이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데모크라시 나우’를 내보내고 있는 라디오방송국의 창문을 관통하기도 했는데, 사회자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름에 어울리는 토론
그러나 ‘데모크라시 나우’의 성공은 최상의 방어를 의미한다. WETS 사장인 웨인 윙클러 씨에 따르면, “청취자들의 반응은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코멘트가 훨씬 더 많습니다. 프로 때문에 라디오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청취자들을 사람들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실 후원금과 자원봉사 제안이 답지하고 있다.(아래 박스기사 참조) 저널리스트인 아미 굿맨과 파시피카(Pacifica) 라디오가 1996년에 창설한 ‘데모크라시 나우’는 빠른 시간에 이 방송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사 프로가 되었다. 하지만 1999년 내부의 불화가 이러한 모험을 끝장낼 뻔했다.2) 일들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을지라도 굿맨과 그의 협력자들은 자율성을 지키기 위하여 2002년에 독립방송이 되기를 택했다. 두 주역은 밀접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파시피카 라디오는 여전히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중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두 개의 새 라디오방송국 혹은 TV방송국이 매주 자신들 프로그램에 ‘데모크라시 나우’를 추가하고 있다. 중계 네트워크는 현재 대학방송국, 협회 방송,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p. 9 하단의 박스기사 참조), 케이블 및 위성방송을 골고루 포함하고 있으며, 프로가 비디오, 오디오 및 텍스트 형태로 방영되는 인터넷을 추가할 수 있다. ‘데모크라시 나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30개 방송국에 의해서만 채택되었지만, 현재 이 숫자는 7백 개로 늘어난 상태이다. 스페인어로 번역된 프로그램 일부는 미국 및 남미의 히스패닉 계열의 수십 개 라디오방송을 통해 송출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미국 인구의 상당수가 비판적 저널리즘과 ‘데모크라시 나우’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토론에 기초하여 시사 문제에 대한 진보주의적 견해를 듣기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대 매스미디어의 시사 프로그램을 본 따 이 프로는 하루 동안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정리한다. 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타 방송들과는 달리 이 프로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막론하고 해당부처의 선언과 결정들을 심층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제작자이자 스타 사회자인 굿맨은 위대한 저널리스트인 이시도르 페인슈타인 스톤이 자신의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표현을 좋아한다. “만약 너희들이 3개 단어만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그건 ‘정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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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를 송출하는 네트워크의 다양함도 재정 독립과 마찬가지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TV에서 일하는 몇 안 되는 좌파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인 빌 모이어스의 지적처럼, ‘데모크라시 나우’는 “그런 식으로 하나의 제도로 화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3)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등장한 무수한 독립 미디어들과 달리 이 ‘네트워크’는 가상적인 것이 전혀 없다. 또한 인터넷을 훨씬 넘어서서 존재한다. 매스미디어 전문가인 로버트 맥체스니는 “‘데모크라시 나우’를 차별 짓는 것은 성공의 크기입니다. 10년 전 소수의 방송국들에 의해 송출되던 프로는 현재 광범위한 대중에게 제공되고 있으며, 양호한 중계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우리에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모크라시 나우’는 미국 매스미디어 시스템의 바깥에 위치해 있다.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을 과시하는 - 종종 지나치게 남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 방송계에서 이 프로는 편들기 혐의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영리적 목적이 없이, 정당과 인연을 맺지 않고서, 광고나 기업의 후원 혹은 공공재정으로부터 돈을 끌어다 쓰는 일이 없이 시사문제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보다 더 나은 프로를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 프로의 수입은 오직 청취자와 협회들로부터의 후원금, 중계업자들이 지불하는 저작권, DVD 및 티셔츠 판매로부터 나온다. 테네시 주 북동부 쪽으로 가기 이전에 피트새너키스 씨는 주도(州都)인 내슈빌에서 ‘데모크라시 나우’가 송출될 수 있도록 애쓰는 투사들과 함께 일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우리는 3천에서 4천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은 청원서를 준비했습니다. 