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라크전투를 중단시킬 것인가?
임기 말 민심을 얻지 못한 대통령에 맞서 의회
미정보국의 공표에 따르면, 이란이 2003년 이후 자국의 핵무장 프로그램을 중단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폭로는 백악관의 전쟁 계획에 역행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미 의회는 스스로 내걸었던 공약에도 불구하고 1년 전 임기가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이라크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미국 대통령의 군사 권력을 과연 의회는 지금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몇몇 전문가들은 2006년 11월에 있었던 미국 의회 선거를 통해 하나의 명백한 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주된 내용은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이 공화당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외교정책의 방향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그로 인해 공화당은 지난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5% 하락했으며, 약 30석의 의석을 잃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국민들은 이라크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와 같은 의지가 반영되어 민주당이 상, 하원에서 공히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거 이후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16만 명의 미군이 이라크에 파병되는 동안 민주당 당선자들은 자국의 전쟁 개입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이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난 뒤 곧바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2만 천 5백 명을 추가로 파병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의 군사정책과 이 분야에서 그가 가진 특권의 재확인에 다름 아닌 이 두 가지 사실은 전시에 (통수권자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지닌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이와 같은 민주당 의원들의 태도를 통해 의회가 백악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 직면하게 되는 도전의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암암리에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빌 클린턴 정부에 이르기까지 헌법에 명시된 전쟁 관련 권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의회는 "통수권자"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왔다. 그 결과 모든 혹은 거의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백악관의 세력이 약화되고, 평화주의자들의 운동이 거세지고, 베트남, 인도차이나 반도로의 전쟁 확산이 비참한 결과를 낳았던 1973년에서 1975년 사이에만 의회는 군사작전 지속과 강화를 위한 재정 지원을 거부함으로써 분쟁에 마침표를 찍도록 강요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예를 통해서 보면 의회가 통수권자의 의지를 꺾고자 할 때 의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잘 가늠해볼 수 있다.
미국의 초기 헌법은 사법부를 포함한 정부 삼권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겨냥하고 있다. 전쟁과 국외 군사력 사용과 관련해서 헌법 초안자들의 입장은 아주 분명했다. 그 어떤 대통령도 의회의 명백한 동의 없이 군사력을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 미국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해야만" 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소집 및 유지"하고, "해군을 창설 및 유지"하고, 또한 여러 군사 권한들 가운데서 "공동으로 방어"하는 책임은 모두 의회에게 있다.1)
순전히 형식에 그치는 자문
통수권자의 기능이 대통령에게 위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회 역시 군사 권력에 있어서 상당한 권한을 쥐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헌법이 비준될 때 있었던 논쟁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들여다보면 그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권한을 사용하려고 들면 의회 역시 전시에 대통령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동원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 작전에 재정 지원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정 지원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2)
미국의 창건 이래 150년 동안 의회는 헌법에 명시된 전쟁 권한을 대통령의 지나친 과욕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성공해 왔다.3)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미국 국회의원들은 이 통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망설였다. 심지어 닉슨 정부 시절(1969-1974) 베트남전쟁에서 국방부 장관이 비밀리에 캄보디아 폭격을 조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도, 의회는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통수권자에게 한계선을 강력하게 제시하는 일에 있어서 그다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4)
1973년 닉슨 대통령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의회는 전쟁 권한 법안(War Powers Act)을 의결했다. 그로 인해 대통령은 군사작전 수행 전 그리고 수행 동안 의회에 "자문을 구해야"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5) 또한 이 법안은 의회의 동의 없이 해외 작전이 60일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의 행동에 제동을 거는 이와 같은 조항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들은 매 경우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법안을 해석해 왔다. 즉 의회의 "자문을 구하는" 대신에 군사작전 개시 직전에야 비로소 비중 있는 몇몇 의원들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조지 H. W. 부시 대통령(1989-1993)은 1989년 파나마전투 개시 5시간 전에서야 침략 결정을 의회에 알렸다. 1986년에 로널드 레이건(1981-1989) 대통령은 리비아 폭격 프로젝트를 폭탄 발사 개시 3시간 전에, 그것도 소수의 주요 의원들에게만 알렸을 따름이다. 1983년 그라나다섬 침공 시에는 그 어떤 실질적 자문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 민주당 출신 대통령 지미 카터(1977-1981)는 이란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 인질을 구출하려는 목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했다. 특수부대까지 동원되었으나 쓰라린 실패로 끝난 이 작전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카터 대통령은 여당 의원들의 의견조차 무시했으며,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당시 의회의 의견도 개의치 않았다.6)
