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기업을 ‘회수한다’
노동자들의 기업회수 현상은 특히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도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파산한 기업을 회수해 다시 살리고 있다. 노동자들의 실업자로 전락하는는 것보다 기업을 협동조합의 형태로 탈바꿈시켜 다시 살리는 것을 선호한다. 유럽연합 각국 정부들은 고용 유지나 창출에 있어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이 노동자들을 도와주지 않는단 말인가?
“우리 회사가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회사가 협동조합이기 때문입니다!” 퇴직을 앞두고 있는 밀링머신 노동자, 살바도르 볼란스씨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협동조합’이라는 구시대적 단어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볼란스씨가 동료노동자들과 함께 부품회사 하나를 ‘다시 살렸기’ 때문이다. 때는 1981년, 바르셀로나, 임금이 밀리기 시작하더니 사주가 잠적했다. 분노에 찬 30여명의 노동자들은 남아있던 원자재를 사용해 기계를 계속 돌리고, 고객들에게 대금을 직접 자신들에게 지불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이 회사가 부품을 납품하던 메이저 자동차회사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새로운 차체라인을 구축하는데 최소한 1년은 걸렸었죠!” 볼란스씨가 웃으면서 덧붙였다.
볼란스씨와 동료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회사에 나온 사주아들을 가둬놓고 협상안에 서명하도록 시킨 것이다. 그런 다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상사법원에 회사인수계획을 제출했다. 상사법원은 회사의 기계들이 채무상환 명목으로 노동자들에게 귀속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자들은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간부의 직무를 책임감 있게 수행했다. 3년 동안 모든 노동자들이 밤낮없이 일했고, 낮은 임금을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에 대해 볼란스씨는 이렇게 지적한다. “처음에는 간부가 하는 일까지 하다 보니 일이 더 힘들었죠. 그래도 어쨌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어딥니까?”
오늘날 볼란스씨의 몰-마트릭 카탈루냐 협동조합은 바르베라 델 발르 산업단지에서 5천 평방미터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 5백만 유로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또한 현재 45명의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노동자들 중 관리자로 선출된 사람에게는 다른 노동자들의 3배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한다. 조합원들은 백만 유로가 넘는 돈을 기계구입에 투자하여 스페인의 자동차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동유럽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에 맞서고 있으며, 화물 기차 차체와 풍력발전기 생산으로 사업 분야를 다변화하고 있다. “회사가 구제된 이후 우리는 이윤이 생기면 분배하지 않고 투자를 위해 사내유보금으로 돌렸죠.” 블란스씨의 설명이다. 볼란스씨는 인수자가 자기 주머니만 채우면 결국 회사는 또다시 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몰-마트릭 카탈루냐 협동조합 외에도 노동자들이 도산기업을 직접 인수한 경우는 매우 많다. 특히 노동자들의 도산기업 인수는 강력한 노동운동의 맥락에서 진행되었고, 덕분에 1980년대 초 최소한 3만 8천 500개의 일자리가 회복되었다. 이렇게 되찾은 일자리 중 6천개는 바스크 지방에서, 7천개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재창출된 것이다.(1) 이에 대해 바르셀로나 대학 경제학과의 이자벨 비달 마르티네즈 교수는 “노동자들의 도산기업인수 운동은 1978년, 노동자 500명의 정치성이 매우 강한 회사들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며, 이후 “조금씩 스페인 전체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2001년 경제위기 이후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이 보여준 창조성도 이 같은 노동자들의 도산기업 인수현상과 일맥상통한다.(2) 공공경매장에서 회사의 청산인들에 맞서 스페인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소유권을 보장하라”고 외쳤고, 20년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시위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똑같은 구호를 외쳤다. 스페인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인정하고 정부가 노동자들의 기업참여를 촉진하고 생산수단 소유권에 대한 접근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1978년 스페인 헌법을 무기로 정부를 압박했다.(3)
당시 스페인은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다. 1975년부터 1985년까지, 스페인에서 무려 80만 개 이상의 산업일자리가 사라졌다. 특히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진출해있던 카탈루냐 지방은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웠던 지역에서 실업률이 20%에 육박하는 지역으로 변했다. 한편으로 기업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해고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용주의’적 성향의 노동자들은 가능하다면 사주나 투자자들과 협력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기업을 되살리기 위해 각자 돈을 출자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돈을 출자한 사람이 회사경영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체제를 정비했지요.” 페드로 조르주 피그씨의 설명이다. 피그씨와 다른 30여명의 트럭운전수들은 몰-마트릭이 노동자들에 의해 인수된 바로 그해, 마찬가지로 바르베라 엘 발르에 위치한 ‘유니옹 데 치스테르나’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이들은 협동조합형 기업보다 당시 노동운동이 주장했던 이른바 ‘우리사주’의 독특한 형태인, 노동자주식회사, 즉, SAL을 선호했다.
SAL이 협동조합과 다른 점은 SAL은 인적구성체가 아니라 자본구성체라는 것이다. 이사회 선거시 행사할 수 있는 투표권은 지분참여율에 비례한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의 경우, SAL의 원칙은 협동조합의 원칙과 비슷하다. 비록 외부인도 SAL의 주주가 될 수 있지만 어쨌든 노동자들이 대주주인 것은 변함이 없으며, 아무도 3분의 1 이상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더구나 SAL 출자자들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예비기금을 구성해야할 의무가 있다.
