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N, 나치 독일과 제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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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나치 독일과 동유럽의 동맹국들이 소련에 맞서 수행한 전쟁의 진면목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새 자료들, 옛 자료들의 재검토, 현장조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금기시되던 주제들 중에는 발트제국과 우크라이나를 위시한 지역 민족주의자들이 수행한 역할도 들어있다. 그것은 이러한 ‘협력’을 수치스러워한 소련, 그리고 협력자들을 복권시켜준 자들이 오랫동안 감추어온 주제이기도 했다.

1941년 9월 바비 야르의 학살구덩이에서 독일 제6군 선전특공대 소속 요한네스 횔레가 찍은 이 사진들은 ‘총살을 통한 유대인 대학살’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파트릭 데부아(Patrick Desbois) 신부의 업적을 기리는 이 전시회는 11월 30일까지 파리 소재 쇼아 메모리얼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다.
ⓒ 민중의소리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우크라이나는 소련(중부와 동부), 폴란드, 루마니아 및 체코슬로바키아 땅으로 분할되었다. 폴란드 체제 하에서 그리고 폴란드 체제에 대항해, 동부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1920년에 우크라이나 군사조직(UVO), 1929년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조직(OUN)이 연이어 결성된다. 이 단체들의 창시자이자 시몬 페틀리우라의 동료였던 에브헨 코노발레츠(Evhen Konovaletz)는 1922년부터 아돌프 히틀러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또 그들의 이데올로그였던 드미트리 돈초프(Dmitri Dontsov)는 ‘통합적 민족주의’를 설파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적’ 특징을 러시아의 ‘아시아적’ 특징에 대립시켰다.

나치의 전략가였던 알프레드 로젠베르크, 그리고 그와 더불어 군사정보조직인 아프베르(Abwher)는 1933년부터 OUN을 지원한다. 로젠베르크는 발트,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코카서스의 무슬림 등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자결권을 약속해주었다. 소련을 해체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베를린과 OUN 사이의 동맹은 소란스런 결과를 낳았다. 코노발레츠는 1938년 한 소련 첩자에 의해 암살당했고, 안드리 멜니크(Andriy Melnik)는 그의 뒤를 이어받아 OUN 수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그리스 정교회의 대주교이자 갈리시아 지방의 ‘정신적 지주’였던 안드리 셰프티츠키(Andriy Cheptytskyi)의 지지를 받았다. 갈리시아 지방은 1939년 소련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급진주의자인 스테판 반데라가 1940년에 분파를 만든다. 그의 OUN-b는 나흐티갈(Nachtigall)과 롤랑(Roland)이라는 독일군 두 개 대대를 구성하게 되며,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과 그 동맹국들이 소련에 맞서 벌이던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이윽고 일련의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베를린에 따르면, ‘유대인 볼셰비키’들(공산주의자, 소련군의 인민위원, 유대인)이 민족주의자들과 지역 주민들 손에 ‘거의 동시에’ 우선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르보프에서는 7월 25일 인간사냥이 ‘페트리우라의 나날들’이라 명명되었다. 이 호칭은 유대인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NKVD들이 자행한 포로 처형에 대한 ‘보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행위’는 임무를 떠맡은 SS와 독일군의 기동타격대였던 ‘Einsatzgruppen이 자행한 것이다.

7월과 8월에 이러한 표적 학살은 베를린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대량 제거에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독재자인 이온 안토네스쿠가 이끄는 루마니아 군대가 오데사를 포함한 남부지방에서의 도살 책임을 떠맡았고, 헝가리 독재자인 미클로스 호르티가 이끄는 군대는 카메네츠-포돌스크로 끌려온 우크라이나 유대인 학살 책임을 맡았다. 독일군이 소련으로 진격한지 6개월 후인 1942년 초에 이미 90만 명의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1941년 9월 바비 야르의 학살구덩이에서 독일 제6군 선전특공대 소속 요한네스 횔레가 찍은 이 사진들은 ‘총살을 통한 유대인 대학살’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파트릭 데부아(Patrick Desbois) 신부의 업적을 기리는 이 전시회는 11월 30일까지 파리 소재 쇼아 메모리얼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다.
ⓒ 민중의소리