공화당 출신이든 민주당 출신이든 간에 대통령들은 전쟁 권력 법안을 아주 철저하게 위반해왔다. 그리고 군사 임무가 시작되고 나면 의회는 그 임무 수행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왔다.7) 워터게이트 권력 남용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면서 행정부의 권력과 영향력이 강화될수록 의회는 헌법에 명시된 자신들의 군사 권한을 포기해왔다.8) 이와 같은 상황은 지난 8년 동안의 부시 행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 정부 때(1993-2001) 백악관의 고위 관료들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의회의 사전 동의 없이 대통령은 군사력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여러 차례 명령했던 이라크 폭격, 1994년에 있었던 하이티섬으로의 1만 명의 미군 파병 결정 혹은 1998년 오사마 빈 라덴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결정 등등에서 이와 같은 대통령의 일처리 방식은 관행이 되었다.9)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건의 군사 개입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5년 보스니아와 1999년 세르비아 전투가 그것이다. 미국이 보스니아에서 무력을 사용했을 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이 결정에 명백한 동의를 표명했다. NATO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에 투하한 약 3천5백 발의 폭탄 가운데 대부분의 폭탄은 실제로 미군에 의해 투하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 의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통수권자에게는 입법부의 동의 없이 그와 같은 폭격을 가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고 말이다.10) 그 당시 공화당이 다수당이었던 의회는 정책의 귀추에 주목할 뿐, 그런 결정의 합헌성 여부와 관련된 그 어떤 의견도 표명하지 않았다. 그 이후 클린턴 행정부가 나토 보스니아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미군을 파병했을 때, 공화당 의원들은 "정책 지원이 아닌 파병 지원11)"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사실상 그들은 "파병 지원"과 애국주의의 상징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헌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모호한 제스처(혹은 이중 플레이)는 백악관 측에서도 어김없이 볼 수 있다.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 군의 공중 폭격이(1999년 3월~5월) 있기 전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개입이 의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경우에 따라서 의원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의 군사 권한을 문제시하는 전례를 만들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지 않으면서 의회의 보증을 기대했던 것이다.12) 이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도 하원은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더 선호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폭격이 개시된 후 공화당 내부에서 저격수 역할을 하던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또한 전직 법학과 교수였던) 토마스 캠벨이 1차 투표에서 의회의 전쟁 권한을 시험해 보려했던 것이다. 그는 분쟁 지역에 있는 모든 미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리고 2차 투표에 즈음해서 세르비아에 대한 전쟁을 의회가 직접 선포할 것을 요구했다. 캠벨은 그렇게 해서 클린턴 대통령의 유고슬라비아 정책이 헌법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급법원(경우에 따라서는 고등법원)이 결정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전체의 지지는 물론 본인의 소속당 지도부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던 캠벨 의원은 자신이 제출한 두 개의 의원 법률안이 잇따라 부결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자국의 군사 개입을 지지한다는 발의를 했지만, 공화당의 충분한 표를 얻지 못해 이 발의 역시 채택되지 못했다.13)
결국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는 민주당 대통령의 행동에 대한 합헌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과 동시에 대통령을 후원하는 것에도 동의를 표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한편 리처드 게파트가 원내 총무로 있던 민주당 소속 여러 의원들은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의회가 폭격의 합헌성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14)
당파 정신을 입증하고 결국 대통령에게 동의하는 미국 의회의 이와 같은 공식이 바로 전쟁 권한에 관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드러나는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공식은 현 이라크 상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지금도 유사한 당파 정신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번에는 단지 공화당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법에 명시된 것과는 달리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의회가 대통령의 의사에 반대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한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인사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병력 수를 증가시키는 데 의회 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을 때,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그의 제안에 반대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이 제안이 갖는 합헌성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결과 백악관의 계획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15)
이란에서도 빈손으로
사실 최근 들어 대통령이 해외로 군대를 파병할 때면 거의 매번 의회는 그들의 특권 행사를 포기했다. 보통 의회는 상징적인 항의 표시를 하거나 대통령의 행동을 ?막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면서 의결안을 채택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실상이다. 의회는 파병 부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주지 못해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려한 나머지 백악관이 요구하는 군사 예산 결의를 거부하는 일이 없었다. 예를 들어 12월 17일에도 하원은 반대를 하는 척하다가 다음날 바로 입장을 바꿨던 것이다.