유니옹 데 치스테르나의 노동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회사의 주력분야를 화학제품 수입에서 재활용 산업유의 저장과 운송으로 조금씩 바꿔갔다. 그 결과, 26년이 지난 오늘날, S유니옹 데 치스테르나는 23명의 노동자겸 출자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3백만 유로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어려웠던 과거에 대해 피그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야 은행에서 너도 나도 우리회사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고객, 법원, 금융, 정부 등 그야말로 모두가 우리에게 적대적이었죠.” 또한 피그씨는 카탈루냐 노동자회사연맹(FESALC) 위원장으로서 기업회생협정의 테두리 내에서 SAL들이 물려받은 채무탕감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관련조치를 취한 것은 2006년 말이었다.
피구씨와 볼란스씨는 어떻게 보면 운이 없었다. 피구씨와 볼란스씨는 기업회수운동의 선구자들이지만 1985년 스페인 정부가 발표한 중요지원조치인 ‘단일수당’법의 혜택을 입지 못했다. 이 조치는 실업자가 수령할 수 있는, 평균 8천 유로에서 일만 유로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총액을 미리 지급하는 것이다. 실업수당 선지급의 조건은 수령자가 지급받은 실업수당을 협동조합이나 노동자회사, 나아가 자기회사 자본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같은 ‘실업수당의 자본 환원’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 투자의 주요원천이었다. 바로 이 실업수당 선지급 시스템과 SAL의 법적 지위상 유연성 덕분에, 스페인 경제의 제3부문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비록 스페인의 유럽공동시장 가입이후 SAL 수의 증가추세가 둔화되었지만 말이다. FESALC의 관리책임자 마뉴엘 루비오씨는 “스페인 정부는 기업 규준을 유럽연합의 기준에 맞춰야만했고, 1989년부터 주식회사를 창립하려면, 따라서 노동자주식회사(SAL)를 창립하려면 6만 유로가 넘는 자본금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6만 유로를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노동운동으로 탄생한 ‘우리사주’의 독특한 모델
1997년 자본금 3천 5달러의 유한책임 노동자회사(SLL)의 창립을 허가하는 법이 통과된 후 노동자 참여형 기업의 수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1997년 이후, SLL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자치지역에서 증가세가 뚜렷하다. 스페인에는 현재 2만 5천 667개의 협동조합, 2천 484개의 SAL, 만 7천 666개의 SLL이 활동하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의 수로 볼 때, 유럽연합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SLL은 평균 3명의 노동자 겸 출자자로 구성되고 자본은 대부분 가족자본으로 그중 40%를 여성이 보유하고 있는, 서비스 부문의 소기업들이다. “그야말로 근사한 변화지요. 전에는 남자가 자본을 보유하고 일도 했었죠.” 비달 마르티네즈 교수의 말이다.
이런 사회적 기업들의 3년 생존율은 67%에 달한다. 이제는 도산기업을 인수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 경제가 성장세를 회복했고, 도산도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단적인 자가고용 운동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자가고용운동은 코세타(COCETA)와 콘페살(CONFESAL)이라는 스페인 협동조합총연맹과 노동자회사총연맹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분야이다. 이에 대해 비달 마르티네즈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스페인의 사회적 기업들은 가차 없고 냉정한 시장에서는 그저 미미한 존재일 뿐이죠. 사회적 기업들은 활동부문별로 더 잘 맞는 직업교육과 컨소시엄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들은 충분히 생존력이 있어요. 이들에게는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이윤을 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니까요. 더구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는 건 실업수당 수급자가 아니라 기업가가 되는 것이니까요.”
프랑스 역시 실업자들의 창립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도산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른바 실업자 창립지원제(ACREE)가 그것이다. 파트릭 르낭케르 생산협동조합회사(SCOP) 총연맹 위원장은 “1980년대와 90년대, 바로 이 제도 덕분에 많은 수의 기업들이 회생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ACREE는 1979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집권 당시 도입된 이후, 미테랑 대통령 임기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지원했지만, 계속 잘못 운영되어왔다.
1995년, 알랭 쥐페 정부는 ACREE의 수혜대상을 장기실업자와 최저소득보조금(RMI) 수령자들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도산기업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1996년 쥐페 정부의 장-피에르 라파랭 무역장관은 ACREE 보조금을 사회보장 분담금의 일시적 면제로 전환함으로써 아예 ACREE 보조금을 폐지했다. 2년 후, 기업창립이 줄어들자, 리오넬 조스팽 정부는 신기업개발지원제(EDEN)를 도입했다. EDEN은 기업창립 지원을 목적으로 5년 만기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 새로운 ACREE는 이렇게 다시 보조금이 되었으나 2001년 이번에는 총리가 된 라파랭이 EDEN을 단기 유이자 대출로 바꿔버렸다.