송출 요구를 받은 방송국은 서명자 숫자가 많기는 해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대답했지요. 그들 눈에 이 프로는 지나치게 ‘당파적’이었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이러한 타입의 비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20년 전부터 미국의 매스미디어들을 쓸어버린 집중 현상을 머릿속에 입력시켜야 한다. 그리고 언론의 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일부 재벌들이 로비에 쏟아 붓는 막대한 금액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지배력이 항상 더 원하도록 하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정부 책임자들이 규정들을 고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대학 사회학 교수인 에릭 클리넨버그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현상은 빌 클린턴 대통령 재직 시(1993-2001) 가결된 법들 때문에 1990년대 동안 더욱 심화되었다. 당시 “정부는 시장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지’ 않은 대신, 오히려 민간 회사들이 점점 더 많은 채널, 신문 및 방송국들을 소유할 수 있도록 시장을 ‘재조정했다’.”4) 예를 들어 1996년의 법은 라디오의 다양성을 억제하는 가혹한 결과를 낳았는데, 한 회사가 해당지역에서 방송국을 8개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5)
획일적인 사설을 쓰게 하고 편집부 인원을 감소시켜버렸을지라도 일부 재벌에 의한 정보의 과점(寡占)은 자신들 프로그램 편성에서 중립성을 지킨다는 착각을 품게 했고, 독립 매스미디어들에 대해 ‘당파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들에게 좋은 수단이 되었다. 맥체스니는 그러한 비난이 명백히 프로퍼갠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데모크라시 나우’ 역시 사실들의 존중에 대해 염려합니다. 매스미디어가 사적 이익에 종속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국가에서 정치 저널리즘은 지배자들의 이익에 대해 비판정신을 상실했습니다. 그러기에 ‘데모크라시 나우’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가리지 않고 권력의 모든 소유자들을 동일하게 불신합니다.”
인터넷에의 중요한 의존
‘데모크라시 나우’가 거둔 성공은 다른 미디어가 지나치게 관대하게 다루는 정보를 기피한 덕분이기도 하다. 굿맨은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거대 매스미디어들은 모든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늘 같은 ‘자칭’ 전문가들을 항상 불러 모읍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기본 규칙 중 하나는 국가가 내린 정치적 선택의 결과들을 감내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데 있습니다.”6) 그녀에 따르면 이러한 규칙을 조직적으로 지키지 않는 모습이 “변화에 대한 엄청난 갈증”을 만들어낸다.
경쟁자들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수단들을 보유한 ‘데모크라시 나우’는 광범위한 여론조사에 돈을 댈 수도, 상당히 중요한 고급정보를 기대할 수도 없다. 공영 라디오의 뉴스 사회자는 굿맨보다 거의 다섯 배나 더 봉급을 받고, 상업적 TV 사회자들은 100배나 더 받는다. 2005년 1년 동안 굿맨은 5만9천 달러를 받았는데, NPR 사회자는 30만 달러를, NBC, CNN 등 거대 민영방송 사회자들은 4백만에서 1천5백만 달러를 받았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25명 정규직 중에서 대다수가 중견 저널리스트들이다. 하지만 고품질의 뉴스를 매일 준비해야하기에 그들은 현장 조사를 수행할 수 없다. 하지만 ‘데모크라시 나우’의 힘은 초대자의 선택과 거대 매스미디어가 다루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사문제들을 분석하는데 있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의지한다. 특히 인터넷이 선호된다. 동원 가능한 다수의 정보들은 그들로 하여금 거대 매스미디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주제와 접근방식을 선택하도록 해주지만, 주의주장을 훨씬 더 강경하게 펼치는 결과도 낳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남미에서도 상당히 호응을 얻고 있는 뉴스 초반부의 10-15분 동안은 하루 동안 일어난 소식들을 전한다. 이것은 노트북을 지참한 단 한 사람의 작품이다. ‘데모크라시 나우’는 통신사에 가입되어 있으나, 시사문제를 다루는 십여 개의 인터넷 사이트,
비정부기구 사이트들 및 블로그로부터도 기사거리를 길어낸다. 그 대부분은 영어권 사이트들이다. 뉴스 초반에 요약 제공되는 15개 내외의 주제들 중에서 3-4개 정도는 그 어떤 거대 매스미디어에서도 다루지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다른 매체가 다룬 뉴스 역시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1974년 8월부터 1977년 1월까지 미 공화당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제럴드 포드가 2006년 12월 26일 서거했을 때 미국 언론은 이 인물을 워터게이트 사건과 러처드 닉슨의 해임 이후 처음 “국가를 자신과 화해시킬 줄 알았던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그러나 ‘데모크라시 나우’는 서슴지 않고 이 ‘영웅’과 그의 국무부장관이던 헨리 키신저가 동(東)티모르에서 학살을 자행할 때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1975년에 “인도네시아 독재자인 수하르토 장군이 동티모르를 침공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장본인이 바로 포드였다.”
