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것에 실린 남반구의 길

프랑스는 사하라이남의 목화를 헐값에 팔아치운다

올리비에 피오(Olivier Piot,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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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남반구 농민들, 특히 아프리카 농민들은 세계면화시장의 불공정과 맞서 싸우고 있다. 2007년, 다그리(Dagris) 사의 민영화가 - 덤핑이라고까지 말하지는 않더라도 - 조용히 진행되면서 이 투쟁은 더 심화되었다. 통합생산 관련 산업을 후원하는 이 프랑스 농산물가공 지주회사는 최소한 영세농민들에게 가격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해 왔다. 국제금융체제의 압력으로 이 시스템이 붕괴되자 영세농민들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러나 소유주가 누구이든 간에 이 지주회사는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들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러한 위기 뒤에는 언제나 남-북 관계의 문제가 드러난다. 그 관계를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개조소비자들(alterconsommateurs)’은 ‘공정무역’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 공정무역이란 것 또한 때로는 모호함의 표시가 아닌가?

몽소(Monceau) 가의 파리 풍 건물 전면에 다그리(Dagris)라는 수수한 간판과 낡아빠진 그래픽 로고가 걸려있다. 다그리는 남반구농산업개발을 의미하는 불어표현(Développement des agro-industriel du Sud)을 한 단어처럼 발음하도록 만든 약자이며, 1949년에 창설된 프랑스 섬유산업개발회사(CFDT)가 2001년에 이 상호로 바꿨다. 지금까지 이 회사의 이름이나 이 회사가 어떤 활동을 하는 지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몇몇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대체 누가 면화와 아프리카 산 채유(採油)식물 전문의 이 프랑스 대기업을 알고 있는가?

2006년 1월,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정부가 이 그룹의 민영화를 추진했을 때, 이 기업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매우 드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7년 1월, 티에리 브르통 프랑스 경제 재정 산업부 장관 휘하 부서에서 이 문제에 관한 서류를 조용하게 정리해가고 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대선에 쏠려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다그리의 일부 소수 직원들은 열정적으로 프랑스 국가차원을 넘어서는 민영화의 문제점과 비리를 폭로했다(1). 사실 프랑스정부는, 거의 2천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아프리카 면화산업이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바로 그 시기에 손을 뺀 것이다(2).

아프리카
각종 미디어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다그리를 두고 작은 제국, ‘식민지 제국의 유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전후 몇 십 년간 누리던 아우라는 이제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다그리는 전 세계에 19개의 계열사를 둔 그룹의 리더다. 주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고, 전 세계에 2만 명이 넘는 고용인을 두고 있다(3). 2005년에는 총매출액 3억 3천6백10만 유로, 순이익 2백90만 유로의 실적을 올렸다. 무역전담 계열사 코파코(Copaco)를 통해 다그리 그룹은 2005년, 아프리카 면화물량의 약 20%를 흡수해 그 중 3분의 2를 아시아에 재수출했다.

다그리는 거대한 공공지주회사 CFDT의 후계자다. 프랑스는 CFDT와 함께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하라이남의 면화 관련 산업을 일으켰고 이후 몇 십 년 동안 컨트롤해왔다. 말하자면 자립적인 국가재건을 염두에 둔 프랑스가 미국 산 면화로부터 벗어나 자국의 섬유산업을 활성화시키려고 했던 시기에 탄생한 ‘프랑스아프리카’ 체제의 주춧돌인 셈이다.

CFDT는 자본의 반 이상이 공적자금인 주식회사로, 해외영토 개발의 도구이자 프랑스본국이 필요로 하던 원료에 접근하는 수단이었다. CFDT의 활동은 프랑화를 사용하는 프랑권(4) 내의 면화 ‘통합 관련 산업’(생산에서 상품화까지) 조직화전략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통합 관련 산업에는 생산요소(비료, 종자, 살충제)를 위한 신용대출과 관리장치, 혁신적인 응용연구(농학연구개발 국제협력센터, Cirad), 기술 중개 상대국(CFDT)의 지원, 그리고 출자자(해외중앙은행, 오늘날의 프랑스 개발 은행)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각국은 프랑권의 면화 관련 기업들에게 면화수집지가 아무리 멀다고 하더라도 최저가로 매입할 수 있는 독점권을 인정해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산자들이 생산수단대출금을 갚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일정 수입을 보장해주었다.

