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없는 반미국가, 생존은 가능한가

<월간말>[선군정치 특집②]선군정치의 국제정치적 배경

민경우 / 한국진보연대 정책기획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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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을 중시하는 것은 근현대는 물론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모름지기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해야 하고 국가 내부의 반란을 진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이 주장하는 선군정치에는 독특한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필자는 이를 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하에서 중규모 반미 국가가 생존하기 위한 방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북과 유사한 사례가 있지 않을까? 아래에서는 주로 이란의 사례를 통해 북의 선군정치를 평가해 보도록 하겠다.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에 직면한 중규모 반미국가들

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의 주도로 일어난 이슬람 혁명은 미국과 친미 왕정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에 미국과 친미왕정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갖고 있던 아랍 맹주에 대한 야심을 부추겨 이란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70년대는 이집트의 낫셀이 주도했던 아랍 민족주의가 퇴조하고 이슬람 원리주의가 성장하던 초입 무렵이다. 따라서 중동 지역 중심부인 이란에서 일어난 이슬람 혁명은 심각한 양상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컸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에서 발원한 이슬람 원리주의 확산을 상당 기간 효과적으로 지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하면서 세계정세는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로 변화했다. 이런 조건에서 이란, 이라크, 북, 쿠바 등 중규모 반미국가들은 심각한 시련에 직면했다. 미국은 큰 어려움없이 위 나라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는데 이라크 경제의 와해, 북의 고난의 행군, 쿠바의 시련 등이 모두 미국 주도하의 일극 질서를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이란의 경우도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하에서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국가의 골간은 이슬람세력이 쥐고 있었지만 1997년과 2001년의 연이은 선거에서 온건중도 세력이 승리한다.

최근 들어 이란에서 급진 노선이 급부상한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략 때문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한편으로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마무리하고 난 이후 이란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의 팽창을 저지하고 있던 이라크라는 족쇄를 제거해 버렸다.

이란의 급진노선 부상으로 이어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이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2002년 1월 29일 부시 대통령은 북.이란.이라크를 묶어 ‘악의 축’으로 선포하고 이듬해 3월 이라크 침략을 강행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대량살상무기가 없음을 알면서도 UN 안보리의 결정마저 무시하고 강행된 전쟁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에 이란 내부에서 핵무기를 갖고서라도 미국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정치세력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2005년 6월 이란 대선이 진행되었는데 1차 투표에서 30만 표 차이로 라프산자니 후보에 뒤졌던 아마디네자드(1차에서 570만 표)가 2차 투표에서는 1천700만 표를 얻어 1천만 표에 그친 라프산자니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56년생으로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슬람 혁명수비대에서 근무한 전력이 있는 반미강경파로 2005년 대선에서 군부와 테헤란 빈민층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2001년 9.11 테러와 2003년 3.19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사건의 충격에 비해 그 자체로만 보면 국제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지 않은 해프닝(?) 같은 것이라면 중동 심장부의 인구 7천만, 세계 2위의 산유대국 이란에서 핵 보유를 공언하는 아마디네자드 정권의 등장은 중동 정세의 극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중대한 사태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랍민족주의 퇴조 이후 사분오열되어 있던 중동 사회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촉발된 중동 사회의 급진화를 배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있어 이란이 ‘핵’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이슬람 사회의 급진화 경향은 궁극에 가서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과의 대치로 수렴될 것이다.

첨예화되어가는 이란과 미국의 핵공방

이란발 중동 세력 재편 움직임은 이란의 핵 개발에서 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하에 중규모 반미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책은 핵과 전략무기의 개발이다. 만약 미소 냉전 구조가 유지되었다면 미국은 이란과 같은 중규모 국가에 대해 군사 작전을 단행하기 어렵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지만 소련이 갖고 있는 국제적인 영향력을 잠식하기 때문에 소련이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되고 소련이 개입된 조건에서는 미국의 대이란 공격이 승패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련이라는 국제정치의 ‘균형자’가 사라지게 되면 양상은 달라졌다. 미국이 갖고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은 핵과 같은 전략무기를 갖고 있지 않는 중규모 국가의 군사력을 비교적 손쉽게 무력화할 정도로 위협적이다. 1991년 1차 이라크 전쟁과 2003년 2차 이라크 전쟁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1, 2차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이라크 군대를 제압했다. 특히 2차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전쟁 발발 후 20일이 채 못 되어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40일 만에 전쟁을 종료하는 경이적인 군사력을 과시한 바 있다. 이런 정도라면 핵을 보유하지 않는 한 중규모 반미국가가 미국의 군사력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하에서 중규모 반미국가가 생존 또는 세력의 재편을 위해서는 핵개발은 불가피한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핵 게임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2002년 중반 이란의 반체제 세력이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부터다. 우여곡절을 거쳐 2004년 11월에 이란과 유럽연합 3개국(독일·영국·프랑스) 사이에 협상이 진행된 바 있지만 소기의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 후 2005년 6월 대선에서 승리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핵개발 계획을 공언하고 2006년 4월 이란 핵문제가 UN 안보리에 보고됨에 따라 미국과 이란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선군정치의 국제정치적 맥락

