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총투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월간말>한국노총 대선후보와 정책연대, 12월9일 지지후보 공개

부성현 매일노동뉴스 기자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글자 크기

“한국노총은 과거 대통령 선거 시기에 정책연합(97년)과 독자정당 창당(2002년)을 시도했다. 지속적이지 못했고, 현장 조합원의 피부에 와 닿지 않은 지도부 중심의 정치활동이었다. 이것이 한계였다. 조합원 총투표를 통한 대선 후보 결정 방침이 나오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조합원이 고민해서 대선 후보를 직접 결정토록 했을 때 실패하더라도 한국노총으로선 학습효과를 얻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영구 정책연대’로 가기 위한 훈련과정이다.”

지난 9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역순회에서 한 발언이다. 한국노총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조합원 총투표에 의해 대선 후보를 지지할 예정이며, 선택된 후보의 정당과 정책연대를 맺는다는 계획이다. 정책연대는 “특정정책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정책연대 후보와의 정책협정을 체결하여 노동자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책연대는 한국노총의 대선정책 요구를 각 대선후보에게 제시하고 그 요구안을 분석ㆍ평가해 조합원에게 제시하면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한국노총의 지지후보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전 정책연합과의 차이점이라면 상층부 간부 중심의 지지선언이 아니라 조합원이 직접 결정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정책연대를 위한 조합원 총투표는 오는 11월18일부터 12월7일까지 ARS방식으로 진행된다. 한국노총은 이미 조합원의 선택 근거 마련을 위해 대선 요구안을 발표하고, 조만간 각 후보진영에 이를 보낼 예정이다. 대선 요구안에 대한 답변서를 바탕으로 조합원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계획. 그 일환으로 11월 중순께 대선후보 TV 토론회와 11월24일 정책연대 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대선출정식을 겸해 개최할 방침이다.

정책연대를 둘러싼 시나리오는 세 가지. △한국노총이 선택한 후보가 집권하고 공약 이행도 잘되는 경우 △한국노총이 선택한 후보가 실패하는 경우 △선택한 후보가 집권한 이후 공약 이행을 파기하는 경우 등이다. 한국노총은 여기서 세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실패하지 않는다고 전망한다. 한국노총이 선택한 후보가 집권해서 공약이행을 지키지 않더라도 조합원이 선택했기에 집권기간 동안 정책연대는 유효하며, 지지후보가 낙선해 야당이 되더라도 그 정당과 정책연대를 지속하면 된다는 것. 그렇다면 한국노총이 정책연대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조합원 총투표’에 모든 것을 걸었다
  • 한국노총 대의원대회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 사진 더 보기

정책연합과 독자정당 창당 그리고 정책연대

정책연대를 이해하려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노총의 선택을 살펴봐야 한다. 특히 한국노총이 자주적으로 정치적 선택을 했던 지난 97년, 2002년의 상황을 분석해봐야 한다.

“정책연합이라는 것은 하나의 단계에 불과했다.” 지난 97년 정책연합 당시 관여했던 최대열 한국노총 홍보국장의 말이다. 97년 한국노총의 중장기 정치방침 로드맵엔 △97년 대선에서의 정책연합 실현 △2000년 총선에서 20석 확보 △2004년 노동자 독자정당 건설 △2012년 집권 등의 시기별 계획이 담겨있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정치세력화의 시계는 1단계인 정책연합에 멈춰져 있다. 2004년 녹색사민당이라는 정치적 미아기를 지나 2007년 17대 대선을 맞아 이용득 체제의 한국노총은 정책연합의 또 다른 얼굴인 정책연대로 돌아왔다.

