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위협
인도, 낙살라이트 게릴라의 확산
인도에서는 무려 7억명 이상이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모택동주의를 표방하는 낙살라이트 게릴라들이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놀랍게도 인도 총리인 만모한 싱(Manmohan Singh)에 따르면 이 게릴라 단체들은 독립 이후 <<최대의 안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의 중심에 자리한 차티스가르(Chhattisgarh) 주 당국은 폭력적인 대 게릴라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다.
민병대원들이 농민들을 강제로 수용소로 이주시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산업 재벌들과의 연계를 통해 물질적 이익도 추구하고 있다.
차티스가르 한 복판에 위치한 라니 보들리(Rani Bodli) 초소는 정글의 위압적인 어둠을 마주하고 있다. 초소에 설치된 기관총들이 무성한 삼림 쪽을 겨누고 있다. 2007년 3월 15일, 새벽 경, 수백 명의 모택동주의 게릴라 대원들이 수풀 속에서 나타나 공격을 가해 왔다. 갑작스런 공격에 55명의 경찰들과 보충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단지 12명만이 부상당한 채 목숨을 부지했을 뿐이다. 원병들이 수풀을 헤치고 도달해 그들을 포위상태에서 구해내는 데만도 8시간이 걸렸다.
몇 주 후 소대장 에사리아도(Essaryado)를 만날 수 있었다. 카라슈니코프 자동소총에 팔꿈치를 기대고 망고 나무 그늘에 앉은 그는 이 지역에서 경찰 부대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주위에서는 소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른바 ‘특별 경찰 병력’(SPO)이라고 불리는 보충병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매우 어리고,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대원들이었다. <<이 경찰 초소는 2005년에 지어졌습니다.>> 소대장이 설명했다. 당시 인도 정부는 1980년대 이래로 공산주의 지하무장단체의 은둔지였던 이 정글 통제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순전히 형식적인 통제일 뿐이었다. 매복해 있는 복병들을 두려워한 경찰들은 요새 바깥으로 나가는 모험을 거의 감행하지 않았다. <<도시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시민들과 같이 버스를 탑니다. 그게 보다 안전하지요.>> 에사리아도가 쓴웃음을 지으며 흘리듯 이야기했다.
또 다른 공격이 있을 경우 이 수비대는 전과 같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2006년에만 인도 정부와 공산주의 반란자들 사이의 싸움에서 749명이 희생되었다. 2007년 1월에서 7월 사이에만도 483명이 목숨을 잃었다.2) 라니 보들리의 상황은 급격히 늘어나는 폭동 앞에서 큰 혼란에 휩싸여 있는 인도의 모습을 요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낙살라이트 게릴라는 1967년 3월에 생겨났다. 당시 낙살바리(Naxalbari) 마을(벵갈 서부)의 농민들이 한 지주의 창고를 공격해 쌀을 빼앗은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다. 이 농민 폭동 이후로 수많은 무장 모택동주의 단체들이 정글과 외딴 농지를 은둔지 삼아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록 군사적인 무장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이 단체들은 마치 산소가 떨어진 화재 현장처럼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들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9월이었다. 게릴라 운동의 두 개 주요 단체들, 즉 중부지역에서 활동하는 ‘민중의 전쟁 그룹’(PWG)와 비하르(Bihar)에서 활동하는 ‘인도 모택동주의 공산 센터’(MCCI)가 모여 인도 모택동주의 공산당을 만든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당이다.
장기적 전략
이후로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인도 전체 28개 주 가운데 처음에는 14개, 이후로 16개 주에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 나갔다. 8월에는 전체 602개 지방 가운에 192개 지방에서 이들이 활동하고 있다. 네팔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서부 해안선을 따라 무려 92,000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붉은 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3) 인도 정부는 게릴라 활동이 구자라트(Gujarat), 라자스탄(Rajasthan),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 자무 카슈미르(Jammu-et-Cachemire) 주 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주요 도시인 캘커타(Calcutta), 뭄바이(Bombay), 아메다바드(Ahmedabad)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게릴라들의 의도에 유의하고 있다.4) 마모한 싱 총리(국민의회 당)는 2006년 4월 주 정부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낙살라이즘은 우리 나라에서 지금껏 일어났던 어떤 사건보다도 더 큰 안보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카슈미르나 북동부에 위치한 몇몇 주들에서 일어난 분리주의 운동과는 달리 낙살라이트 운동은 인도 전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협상을 통한 해결도 불가능해 보인다. 낙살라이트 게릴라들은 진정한 혁명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파텔(Patel)>>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낙살라이트의 고위 책임자인 그는 인도의 한 주요 도시에서 우리와 만났다.5) 이 사람에게 있어서 싱 총리의 담화는 엘리트 층의 실패와 공포를 드러내는 고백에 불과했다. <<우리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정부의 힘이 미미한 주의 농촌 지역을 장악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결집시킨 민중의 힘을 도시로까지 점차적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이것은 일종의 장기적 전략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와 그 영향, 즉 빈곤화와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이 과정이 점차 빨라지고 있습니다.>> 뉴델리에 위치한 ‘갈등조정 위원회’(ICM)장인 아자이 사니(Ajai Sahni)는 이와 같은 활동 양식을 보다 명백히 설명해 주었다. <<모택동주의자들은 한 특정 지역에 모여 사회 상황을 연구했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조직체들을 통해 그들은 몇 가지 요구 사항들을 내세워 대중을 결집시키고 그들의 정치적 의식을 각성시킵니다. 그리고는 가장 확실한 동기가 될 만한 몇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이들을 전투원으로 만들지요. 일단 폭력이 분출되면, 주 정부가 개입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니 소장에 따르면 비밀 정보기관들이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이 조직체들의 검열에 오래 동안 소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오리사(Orissa) 주에서는 이 단체들 중 7개의 활동이 금지되었다.