스페인의 ‘단일수당’제는 노동자들의 권리로서 도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금회수를 하지 않았다. 반면에 프랑스의 ACREE나 EDEN은 지속되지도 못했고, 실효성도 없었다. 파트릭 르낭케르 위원장은 “문제는 5천 유로를 실업수당으로 지급하는 것보다 SCOP 창립 지원금으로 지출하는 것이 정부에게는 훨씬 유리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부루노 로엘랑 생산협동조합 유럽총동맹(CECOP) 사무총장도 “역대 스페인 정부가 ‘단일수당’제를 폐지하지 않은 이유는 단일수당제가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에서 정부가 노동자들의 기업인수를 지원했던 것도 노동자들의 기업인수가 경제성장과 사회평화에 기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사실 각국 정부는 민주주의나 노동자들의 기업참여에는 거의 관심도 없어요. 유럽연합은 더더구나 이런 면에는 관심이 없죠!”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유럽연합은 협동조합형태의 기업회생을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억제하기까지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1970년대부터 스페인과 비슷한 맥락에서 협동조합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1970년대 말까지, 매년 25개 기업이 노동자들에 의해 인수되었다. 특히 금속 및 섬유 부문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이탈리아의 산업부 장관 지오바니 마르코라는 1985년 마르코라 법을 공표하였다. 법이 통과되기까지 이탈리아 3대 협동조합 및 노동조합 연맹의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마르코라법은 기업을 인수하거나 실업을 면하기 위해 새로운 협동조합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해고노동자들에게 인수 및 설립자금을 지원해주는 법이었다. 마르코라법에 따라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일종의 모험자본 회사인 산업금융회사(CFI)가 설립되었다. CFI는 협동조합에 조합원 출자자본의 3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지원하였고,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저축한 돈이나 3년에서 5년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을 선지급받아 출자금을 마련했다.
이 시스템 덕분에, 특히 마르케 및 에밀리-로마뉴 산업지대에서 노동자들이 인수한 59개 회사가 10년 동안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5천개 이상의 일자리가 재창출될 수 있었다. 알베르토 제비 CFI 이사는 “CFI의 재정지원을 받은 협동조합 중 약 3분의 1은 몇 년 후 문을 닫았으며, 3분의 1은 여전히 CF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이미 CFI의 지분을 인수했다”며, “CFI가 부담한 돈은 점차 다른 협동조합의 자본에 재투자되었다”고 설명한다. 제비 이사에 따르면, CFI 시스템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는 일자리 1개를 구제, 또는 창출하기위해 국가가 지출하는 돈보다 평균 3배나 적게 지출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4)
그런데 1997년, 마르코라법은 5년 동안 실행이 정지되었다. 유럽 집행위원회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마르코라법과 공동시장법의 양립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들며, 마르코라법은 고용지원에 대한 집행위원회 가이드라인도, 도산기업 구조조정 지원 지침도 준수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지원을 목표삼아 이 같은 ‘의심’을 표현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 옹호자들의 전통적인 공격방법에 속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역시 광범위하게 보조금을 지급받지 않았던가? 프랑스에서 현 MEDEF의 전신인 프랑스 경영자위원회(CNPF)는 이미 1985년부터 생산협동조합회사의 존재에 문제를 제기했다. “생산협동조합회사 운동의 확대는 경쟁부문 기업들의 엄청난 주의를 요한다. 왜냐하면 생산협동조합회사는 이중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경쟁기업의 활동과 경쟁력을 위협한다. 둘째, 국가의 경제성과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5)
같은 맥락에서 2002년, MEDEF는 사회적 경제에 속하는 기업들에 대한 논쟁을 재개했다. MEDEF에 따르면, 사회적 경제의 기업들은 정부의 보조금혜택이나 세금면제 혜택을 등에 업고, 시장경제 부문의 기업들과 경쟁할 것이다.(6) 2001년 이탈리아 의회가 마르코라법을 개정한 것도, 유럽연합이 제기한 이른바 ‘비신사적 경쟁’ 주장 때문이었다. “마르코라법 개정 이후, CFI는 여전히 대출을 제공하고, 자본출자를 하지만, 노동자들의 출자자금에 해당하는 자본만 출자할 수 있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자본은 3배가 아니라 2배로 증가할 뿐이다.” 알베르토 제비 이사의 설명이다. 새로운 자금은 Socoden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협동조합운동과 유사한 출자자협동조합의 참여시스템을 통해 확보된다.
“돈만이 성과를 내는 건 아니죠. 인간관계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2003년 이후, 약 30여개의 협동조합만이 CFI를 통한 재정지원을 받았고, 그중 10여개는 노동자들이 인수한 회사들이었다. 물론 이탈리아의 현재 경제상황이 1980년대보다 안정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제비 이사는 기업회생 수의 급감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몇몇 부문의 위기는 너무도 심각해서 도산기업 회생이 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세계화와 기업회생은 양립하지 않는다. 기업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기업 외부에서 정의된 전략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제 이 기업의 몇몇 하도급 업체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도미노 현상이다. 세계화의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 중에, 고유한 노하우를 보유하고 그 노하우를 ‘틈새’ 시장에 활용할 수 있는 기업만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지사 공장을 인수하려는 해고노동자들은 때로 특허권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칼레의 ‘프티뤼(P'tit Lu)’ 공장, 아를레의 ‘뤼스튀크뤼(Lustucru)’ 공장이 대표적 예이다. 칼레의 프티 뤼 공장은 다논 그룹의 레시피를 사용할 수 없었고, 아를레의 뤼스튀크뤼 노동자들은 판자니 그룹의 기계매각 거부에 맞서야했다.
또 다른 더욱 일반적인 가능성은 거대 산업그룹에서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잠재성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생산단위를 폐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이나캐스트 인터내셔널의 시프리오-다제르그 알루미늄 제련소가 바로 이런 이유로 폐쇄되었다. 1993년 건설된 이 공장은 신벤 투자기금이 인수했고, 신벤 투자기금은 공장의 유동자산을 전부 소비한 후, 2004년 이탈리아 그룹 캄피수사의 계열사인 밸브제조회사 LCN에 공장을 매각했다.