“사기 공작”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한 이후인 1960년대 초, 전대미문의 협력이 시행된다. CFDT는 신생 아프리카국가들의 파트너가 되었다. 10여개 국영기업지분에 20-40% 참여하면서 CFDT는 점차 농산업 지주회사로 변모했다. 농업, 산업, 재정, 무역 종합연구 서비스 등으로 구성된 CFDT는 기술이전을 보장하고, 판로를 조직화하는 동시에 목화씨를 훑어내는 공장과 채유공장을 건설했다(5). 산업화된 국가들과는 반대로, 서아프리카의 시스템은 생산성이 매우 낮았다. 영세재배업자(평균재배면적 1헥타르 미만)들이 식량과 함께 목화를 재배했고, 임금노동자가 아닌 가족의 노동력에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다그리 직원대표단의 일원인 레이널드 에반젤리스타는 이렇게 강조한다. “몇 십 년 동안 우리는 훌륭한 협력의 도구였다. 아프리카 면화의 서사시, 얻어낸 결과와 농촌지역개발이 종종 그 예로 인용되곤 하는 것은 그 결과들이 이 지역에 아름다운 기술적·경제적·사회적 성공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1960-61년 선거운동기간동안 CFDT가 활동한 프랑권 국가들의 목화씨생산량은 18만 톤이었다. 2005년-2006년의 생산량은 220만 톤으로, 1960년대에 비해 12배 증가한 양이다. 2004년 면화는 베냉의 수출액의 75%를 차치했고, 부르키나 파소 수출액의 60%, 말리의 경우는 50%를 차지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서사시’에는 분명 이면도 있다. 관련 산업 간에 긴밀한 협력 체제를 수립하면서 프랑스 정부는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고 예전의 프랑스 식민지들의 면화산업을 종속상태로 몰아넣었다. 목화씨 생산과 면사 생산, 수확량 일체 매입, 면화재배업자들에게 안정적 가격 유지, 수백만 가정에 식료생필품인 정제면실유 공급, 면화 관련 산업에서 파생된 특수식량으로 가축 등의 목축자산 보존 등, 다그리의 역할과 책임감은 대단히 컸다.

1980년-1990년대에 이 조직에 첫 타격이 가해졌다.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체제 - 세계은행과 국제 통화기금(IMF) - 가 요구한 구조조정프로그램(PAS)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도록 강요했다. 출자자들이 보기에 ‘통합 관련 산업’은 자유경제의 규준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효율적인 모델로, 경쟁 시스템에서 생산자에게 돌아가야 할 부가가치의 일부를 박탈하는 것(6)”이었다. 1990년대 말, CFDT는 그들 입장에서 생산에 불리한 분할을 도입해야 하는 민영화 저지에 실패했다(7).

그러나 CFDT는 이 과정에서, 몇몇 국가의 많은 기업들에 과반 이상의 지분을 획득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그중 일부만 예로 들어도, 세네갈의 섬유개발회사(Sodefitex) 지분의 52%, 부르키나파소의 구르마 면화회사(Socoma) 지분의 51%, 감비아의 감비아 면화회사(Gamcot) 지분의 60%, 마다가스카르의 하시 말라가시(Hasyma) 지분의 90%, 알제리의 지중해면화회사(Somecoton) 지분의 60%를 차지한 것이다. 10년 만에 아프리카 면화회사들의 대부분은 민영으로 돌아섰다. 마지막 최대보루였던 말리 직물개발공사(CMDT) - 이 공사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현지에서도 이론이 분분했다(8) - 는 2008년 말 민영화된다.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 정부는 세계은행의 경고에 굴복하고 자유경제논리로 돌아선 것이다. 2003년에 추진된 이 절차는 2005년 3월 ‘[다그리의] 공공분야에서 민간분야로의 이전’을 허가하는 명령으로 이어졌다. 로스차일드 투자은행이 프랑스 정부의 자문은행으로 지정되었다. 파리에 있는 다그리 본사 직원들은 즉시 우려를 표명했다. “베르시(프랑스 재정 경제 산업부)는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고 개발지원 임무의 영속성을 보장할 것을 분명히 약속했다”고 에반젤리스타는 상기시켰다. 하지만 기업의 임무 유지에 관한 어떠한 보장도 없이, 과정은 완전한 덤핑으로 변하고 만다.