추정에 따르면 게릴라들은 1만에서 2만 명가량의 전투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물자보급을 담당하는 대원들만 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특히 폭발물 제조에 있어서 스리랑카의 ‘타밀 엘람 해방 타이거’6)단으로부터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텔은 타밀 분리주의자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고 있지 않다고 단언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인도 정부의 주장은 인정했다. 즉 많은 무기들이 살해당한 경찰들로부터 취해지고 있으며, 일부는 수공업자들과 소규모 기업들에서 제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라 곳곳에 방아쇠를 만드는 공장과 개머리판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확실한 장소에서 조합되지요.>> 파텔이 웃으며 말했다. 안드라 프라데시(Andhra Pradesh)의 경찰은 2006년 9월 마드라스(Madras)의 비밀 공장들에서 제조된 875개의 로켓을 보관하고 있던 비밀 무기 저장소를 발견했다.
재정적인 측면에 있어서 모택동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은둔지 근처에 자리 잡은 회사와 상인들로부터 갈취해 내는 <<혁명세>>에 의존하고 있다. <<각자는 수입의 12%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뉴델리에 위치한 ‘옵서버 리서치 파운데이션’(ORF)의 연구원인 라마나(Ramana)씨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세금을 내지 않는 자들의 재산은 방화의 대상이 됩니다. 그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지요.>> 비록 부인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대 산업 그룹들도 분담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티스가르의 한 기자에 따르면 <<몇몇 대기업들은 반란군 지역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공격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라마나는 인도 모택동주의 공산당의 1년 예산이 <<최소한으로 잡아>> 25억 루비(440억 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파텔과 그의 동료들은 승리를 예감하고 있을까? <<옛날에는 그 누구도 모택동주의자들이 네팔을 다스리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이고, 불명예스러운 독재자에 의해 지배되는 산악지대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자신들이 벌이는 무장 투쟁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는 낙살라이트 대원들은 인도 정부의 모든 제도들에 관한 합법성을 부정하고 있다. 파텔의 중개인을 통해 서면으로 질문을 받은 비밀 무장 단체의 사무총장 무팔라 락스만 라오(Muppala Laxman Rao) ?가나파티(Ganapathi)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는 인도의 의회 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의회에 들어간 자들은 단지 여러 압력단체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투표자들이 돈과 술로 매수되고, 선출된 자들은 인종, 종교, 혹은 카스트 제도의 소속 관계를 찬양하는 마당에 무슨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단 말입니까?>>
사실상 인도에서 매표행위는 매우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여러 공동체들 사이의 긴장 관계를 선동하고 있다. 바라티야 자나타 당(BJP, 힌두 민족주의) 소속으로 구자라트 주의 지사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는 2002년 2월에 자행된 반 이슬람 박해에 대한 일정부분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러한 이슬람 혐오증으로 인해 다시 선출될 수 있었다. 한편 카스트 제도의 문제 역시 비극적 프레그넌시로 남아 있다. 2006년 12월에는 캄바라팔리(Kambalapalli) 마을에서 7명의 최하층민들을 산 채로 불에 태운 혐의로 기소된 46명의 사람들이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1억2천5백만 명에 달하는 달리트(dalit, 최하층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권좌에 오른 좌파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반란군들에게 다음과 같은 확신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다. 즉 의회주의는 혁명을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5월 14일 난디그람(Nandigram)에서 <<특별경제구역>>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땅을 빼앗아 가는 일에 반대하여 일어선 농민들의 저항 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4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다. 질서유지 병력은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있어서 공산당 소속 무장 민병대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 주는 30년 전부터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 가나파티는 또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인도가 거둘 수 있는 성공의 한계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나라는 올해에만 9.4%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과시한 바 있다. <<과거의 사치품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필수품들의 목록은 시장에 의해 촉발되는 소비재의 증가와 각종 소비자 운동의 증진을 통해 점점 늘어나고 있지요. 바로 여기에서부터 욕구불만이 점점 커져가는 것입니다.>>
도시마다 각종 상업 센터들이 가득하다. 자동차 보유대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디에서나 휴대전화 벨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인도는 인간 발전 지표와 관련하여 전체 186개국 중 126위에 랭크되어 있다. (중국은 81위이다.) 아직도 4억 명의 인도인들이 하루에 1달러로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들 두 명 중 한 명은 밥을 굶는 처지에 있다.7)
평화로운 캠페인인가 정화 작업인가?