1941년 6월 30일 OUN-b는 야로슬라프 스테츠코(Iaroslav Stetsko)가 이끄는 우크라이나 국가를 선포한다. 그의 선언 중 한 구절은 “독일군과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게 영광을!”이라고 되어있다. 베를린은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거부하며, 반데라와 스테츠코는 감금되었다. 점령자의 정책은 우크라이나 독립주의자들의 소망에 배치되고 있었다. 나치는 모든 슬라브인을 본 따 우크라이나인들을 ‘하급인간(Untermenschen)’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나치 지도자들의 ‘게네랄 오스트플란(General Ostplan, 동유럽을 위한 총 플랜)’에 따라, ‘북유럽 인종’의 식민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또 독일의 새로운 ‘생의 공간’의 현대화가 가능하도록 3천만 명의 소련인이 죽어야만 했고, 또 다른 3천만 명은 동구로 강제 이주되어야 했다. 플랜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소련군은 1941년 12월 7일 모스크바 앞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대규모의 강제 이주가 일어나게 되는데, 실제로는 서부지역에 위치한 노동수용소와 학살수용소로 향하게 된다. 그 이전의 여러 달 동안 정교하게 준비된, 가스를 이용한 유대인 대량학살이 아우슈비츠에서 시작된 시기는 1942년 5월부터이다.

멜니크가 이끄는 OUN-m은 점령자인 나치 독일의 행정부 및 경찰과 협력했고, 1943년에 SS 갈리시아(할리치나) 사단의 구성을 지지했다. 사단은 나치의 만(卍)자가 장식된 노랗고도 푸른 깃발을 내세웠다. 보다 후에 그 모습은 삼지창과 갈리시아 사자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베를린에 자리를 잡은 멜니크는 독립주의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해나갔다. 그는 1944년 2월 잠시 투옥되기도 했다.

OUN-b는 반란을 일으켰다. 나흐티갈 대대와 슈츠만샤프트(Schutzmannschaft) 대대 201의 옛 지휘관이었던 로만 슈케비치(Roman Choukhevitch)는 1942년 말에 우크라이나 반란군(UPA)의 수장이 되었다. 이 봉기군은 1950년대 초까지 주로 소련에 맞서(1945년 이후 서방 정보국들의 지원을 받아 간헐적인 형태로), 1947년에 폴란드에 맞서, 그리고 독일에 맞서 여러 전선에서 전투를 벌인다. 1943년 말에 슈케비치는 폴란드인, 유대인 및 집시들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을 내리나, 1944년 2월에 그는 더 이상 유대인들을 죽이지 말라고 군대에 명령했다. UPA는 “우크라이나를 우크라이나인들의 손에”, “토지를 농민들에게”라는 명분을 위해 투쟁했다. 애국주의적 저항이었을까, 농민들의 반란이었을까? 아니면 방향감각을 상실한 파시스트들의 작품이었을까? 역사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1941년 9월 바비 야르의 학살구덩이에서 독일 제6군 선전특공대 소속 요한네스 횔레가 찍은 이 사진들은 ‘총살을 통한 유대인 대학살’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파트릭 데부아(Patrick Desbois) 신부의 업적을 기리는 이 전시회는 11월 30일까지 파리 소재 쇼아 메모리얼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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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반데라와 스테츠코는 우크라이나 민족위원회에 합류하도록 풀려난다. 하지만 그들은 나치의 통제를 받고 있고, SS여단의 지휘관을 역임했던 파블로 샨드루크 장군이 주재하던 이 위원회에 합류하기를 거부한다. 그의 주도 하에, 1944년 6월 27일 우크라이나 국민군 제1사단이라 다시 명명된 SS 갈리시아 사단, 그리고 독일군의 협력자였던 히위(Hiwis, 러시아 지원 보조병)는 슬로바키아에서 우크라이나 국민군(UNA)을 구성하게 된다. 전쟁은 패배로 끝났다. 1945년 5월초에 영국과의 접촉을 시작한 후 우크라이나의 SS는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 및 미국에 합류하게 된다.

이 시기동안 레드 아미는 우크라이나 전선들에서 1943년부터 1944년까지 독일의 패배를 가져온 결정적인 전투를 수행했다. 수백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소련 병사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20만 명 이상의 빨치산들이 해방전쟁에 참가했다. 그들은 서구 연합국들의 지원을 받아 나치의 모험과 대량학살을 끝장내게 된다. J.-M.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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