뉴스들을 전한 후 프로그램 말미에 스튜디오 대담이 벌어질 때면 사회자들은 뉴스들을 재미있게 꾸미기 위하여 어떤 익살을 부려야낼지 알지 못하기에 민영 매스미디어에서 자주 구사하는 재담들을 청취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초대자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신들을 표현하도록 내버려둔다. ‘데모크라시 나우’는 전문 저널리스트들, 평범한 시민들, 지식인들, 국회의원들, 투쟁가들, 참여예술가들, 비정부기구 대표들을 출연시킨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전파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일지라도 거대 매스미디어의 초대를 받지 못한다. 노엄 촘스키, 나오미 클라인, 로버트 피스크, 아룬다티 로이, 에드워드 사이드(2003년 사망), 랠프 네이더, 에보 모랄레스, 우고 차베스 등이 ‘데모크라시 나우’에 출연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출연자 리스트가 보여주듯 프로는 방송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진보주의적 감수성을 표현해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데모크라시 나우’는 미국 좌파의 공명실이 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권력자나 대기업 대표들이 일반적으로 초대에 응하지 않는 반면, 옛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공화당)은 <노 로고>7)를 쓴 여성 대안세계주의자인 나오미 클라인과 토론하기를 수락했다.
2000년 11월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전화 초대에 응했다. 그는 당시 부통령이던 앨 고어에게 투표하라고 청취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굿맨은 클린턴이 프로를 독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당신은 사람들이 투표하러 가도록 권유하면서 라디오방송국들을 찾습니다. 두 개 정당이 사적 이익을 위해 매수된 형편에 투표가 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으십니까?” 격렬한 토론이 뒤를 이었고, 이라크에 대한 제재, 사형제에 대한 민주당 일부(클린턴과 고어 포함)의 지지에 대해서도 토론이 벌어졌다. 흥분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적대적이고도 공격적인” 질문을 던진다면서 굿맨을 비난했다. “천만에요, 그 질문들은 비판적인 감각을 보여줄 따름입니다.”라고 그녀가 응수했다.
다음날 굿맨이 토론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면서 백악관의 언론담당부처가 불만을 토했다. 그녀는 “그게 어떤 것들이지요?”라고 반문했다. 대통령의 전화가 사전에 약속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어떤 ‘규칙’도 사전에 정해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화 상대자를 너무 오랫동안 몰아붙이면서 ‘투표를 독려하기’라는 애초 주제 바깥으로 토론을 일탈시켜버렸다고 굿맨에 대해 비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막강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원할 때 전화를 끊으면 됩니다.”라고 그녀는 응수했고, 이 사건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끄집어냈다. “나는 권력자들에 대해 그 어떤 호의도 베풀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민의 피고용인들이니까요.”8)
‘데모크라시 나우’는 선거철을 맞아 미국 매스미디어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태도를 거부한다. 선거 캠페인 지휘부들은 자신들의 전략적 결정들에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언론을 조종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당 후보를 뽑는 경선기간 동안 힐러리 클린턴이 여론조사에서 어려움을 겪자 힐러리의 보좌관들은 그녀가 보다 ‘공격적인’ 제스처를 취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즉시 미디어들은 이러한 태도의 변화로부터 이익을 취했고, 힐러리는 자신의 새로운 개성을 드러낼 모든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반면 ‘데모크라시 나우’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그 ‘사건’을 취재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2004년의 대선 기간동안 ‘데모크라시 나우’는 여론조사와 당일의 뉴스를 청취자들에게 제공하면서도 기본을 더 중시했다. 유리한 입후보자 두 명(조지 W. 부시와 존 F. 케리)이 방송을 독점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이 프로는 ‘군소 입후보자들’의 따돌림 현상을 강조했고, 수백만 명의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민주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모습(너무나 먼 투표소, 법률적 궤변들, 선거권의 박탈)을 부각시켰다.
