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이주 노동자가 '꿈'이라던 사람들

[인터뷰]김애화 한국진보연대 국제연대위원장

정지영 기자
rapid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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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 중심에서 ‘대안’ 중심의 국제연대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아시아 지역 공동체를 고민해야 할 때다.”

김애화 한국진보연대 국제연대위원장이 던진 고민이다. 김 위원장은 25일 진보연대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2008년에는 아시아 지역 연대를 고민하는 단위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국제연대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을까? 노동운동을 하던 김 위원장이 90년대 중반 노동인권회관에서 이주 노동자 상담 상근자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는 이주 노동자 상담 등의 활동이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김애화 한국진보연대 국제연대위원장
ⓒ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필리핀 친구들이 혜화동 성당을 많이 다니니까, 그 곳에 책상을 갖다 놓고 상담을 받았다. 그 때는 영어를 잘 못해서 질문지를 주고 작성하면 돌려받는 식으로 시작을 했다.” 임금 체불, 산업재해 등의 문제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할 때여서 지방노동사무소, 사업주 등을 만나고 싸우면서 법의 적용을 받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김 위원장은 “열심히 번 돈을 매달 자기 나라의 정치조직에 지원하는 등 정치활동을 하고, 이에 대한 자긍심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인권탄압, 노동탄압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이들이 자국에서 의지적, 정치적 인물이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머물며 많이 깨졌다"

이렇게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가던 김 위원장은 2000년 8개월 동안 필리핀에서 머물면서 "많이 깨지게 됐다."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만났고, 한국과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대지주가 거의 군주처럼 땅을 소유하고 정치적, 물질적으로 동네를 장악하고 있었다. 삶의 조건이 너무나 열악했다. 지주는 우물 하나, 작은 땅을 허용하는 대신 일을 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우물과 작은 땅, 삶의 공간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까비떼라는 수출자유지역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 보기도 했다. “한 친구가 꿈이 뭐냐고 물으니 웃으며 ‘해외 이주 노동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주변 친구들이 ‘허황된 꿈’이라고 웃었다. 지금 일해서 버는 돈을 100% 평생 동안 저축해도 해외이주에 필요한 커미션을 벌 수 없다는 것이다.”

소작농의 자녀로 태어나 까비떼로 이주해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해외이주 노동자’가 꿈이 된 사람들. 한국에서 열악한 임금, 생활 조건 속에 일하는 이주 노동자가 되는 그 ‘꿈’조차 허용되지 않은 사람들. 그 속에서 한국의 중소기업과 필리핀의 소작농, 도시 노동자가 모두 연관되어 있는 시스템을 읽게 됐다.

어디 가나, 노조 인정하지 않는 한국기업들

이런 고민을 안고 2001년부터 홍콩에 위치한 아시아 노동인권 NGO인 AMRC(Asia Monitor Resource Center)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다국적 기업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있으면 캠페인을 벌이는 등의 활동이었다.

“주로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 기업들인 나이키, 아디다스, 갭 등을 모니터링 했다. 말 그대로 1달러가 저 끝에 가면 100달러에 팔리게 되는 가치 형성의 과정이다. 그 때 깨달은 것이 그 중간에 아시아 기업들, 주로 한국과 대만 기업들이 딱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는 미국에 있었지만 한국, 대만 기업들이 아시아 저임금 지역에 생산공장을 가진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브랜드’에 대해서만 공격해왔는데, 아시아 기업들에 대한 감시활동도 필요하다고 제안했었다.”

2년 정도 활동한 후 이번에는 미국 LA에 위치한 KIWA(Korea Imigrant Workers' Advocacy)에서 활동하게 됐다. 주로 과테말라, 멕시코 등에 있는 한국 기업들을 모니터링 하는 프로젝트였다.

“한국기업들의 양상이 대부분 비슷했다. 우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싼 임금 때문에 진출하고 ‘노조가 뜨면 망한다’는 70년대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노조활동을 하면 폭력 행사를 한다든지 해고를 하는 식이었다. 동네 유지나 경찰들과 다 연관되어 있고 유령노조를 만들기도 했다.”

김애화 한국진보연대 국제연대위원장
ⓒ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멕시코에 진출한 한 한국기업은 공장 리모델링을 한다고 휴가를 준 다음, 중국이 더 수익이 낫다면서 철수해버렸다. “폐업에 대한 보상은 해주지 않고, 약간의 돈을 주며 백지에 사인을 받았다. 그것을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기업의 주요 판매망인 미국 백화점과 한국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의 압력으로 문제는 해결이 됐다. “주요한 역할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현지 노동조합이 한 것이다. 회사 점거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후, 자본이 날라버리니까 우리가 도움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상황이든 노동자들의 주체적 활동이 우선이고 여기에 국제연대활동이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김 위원장은 한미FTA반대범국본에서 국제연대 사업을 해오고 있으며, 현재 한국진보연대 국제연대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위원장은 끝으로 굵직한 화두를 던졌다. “‘사안’ 중심이 아니라 ‘대안’ 중심의 국제연대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아시아 지역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한미FTA 사안이 있으면 미국노총 등과 연대하고, 테트라팩 사건이 터지면 스웨덴노총 등과 연대하는 등 ‘사안’ 중심으로 국제연대운동이 진행되어온 데 대한 평가다.

“지역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네트워크가 다 활성화되어 있다. 아시아 지역은 거리상 근접성이 떨어지고 언어, 역사의 다양함으로 인해 어려움은 있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2008년에는 이를 고민하는 단위를 만들고 싶다.”

국제연대운동에 대한 진보진영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김 위원장은 브라질 무토지농민운동과 MST조직에 관한 책을 번역하는 '영어번역모임'도 꾸려가고 있다. 한국 안에 머물러 있는 진보운동이 세계 진보세력과 어깨를 걸고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김 위원장의 활약이 기대된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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