2005년 1월, 제련소의 76명의 노동자들 중 절반은 생산협동조합회사의 형태로 기업 활동을 계속하는데 성공했다. 회사명은 프레시알 캐스팅으로 정했다. 우선 고객들로부터 계속 거래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협동조합 대출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상업은행들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출은 어려웠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연구소의 발전을 목표로 삼고, 시장점유율 악화로 약화된 프로젝트를 구제하기위해 싸웠다. “먼 거리에 있는 주주들에게 성과를 내는 건 돈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어요. 인간관계도 중요하다는 걸 말이죠.” 생산관리 책임자인 부뤼노 상쉐의 말이다.
또한 중소기업 도산이 반드시 시장점유율 하락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 개인의 파산이나 회사재산 유용이 원인일 수 있다. 경제학자 앤토니 젠슨은 영국 도산기업의 약 50%는 도산을 피할 수도 있었다고 평가한다. “기업회생 덕분에, 우리는 노동자들의 비즈니스 이해능력과 벤처자본가가 보지 못하는 잠재성을 보는 능력을 점점 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7)
젠슨은 노동자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 도산처리 실무가 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젠슨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은행보다 우선채권자가 아니라는 것도, 노동자들이 채권자회의와 협상테이블에서 배제되는 것도 비논리적이다. 젠슨은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적 요구에 동조하면서, 기업 인수 노동자들에게 선매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경우, 상사법원은 이론적으로는 인수 프로젝트의 경제적 타당성과 구제되는 일자리 수에 따라 인수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판결에서 노동자들의 기업인수라는 사회적 의의는 자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법원이 ‘경험’ 있는 자본주의적 인수자에 비해 신설 협동조합은 지속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상사법원이 해고노동자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상사법원이 기업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도산위기에 처한 기업을 관리하기위해 임명된 상사법원 대리인들이 자주 배임죄나 영향력 남용으로 법원의 예심 대상이 되고 있다.(8) 더구나 지역에 따라, 상사법원 판사와 결정자들이 노동자들의 경영능력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예로 프랑스 북부지방에서 협동조합 형태로 도산기업을 인수하려는 노동자는 론-알프스에 거주하는 노동자보다 상사법원으로부터 인수권을 부여받을 확률이 더 낮다.
2005년, 17개의 노동자 인수 회사들은 리옹의 생산노동조합회사 연맹의 지원을 받았다. 이 연맹의 브뤼노 르뷔호텔 위원장은 2007년 말, 5백 50만 유로의 모험자본기금 트랑스메아의 설립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트랑스메아의 5백 50만 유로 중 약 백만 유로는 리옹의회에서 보조금 명목으로 지급될 것이다. 르뷔호텔 위원장에 따르면, “약 430개의 회사가 기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30개는 도산위기 회사들이고, 400개는 건전한 기업들로 사주 은퇴 이후 소유권이 노동자들에게 이전되고 있는 회사들이죠.” 르뷔호텔 위원장의 설명이다. 사실, 베이비 붐 세대들이 창립한 많은 기업들에게 ‘이전’의 시기가 도래했다. 그러나 사업에 관심 있는 후계자가 없어서 회사 매도를 고민하는 사주들은 협동조합 형태의 인수안에는 선뜻 서명을 하지 않는다. 르뷔호텔 위원장은 “사람들은 생산협동조합회사라는 명칭에서 소련식 콜호스(kolkhoz:집단농장)를 떠올린다”며 안타까워했다. 바로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여, 트랑스메아 프로젝트가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프랑스식 ‘노동자회사’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된 것이다. 물론 ‘노동자 회사’의 지위는 법적으로 아직 정의되지 않았다. “협동조합이든, 우리사주 형태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 자본주의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르뷔호텔 위원장은 모든 조합주의자들이 자신의 ‘실용주의’를 공유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사주 형태는 사실 보호 장치가 없으며, 자본을 위한 회사가 아니라 회사를 위한 자본이라는 협동조합의 철학을 퇴색시킨다. 스페인의 예를 봐도, 협동조합연맹인 코세타와 노동자 주식회사(SAL) 연맹인 콘페살은 서로 파트너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비판한다. 조합주의자들은 SAL의 기업관리가 자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 원칙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반면, SAL 운동가들은 250개 기업으로 구성되어있는 바스크 지방의 유명한 협동조합 그룹, 몬드라곤 협동조합에 빗대어 협동조합운동을 조롱한다. 마치 다국적 그룹이 그렇듯이, “큰물에서 놀기 위해”,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은 해외, 특히 중국에 자본주의적 성격의 지사를 설립했으며, 때로는 조인트 벤처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볼란스씨는 그와 동료들이 몰-마트릭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사람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할 수 있어.”
(1) 이자벨 비달 마르티네즈, 「Crisis ec?nomica y transformaciones en el mercado de trabajo:el asocianismo de trabajo en Catalu?a, Duputacion de Barcelona」, 1987.
(2) 「아르헨티나, 진입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9월
(3) Paloma Arroyo Sanchez, 「La consituci?n espa?ola y las cooperativas de trabajo asociado」, Ciriec-Espa?a, n? 47, Valence, 2003년 11월
(4) 브루노 로엘란트, 「고용창조와 협동조합시스템:중간 기관들의 역할,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사회학 연구소, 헤이그, 1997년.
(5) 「1세기에 걸친 협력」, 참여, n? 582, 파리, 2000년 12월
(6) 「경쟁, 단일시장, 행위주체들. 새로운 게임규칙을 위해」, MEDEF, 파리, 2002년 5월.
(7) 앤토니 젠슨, 「지불불능,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자들의 주식인수」, 커먼코즈 재단, 알른머스, 2006년
(8) 상사법원의 활동에 대한 의회조사위원회 보고서, www.assemblee-nationale.fr/11/dossiers/tribunaux-de-commerce.asp.