9.11 테러가 발발한 후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지지하는 입장을 택했다. 2001년 10월 21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빈 라덴의 꼬마친구인 사담 후세인’이 저널리스트 및 정치지도자들을 겨냥한 탄저병 공격의 주범이라고 저널리스트인 제프 스타인이 주장하자, ‘데모크라시 나우’는 다음과 같이 경고를 보낸다. “부시 행정부와 미디어들은 9.11 테러와 탄저병 공격의 책임을 이라크에 조직적으로 전가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이 프로는 영국 언론에 실린 뉴스를 청취자들에게 보도한 몇 안 되는 매체 중 하나였다. 그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여러 회원국들의 전화통화 내용을 도청했다는 것이다. 또 ‘데모크라시 나우’는 미국의 참전을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문제 삼는 유일한 매체이다. 힐러리가 미국의 참전에 찬성한 후 그녀 사무실이 점거당한 사실이 항의 형태 중 하나였다. 가열된 ‘애국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과연 ‘데모크라시 나우’가 아닌 그 어떤 매체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뉴스를 내보냈을 수 있었을까? “한 남자가 하이퍼마켓에서 체포되었다. ‘평화에 기회를 부여하라’라는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150명 이상의 사람들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항의 차 현장을 방문했다.”
공식 라인 뒤에서 줄을 서는 것을 거부하고 다양한 정보망을 이용하는 방식은 ‘데모크라시 나우’ 프로로 하여금 청취자들에게 이라크에서 준비 중인 것에 대해, 그리고 자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보다 믿을 만한 이미지를 구축하게 해주었다. 미디어 감시기구 ‘페어 앤 애큐러시 인 리포팅(FAIR)’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한 후 최초 3주 동안(2003년 3월부터 4월까지) 6개의 주요 TV방송들은 비판적으로, 또 충분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이라크 침공을 분석하는 단 하나의 인터뷰도 내보내지 않았다.9) ‘데모크라시 나우’가 무려 30명의 인물을 인터뷰한 데 비해.
이러한 노력은 때때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2004년 3월 아이티에서 발발한 쿠데타가 부패한 독재자에 맞선 민중봉기와 동일시되고 있을 때, ‘데모크라시 나우’는 망명 중인 대통령인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와의 독점 인터뷰를 내보냈다. 아리스티드는 자신을 납치하기 이전에 미국 군대가 자신을 강제로 해임시켰다고 털어놓았다. 이 ‘특종’ 뉴스는 다른 매스미디어들로 하여금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면서 사건에 재검토하도록 만들었다. 굿맨은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조롱한다. “우리가 다른 매체들을 오염시켰습니다.”
또 다른 여러 ‘오염들’이 그 뒤를 따랐다. 2007년 2월 ‘데모크라시 나우’는 BBC 소속 저널리스트인 그렉 팰리스트에게 개발도상국들을 망치는 기금10)에 대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가난한 국가들의 부채를 경감시켜줄 목적을 띤 공공차관이 남반부의 여러 국가들에 대해 민간회사들이 지고 있는 부채를 갚는데 쓰이도록 백악관이 허락해주었다고 팰리스트는 설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의원이 이러한 기금 전용 문제를 G8 정상회담의 의제 중 하나로 채택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미 의회의 숱한 멤버들이 청취하는 ‘데모크라시 나우’의 조사를 접하기 이전에 두 명의 의원은 돈이 그런 식으로 유용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라고 팰리스트는 강조했다.
배급망이 복잡한 문제 때문에 ‘데모크라시 나우’의 실질적인 청취자와 청취자들의 정치적 성향은 알아내기 힘들다. 물론 가장 충실한 청취자들은 진보주의적 감수성을 지닌 자들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나 보스턴에 거주하는 보보스족[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미국의 새로운 상류계급을 가리키는 용어로,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이다. - 옮긴이] 타입의 미국 좌파는 더 이상 아니다. 청취자들은 사회의 전 계층에 속하는 자들이다.”라고 맥체스니는 강조한다. 테네시 주 북동부 같은 공화당 지지 지역에서 ‘데모크라시 나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좌, 우파를 망라한 수많은 미국인들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대한 대기업들과 정부의 영향력을 점점 더 못 견뎌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민영 미디어들이 내버려둔 공간을 우리가 차지하게 되었지요.”라고 굿맨은 생각한다. 심지어 공화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백악관의 거짓말, 스캔들, 군사적 이면, 통제받지 않는 지출에 대해 극도로 실망하고 있다. 언론 역시 이러한 거짓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약속으로 충만한 지역
피트새너키스 씨에 따르면,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는 모습에 대항하기 위하여 공화당 지지자들도 DNTC에 합류했다. 이 주제는 프로에서 자주 다루고 있다. 보수주의자 선거인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협회에 알렸다. ‘데모크라시 나우’가 옹호하는 사상과 상당부분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현 정부에 대해 심각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데모크라시 나우’ 속에서 “국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거의 합리적이고 정직한 시각”을 찾아냈다.