2005년 6월에 살바 주둠(Salwa Judum)이라는 이름의 민병대가 신설되었다. 차티스가르 주 정부는 이 운동을 반란군들을 먹여 살리는 데 진력이 난 주민들의 ‘자발적인 대응’이라고 소개했다. 주민들 스스로 반란군들을 자신들의 마을에서 내쫓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이 운동을 BJP와 야당인 국민의회당 지도자인 마헨드라 카르마(Mahendra Karma)에 의해 조종되는 군대에 준하는 민병대로 보고 있다. 살바 주둠이라는 이름 자체가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드라비다족 원주민 언어인 곤디(gondi)어로 이 말은 <<평화를 위한 캠페인>> 혹은 <<정화 작업>>이라는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살바 주둠이 사실상 정부의 공포정치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단테와다(Dantewada) 지방 (차티스가르 남부에 위치한) 행정 수장인 피스다(Pisda) 씨는 수치에 근거하여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우리 지방에는 1,153개의 마을과 700,000명의 주민들이 있습니다. 그 중 644개의 마을이 텅 비어 버렸습니다. 그곳에 거주하던 53,000명의 주민들이 27개 수용소에 분산 수용되어 있지요. 살바 주둠이 생겨나기 전에는 많은 주민들이 낙살라이트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주민들은 정부의 편에 서 있습니다. 일단 민중의 지지가 사라지게 되면 반란군들을 진압하는 일은 훨씬 쉬워지지요.>>
차티스가르 주는 <<붉은 지대>>의 한 복판에 위치해 있다. 3천 명의 반란군들이 25,000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이 주의 남쪽 지역 주민들 중 80%는 가난하고 대부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디바지(adivasi)8) ‘부족’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 정부가 부패한 공무원들의 전횡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반면, 낙살라이트 단체들이 빈틈을 채우고 들어온 것이다. <<착취당하고 소유를 빼앗긴 아디바지 사람들의 절망감이 공산주의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전형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었다.>> ‘아시아 인권 센터’(ACHR)는 2006년 3월 17일 차티스가르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경찰, 삼림 보호원, 고리대금업자 등에 의해 강제로 돈을 뜯긴 아디바지 농민들과 수렵인들은 게릴라 단체들이 이 훼방꾼들을 쫓아내어 주거나 벌을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또한 비디스(bidis) 담배의 재료로 쓰이는 잎이 가장 좋은 가격에 팔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게릴라 지역 가까이에 있는 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우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낙살라이트 대원들이 이곳에 오기 전에는 경찰들이 우리를 약탈하곤 했지요.>>
게릴라 부대원들이 열을 지어 매우 민첩하게 오가고 있다. 게릴라 단체의 한 분대가 이틀 전 이곳에 도착해 주민들을 한 모임에 <<초대>>한 것이다. 이 지역의 한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곳 청소년들의 20-30%가 <<선택에 의해 혹은 강제로>> 반란군 진영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와 몇몇 공공건물들은 폐허가 되었다. 이 장소들이 민병대의 병영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게릴라들이 폭파시켰기 때문이다. 군사적 목적에 치중한 나머지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스스로 대표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의료인들을 양성했습니다. 하지만 의료인들은 이곳에 남아 우리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게릴라 부대원들과 함께 은둔지로 떠나야 했지요.>> 주민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원해서건 그렇지 않건 간에 아디바지 사람들은 모택동주의자들에게 스스로를 맞추어 나가야만 한다. 1993년에는 70명의 주민들이 반란에 대한 보복 조치로 게릴라들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차티스가르 주는 2년 전부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정부가 취했던 것과 유사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즉 반 게릴라 민병대원들을 양성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전략촌>>으로 이주시키는 것이다. 텅 비어 버린 농촌은 더 이상 반란군들에게 양식을 제공할 수 없게 되었고, 특공대의 작전을 위해 길에 있는 각종 장애물들도 깨끗이 제거되었다. 모택동은 일찍이 게릴라란 <<마치 물 속에 있는 물고기와 같이>> 민중들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차티스가르 경찰의 한 고위 관료는 게릴라 은둔지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못의 물을 말려서 물고기를 질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건 아시아에서건 폭동 진압 작전의 고전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의 결과 차티스가르 주에서만 전체 분쟁의 희생자 중 절반이 발생하고 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으며, 주 정부와 반란군이 서로 민중을 장악하기 위해 싸우는 가운데 인권 유린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략촌들은 철조망과 기관총 초소로 둘러싸여 있다.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주민들이 마을에 계속 머물도록 하기 위해 이 전략촌을 공격의 목표로 삼고 있다. 2006년 7월 그들은 에라보레(Errabore) 수용소를 공격해 31명을 희생시켰다. 그들 중 대부분은 민간인들이었다. 그 결과 수용소들은 더 이상 임시 거처가 아닌 정착지로 변해가고 있다. 정부는 이곳에 주민들을 정착시키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의지의 일환으로 견고한 주택들이 지어지고 있다. 겉으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 뒤에서는 무엇인가를 경계하는 눈치가 엿보인다. 대화와 주고받는 시선에서 일반화된 경계심이 배어나온다. 난민들은 어떤 사람이 지나가느냐에 따라 입을 다물거나 화제를 돌려 버리는 데 익숙한 듯 보인다.
도르나팔(Dornapal) 수용소의 나무 그늘에 앉은 코라파드(Korapad)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슬프고 체념한 듯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먹지 못해 배가 부풀어 오른 한 아이의 모습은 수용소에서의 <<삶의 조건 개선>>을 주장한 피스다 행정관의 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사실 수용소들의 상황은 오래 전부터 지역 및 국제 NGO단체들로부터 <<개탄할 만한>> 상황으로 비판받아왔다. <<마을의 몇몇 가정은 살바 주담 대원이었다>>고 한 마을 원로가 이야기해 주었다. 1980년대부터 게릴라들이 이 촌락을 자주 드나들었으며, 그들이 그다지 나쁜 기억을 남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태도는 민병대의 출현과 함께 바뀌었다. <<반란군들은 우리 모두가 살바 주담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지요. 모든 재산을 마을에 남겨둔 채 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가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앞서 온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12,000루피(210유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너무 늦어서 더 이상 돈이 없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지요.>> 자신들의 땅과 삼림을 떠나 와 무직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현재 하루에 1.10유로를 받고 도로에 자갈을 까는 일을 하고 있다.