“우리 회사가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회사가 협동조합이기 때문입니다!” 퇴직을 앞두고 있는 밀링머신 노동자, 살바도르 볼란스씨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협동조합’이라는 구시대적 단어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볼란스씨가 동료노동자들과 함께 부품회사 하나를 ‘다시 살렸기’ 때문이다. 때는 1981년, 바르셀로나, 임금이 밀리기 시작하더니 사주가 잠적했다. 분노에 찬 30여명의 노동자들은 남아있던 원자재를 사용해 기계를 계속 돌리고, 고객들에게 대금을 직접 자신들에게 지불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이 회사가 부품을 납품하던 메이저 자동차회사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새로운 차체라인을 구축하는데 최소한 1년은 걸렸었죠!” 볼란스씨가 웃으면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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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기업회수 현상은 특히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도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파산한 기업을 회수해 다시 살리고 있다. 저작권자: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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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란스씨와 동료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회사에 나온 사주아들을 가둬놓고 협상안에 서명하도록 시킨 것이다. 그런 다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상사법원에 회사인수계획을 제출했다. 상사법원은 회사의 기계들이 채무상환 명목으로 노동자들에게 귀속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자들은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간부의 직무를 책임감 있게 수행했다. 3년 동안 모든 노동자들이 밤낮없이 일했고, 낮은 임금을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에 대해 볼란스씨는 이렇게 지적한다. “처음에는 간부가 하는 일까지 하다 보니 일이 더 힘들었죠. 그래도 어쨌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어딥니까?”
오늘날 볼란스씨의 몰-마트릭 카탈루냐 협동조합은 바르베라 델 발르 산업단지에서 5천 평방미터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 5백만 유로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또한 현재 45명의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노동자들 중 관리자로 선출된 사람에게는 다른 노동자들의 3배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한다. 조합원들은 백만 유로가 넘는 돈을 기계구입에 투자하여 스페인의 자동차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동유럽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에 맞서고 있으며, 화물 기차 차체와 풍력발전기 생산으로 사업 분야를 다변화하고 있다. “회사가 구제된 이후 우리는 이윤이 생기면 분배하지 않고 투자를 위해 사내유보금으로 돌렸죠.” 블란스씨의 설명이다. 볼란스씨는 인수자가 자기 주머니만 채우면 결국 회사는 또다시 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몰-마트릭 카탈루냐 협동조합 외에도 노동자들이 도산기업을 직접 인수한 경우는 매우 많다. 특히 노동자들의 도산기업 인수는 강력한 노동운동의 맥락에서 진행되었고, 덕분에 1980년대 초 최소한 3만 8천 500개의 일자리가 회복되었다. 이렇게 되찾은 일자리 중 6천개는 바스크 지방에서, 7천개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재창출된 것이다.(1) 이에 대해 바르셀로나 대학 경제학과의 이자벨 비달 마르티네즈 교수는 “노동자들의 도산기업인수 운동은 1978년, 노동자 500명의 정치성이 매우 강한 회사들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며, 이후 “조금씩 스페인 전체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2001년 경제위기 이후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이 보여준 창조성도 이 같은 노동자들의 도산기업 인수현상과 일맥상통한다.(2) 공공경매장에서 회사의 청산인들에 맞서 스페인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소유권을 보장하라”고 외쳤고, 20년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시위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똑같은 구호를 외쳤다. 스페인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인정하고 정부가 노동자들의 기업참여를 촉진하고 생산수단 소유권에 대한 접근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1978년 스페인 헌법을 무기로 정부를 압박했다.(3)
당시 스페인은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다. 1975년부터 1985년까지, 스페인에서 무려 80만 개 이상의 산업일자리가 사라졌다. 특히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진출해있던 카탈루냐 지방은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웠던 지역에서 실업률이 20%에 육박하는 지역으로 변했다. 한편으로 기업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해고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용주의’적 성향의 노동자들은 가능하다면 사주나 투자자들과 협력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기업을 되살리기 위해 각자 돈을 출자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돈을 출자한 사람이 회사경영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체제를 정비했지요.” 페드로 조르주 피그씨의 설명이다. 피그씨와 다른 30여명의 트럭운전수들은 몰-마트릭이 노동자들에 의해 인수된 바로 그해, 마찬가지로 바르베라 엘 발르에 위치한 ‘유니옹 데 치스테르나’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이들은 협동조합형 기업보다 당시 노동운동이 주장했던 이른바 ‘우리사주’의 독특한 형태인, 노동자주식회사, 즉, SAL을 선호했다.
SAL이 협동조합과 다른 점은 SAL은 인적구성체가 아니라 자본구성체라는 것이다. 이사회 선거시 행사할 수 있는 투표권은 지분참여율에 비례한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의 경우, SAL의 원칙은 협동조합의 원칙과 비슷하다. 비록 외부인도 SAL의 주주가 될 수 있지만 어쨌든 노동자들이 대주주인 것은 변함이 없으며, 아무도 3분의 1 이상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더구나 SAL 출자자들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예비기금을 구성해야할 의무가 있다.
유니옹 데 치스테르나의 노동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회사의 주력분야를 화학제품 수입에서 재활용 산업유의 저장과 운송으로 조금씩 바꿔갔다. 그 결과, 26년이 지난 오늘날, S유니옹 데 치스테르나는 23명의 노동자겸 출자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3백만 유로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어려웠던 과거에 대해 피그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야 은행에서 너도 나도 우리회사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고객, 법원, 금융, 정부 등 그야말로 모두가 우리에게 적대적이었죠.” 또한 피그씨는 카탈루냐 노동자회사연맹(FESALC) 위원장으로서 기업회생협정의 테두리 내에서 SAL들이 물려받은 채무탕감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관련조치를 취한 것은 2006년 말이었다.