굿맨은 미국의 미디어 매체들이 좌파와 우파간의 차이를 과장한다고 생각한다. “두 진영은 상당히 유사한 관심사를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진보주의자들처럼 보수주의자들도 사생활에 대한 침해와 대기업들이 행사하는 막대한 힘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병사를 둔 가정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딸들이 지불한 대가에 경악합니다. 반면 권력자의 자제들은 전쟁을 치르지 않지요.” 정보를 얻는 도구로서 인터넷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 지역에서, “‘데모크라시 나우’가 자신들 관심을 진정으로 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프로라고 그들은 이야기합니다.”라고 피트새너키스 씨는 믿고 있다.
이 지역에서 DNTC는 진보주의 진영을 움직이기 위해 청취자들의 힘을 빌린다. 피트새너키스 씨는 이러한 연습의 의미를 알고 있다. “먼저 청취자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거의 1백만 가구가 프로를 수신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수많은 사람들은 산악지방 혹은 접근이 아주 힘든 지역에서 아주 고립된 채 삽니다. 그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프로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창설 후 6개월 동안 협회는 150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이라크 침공 4주년을 맞이한 날 전쟁에 반대하는 여덟 차례 시위를 조직했다. 가장 전투적인 광산노조와 접촉하기 위하여 우라늄으로 탄약을 만드는 한 공장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행동은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을 따름이다. 피트새너키스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조원들이 우리에게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경찰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생각에 불안해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낙관적입니다. 이 지역이 약속으로 충만하기 때문이지요...”
다니엘 폴레/토마 부트
* 다니엘 폴레는 프랑스 파리 제8대학 영국학과 강사이자 연구원이고, 토마 부트는 영화인이자 사진가이다. 필자들은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 다비드 람(David Ramm) 씨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사진 설명:레이몽 베르다게, <데모크라시 나우>(2007)
각주)-----------------
Cf.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조지 W. 부시의 미미한 백성들(Le petit peuple de George W. Bush)”, Le Monde diplomatique, 2004년 10월호.
바르바라 엡스타인(Barbara Epstein), “KPFA, 저항하는 캘리포니아 라디오(KPFA, la radio californienne qui r?siste)”, Le Monde diplomatique, 1999년 10월호 참조.
www.democracynow.org/article.pl?sid=07/04/25/1414222
Eric Klinenberg, Fighting for Air:The Battle to Control America's Media, 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07을 참조할 것.(<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2007년 1월호에 ‘훌륭한 서류들’ 부분을 게재했다. 또 같은 저자가 쓴 “미국 매스미디어를 위한 10명의 거장(Dix ma?tres pour les m?dias am?ricains)”, Le Monde diplomatique, 2003년 4월호도 읽어볼 것.
미국 매스미디어 매체들을 제어하는 기구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러한 방식의 집중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다. 그러나 2003년에 거센 대중시위가 FCC의 정책을 후퇴시켰다. 이러한 반응은 FCC로 하여금 비영리적인 목적을 띤 협회들에 수백 개의 FM 채널을 허용한다고 선언하게 만들었다. 특히 농촌지역이 “비상업적이고 교육적인” 성격의 프로그램들을 배포하기 위한 주 고려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채널들 중 다수가 종교단체들에 배정될 위험에 처해 있다.
리지 래트너(Lizzy Ratner)가 인용, “Amy Goodman's empire”, The Nation, New York, 2005년 5월 6일자.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노 로고. 상표의 폭정(No Logo. La Tyrannie des marques)>, J'ai lu, Paris, 2007.