두 난민촌 사이에는 황폐함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화재로 소멸된 마을들, 황량한 들판, 동물 시체들이 방치되어 있다. 도로 주변은 매복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수풀이 완전히 제거되어 있다. 잿더미로 변해 버린 한 촌락에서는 한 노파가 홀로 버려진 채 병석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뭔가 할 일을 찾기 위해 다시 돌아온 한 남자가 불에 탄 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수용소로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바 주담 사람들이 우리를 모택동주의자들로 몰아붙였고, 마을에 불을 질러 버렸지요.>>
보다 남쪽에는 에라보레 수용소가 있다. 마을의 유력자이자 살바 주담의 지역 책임자가 된 소얌 비마(Soyam Bhima)는 마을 사람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란군들이 그들을 죽일 겁니다.>> 그의 뒤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커다란 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이 위압적인 자세로 서 있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길에서 전투복을 입은 어린 소녀를 한 명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부르자 이 소녀는 자연스럽게 차려 자세를 취했다. 자브(Jave)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스스로 20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도 15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녀였다. SPO 소속인 그녀는 매달 1,500루피(26유로)를 받고 있었다. 이 앳된 소녀는 아직 한 번도 총을 쏴 본 적이 없었지만, <<테러리스트들을 격퇴하러>>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2년 간 정부 당국은 이주민들 가운데에서 약 4,000명의 보조 경찰 대원을 모집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 SPO 대원들은 라니 볼디의 비극이 보여주는 것처럼 전투에 익숙한 반란군들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포탄막이 신세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NGO단체들에 따르면 이들 보충병들은 보통 광부 출신으로 일자리에 대한 약속에 속아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모집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에는 나이를 속이고 들어온 청소년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13살짜리도 찾아볼 수 있다. 인도는 어린이 병사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9) 이 지방 경찰 국장인 타쿠르 프라풀(Thakur Praful)은 이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자 한 마디로 의혹을 일축해 버렸다. <<출생증명서가 그들이 적어도 18세 이상임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경찰 당국은 돈 몇 푼이면 위조 증명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했다. 한편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최소 16세 이상>> 된 청소년을 게릴라 대원으로 징집하고 있다. ACHR에 따르면 “이중으로 강제 징집된” 비극적인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한 가족의 형제들이 한 명은 게릴라로, 한 명은 SPO 대원으로 징집되는 것이다.
<<반란군들>>을 격퇴하기 위해 시민들을 무장시키는 것은 린치 행위가 정당화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비잘푸르(Bijalpur) 마을에서는 무기 사용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젊은 SPO 대원들이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죽여 보았다>>고 대답했다. <<게릴라 단체는 도시에 공모자들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식별해 낼 것인가? <<보통 그들은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붙잡아 심문을 합니다.>>
이곳에서 매우 가까운 산토슈푸르(Santoshpur)에서는 지난 5월 시신 7구가 발굴되었다. 낙살라이트 대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이들은 질서 유지군과 살바 주담에 의해 살해당한 자들이었다. 나무 그늘 밑에 숨어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는 수용소로 이주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 사람들을 잡아다가 도끼로 내리쳤습니다.>> 이 말은 부검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살바 주담이 수용소로 보낼 사람들을 결정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낙살라이트 단체들에 호의적이었다고 의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한편 국제사면위원회는 낙살라이트 공모자였다는 의혹을 받고 ?정확한 정보 없이? 살해당한 인권 운동가들의 사건을 들어 강력한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또한 NGO단체들은 게릴라들에 의해 수탈 행위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2005년에 표결된 <<차티스가르 특별 공공 안전 법안>>은 사실상 비판의 목소리들을 잠재우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에 다름아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인도 헌법 19조에 위배되는 법안이기도 하다. 이처럼 확인된 학대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해결 방안을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르칸드(Jharkhand)와 안드라 프라데시(Andhra Pradesh) 주에서도 살바 주담을 본뜬 민병대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몇몇 감시단들과 지역 기자들은 차티스가르 주가 마을을 공동화시키는 데에는 낙살라이트 단체들과의 전쟁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산업 프로젝트의 수립을 가속화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비록 이 주의 주민들은 매우 빈곤하다 할지라도, 땅 만큼은 온갖 자원으로 넘쳐나고 있다. 실제로 이 주는 인도 전체에서 철 보유량이 다섯 번째로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아디바지들은 이러한 산업화가 자신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12억 톤의 광석을 생산하는 바이라딜라(Bailadilla) 광산 단지에서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원주민들을 전혀 고용하지 않고 있다. 독립 이후로 수백만 개의 <<부족들>>이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돌아오지 않는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오리사 주의 카링가 나가르(Kalinga Nagar)에서는 아디바지들이 자신들의 땅이 타타(Tata) 그룹에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년동안 길을 봉쇄하기도 했다. 2006년 1월 2일 이들 중 13명이 경찰 병력과의 전투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저항민들의 대변인 역을 맡고 있는 라빈다 자레카르(Ravinda Jarekar)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는 이 황무지와 같은 땅을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이 넘어가고 나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타타 그룹이 우리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차티스가르, 오리사, 자르칸드 주의 산업화를 통해 300억 달러의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10) 하지만 곳곳에서 자신들의 작은 땅을 내어놓지 않으려는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살바 주담이 생겨나고 주민 이주 정책이 강제로 시행되기 시작한 2005년 6월 차티스가르 주는 타타와 에사르(Essar) 그룹과 광산과 제강소 건립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주 정부는 여기에 필요한 땅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협정은 정보의 기밀 유지를 위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바로 이 조항을 들어 정부는 야당 의원들에 대한 협정문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태도는 인도의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2006년 9월에는 두를리(Dhurli)라는 마을 주민들이 경찰들과 살바 주담 지휘관인 카르마(Karma) 씨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에사르 그룹에 자신들의 땅을 양도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산업적 이유들은 정부가 왜 그토록 돈이 많이 드는 난민촌 건설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실제로 난민 수용소들 중 몇몇은 작은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결국 차티스가르의 아디바지들은 강제 이주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영속화된 임시 거주지 속에서 그들이 새로운 경제적 기회나 새롭게 마련된 사회적 관계망과 관련된 자신들의 몫을 찾을 수 있게 되면,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황폐화된 자신들의 작은 땅을 내어 놓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 산업에 치중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위축된 농촌 사회에 의해 저해 받고 있는 인도의 경제 성장은 산업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에 있다. 그런데 종종 전횡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산업화는 많은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또한 총리 본인이 인정하고 있듯이 불공정 행위가 낙살라이트 운동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11) 결국 반란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모호하기까지 한 진압 작전이 아니라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국가의 운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모택동주의를 표방하는 낙살라이트 게릴라들이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놀랍게도 인도 총리인 만모한 싱(Manmohan Singh)에 따르면 이 게릴라 단체들은 독립 이후 <<최대의 안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의 중심에 자리한 차티스가르(Chhattisgarh) 주 당국은 폭력적인 대 게릴라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다.