2007년 2월 23일, 다그리의 정부 지분(64.7%) 일체가 770만 유로에 소다코(Sodaco, 아프리카 면화와 채유식물 개발회사) 컨소시엄으로 넘어갔다. 곧이어 브르통(Breton) 앞으로 보낸 2007년 3월 12일자 편지에서 직원대표단 대의원들은 양도조건이 ‘스캔들 감’이라고 판단하고 ‘정부와 다그리 직원들을 약탈하는 사기공작’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우리들의 계산에 의하면, 2005년에 매출액 3억 3600만 유로를 기록한 우리 그룹은 1억 500만 유로 이상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1년 후 그 가치가 우습게도 800만 유로로 절하될 수 있는가?”라고 한 조합원대표는 설명했다. 말하자면 그룹 전체가 1200만 유로로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민영화가 진행 중인 이 기업을 장차 이끌어나갈 대표이자 소주주이기도 한 앙투안 장드리(Antoine Gendry)는 “매입가가 770만 유로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부인한다. 왜냐하면 “이 금액 외에도 우리는 기업 실적에 따라 1500만-2000만 유로를 향후 몇 년간 정부에 지불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그리 직원들이 보기에 계산은 여전히 정확하지 않다. “보종(Beaujon) 협의개발지구(ZAC)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있는 파리 본사 건물[사무실 면적 4287m2]만으로도 3500-5000만 유로의 상품가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조합원들은 주장한다. 다카르와 스페인에 있는 사무실들, 르아브르 항구지구의 건물들, 카메룬의 두알라와 기니의 코나크리에 있는 저장고 등, 그룹의 다른 부동산자산은 말할 것도 없다. 자신들이 사기를 당한 입장에 처해있는 만큼 직원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다. 다그리 경영진의 권고에 따라 대부분 직원들이 이 기업의 투자공동기금에 대거 투자(그룹 전체 자산의 7%)했다. 기업가치가 과소평가되면서 그들의 저축이 졸지에 8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경제 재정 산업부로부터 민영화 과정의 감독임무를 부여받은 피에르 아샤르도 금융 감독관은 “투자공동기금에 투자한 직원들의 지분가치가 절하된 것은 이 민영화의 부정적 측면”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민영화과정이 ‘양측 합의에 따른 전통적인 양도’ 절차의 수칙을 ‘엄정 준수’했다고 결론지었다. 2006년 2월 6일부터 로스차일드는 이른바 ‘프로필’로 불리는 84장의 공식문서를 잠정 인수자들에게 전달했다. 그중에는 미국과 아프리카 기업도 포함돼 있었다. 그 중 13개 기업이 다그리 인수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고, 그 가운데 5개 기업은 지분의 과반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006년 가을, 자문은행이 전달한 변경불가능 확정 입찰 제의에 응한 기업은 단 둘 뿐이었다. “그것이 규칙이다. 매매는 시장가격에 따라 성사된다”는 것이 아샤르의 말이다. 그는 “최종 협상에 2 회사만이 경쟁한 것은 가격협상에서 정부에 거의 유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특히 2006년 10월, 두 매수후보자 가운데 하나인 솜디아(Somdiaa) 사가 기권한 만큼 더더욱 그랬다. “아프리카 면화위기와 함께 다그리가 적자를 기록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아샤르 감독관은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2004년과 2005년도에 다그리가 주주들 - 최대지주는 정부 - 에게 지급한 이익배당금이 1400만 유로가 넘는다는 사실은 명시하지 않고 넘어갔다.