여러 미국 의원들은 이란의 경우 어떤 선택의 여지도 두지 않고 반복해서 위협을 가하는 부시 대통령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 봄, 하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란에 군사력을 동원하기 이전에 대통령이 반드시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실패했다. 네바다의 민주당 의원인 셸리 버클리 여사는 그 당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금은 손을 묶을 때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이란에 대해 매우 확고한 자세를 취하면서 이 나라를 군사력으로 위협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우리의 태도가 진지하지 않다는 인상을 가질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각주)-----------------
미국 헌법, 1조 8항. cf. James Madison, <<1787년 연방 총회에서의 논의 기록>> (1966,W.W.Norton 재편집, 뉴욕, 1987)
Charles A. Lofgren, <<헌법 하에서 전쟁 하기:원형의 이해>>, 예일 대 법 저널, 81권, 뉴 헤이븐 (코네티컷), 1972, p.672-702.
Francis D. Wormuth 와 Edwin B. Firmage, <<전쟁 개에게 사슬 매기:역사와 법에 있어서 의회의 전쟁권한>> 2판, 일리노이 대학 출판부, 어배나, 1989.
John Hart Ely, <<전쟁과 책임:베트남 전쟁과 그 여파의 헌법적 교훈>>,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 1993.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동의를 얻으면 의회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기각할 수 있다.
Robert A. Katzman, <<전쟁 권한:새로운 합의를 향하여>>, in Thomas E. Mann, <<균형의 문제:대통령, 의회, 그리고 외교정책>> Brookings Institution, 워싱턴, 1990.
걸프전쟁 당시에는(1991) 반대로 여러 민주당원들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며 의회가 군사 작전 개시에 동의를 표했다.
제국주의 행정부의 보다 넓은 의미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Arthur M. Schlesinger Jr, <<제국주의 대통령>>, PUF, 파리, 1976.
Cf. <<클린턴 전쟁:헌법, 의회, 전쟁 권한>>, 반더빌트 대학 출판부, 내쉬빌(테네시), 2002.
William Clinton,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미 공군 파병에 관해 의장에게 보내는 보고 서한>>, 대통령의 공식문서, 워싱턴, 1995년 9월 1일, p.1279-1280.
의회 기록, 워싱턴, 1995년 12월 13일.
William Clinton,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공화국) 내 세르비아 공중폭격에 관해 의장에게 보내는 보고 서한>>, 대통령의 공식문서, 1999년 3월 26일, p.459-460.
<<클린턴 전쟁>>, op. cit., p. 130-133.
John Sawyer, <<의회, 발칸 반도의 전쟁에 관해 공식의견을 표명해야 하는 불쾌한 과업에 직면하다>>, St. Louis Post-Dispatch, 1999년 4월 25일.
Jon Ward, <<케네디 계획안이 정당 사이의 균열을 폭로하다:이제 이라크를 떠나기 vs. 서서히 퇴각하기>>, 워싱턴 타임즈, 2007년 1월 10일자.