민병대원들이 농민들을 강제로 수용소로 이주시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산업 재벌들과의 연계를 통해 물질적 이익도 추구하고 있다.
차티스가르 한 복판에 위치한 라니 보들리(Rani Bodli) 초소는 정글의 위압적인 어둠을 마주하고 있다. 초소에 설치된 기관총들이 무성한 삼림 쪽을 겨누고 있다. 2007년 3월 15일, 새벽 경, 수백 명의 모택동주의 게릴라 대원들이 수풀 속에서 나타나 공격을 가해 왔다. 갑작스런 공격에 55명의 경찰들과 보충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단지 12명만이 부상당한 채 목숨을 부지했을 뿐이다. 원병들이 수풀을 헤치고 도달해 그들을 포위상태에서 구해내는 데만도 8시간이 걸렸다.
몇 주 후 소대장 에사리아도(Essaryado)를 만날 수 있었다. 카라슈니코프 자동소총에 팔꿈치를 기대고 망고 나무 그늘에 앉은 그는 이 지역에서 경찰 부대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주위에서는 소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른바 ‘특별 경찰 병력’(SPO)이라고 불리는 보충병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매우 어리고,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대원들이었다. <<이 경찰 초소는 2005년에 지어졌습니다.>> 소대장이 설명했다. 당시 인도 정부는 1980년대 이래로 공산주의 지하무장단체의 은둔지였던 이 정글 통제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순전히 형식적인 통제일 뿐이었다. 매복해 있는 복병들을 두려워한 경찰들은 요새 바깥으로 나가는 모험을 거의 감행하지 않았다. <<도시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시민들과 같이 버스를 탑니다. 그게 보다 안전하지요.>> 에사리아도가 쓴웃음을 지으며 흘리듯 이야기했다.
또 다른 공격이 있을 경우 이 수비대는 전과 같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2006년에만 인도 정부와 공산주의 반란자들 사이의 싸움에서 749명이 희생되었다. 2007년 1월에서 7월 사이에만도 483명이 목숨을 잃었다.2) 라니 보들리의 상황은 급격히 늘어나는 폭동 앞에서 큰 혼란에 휩싸여 있는 인도의 모습을 요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낙살라이트 게릴라는 1967년 3월에 생겨났다. 당시 낙살바리(Naxalbari) 마을(벵갈 서부)의 농민들이 한 지주의 창고를 공격해 쌀을 빼앗은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다. 이 농민 폭동 이후로 수많은 무장 모택동주의 단체들이 정글과 외딴 농지를 은둔지 삼아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록 군사적인 무장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이 단체들은 마치 산소가 떨어진 화재 현장처럼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들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9월이었다. 게릴라 운동의 두 개 주요 단체들, 즉 중부지역에서 활동하는 ‘민중의 전쟁 그룹’(PWG)와 비하르(Bihar)에서 활동하는 ‘인도 모택동주의 공산 센터’(MCCI)가 모여 인도 모택동주의 공산당을 만든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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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지도 |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장기적 전략
이후로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인도 전체 28개 주 가운데 처음에는 14개, 이후로 16개 주에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 나갔다. 8월에는 전체 602개 지방 가운에 192개 지방에서 이들이 활동하고 있다. 네팔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서부 해안선을 따라 무려 92,000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붉은 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3) 인도 정부는 게릴라 활동이 구자라트(Gujarat), 라자스탄(Rajasthan),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 자무 카슈미르(Jammu-et-Cachemire) 주 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주요 도시인 캘커타(Calcutta), 뭄바이(Bombay), 아메다바드(Ahmedabad)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게릴라들의 의도에 유의하고 있다.4) 마모한 싱 총리(국민의회 당)는 2006년 4월 주 정부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낙살라이즘은 우리 나라에서 지금껏 일어났던 어떤 사건보다도 더 큰 안보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카슈미르나 북동부에 위치한 몇몇 주들에서 일어난 분리주의 운동과는 달리 낙살라이트 운동은 인도 전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협상을 통한 해결도 불가능해 보인다. 낙살라이트 게릴라들은 진정한 혁명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파텔(Patel)>>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낙살라이트의 고위 책임자인 그는 인도의 한 주요 도시에서 우리와 만났다.5) 이 사람에게 있어서 싱 총리의 담화는 엘리트 층의 실패와 공포를 드러내는 고백에 불과했다. <<우리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정부의 힘이 미미한 주의 농촌 지역을 장악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결집시킨 민중의 힘을 도시로까지 점차적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이것은 일종의 장기적 전략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와 그 영향, 즉 빈곤화와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이 과정이 점차 빨라지고 있습니다.>> 뉴델리에 위치한 ‘갈등조정 위원회’(ICM)장인 아자이 사니(Ajai Sahni)는 이와 같은 활동 양식을 보다 명백히 설명해 주었다. <<모택동주의자들은 한 특정 지역에 모여 사회 상황을 연구했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조직체들을 통해 그들은 몇 가지 요구 사항들을 내세워 대중을 결집시키고 그들의 정치적 의식을 각성시킵니다. 그리고는 가장 확실한 동기가 될 만한 몇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이들을 전투원으로 만들지요. 일단 폭력이 분출되면, 주 정부가 개입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니 소장에 따르면 비밀 정보기관들이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이 조직체들의 검열에 오래 동안 소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오리사(Orissa) 주에서는 이 단체들 중 7개의 활동이 금지되었다.
