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후보단일화를 걷어치워라
<월간말>
이번 대선이 지금의 예측처럼 이명박 후보의 낙승으로 끝난다면 일등 공신 자리는 ‘범여권’이라는 단어에 돌리는 게 어떨까 싶다. 2005년까지 범(凡)여권이라는 단어는 청와대, 여당, 행정부에 걸쳐있는 집권세력을 폭넓게 부르는 표현이었다. 청와대를 핵심 권부의 위치에 놓고, 여당이 이를 뒷받침하며, 이래저래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을 뭉뚱그려 부를 때 범여권이라는 표현처럼 적절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아주 흔하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9개 종합일간지만 놓고 볼 때 2004년에는 63회, 2005년에는 34회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도 주로 장관같은 임명직 고위공무원의 인사철에만 사용되었으니, 글자 그대로 집권세력의 잠재적 인력풀(Pool)이라는 의미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범여권이라는 단어는 2006년에는 478회나 사용됨으로서 ‘고유한’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2006년도 지방선거 전후로 그 사용이 크게 다른데, 지방선거 전 5달 동안 91회 사용에 그친 반면, 그 이후 7달 동안 387회 사용되었다. 올해는 10월 중순까지 무려 1만4천회 이상 사용되었다.
범여권이라는 말이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2006년 지방선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당선 가능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떠오른 것이 강금실 카드다. 강금실 전 장관은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니 여권 인물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도 아니었고, 열린우리당에 대한 소속감도 거의 없었다. 불임(不姙)임이 확인된 여당과 청와대는 강 전 장관에게 SOS를 쳤고, 이 때 강 전 장관을 고려한 이름붙이기가 ‘범여권’이었다. 강금실은 홍준표, 맹형규 의원 같은 한나라당 후보엔 앞섰지만, ‘범한나라당’ 전략을 들고 나온 오세훈 전 의원에게는 밀렸다. ‘범’대 ‘범’의 대결에서 여권은 패배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는 언뜻 지역주의 탓처럼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근거지라고 생각했던 호남에서도 패배했고, 호남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한 수도권에서도 패배했다. 눈치빠른 몇몇 젊은 정치인들은 호남을 다시 끌어들이지 않으면 대선도 어렵다는 판단으로 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진해 나갔다. 여기서 사용된 명분도 ‘범여권’이다. 물론 민주당의 반응은 차가웠고, 이제 대선을 두 달도 채 남기지 않은 10월말에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지금은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이름으로 바뀐)은 각개약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범여권이란 표현이 갖고 있는 정치적 의미는 명확했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인해 벌어진 전현직 대통령 사이의 앙금, 그리고 정당개혁을 둘러싼 구 민주당 신구파 사이의 갈등을 통합하자는 것이 이 단어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추진했던 세력이 보기에 범여권이라는 표현은 다소 굴욕적이었을 것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 잔류파들이 보기엔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은 분당파’들이 도매금으로 자신들까지 먹겠다는 패권적 의도로 여겨졌을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건 이때까지도 범여권의 경계선은 분명했다.
범여권이라는 표현이 점차 희화화된 것은 민주당도 열린우리당도 아닌 인사들이 ‘범여권’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고건 전 총리가 그렇고,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그랬으며, 지금은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이 그렇다. 이들 중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장은 평소의 주장만 놓고 보면 범여권인지 범한나라당인지가 불분명하다. 정 전 총장은 한나라당이 총선 때마다 영입에 열을 올렸던 인사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범여권’이 되었는데, 솔직히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강력한 대선 예비 주자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어차피 한나라당에 자리가 없으니 무주공산인 여권을 차지하려 한 것이다. ‘진짜’ 범여권 인사들도 일단 판을 키우고 후보단일화를 하면 된다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생각으로 이들을 기꺼이 안으로 받아들였다.
‘대선은 어차피 51 대 49’라는 출처불명의 미신도 여기에 한 몫 했다. 87년 이후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양자대결 구도로 펼쳐진 것은 지난 2002년 대선 뿐이다. 2002년 대선 조차도 사실 정몽준이라는 제3후보가 등장했었는데, 정 후보는 1992년 대선에서의 정주영 후보, 1997년 선거에서의 이인제 후보와 같은 맥락의 제3후보, 즉 민주개혁세력이라기보다는 보수세력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놀랍게도 이 시기에 정몽준 후보는 단 한차례도 ‘범여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이제와서 범여권은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에게 주홍글씨가 된 것 같다. 제 아무리 참신한 후보라도 범여권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노무현 정부의 나쁜 인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대통합민주신당으로의 재결집 과정에서 보여준 ‘잔머리 정치’와 무조건 후보단일화만 하면 된다는 ‘묻지마 전략’도 주홍글씨의 색깔만 더 진하게 해 줄 뿐이다.