2007년 2월 23일, 경제 재정 산업부는 인수상대자로 남은 유일한 후보업체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그 후보업체는 바로 소다코(Sodaco) 컨소시엄으로, 재력가 에드먼드 드 로스차일드의 자문을 얻은 식용유·식물성단백질 전문회사 소피프로테올(Sofiproteol, 45%), IDI투자기금(45%), 노르 에스트 그룹의 앙투안 장드리 전 회장(5%), 코트디부아르의 도파 & 유니노르(Dopa et Uninor) 사의 파트릭 레데(Patrick Leydet) 회장(5%)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었다. 다그리 사의 직원들은 자신들의 기업이 벌이는 사기행각을 경멸하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앙투안 장드리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삼고, 파트릭 레데의 지원을 얻은 IDI야 말로 컨소시엄의 진짜 리더”라고 한 조합원은 강조한다. “IDI는 이쪽 업계에서는 완전히 재정적인 목표만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무실 부동산 덕택에 현재 연간 20%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런 행태는 공공서비스와 개발이라는 우리들의 임무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려는 2007년 3월부터 직원대표단 쪽에서 흘러나온 일련의 정보들로 미루어보면 정당한 것이다. Sodaco는 다그리의 파리 본사를 매각함으로써 부동산 관련 업무를 실현할 의사를 표명했다. 장드리의 말에 의하면 본사매각으로 ‘회사 부채를 갚을 수 있을 것’이고, 이 기회에 ‘시세차익의 일부를 정부에 이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다그리 직원들은 의심스러운 사항들을 발견했다.

Sodaco의 개인주주이자 Dopa 사의 경영주 레데는 약 10억 CFA프랑(150만 유로)에 이르는 금액을 코트디부아르의 면화생산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것 때문에 수차례에 걸쳐 아비장(코트디부아르)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9). 장드리의 아내 루스 장드리는 로스차일드- 민영화 정부 자문은행 -의 공동경영매니저인 동시에 IDI 그룹 감독위원회 위원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카피 알파(Secafi Alpha)가 2007년 7월 초에 직원대표단과 다그리 경영진에게 전달한 보고서에는 이런 유감스러운 이해관계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10).

양도절차 보류를 얻어내려는 다그리 사 직원들은 2007년 4월 파리 고등법원에 경영진 가처분신청을 냈다. 5월 3일, 법원은 정보제공의 법적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다그리 경영진에게 3000유로를 직원대표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그리 사건서류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의 말을 들어보자. “이런 소송 사건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공권력, 즉 베르시, 엘리제 혹은 출자이전위원회(CPT) - 이 위원회가 Sodaco의 제안을 승인해야 한다 - 는 현재 진행 중인 민영화를 중단시킬 수 있다. 이 사건에 있어 양도가격에 대한 논쟁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다그리가 아프리카 면화 관련 산업 지원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지 그 여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핵심이다. 다그리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첫 번째 정부보고서가 나온 2000년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 면화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생산요소(비료와 살충제) 가격상승, 달러(면화 무역 외화)와 유로(CFA프랑) 사이의 불리한 화폐가치평가, 면화재배업자에 대한 유럽(그리스와 스페인)과 특히 미국의 보조금... 2003년 이래 이 3가지 요소가 결합되면서, 면화에 의존하는 2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은 극심한 불안정 상태에 빠졌다. 2007년에는 4년 연속 면화생산보다 소비가 많아질 것이지만 면화시세는 하락(2004년에서 2006년 사이 면사 가격 17% 하락)했다(11). 2006-2007년 선거기간동안 26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소비량을 충족시키려면 세계적으로 2500만 톤의 면사가 생산되어야 하는데, 중국과 인도 2국가가 전 세계 면화생산의 55.2%를 담당하고 있다.

2007년 6월 파리를 방문한 아프리카 면화산업협회(ACA) (12) 지도자 대표단은 “이후 몇 주내에 탈진상태에 빠져 있는 면화 관련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이 강구되지 않으면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각심을 호소했다. 다그리 민영화에 우려를 표하는 셀레스탱 티엥드레베오고 ACA 회장은 아프리카 인들이 ‘원가 이하 가격’으로 면화를 판매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프랑권의 면화 업체들은 올해 총 3천 5백억 CFA프랑(5억 360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미국 생산업자들은 엄청난 양의 비겁한 보조금 덕택에 견디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4년 전부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된 관행이기도 하다. 사실 미국 정부는 48억 달러를 25000여명의 면화생산자에게 지원하고 있는데 이 액수는 미국이 아프리카에 지원하는 공공개발지원(ODA) 금액의 3배에 달한다.