추정에 따르면 게릴라들은 1만에서 2만 명가량의 전투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물자보급을 담당하는 대원들만 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특히 폭발물 제조에 있어서 스리랑카의 ‘타밀 엘람 해방 타이거’6)단으로부터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텔은 타밀 분리주의자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고 있지 않다고 단언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인도 정부의 주장은 인정했다. 즉 많은 무기들이 살해당한 경찰들로부터 취해지고 있으며, 일부는 수공업자들과 소규모 기업들에서 제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라 곳곳에 방아쇠를 만드는 공장과 개머리판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확실한 장소에서 조합되지요.>> 파텔이 웃으며 말했다. 안드라 프라데시(Andhra Pradesh)의 경찰은 2006년 9월 마드라스(Madras)의 비밀 공장들에서 제조된 875개의 로켓을 보관하고 있던 비밀 무기 저장소를 발견했다.
재정적인 측면에 있어서 모택동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은둔지 근처에 자리 잡은 회사와 상인들로부터 갈취해 내는 <<혁명세>>에 의존하고 있다. <<각자는 수입의 12%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뉴델리에 위치한 ‘옵서버 리서치 파운데이션’(ORF)의 연구원인 라마나(Ramana)씨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세금을 내지 않는 자들의 재산은 방화의 대상이 됩니다. 그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지요.>> 비록 부인하고 있기는 하지만 거대 산업 그룹들도 분담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티스가르의 한 기자에 따르면 <<몇몇 대기업들은 반란군 지역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공격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라마나는 인도 모택동주의 공산당의 1년 예산이 <<최소한으로 잡아>> 25억 루비(440억 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파텔과 그의 동료들은 승리를 예감하고 있을까? <<옛날에는 그 누구도 모택동주의자들이 네팔을 다스리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이고, 불명예스러운 독재자에 의해 지배되는 산악지대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자신들이 벌이는 무장 투쟁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는 낙살라이트 대원들은 인도 정부의 모든 제도들에 관한 합법성을 부정하고 있다. 파텔의 중개인을 통해 서면으로 질문을 받은 비밀 무장 단체의 사무총장 무팔라 락스만 라오(Muppala Laxman Rao) ?가나파티(Ganapathi)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는 인도의 의회 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의회에 들어간 자들은 단지 여러 압력단체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투표자들이 돈과 술로 매수되고, 선출된 자들은 인종, 종교, 혹은 카스트 제도의 소속 관계를 찬양하는 마당에 무슨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단 말입니까?>>
사실상 인도에서 매표행위는 매우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여러 공동체들 사이의 긴장 관계를 선동하고 있다. 바라티야 자나타 당(BJP, 힌두 민족주의) 소속으로 구자라트 주의 지사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는 2002년 2월에 자행된 반 이슬람 박해에 대한 일정부분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러한 이슬람 혐오증으로 인해 다시 선출될 수 있었다. 한편 카스트 제도의 문제 역시 비극적 프레그넌시로 남아 있다. 2006년 12월에는 캄바라팔리(Kambalapalli) 마을에서 7명의 최하층민들을 산 채로 불에 태운 혐의로 기소된 46명의 사람들이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1억2천5백만 명에 달하는 달리트(dalit, 최하층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권좌에 오른 좌파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반란군들에게 다음과 같은 확신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다. 즉 의회주의는 혁명을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5월 14일 난디그람(Nandigram)에서 <<특별경제구역>>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땅을 빼앗아 가는 일에 반대하여 일어선 농민들의 저항 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4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다. 질서유지 병력은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있어서 공산당 소속 무장 민병대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 주는 30년 전부터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 가나파티는 또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인도가 거둘 수 있는 성공의 한계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나라는 올해에만 9.4%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과시한 바 있다. <<과거의 사치품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필수품들의 목록은 시장에 의해 촉발되는 소비재의 증가와 각종 소비자 운동의 증진을 통해 점점 늘어나고 있지요. 바로 여기에서부터 욕구불만이 점점 커져가는 것입니다.>>
도시마다 각종 상업 센터들이 가득하다. 자동차 보유대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디에서나 휴대전화 벨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인도는 인간 발전 지표와 관련하여 전체 186개국 중 126위에 랭크되어 있다. (중국은 81위이다.) 아직도 4억 명의 인도인들이 하루에 1달러로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들 두 명 중 한 명은 밥을 굶는 처지에 있다.7)
평화로운 캠페인인가 정화 작업인가?