각주)-----------------
하지만 이와 같은 폭로는 백악관의 전쟁 계획에 역행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미 의회는 스스로 내걸었던 공약에도 불구하고 1년 전 임기가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이라크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미국 대통령의 군사 권력을 과연 의회는 지금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몇몇 전문가들은 2006년 11월에 있었던 미국 의회 선거를 통해 하나의 명백한 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주된 내용은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이 공화당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외교정책의 방향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그로 인해 공화당은 지난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5% 하락했으며, 약 30석의 의석을 잃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국민들은 이라크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와 같은 의지가 반영되어 민주당이 상, 하원에서 공히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거 이후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16만 명의 미군이 이라크에 파병되는 동안 민주당 당선자들은 자국의 전쟁 개입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이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난 뒤 곧바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2만 천 5백 명을 추가로 파병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의 군사정책과 이 분야에서 그가 가진 특권의 재확인에 다름 아닌 이 두 가지 사실은 전시에 (통수권자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지닌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이와 같은 민주당 의원들의 태도를 통해 의회가 백악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 직면하게 되는 도전의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암암리에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빌 클린턴 정부에 이르기까지 헌법에 명시된 전쟁 관련 권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의회는 "통수권자"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왔다. 그 결과 모든 혹은 거의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백악관의 세력이 약화되고, 평화주의자들의 운동이 거세지고, 베트남, 인도차이나 반도로의 전쟁 확산이 비참한 결과를 낳았던 1973년에서 1975년 사이에만 의회는 군사작전 지속과 강화를 위한 재정 지원을 거부함으로써 분쟁에 마침표를 찍도록 강요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예를 통해서 보면 의회가 통수권자의 의지를 꺾고자 할 때 의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잘 가늠해볼 수 있다.
미국의 초기 헌법은 사법부를 포함한 정부 삼권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겨냥하고 있다. 전쟁과 국외 군사력 사용과 관련해서 헌법 초안자들의 입장은 아주 분명했다. 그 어떤 대통령도 의회의 명백한 동의 없이 군사력을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 미국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해야만" 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소집 및 유지"하고, "해군을 창설 및 유지"하고, 또한 여러 군사 권한들 가운데서 "공동으로 방어"하는 책임은 모두 의회에게 있다.1)
순전히 형식에 그치는 자문
통수권자의 기능이 대통령에게 위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회 역시 군사 권력에 있어서 상당한 권한을 쥐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헌법이 비준될 때 있었던 논쟁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들여다보면 그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권한을 사용하려고 들면 의회 역시 전시에 대통령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동원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 작전에 재정 지원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정 지원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2)
미국의 창건 이래 150년 동안 의회는 헌법에 명시된 전쟁 권한을 대통령의 지나친 과욕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성공해 왔다.3)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미국 국회의원들은 이 통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망설였다. 심지어 닉슨 정부 시절(1969-1974) 베트남전쟁에서 국방부 장관이 비밀리에 캄보디아 폭격을 조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도, 의회는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통수권자에게 한계선을 강력하게 제시하는 일에 있어서 그다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4)
1973년 닉슨 대통령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의회는 전쟁 권한 법안(War Powers Act)을 의결했다. 그로 인해 대통령은 군사작전 수행 전 그리고 수행 동안 의회에 "자문을 구해야"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5) 또한 이 법안은 의회의 동의 없이 해외 작전이 60일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의 행동에 제동을 거는 이와 같은 조항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들은 매 경우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법안을 해석해 왔다. 즉 의회의 "자문을 구하는" 대신에 군사작전 개시 직전에야 비로소 비중 있는 몇몇 의원들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조지 H. W. 부시 대통령(1989-1993)은 1989년 파나마전투 개시 5시간 전에서야 침략 결정을 의회에 알렸다. 1986년에 로널드 레이건(1981-1989) 대통령은 리비아 폭격 프로젝트를 폭탄 발사 개시 3시간 전에, 그것도 소수의 주요 의원들에게만 알렸을 따름이다. 1983년 그라나다섬 침공 시에는 그 어떤 실질적 자문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 민주당 출신 대통령 지미 카터(1977-1981)는 이란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 인질을 구출하려는 목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했다. 특수부대까지 동원되었으나 쓰라린 실패로 끝난 이 작전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카터 대통령은 여당 의원들의 의견조차 무시했으며,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당시 의회의 의견도 개의치 않았다.6)