피구씨와 볼란스씨는 어떻게 보면 운이 없었다. 피구씨와 볼란스씨는 기업회수운동의 선구자들이지만 1985년 스페인 정부가 발표한 중요지원조치인 ‘단일수당’법의 혜택을 입지 못했다. 이 조치는 실업자가 수령할 수 있는, 평균 8천 유로에서 일만 유로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총액을 미리 지급하는 것이다. 실업수당 선지급의 조건은 수령자가 지급받은 실업수당을 협동조합이나 노동자회사, 나아가 자기회사 자본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같은 ‘실업수당의 자본 환원’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 투자의 주요원천이었다. 바로 이 실업수당 선지급 시스템과 SAL의 법적 지위상 유연성 덕분에, 스페인 경제의 제3부문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비록 스페인의 유럽공동시장 가입이후 SAL 수의 증가추세가 둔화되었지만 말이다. FESALC의 관리책임자 마뉴엘 루비오씨는 “스페인 정부는 기업 규준을 유럽연합의 기준에 맞춰야만했고, 1989년부터 주식회사를 창립하려면, 따라서 노동자주식회사(SAL)를 창립하려면 6만 유로가 넘는 자본금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6만 유로를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노동운동으로 탄생한 ‘우리사주’의 독특한 모델
1997년 자본금 3천 5달러의 유한책임 노동자회사(SLL)의 창립을 허가하는 법이 통과된 후 노동자 참여형 기업의 수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1997년 이후, SLL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자치지역에서 증가세가 뚜렷하다. 스페인에는 현재 2만 5천 667개의 협동조합, 2천 484개의 SAL, 만 7천 666개의 SLL이 활동하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의 수로 볼 때, 유럽연합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SLL은 평균 3명의 노동자 겸 출자자로 구성되고 자본은 대부분 가족자본으로 그중 40%를 여성이 보유하고 있는, 서비스 부문의 소기업들이다. “그야말로 근사한 변화지요. 전에는 남자가 자본을 보유하고 일도 했었죠.” 비달 마르티네즈 교수의 말이다.
이런 사회적 기업들의 3년 생존율은 67%에 달한다. 이제는 도산기업을 인수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 경제가 성장세를 회복했고, 도산도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단적인 자가고용 운동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자가고용운동은 코세타(COCETA)와 콘페살(CONFESAL)이라는 스페인 협동조합총연맹과 노동자회사총연맹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분야이다. 이에 대해 비달 마르티네즈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스페인의 사회적 기업들은 가차 없고 냉정한 시장에서는 그저 미미한 존재일 뿐이죠. 사회적 기업들은 활동부문별로 더 잘 맞는 직업교육과 컨소시엄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들은 충분히 생존력이 있어요. 이들에게는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이윤을 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니까요. 더구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는 건 실업수당 수급자가 아니라 기업가가 되는 것이니까요.”
프랑스 역시 실업자들의 창립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도산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른바 실업자 창립지원제(ACREE)가 그것이다. 파트릭 르낭케르 생산협동조합회사(SCOP) 총연맹 위원장은 “1980년대와 90년대, 바로 이 제도 덕분에 많은 수의 기업들이 회생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ACREE는 1979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집권 당시 도입된 이후, 미테랑 대통령 임기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지원했지만, 계속 잘못 운영되어왔다.
1995년, 알랭 쥐페 정부는 ACREE의 수혜대상을 장기실업자와 최저소득보조금(RMI) 수령자들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도산기업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1996년 쥐페 정부의 장-피에르 라파랭 무역장관은 ACREE 보조금을 사회보장 분담금의 일시적 면제로 전환함으로써 아예 ACREE 보조금을 폐지했다. 2년 후, 기업창립이 줄어들자, 리오넬 조스팽 정부는 신기업개발지원제(EDEN)를 도입했다. EDEN은 기업창립 지원을 목적으로 5년 만기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 새로운 ACREE는 이렇게 다시 보조금이 되었으나 2001년 이번에는 총리가 된 라파랭이 EDEN을 단기 유이자 대출로 바꿔버렸다.
스페인의 ‘단일수당’제는 노동자들의 권리로서 도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금회수를 하지 않았다. 반면에 프랑스의 ACREE나 EDEN은 지속되지도 못했고, 실효성도 없었다. 파트릭 르낭케르 위원장은 “문제는 5천 유로를 실업수당으로 지급하는 것보다 SCOP 창립 지원금으로 지출하는 것이 정부에게는 훨씬 유리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부루노 로엘랑 생산협동조합 유럽총동맹(CECOP) 사무총장도 “역대 스페인 정부가 ‘단일수당’제를 폐지하지 않은 이유는 단일수당제가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에서 정부가 노동자들의 기업인수를 지원했던 것도 노동자들의 기업인수가 경제성장과 사회평화에 기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사실 각국 정부는 민주주의나 노동자들의 기업참여에는 거의 관심도 없어요. 유럽연합은 더더구나 이런 면에는 관심이 없죠!”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유럽연합은 협동조합형태의 기업회생을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억제하기까지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1970년대부터 스페인과 비슷한 맥락에서 협동조합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1970년대 말까지, 매년 25개 기업이 노동자들에 의해 인수되었다. 특히 금속 및 섬유 부문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이탈리아의 산업부 장관 지오바니 마르코라는 1985년 마르코라 법을 공표하였다. 법이 통과되기까지 이탈리아 3대 협동조합 및 노동조합 연맹의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마르코라법은 기업을 인수하거나 실업을 면하기 위해 새로운 협동조합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해고노동자들에게 인수 및 설립자금을 지원해주는 법이었다. 마르코라법에 따라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일종의 모험자본 회사인 산업금융회사(CFI)가 설립되었다. CFI는 협동조합에 조합원 출자자본의 3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지원하였고,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저축한 돈이나 3년에서 5년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을 선지급받아 출자금을 마련했다.