2005년 6월에 살바 주둠(Salwa Judum)이라는 이름의 민병대가 신설되었다. 차티스가르 주 정부는 이 운동을 반란군들을 먹여 살리는 데 진력이 난 주민들의 ‘자발적인 대응’이라고 소개했다. 주민들 스스로 반란군들을 자신들의 마을에서 내쫓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이 운동을 BJP와 야당인 국민의회당 지도자인 마헨드라 카르마(Mahendra Karma)에 의해 조종되는 군대에 준하는 민병대로 보고 있다. 살바 주둠이라는 이름 자체가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드라비다족 원주민 언어인 곤디(gondi)어로 이 말은 <<평화를 위한 캠페인>> 혹은 <<정화 작업>>이라는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살바 주둠이 사실상 정부의 공포정치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단테와다(Dantewada) 지방 (차티스가르 남부에 위치한) 행정 수장인 피스다(Pisda) 씨는 수치에 근거하여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우리 지방에는 1,153개의 마을과 700,000명의 주민들이 있습니다. 그 중 644개의 마을이 텅 비어 버렸습니다. 그곳에 거주하던 53,000명의 주민들이 27개 수용소에 분산 수용되어 있지요. 살바 주둠이 생겨나기 전에는 많은 주민들이 낙살라이트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주민들은 정부의 편에 서 있습니다. 일단 민중의 지지가 사라지게 되면 반란군들을 진압하는 일은 훨씬 쉬워지지요.>>
차티스가르 주는 <<붉은 지대>>의 한 복판에 위치해 있다. 3천 명의 반란군들이 25,000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이 주의 남쪽 지역 주민들 중 80%는 가난하고 대부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디바지(adivasi)8) ‘부족’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 정부가 부패한 공무원들의 전횡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반면, 낙살라이트 단체들이 빈틈을 채우고 들어온 것이다. <<착취당하고 소유를 빼앗긴 아디바지 사람들의 절망감이 공산주의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전형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었다.>> ‘아시아 인권 센터’(ACHR)는 2006년 3월 17일 차티스가르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경찰, 삼림 보호원, 고리대금업자 등에 의해 강제로 돈을 뜯긴 아디바지 농민들과 수렵인들은 게릴라 단체들이 이 훼방꾼들을 쫓아내어 주거나 벌을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또한 비디스(bidis) 담배의 재료로 쓰이는 잎이 가장 좋은 가격에 팔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게릴라 지역 가까이에 있는 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우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낙살라이트 대원들이 이곳에 오기 전에는 경찰들이 우리를 약탈하곤 했지요.>>
게릴라 부대원들이 열을 지어 매우 민첩하게 오가고 있다. 게릴라 단체의 한 분대가 이틀 전 이곳에 도착해 주민들을 한 모임에 <<초대>>한 것이다. 이 지역의 한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곳 청소년들의 20-30%가 <<선택에 의해 혹은 강제로>> 반란군 진영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와 몇몇 공공건물들은 폐허가 되었다. 이 장소들이 민병대의 병영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게릴라들이 폭파시켰기 때문이다. 군사적 목적에 치중한 나머지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스스로 대표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의료인들을 양성했습니다. 하지만 의료인들은 이곳에 남아 우리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게릴라 부대원들과 함께 은둔지로 떠나야 했지요.>> 주민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원해서건 그렇지 않건 간에 아디바지 사람들은 모택동주의자들에게 스스로를 맞추어 나가야만 한다. 1993년에는 70명의 주민들이 반란에 대한 보복 조치로 게릴라들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차티스가르 주는 2년 전부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정부가 취했던 것과 유사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즉 반 게릴라 민병대원들을 양성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전략촌>>으로 이주시키는 것이다. 텅 비어 버린 농촌은 더 이상 반란군들에게 양식을 제공할 수 없게 되었고, 특공대의 작전을 위해 길에 있는 각종 장애물들도 깨끗이 제거되었다. 모택동은 일찍이 게릴라란 <<마치 물 속에 있는 물고기와 같이>> 민중들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차티스가르 경찰의 한 고위 관료는 게릴라 은둔지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못의 물을 말려서 물고기를 질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건 아시아에서건 폭동 진압 작전의 고전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의 결과 차티스가르 주에서만 전체 분쟁의 희생자 중 절반이 발생하고 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으며, 주 정부와 반란군이 서로 민중을 장악하기 위해 싸우는 가운데 인권 유린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략촌들은 철조망과 기관총 초소로 둘러싸여 있다.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주민들이 마을에 계속 머물도록 하기 위해 이 전략촌을 공격의 목표로 삼고 있다. 2006년 7월 그들은 에라보레(Errabore) 수용소를 공격해 31명을 희생시켰다. 그들 중 대부분은 민간인들이었다. 그 결과 수용소들은 더 이상 임시 거처가 아닌 정착지로 변해가고 있다. 정부는 이곳에 주민들을 정착시키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의지의 일환으로 견고한 주택들이 지어지고 있다. 겉으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는 주민들의 얼굴 뒤에서는 무엇인가를 경계하는 눈치가 엿보인다. 대화와 주고받는 시선에서 일반화된 경계심이 배어나온다. 난민들은 어떤 사람이 지나가느냐에 따라 입을 다물거나 화제를 돌려 버리는 데 익숙한 듯 보인다.
도르나팔(Dornapal) 수용소의 나무 그늘에 앉은 코라파드(Korapad)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슬프고 체념한 듯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먹지 못해 배가 부풀어 오른 한 아이의 모습은 수용소에서의 <<삶의 조건 개선>>을 주장한 피스다 행정관의 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사실 수용소들의 상황은 오래 전부터 지역 및 국제 NGO단체들로부터 <<개탄할 만한>> 상황으로 비판받아왔다. <<마을의 몇몇 가정은 살바 주담 대원이었다>>고 한 마을 원로가 이야기해 주었다. 1980년대부터 게릴라들이 이 촌락을 자주 드나들었으며, 그들이 그다지 나쁜 기억을 남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태도는 민병대의 출현과 함께 바뀌었다. <<반란군들은 우리 모두가 살바 주담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지요. 모든 재산을 마을에 남겨둔 채 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가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앞서 온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12,000루피(210유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너무 늦어서 더 이상 돈이 없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지요.>> 자신들의 땅과 삼림을 떠나 와 무직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현재 하루에 1.10유로를 받고 도로에 자갈을 까는 일을 하고 있다.