공화당 출신이든 민주당 출신이든 간에 대통령들은 전쟁 권력 법안을 아주 철저하게 위반해왔다. 그리고 군사 임무가 시작되고 나면 의회는 그 임무 수행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왔다.7) 워터게이트 권력 남용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면서 행정부의 권력과 영향력이 강화될수록 의회는 헌법에 명시된 자신들의 군사 권한을 포기해왔다.8) 이와 같은 상황은 지난 8년 동안의 부시 행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 정부 때(1993-2001) 백악관의 고위 관료들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의회의 사전 동의 없이 대통령은 군사력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여러 차례 명령했던 이라크 폭격, 1994년에 있었던 하이티섬으로의 1만 명의 미군 파병 결정 혹은 1998년 오사마 빈 라덴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결정 등등에서 이와 같은 대통령의 일처리 방식은 관행이 되었다.9)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건의 군사 개입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5년 보스니아와 1999년 세르비아 전투가 그것이다. 미국이 보스니아에서 무력을 사용했을 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이 결정에 명백한 동의를 표명했다. NATO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에 투하한 약 3천5백 발의 폭탄 가운데 대부분의 폭탄은 실제로 미군에 의해 투하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 의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통수권자에게는 입법부의 동의 없이 그와 같은 폭격을 가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고 말이다.10) 그 당시 공화당이 다수당이었던 의회는 정책의 귀추에 주목할 뿐, 그런 결정의 합헌성 여부와 관련된 그 어떤 의견도 표명하지 않았다. 그 이후 클린턴 행정부가 나토 보스니아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미군을 파병했을 때, 공화당 의원들은 "정책 지원이 아닌 파병 지원11)"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사실상 그들은 "파병 지원"과 애국주의의 상징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헌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모호한 제스처(혹은 이중 플레이)는 백악관 측에서도 어김없이 볼 수 있다.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 군의 공중 폭격이(1999년 3월~5월) 있기 전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개입이 의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경우에 따라서 의원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의 군사 권한을 문제시하는 전례를 만들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지 않으면서 의회의 보증을 기대했던 것이다.12) 이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도 하원은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더 선호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폭격이 개시된 후 공화당 내부에서 저격수 역할을 하던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또한 전직 법학과 교수였던) 토마스 캠벨이 1차 투표에서 의회의 전쟁 권한을 시험해 보려했던 것이다. 그는 분쟁 지역에 있는 모든 미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리고 2차 투표에 즈음해서 세르비아에 대한 전쟁을 의회가 직접 선포할 것을 요구했다. 캠벨은 그렇게 해서 클린턴 대통령의 유고슬라비아 정책이 헌법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급법원(경우에 따라서는 고등법원)이 결정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전체의 지지는 물론 본인의 소속당 지도부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던 캠벨 의원은 자신이 제출한 두 개의 의원 법률안이 잇따라 부결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자국의 군사 개입을 지지한다는 발의를 했지만, 공화당의 충분한 표를 얻지 못해 이 발의 역시 채택되지 못했다.13)
결국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는 민주당 대통령의 행동에 대한 합헌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과 동시에 대통령을 후원하는 것에도 동의를 표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한편 리처드 게파트가 원내 총무로 있던 민주당 소속 여러 의원들은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의회가 폭격의 합헌성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14)
당파 정신을 입증하고 결국 대통령에게 동의하는 미국 의회의 이와 같은 공식이 바로 전쟁 권한에 관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드러나는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공식은 현 이라크 상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지금도 유사한 당파 정신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번에는 단지 공화당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법에 명시된 것과는 달리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의회가 대통령의 의사에 반대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한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인사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병력 수를 증가시키는 데 의회 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을 때,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그의 제안에 반대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이 제안이 갖는 합헌성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결과 백악관의 계획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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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도 빈손으로
사실 최근 들어 대통령이 해외로 군대를 파병할 때면 거의 매번 의회는 그들의 특권 행사를 포기했다. 보통 의회는 상징적인 항의 표시를 하거나 대통령의 행동을 ?막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면서 의결안을 채택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실상이다. 의회는 파병 부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주지 못해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려한 나머지 백악관이 요구하는 군사 예산 결의를 거부하는 일이 없었다. 예를 들어 12월 17일에도 하원은 반대를 하는 척하다가 다음날 바로 입장을 바꿨던 것이다.