이 시스템 덕분에, 특히 마르케 및 에밀리-로마뉴 산업지대에서 노동자들이 인수한 59개 회사가 10년 동안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5천개 이상의 일자리가 재창출될 수 있었다. 알베르토 제비 CFI 이사는 “CFI의 재정지원을 받은 협동조합 중 약 3분의 1은 몇 년 후 문을 닫았으며, 3분의 1은 여전히 CF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이미 CFI의 지분을 인수했다”며, “CFI가 부담한 돈은 점차 다른 협동조합의 자본에 재투자되었다”고 설명한다. 제비 이사에 따르면, CFI 시스템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는 일자리 1개를 구제, 또는 창출하기위해 국가가 지출하는 돈보다 평균 3배나 적게 지출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4)
그런데 1997년, 마르코라법은 5년 동안 실행이 정지되었다. 유럽 집행위원회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마르코라법과 공동시장법의 양립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들며, 마르코라법은 고용지원에 대한 집행위원회 가이드라인도, 도산기업 구조조정 지원 지침도 준수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지원을 목표삼아 이 같은 ‘의심’을 표현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 옹호자들의 전통적인 공격방법에 속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역시 광범위하게 보조금을 지급받지 않았던가? 프랑스에서 현 MEDEF의 전신인 프랑스 경영자위원회(CNPF)는 이미 1985년부터 생산협동조합회사의 존재에 문제를 제기했다. “생산협동조합회사 운동의 확대는 경쟁부문 기업들의 엄청난 주의를 요한다. 왜냐하면 생산협동조합회사는 이중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경쟁기업의 활동과 경쟁력을 위협한다. 둘째, 국가의 경제성과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5)
같은 맥락에서 2002년, MEDEF는 사회적 경제에 속하는 기업들에 대한 논쟁을 재개했다. MEDEF에 따르면, 사회적 경제의 기업들은 정부의 보조금혜택이나 세금면제 혜택을 등에 업고, 시장경제 부문의 기업들과 경쟁할 것이다.(6) 2001년 이탈리아 의회가 마르코라법을 개정한 것도, 유럽연합이 제기한 이른바 ‘비신사적 경쟁’ 주장 때문이었다. “마르코라법 개정 이후, CFI는 여전히 대출을 제공하고, 자본출자를 하지만, 노동자들의 출자자금에 해당하는 자본만 출자할 수 있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자본은 3배가 아니라 2배로 증가할 뿐이다.” 알베르토 제비 이사의 설명이다. 새로운 자금은 Socoden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협동조합운동과 유사한 출자자협동조합의 참여시스템을 통해 확보된다.
“돈만이 성과를 내는 건 아니죠. 인간관계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2003년 이후, 약 30여개의 협동조합만이 CFI를 통한 재정지원을 받았고, 그중 10여개는 노동자들이 인수한 회사들이었다. 물론 이탈리아의 현재 경제상황이 1980년대보다 안정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제비 이사는 기업회생 수의 급감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몇몇 부문의 위기는 너무도 심각해서 도산기업 회생이 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세계화와 기업회생은 양립하지 않는다. 기업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기업 외부에서 정의된 전략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제 이 기업의 몇몇 하도급 업체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도미노 현상이다. 세계화의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 중에, 고유한 노하우를 보유하고 그 노하우를 ‘틈새’ 시장에 활용할 수 있는 기업만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지사 공장을 인수하려는 해고노동자들은 때로 특허권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칼레의 ‘프티뤼(P'tit Lu)’ 공장, 아를레의 ‘뤼스튀크뤼(Lustucru)’ 공장이 대표적 예이다. 칼레의 프티 뤼 공장은 다논 그룹의 레시피를 사용할 수 없었고, 아를레의 뤼스튀크뤼 노동자들은 판자니 그룹의 기계매각 거부에 맞서야했다.
또 다른 더욱 일반적인 가능성은 거대 산업그룹에서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잠재성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생산단위를 폐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이나캐스트 인터내셔널의 시프리오-다제르그 알루미늄 제련소가 바로 이런 이유로 폐쇄되었다. 1993년 건설된 이 공장은 신벤 투자기금이 인수했고, 신벤 투자기금은 공장의 유동자산을 전부 소비한 후, 2004년 이탈리아 그룹 캄피수사의 계열사인 밸브제조회사 LCN에 공장을 매각했다.
2005년 1월, 제련소의 76명의 노동자들 중 절반은 생산협동조합회사의 형태로 기업 활동을 계속하는데 성공했다. 회사명은 프레시알 캐스팅으로 정했다. 우선 고객들로부터 계속 거래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협동조합 대출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상업은행들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출은 어려웠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연구소의 발전을 목표로 삼고, 시장점유율 악화로 약화된 프로젝트를 구제하기위해 싸웠다. “먼 거리에 있는 주주들에게 성과를 내는 건 돈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어요. 인간관계도 중요하다는 걸 말이죠.” 생산관리 책임자인 부뤼노 상쉐의 말이다.