이용득 위원장이 주장하듯 향후 세 차례의 정책연대 과정을 통한 2017년 영구정책연대가 한국노총의 정치세력화의 최상의 해법일 수도 있다.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급격하게 고양시켰던 96년 총파업이라는 배경도 없고, 한국노총의 정치적 입지는 97년 정책연합의 성공 이후 내리막길을 달려왔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독자적 정당 추진과 집권에 대한 꿈은 홀로서기를 허용치 않는 정세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총의 정당 건설의 역사는 6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칭) 민주노동당 사건이 그것이다. 4.19 혁명 이후 박정희 정권이 초반기에 김정원 광산노조위원장 등 8명의 산별위원장이 중심이 돼 민주노동당 창당을 본격 선언했다. 창당 취지문에서 “우리는 반공, 자유, 민주주의를 기조로 하는 사회정의의 구현과 복지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민주노동당을 창당코자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박 정권의 서슬 퍼런 협박과 회유로 창당 움직임은 봉쇄됐다. 이후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폭압을 거치며 기나긴 정치적 침묵을 강요당했다.

물론 그 기간 동안에도 한국노총 소속 인사들의 정계진출은 이뤄졌다. 이강희 인천항운 노조위원장, 장경우 시티은행 노조위원장, 조성준 한국노총 홍보실장, 김문수 도루코노조위원장, 조한천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등 개인적 차원에서 개혁정당과 보수정당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이라는 백그라운드만 같았을 뿐 국회에서 한국노총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고, 대변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그러다 최초로 개혁의 화두를 던진 박종근 위원장 체제를 지나 박인상 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정치적 자주화’의 여건이 비로소 조성됐다. 96년 겨울 한국노총의 노동법 총파업은 정책연합이라는 정치카드를 선택하도록 만든 촉매제였다.

박 위원장은 12월9일 김대중 후보에 대한 개인 성명의 공개지지 선언을 통해 “그동안 이 나라 노동운동의 발전과 노동자의 권익신장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본인은 김대중 후보의 경륜과 철학이야 말로 우리 노동자들을 대량실업의 공포에서 구출하고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하여 김 후보의 지지와 당선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중 후보가 결국 대통령이 됐다. 정책연합은 완성됐다.

하지만 아무리 IMF체제라고 하나 전임자 임금, 실업자 노조 가입 등 노동계의 요구사항들이 거의 지켜지지 않으면서 배신감이 커졌고 1999년 12월13일 DJ와의 정책연합은 마침내 파기됐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이라는 투표 결과가 나온 12월19일부터 공식화된 정책연합은 1년 조금 넘는 시점에 미완의 실험으로 끝났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한국노총의 정치방침은 없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97년 정책연합의 성공이 2002년 대선으로 연속되지 않았다”며 “권력의 단맛을 만끽한 이후로 한국노총 내부에 정치좌표의 무중력 상태라는 공백기가 만들어 졌다”고 말했다. 97년에 세운 중장기 로드맵대로 정치세력화의 일정표가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세력에게 국회권력은 더 이상 양보와 기다림을 허용치 않았다. 그리고 맞이한 2004년 총선에서 한국노총은 녹색사민당이라는 정당을 세웠지만 한국노총 정치세력화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을 뿐이다. 조직과 정책과 홍보의 총체적 실패로 인해 0.5%에 불과한 지지율로 한국노총의 정치역량은 정책연합 이전시대로 회귀했다. 노무현 정권 집권 초반기는 정치사회적으로 민주노총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됐으며 한국노총은 정치적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리고 또 3년 후 한국노총은 정책연대로 17대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라곤 상층부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조합원의 총의를 모아 대선 후보를 선정하는 방식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책연대의 세 가지 변수

‘정책연대는 실패할 수 없는 전략’이라는 이용득 위원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변수는 없을까.

조합원 총투표에 의한 정책연대 방침은 결정됐지만 세부사항은 미완으로 남아있다. 조합원 총투표는 결국 한국노총 중앙정치위원회에서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노총은 10월25일 중앙정치위원회를 열어 정책연대의 세부적인 사항을 결정한다. 이 글은 23일을 기준으로 작성했다.)