여러 미국 의원들은 이란의 경우 어떤 선택의 여지도 두지 않고 반복해서 위협을 가하는 부시 대통령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 봄, 하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란에 군사력을 동원하기 이전에 대통령이 반드시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실패했다. 네바다의 민주당 의원인 셸리 버클리 여사는 그 당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금은 손을 묶을 때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이란에 대해 매우 확고한 자세를 취하면서 이 나라를 군사력으로 위협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우리의 태도가 진지하지 않다는 인상을 가질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각주)-----------------
미국 헌법, 1조 8항. cf. James Madison, <<1787년 연방 총회에서의 논의 기록>> (1966,W.W.Norton 재편집, 뉴욕, 1987)
Charles A. Lofgren, <<헌법 하에서 전쟁 하기:원형의 이해>>, 예일 대 법 저널, 81권, 뉴 헤이븐 (코네티컷), 1972, p.672-702.
Francis D. Wormuth 와 Edwin B. Firmage, <<전쟁 개에게 사슬 매기:역사와 법에 있어서 의회의 전쟁권한>> 2판, 일리노이 대학 출판부, 어배나, 1989.
John Hart Ely, <<전쟁과 책임:베트남 전쟁과 그 여파의 헌법적 교훈>>,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 1993.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동의를 얻으면 의회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기각할 수 있다.
Robert A. Katzman, <<전쟁 권한:새로운 합의를 향하여>>, in Thomas E. Mann, <<균형의 문제:대통령, 의회, 그리고 외교정책>> Brookings Institution, 워싱턴, 1990.
걸프전쟁 당시에는(1991) 반대로 여러 민주당원들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며 의회가 군사 작전 개시에 동의를 표했다.
제국주의 행정부의 보다 넓은 의미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Arthur M. Schlesinger Jr, <<제국주의 대통령>>, PUF, 파리, 1976.
Cf. <<클린턴 전쟁:헌법, 의회, 전쟁 권한>>, 반더빌트 대학 출판부, 내쉬빌(테네시), 2002.
William Clinton,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미 공군 파병에 관해 의장에게 보내는 보고 서한>>, 대통령의 공식문서, 워싱턴, 1995년 9월 1일, p.1279-1280.
의회 기록, 워싱턴, 1995년 12월 13일.
William Clinton,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공화국) 내 세르비아 공중폭격에 관해 의장에게 보내는 보고 서한>>, 대통령의 공식문서, 1999년 3월 26일, p.459-460.
<<클린턴 전쟁>>, op. cit., p. 130-133.
John Sawyer, <<의회, 발칸 반도의 전쟁에 관해 공식의견을 표명해야 하는 불쾌한 과업에 직면하다>>, St. Louis Post-Dispatch, 1999년 4월 25일.
Jon Ward, <<케네디 계획안이 정당 사이의 균열을 폭로하다:이제 이라크를 떠나기 vs. 서서히 퇴각하기>>, 워싱턴 타임즈, 2007년 1월 10일자.
각주)-----------------
기사입력 : 2008-03-19 19:07:15
최종편집 : 2008-03-21 11:01:32
최종편집 : 2008-03-21 11: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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