앤서니 비올란티(Anthony Violanti)와의 대담. Buffalo News(뉴욕 주), 2004년 5월 9일자.
Cf. Fairness and Accuracy in Reporting(FAIR), “Amplifying officials, squelching dissent”(www.fair.org/index.php?page=1145). 단지 몇 초 동안의 ‘소리들’까지 고려할 경우, 설문에 응한 71%의 미국인들이 전쟁에 찬성하고 3%가 반대했다.
이냐시오 라모네(Ignacio Ramonet), “탐욕(Voracit?)”, Le Monde diplomatique, 2007년 11월호를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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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를 형성한 청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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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라시 나우’의 기능 방식은 주로 자원봉사자와 청취자들의 후원금에 의존한다. 이러한 지원이 없었더라면 프로는 미국 전역을 커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디오 제작도 전문 기술자들의 열정적인 작업 덕분에 가능해졌다. 인터넷을 통해 제공 가능하도록 프로그램들을 변환하는 작업 역시 전 세계에 산재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애당초 실현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8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협력하고 있으며, 그 중 1천7백 명이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시간에, 혹은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가능한지 미리 등록을 해놓았다. 대부분의 경우 행정적인 임무도 떠맡는다.
일부 사람들은 스타 저널리스트인 아미 굿맨이 미국 전체를 방문하는 모임을 주최하기도 한다. 또 프로를 홍보하기 위하여 ‘데모크라시 나우’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받은 팸플릿이나 스티커를 배포한다. 서부 해안 쪽의 일부 투사들은 거대한 광고판을 대여하기 위해 꽤 많은 돈을 모으기도 했다. 광고판의 문구는 “민영 매스미디어는 이라크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태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프로를 지지하세요.”였다.
일본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프로의 주요 주제들이 번역되어 있다.1)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 뉴욕 주의 버팔로에서는 공영 라디오방송들이 ‘데모크라시 나우’를 송출하기를 거부하자 청취자들이 기금을 모았고, 그 돈 덕분에 민영 라디오에서 전파를 내보내고 있다.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한 주민은 비디오카세트를 전하러 지역 TV방송국을 자전거로 방문하기 이전에 위성을 통해 송출된 프로의 비디오 버전을 매일 녹화한다.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영라디오가 프로그램을 내보는 것을 거부하자 한 80대 여성이 자신의 정원에 해적 송신기를 설치했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사장 카렌 라누치 부인은 “우리를 돕는 자원봉사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지원 없이도 프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더라면 결코 오늘에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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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emocracynow.jp(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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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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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적인 프로인 ‘데모크라시 나우’는 비영리적인 목적을 띤 두 종류의 방송국을 통해 송출된다. 협회 라디오와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 네트워크 가입자 형태를 통해서인데, NPR은 국가로부터 일부 보조를 받고 있다. 협회 라디오는 지역 관련 뉴스들을 중심으로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내보내는데 주로 자원봉사자들이 사회를 맡으며, 청취자들과 지역 소재 기업들이 갹출하는 후원금에 거의 대부분 의존한다. NPR 가입자 형태를 통해서는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가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주로 내보내는데, 아주 강력한 송신기들을 사용하며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NPR이 기업들과 국가가 재정 지원하는 반면, NPR 가입자들은 청취자들의 후원금에 호소해야 한다.
NPR 가입과 병행하여 ‘데모크라시 나우’는 퍼블릭 브로드캐스팅 서비스(PBS)의 일부 채널들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NPR과 PBS가 프로를 송출할 권리를 얻기 위해 돈을 쏟아 붓는 반면, 정작 프로는 기업과 국가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위성 중계업자가 공익적 성격을 인정받은 방송국들에 일부 채널을 보장해줘야 하는 관계로, ‘데모크라시 나우’는 프리 스피치(Free Speech)나 링크(Link) 네트워크를 통해 송출되고 있다.
유럽에서 ‘데모크라시 나우’는 위성방송 월드 라디오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을 위한 영어’란 프로그램의 테두리 내에서 16시에 제공된다.1) 인터넷 사이트(www.democracynow.org)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각주)-----------------
www.wrn.org/listeners/schedules/schedule.php?Schedule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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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기사입력: 2008-03-19 19:08:47
- 최종편집: 2008-03-21 11: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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