이렇게 시장이 악화된 상태에서 과연 다그리를 민영화하는 쪽을 선택해야만 할까? 대부분의 연구들은 1990년대 중반 아프리카 면화사업의 민영화가 관련 산업에 심한 혼란을 야기하고 생산농민들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에는, 면화관련 국영기업들이 그들의 생산량 전체를 지역공장들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민간 기업들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는 많은 착유(窄油)공장들에 면화씨를 공급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가격보장이라는 ‘올가미’가 사라지면서 ‘하얀 금’으로 불리는 면화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들은 이후 불리한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실 아프리카 면화생산자들이 다그리 같은 합의된 책임 있는 도구를 가장 필요로 한 때가 바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아닌가?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른 프랑스 관계자 - 프랑스 개발국(AFD) - 가 심한 시가변동을 조절하기 위해 ‘불확정 변수제거’ 시스템을 실행하려고 애쓰고 있는 만큼 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다그리 민영화는 정치적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그리 직원들의 끈질긴 설득에 소주주들이 이들을 지원하기에 이르렀고, 2007년 6월 11일 엘리제궁을 방문한 압둘라예 와데 세네갈 대통령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프랑스 공공지주회사 매수 가능성에 대해 질의했다. 세네갈 국가자격으로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한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의 의사이기도 했다. 와데 대통령은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다그리는 우리 아프리카 인들의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서아프리카에서 목화가 가지는 중요한 경제적, 사회적 역할을 상기시켰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신임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캠페인 중에 자신의 소망이라고 불렀던 ‘아프리카 공동개발 신정책’을 입증할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않을까. (번역-김계영)

(1) 「다그리 직원들은 사기 같은 민영화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위마니테 디망쉬>, 56호, 파리, 2007년 4월 12일.
(2) 면화시세하락과 연료비 상승은 특히 부르키나파소, 말리, 차드 같은 국가에서 생산비를 더욱 상승시켰다.
(3) 이 그룹은 지리적으로 6개 지역권 - 프랑스, 지중해권,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인도양, 아시아, 브라질 - 에 분포되어 있다. www.dagris.fr
(4) 주요 관련국은 말리, 베냉, 부르키나파소, 차드, 카메룬, 나이지리아, 토고, 세네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기니비사우, 코트디부아르, 마다가스카이다.
(5) 베르나르 비네(Bernard Vignay), 「CFDT, 프랑스 협력의 도구」, <목화와 개발>, 특별호, 파리, 1999.
(6) 앙드레 리나르(André Lanard), 「다그리, 모델의 종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년 9월호 참조.
(7) 미셸 피셰(Michel fichet), “면화, 발전의 동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8년 9월호 참조.
(8) 톰 아마두 섹(Tom Amadou Seck), 「아프리카 면화의 생존을 위한 전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12월호 참조.
www.malipages.com/presse/news_06_07/news_0002.asp
(9) <르 땅(Le Temps)>, 아비장, 2007년 3월.
(10) 「다그리 감정보고서」, Secafi Alpha(재정분석과 기업위원회 정기지원 특별고문 사무소), 2007년 7월 4일.
(11) 2003년-2004년 동안 면사의 킬로 당 평균가격은 1.55달러(1.13유로)였으나 2006년-2007년 선거운동기간 동안은 1.28달러(0.9유로)였다.
(12) 2002년 아비장(코트디부아르)에서 창설된 아프리카 면화산업협회(ACA)는 국제차원에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아프리카 면화생산 업체들 간의 농학, 산업, 무역 경험 교환을 위해 면화 관련 아프리카 전문가, 직업인들로 구성된 단체다.
(13) 미국정부의 면화보조금에는 연간 32억 달러의 생산자 지원금과 16억 달러의 면화수출대출금이 포함되어 있다.
(14) 앙드레 리나르, 「재난을 당한 아프리카 면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년 9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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