우선 조합원 총투표의 유효 투표율 기준이다. 이때 기준을 조합원 명부 제출로 할지, 자동응답시스템(ARS) 응답률로 할지가 결정돼야 한다. 노동조합의 관행상 조합원 총투표에 대한 심리적 저지선을 넘기 위해서는 제적인원의 과반수 이상이 나와야 한다. 한국노총의 전체조합원은 87만명이다. 이중 약 67만명이 조합비를 납부한다. 조합비를 납부하는 67만을 대상으로 조합원 명부가 어느 정도 제출될지가 우선 기준이 된다. 50% 이상이면 최소 33만5천명이 넘어야 한다. 하지만 ARS 응답률로 과반인 33만5천명을 넘기려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ARS 업체는 65%를 최대 목표치로 제시했고, 한국노총은 SMS 사전 고지와 다양한 투표율 제고방안을 통해 80% 가까이 응답률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때부터 함수관계가 시작된다. ARS업체가 최적화된 응답률이라고 밝힌 65% 기준으로 응답자 수가 33만5천명이 되기 위해서는 조합원 명부는 53만8천4백여 명이 필요하다. 한국노총의 노력으로 ARS 응답률이 80%가 된다면 조합원 명부는 43만7천5백 명만 확보하면 된다. 각각 전체 조합비 납부 조합원 중 80%와 65% 수준으로 제출되는 수치이다. 투표의 대표성 시비와 무관하게 조합원 총투표에 의미를 부여하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이지만 캐스팅보트로서의 파괴력을 고려한다면 35만 이상이 필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50% 과반을 넘었다 하더라도 정책연대 후보 결정에서 박빙의 승부가 연출돼 1천표 차이 미만으로 후보 등락이 결정된다면 2위 지지자 입장에서 승복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11월 총투표 때 후보군이 난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전제돼야 한다. 후보군을 어느 정도로 할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총투표로 정책연대 후보를 결정했지만 뒤이어 다른 정당의 후보와 단일화과정을 거치면서 후보가 바뀌게 될 경우 그 후보를 한국노총의 후보로 위임할 수 있을지의 문제도 가능성은 적지만 단서조항에 들어갈 부분이다.

이와 함께 특정정당 후보 배제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조직적 결의로 통과시켜야 하는 부분도 있다. 이 위원장은 한국노총에 적대적 행위를 했다며 민주노동당 후보를 배제하겠다는 언급을 자주하고 있다. 다른 편에서는 한국노총 의사결정 원칙에 따라 중앙정치위원회에서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김선동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한국노총에 공식 사과문을 전달한 바 있다. 한국노총이 이것을 수용할 지는 현재까지 미지수다. 한국노총 내부정서가 여전히 민주노동당에 대해 격앙돼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연대 투표 대상에 민주노동당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정책연대에 대한 조합원 교육 강화돼야

이러한 세가지 변수는 정책연대의 필요조건에 해당된다. 일각에선 대선 후보를 조합원 총투표라는 방식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97년 한국노총의 정책연합을 경험한 관계자는 “10년 전 방침과 다름없다. 민주적이냐, 대중적이냐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며 “ARS 조합원 총투표는 일반 여론조사의 결과와 편차가 거의 없는 선호도 투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50%의 고공행진을 하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로 갈 게 확실하다”며 “조합원 선택이라는 명분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책연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후보들의 친노동자성을 구분하는 정책공약 평가가 특히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한국노총이 선출한 후보가 당선하든 낙선하든 한국노총의 핵심요구사항에 대해 어떤 이행 로드맵을 밟을지 구체적 조건들과 경로를 제출토록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이라도 11월 조합원총투표 이전까지 정책연대에 대한 조합원 교육과 토론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책연대는 또 하나의 ‘실험’이다. 정책연합과 독자정당 창당을 경험한 한국노총으로선 대선 공간에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정책연대가 조합원 선택에 지도부가 숨는 방식이 아니어야 하며, 조합원 선택을 존중하되 선택의 근거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가 정치 훈련과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한국노총 지도부가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떠한 정치세력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기회를 줘야 하며, 충분한 교류를 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컨텐트 링크

민중의소리를 후원하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컨텐트 링크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