두 난민촌 사이에는 황폐함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화재로 소멸된 마을들, 황량한 들판, 동물 시체들이 방치되어 있다. 도로 주변은 매복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수풀이 완전히 제거되어 있다. 잿더미로 변해 버린 한 촌락에서는 한 노파가 홀로 버려진 채 병석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뭔가 할 일을 찾기 위해 다시 돌아온 한 남자가 불에 탄 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수용소로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바 주담 사람들이 우리를 모택동주의자들로 몰아붙였고, 마을에 불을 질러 버렸지요.>>
보다 남쪽에는 에라보레 수용소가 있다. 마을의 유력자이자 살바 주담의 지역 책임자가 된 소얌 비마(Soyam Bhima)는 마을 사람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란군들이 그들을 죽일 겁니다.>> 그의 뒤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커다란 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이 위압적인 자세로 서 있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길에서 전투복을 입은 어린 소녀를 한 명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부르자 이 소녀는 자연스럽게 차려 자세를 취했다. 자브(Jave)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스스로 20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도 15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녀였다. SPO 소속인 그녀는 매달 1,500루피(26유로)를 받고 있었다. 이 앳된 소녀는 아직 한 번도 총을 쏴 본 적이 없었지만, <<테러리스트들을 격퇴하러>>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2년 간 정부 당국은 이주민들 가운데에서 약 4,000명의 보조 경찰 대원을 모집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 SPO 대원들은 라니 볼디의 비극이 보여주는 것처럼 전투에 익숙한 반란군들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포탄막이 신세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NGO단체들에 따르면 이들 보충병들은 보통 광부 출신으로 일자리에 대한 약속에 속아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모집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에는 나이를 속이고 들어온 청소년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13살짜리도 찾아볼 수 있다. 인도는 어린이 병사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9) 이 지방 경찰 국장인 타쿠르 프라풀(Thakur Praful)은 이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자 한 마디로 의혹을 일축해 버렸다. <<출생증명서가 그들이 적어도 18세 이상임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경찰 당국은 돈 몇 푼이면 위조 증명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했다. 한편 낙살라이트 단체들은 <<최소 16세 이상>> 된 청소년을 게릴라 대원으로 징집하고 있다. ACHR에 따르면 “이중으로 강제 징집된” 비극적인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한 가족의 형제들이 한 명은 게릴라로, 한 명은 SPO 대원으로 징집되는 것이다.
<<반란군들>>을 격퇴하기 위해 시민들을 무장시키는 것은 린치 행위가 정당화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비잘푸르(Bijalpur) 마을에서는 무기 사용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젊은 SPO 대원들이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죽여 보았다>>고 대답했다. <<게릴라 단체는 도시에 공모자들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식별해 낼 것인가? <<보통 그들은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붙잡아 심문을 합니다.>>
이곳에서 매우 가까운 산토슈푸르(Santoshpur)에서는 지난 5월 시신 7구가 발굴되었다. 낙살라이트 대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이들은 질서 유지군과 살바 주담에 의해 살해당한 자들이었다. 나무 그늘 밑에 숨어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는 수용소로 이주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 사람들을 잡아다가 도끼로 내리쳤습니다.>> 이 말은 부검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살바 주담이 수용소로 보낼 사람들을 결정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낙살라이트 단체들에 호의적이었다고 의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한편 국제사면위원회는 낙살라이트 공모자였다는 의혹을 받고 ?정확한 정보 없이? 살해당한 인권 운동가들의 사건을 들어 강력한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또한 NGO단체들은 게릴라들에 의해 수탈 행위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2005년에 표결된 <<차티스가르 특별 공공 안전 법안>>은 사실상 비판의 목소리들을 잠재우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에 다름아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인도 헌법 19조에 위배되는 법안이기도 하다. 이처럼 확인된 학대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해결 방안을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르칸드(Jharkhand)와 안드라 프라데시(Andhra Pradesh) 주에서도 살바 주담을 본뜬 민병대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몇몇 감시단들과 지역 기자들은 차티스가르 주가 마을을 공동화시키는 데에는 낙살라이트 단체들과의 전쟁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산업 프로젝트의 수립을 가속화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비록 이 주의 주민들은 매우 빈곤하다 할지라도, 땅 만큼은 온갖 자원으로 넘쳐나고 있다. 실제로 이 주는 인도 전체에서 철 보유량이 다섯 번째로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아디바지들은 이러한 산업화가 자신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12억 톤의 광석을 생산하는 바이라딜라(Bailadilla) 광산 단지에서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원주민들을 전혀 고용하지 않고 있다. 독립 이후로 수백만 개의 <<부족들>>이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돌아오지 않는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오리사 주의 카링가 나가르(Kalinga Nagar)에서는 아디바지들이 자신들의 땅이 타타(Tata) 그룹에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년동안 길을 봉쇄하기도 했다. 2006년 1월 2일 이들 중 13명이 경찰 병력과의 전투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저항민들의 대변인 역을 맡고 있는 라빈다 자레카르(Ravinda Jarekar)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는 이 황무지와 같은 땅을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이 넘어가고 나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타타 그룹이 우리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차티스가르, 오리사, 자르칸드 주의 산업화를 통해 300억 달러의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10) 하지만 곳곳에서 자신들의 작은 땅을 내어놓지 않으려는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살바 주담이 생겨나고 주민 이주 정책이 강제로 시행되기 시작한 2005년 6월 차티스가르 주는 타타와 에사르(Essar) 그룹과 광산과 제강소 건립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주 정부는 여기에 필요한 땅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협정은 정보의 기밀 유지를 위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바로 이 조항을 들어 정부는 야당 의원들에 대한 협정문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태도는 인도의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2006년 9월에는 두를리(Dhurli)라는 마을 주민들이 경찰들과 살바 주담 지휘관인 카르마(Karma) 씨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에사르 그룹에 자신들의 땅을 양도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산업적 이유들은 정부가 왜 그토록 돈이 많이 드는 난민촌 건설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실제로 난민 수용소들 중 몇몇은 작은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결국 차티스가르의 아디바지들은 강제 이주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영속화된 임시 거주지 속에서 그들이 새로운 경제적 기회나 새롭게 마련된 사회적 관계망과 관련된 자신들의 몫을 찾을 수 있게 되면,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황폐화된 자신들의 작은 땅을 내어 놓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 산업에 치중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위축된 농촌 사회에 의해 저해 받고 있는 인도의 경제 성장은 산업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에 있다. 그런데 종종 전횡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산업화는 많은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또한 총리 본인이 인정하고 있듯이 불공정 행위가 낙살라이트 운동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11) 결국 반란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모호하기까지 한 진압 작전이 아니라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국가의 운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기사입력 : 2008-03-19 18:51:12
최종편집 : 2008-03-20 08:58:55
최종편집 : 2008-03-20 08: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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