1987년 이후 승승장구했던 세력으로서는 앞날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심정이 더 크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제 갈 길을 갈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각자의 이념대로, 각자의 정책으로 각자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면 된다. 행여 그 이념과 정책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성급한 단일화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 후보가 단일화되는 순간, 2002년과는 달리, 그들이 왜 지금까지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이 범여권에 대해 짜증나하는 가장 큰 이유인, ‘속이 너무 쉽게 들여다보이는 정치’는 그만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범여권이라는 단어는 2006년에는 478회나 사용됨으로서 ‘고유한’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2006년도 지방선거 전후로 그 사용이 크게 다른데, 지방선거 전 5달 동안 91회 사용에 그친 반면, 그 이후 7달 동안 387회 사용되었다. 올해는 10월 중순까지 무려 1만4천회 이상 사용되었다.
범여권이라는 말이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2006년 지방선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당선 가능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떠오른 것이 강금실 카드다. 강금실 전 장관은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니 여권 인물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도 아니었고, 열린우리당에 대한 소속감도 거의 없었다. 불임(不姙)임이 확인된 여당과 청와대는 강 전 장관에게 SOS를 쳤고, 이 때 강 전 장관을 고려한 이름붙이기가 ‘범여권’이었다. 강금실은 홍준표, 맹형규 의원 같은 한나라당 후보엔 앞섰지만, ‘범한나라당’ 전략을 들고 나온 오세훈 전 의원에게는 밀렸다. ‘범’대 ‘범’의 대결에서 여권은 패배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는 언뜻 지역주의 탓처럼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근거지라고 생각했던 호남에서도 패배했고, 호남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한 수도권에서도 패배했다. 눈치빠른 몇몇 젊은 정치인들은 호남을 다시 끌어들이지 않으면 대선도 어렵다는 판단으로 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진해 나갔다. 여기서 사용된 명분도 ‘범여권’이다. 물론 민주당의 반응은 차가웠고, 이제 대선을 두 달도 채 남기지 않은 10월말에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지금은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이름으로 바뀐)은 각개약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범여권이란 표현이 갖고 있는 정치적 의미는 명확했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인해 벌어진 전현직 대통령 사이의 앙금, 그리고 정당개혁을 둘러싼 구 민주당 신구파 사이의 갈등을 통합하자는 것이 이 단어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추진했던 세력이 보기에 범여권이라는 표현은 다소 굴욕적이었을 것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 잔류파들이 보기엔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은 분당파’들이 도매금으로 자신들까지 먹겠다는 패권적 의도로 여겨졌을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건 이때까지도 범여권의 경계선은 분명했다.
범여권이라는 표현이 점차 희화화된 것은 민주당도 열린우리당도 아닌 인사들이 ‘범여권’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고건 전 총리가 그렇고,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그랬으며, 지금은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이 그렇다. 이들 중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장은 평소의 주장만 놓고 보면 범여권인지 범한나라당인지가 불분명하다. 정 전 총장은 한나라당이 총선 때마다 영입에 열을 올렸던 인사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범여권’이 되었는데, 솔직히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강력한 대선 예비 주자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어차피 한나라당에 자리가 없으니 무주공산인 여권을 차지하려 한 것이다. ‘진짜’ 범여권 인사들도 일단 판을 키우고 후보단일화를 하면 된다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생각으로 이들을 기꺼이 안으로 받아들였다.
‘대선은 어차피 51 대 49’라는 출처불명의 미신도 여기에 한 몫 했다. 87년 이후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양자대결 구도로 펼쳐진 것은 지난 2002년 대선 뿐이다. 2002년 대선 조차도 사실 정몽준이라는 제3후보가 등장했었는데, 정 후보는 1992년 대선에서의 정주영 후보, 1997년 선거에서의 이인제 후보와 같은 맥락의 제3후보, 즉 민주개혁세력이라기보다는 보수세력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놀랍게도 이 시기에 정몽준 후보는 단 한차례도 ‘범여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이제와서 범여권은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에게 주홍글씨가 된 것 같다. 제 아무리 참신한 후보라도 범여권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노무현 정부의 나쁜 인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대통합민주신당으로의 재결집 과정에서 보여준 ‘잔머리 정치’와 무조건 후보단일화만 하면 된다는 ‘묻지마 전략’도 주홍글씨의 색깔만 더 진하게 해 줄 뿐이다.
1987년 이후 승승장구했던 세력으로서는 앞날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심정이 더 크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제 갈 길을 갈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각자의 이념대로, 각자의 정책으로 각자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면 된다. 행여 그 이념과 정책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성급한 단일화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 후보가 단일화되는 순간, 2002년과는 달리, 그들이 왜 지금까지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이 범여권에 대해 짜증나하는 가장 큰 이유인, ‘속이 너무 쉽게 들여다보이는 정치’는 그만할 때가 되었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7-10-26 10:09:56
- 최종편집: 2007-10-31 1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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