북의 선군정치는 이란과 유사한 국제정치적 맥락이 있다. 그것은 첫째, 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 둘째, 미국과의 군사적 균형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핵과 같은 전략 무기 개발을 통해 균형을 맞추려 한 점 등이 그것이다.

이란이 걸었던 행보 또한 크게 보면 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북의 입장에서는 석유와 같은 전략자원이 없는 조건에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상당히 이른 시기에 핵개발을 본격화했고 이란은 북과 달리 석유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핵 개발의 동인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핵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또다른 반미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1960년대 중남미에서 등장했던 혁신 군정의 현대적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조직화된 대중운동의 성장에 앞서 조직화된 군을 거점으로 정권을 잡고 진보적인 정책을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1969년 리비아의 가다피, 1968년 페루의 벨라스코 정권 등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안마당’이라고 할 정도로 장악력이 높고, 중동에 비해 전략적인 이해가 떨어지는 남미에 대해서는 군사적 충돌을 유예해왔다. 2002~2004년 베네주엘라에서 벌어진 좌우익 사이의 파워게임에서 차베스 대통령은 국제정세의 덕을 보았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차베스 대통령은 군력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2006년에는 러시아로부터 수호이-30 전투기 24대와 군용헬기(Mi-17) 53대, 칼라슈니코프(AK) 소총 10만정 구입을 내용으로 하는 30억달러 규모의 협정을 체결했고, 2007년에는 러시아제 잠수함 9척 구매 의사를 밝히고 핵 개발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2005년 이후 베네주엘라가 군사력 강화를 시사하고 있는 점은 베네주엘라 혁명이 본격화됨에 따라 미국과의 대치선이 민감해 지기 시작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 유지될까

선군정치의 배경이 미국주도의 일극질서에 있다면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의 견고함 정도가 선군정치의 미래와 관련한 중요한 가늠자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과 대테러 전쟁은 강대국 정치지형을 미국-일본-호주를 연결하는 범태평양 블록, 중-러-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대륙, 유럽 등으로 삼분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미국의 이라크 전쟁 과정에서 탈미화했다가 독일과 프랑스에서 우파 정부가 들어서고 중러가 부상함에 따라 다시금 친미적 노선을 걷고 있다. 그러나 유럽이 이전 시기 나토와 같은 강력한 군사동맹을 복원할 지는 미지수다. 인도의 경우는 비동맹 맹주국으로서의 독자성과 2006년 3월 미-인도 핵협정에서 보듯 파격적인 미국의 양보에 따라 친미 행보를 걸을 가능성 사이에서 아직은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

한편 제 3세계의 경우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상황 악화로 전반적으로 급진화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북·이란·베네주엘라가 한편에서는 핵을 통해 다른 한편에서는 탈미 경제협력을 통해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에 상당한 파열구를 내고 있고, 양자간 또는 삼자간 연대와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핵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했으므로 경제협력에 대해서만 일별하면 중남미의 경우 베네주엘라를 고리로 한 탈미 경제블록이 형성되고 있고 이란의 경우 에너지를 매개로 중러 등과 다양한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북의 경우도 북미 공방이 일정하게 마무리되면 남-북-중-러-일을 연결하는 큰 규모의 경제협력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로 보면 1990년대 중후반에서 부시 행정부 이전까지 절정에 올랐던 미국은, 이라크 침략 실패로 상당한 위기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질서가 그 큰 틀을 완성했다고 보는 것은 아직까지 무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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