또한 중소기업 도산이 반드시 시장점유율 하락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 개인의 파산이나 회사재산 유용이 원인일 수 있다. 경제학자 앤토니 젠슨은 영국 도산기업의 약 50%는 도산을 피할 수도 있었다고 평가한다. “기업회생 덕분에, 우리는 노동자들의 비즈니스 이해능력과 벤처자본가가 보지 못하는 잠재성을 보는 능력을 점점 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7)
젠슨은 노동자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 도산처리 실무가 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젠슨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은행보다 우선채권자가 아니라는 것도, 노동자들이 채권자회의와 협상테이블에서 배제되는 것도 비논리적이다. 젠슨은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적 요구에 동조하면서, 기업 인수 노동자들에게 선매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경우, 상사법원은 이론적으로는 인수 프로젝트의 경제적 타당성과 구제되는 일자리 수에 따라 인수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판결에서 노동자들의 기업인수라는 사회적 의의는 자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법원이 ‘경험’ 있는 자본주의적 인수자에 비해 신설 협동조합은 지속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상사법원이 해고노동자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상사법원이 기업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도산위기에 처한 기업을 관리하기위해 임명된 상사법원 대리인들이 자주 배임죄나 영향력 남용으로 법원의 예심 대상이 되고 있다.(8) 더구나 지역에 따라, 상사법원 판사와 결정자들이 노동자들의 경영능력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예로 프랑스 북부지방에서 협동조합 형태로 도산기업을 인수하려는 노동자는 론-알프스에 거주하는 노동자보다 상사법원으로부터 인수권을 부여받을 확률이 더 낮다.
2005년, 17개의 노동자 인수 회사들은 리옹의 생산노동조합회사 연맹의 지원을 받았다. 이 연맹의 브뤼노 르뷔호텔 위원장은 2007년 말, 5백 50만 유로의 모험자본기금 트랑스메아의 설립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트랑스메아의 5백 50만 유로 중 약 백만 유로는 리옹의회에서 보조금 명목으로 지급될 것이다. 르뷔호텔 위원장에 따르면, “약 430개의 회사가 기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30개는 도산위기 회사들이고, 400개는 건전한 기업들로 사주 은퇴 이후 소유권이 노동자들에게 이전되고 있는 회사들이죠.” 르뷔호텔 위원장의 설명이다. 사실, 베이비 붐 세대들이 창립한 많은 기업들에게 ‘이전’의 시기가 도래했다. 그러나 사업에 관심 있는 후계자가 없어서 회사 매도를 고민하는 사주들은 협동조합 형태의 인수안에는 선뜻 서명을 하지 않는다. 르뷔호텔 위원장은 “사람들은 생산협동조합회사라는 명칭에서 소련식 콜호스(kolkhoz:집단농장)를 떠올린다”며 안타까워했다. 바로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여, 트랑스메아 프로젝트가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프랑스식 ‘노동자회사’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된 것이다. 물론 ‘노동자 회사’의 지위는 법적으로 아직 정의되지 않았다. “협동조합이든, 우리사주 형태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 자본주의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르뷔호텔 위원장은 모든 조합주의자들이 자신의 ‘실용주의’를 공유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사주 형태는 사실 보호 장치가 없으며, 자본을 위한 회사가 아니라 회사를 위한 자본이라는 협동조합의 철학을 퇴색시킨다. 스페인의 예를 봐도, 협동조합연맹인 코세타와 노동자 주식회사(SAL) 연맹인 콘페살은 서로 파트너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비판한다. 조합주의자들은 SAL의 기업관리가 자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 원칙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반면, SAL 운동가들은 250개 기업으로 구성되어있는 바스크 지방의 유명한 협동조합 그룹, 몬드라곤 협동조합에 빗대어 협동조합운동을 조롱한다. 마치 다국적 그룹이 그렇듯이, “큰물에서 놀기 위해”,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은 해외, 특히 중국에 자본주의적 성격의 지사를 설립했으며, 때로는 조인트 벤처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볼란스씨는 그와 동료들이 몰-마트릭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사람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할 수 있어.”
(1) 이자벨 비달 마르티네즈, 「Crisis ec?nomica y transformaciones en el mercado de trabajo:el asocianismo de trabajo en Catalu?a, Duputacion de Barcelona」, 1987.
(2) 「아르헨티나, 진입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9월
(3) Paloma Arroyo Sanchez, 「La consituci?n espa?ola y las cooperativas de trabajo asociado」, Ciriec-Espa?a, n? 47, Valence, 2003년 11월
(4) 브루노 로엘란트, 「고용창조와 협동조합시스템:중간 기관들의 역할,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사회학 연구소, 헤이그, 1997년.
(5) 「1세기에 걸친 협력」, 참여, n? 582, 파리, 2000년 12월
(6) 「경쟁, 단일시장, 행위주체들. 새로운 게임규칙을 위해」, MEDEF, 파리, 2002년 5월.
(7) 앤토니 젠슨, 「지불불능,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자들의 주식인수」, 커먼코즈 재단, 알른머스, 2006년
(8) 상사법원의 활동에 대한 의회조사위원회 보고서, www.assemblee-nationale.fr/11/dossiers/tribunaux-de-commerce.asp.
기사입력 : 2008-03-19 18:38:31
최종편집 : 2008-03-20 08:58:55
최종편집 : 2008-03-20 08:58:55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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