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혁명과 군
<월간말>[선군정치특집④]다른 나라에서는 선군정치를 어떻게 하나
공수부대 중령 출신의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혁명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면서도, 군인 출신이라는 차베스의 독특한 경력 때문에 많은 오해를 사기도 한다. 베네수엘라 혁명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해 사례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돌아본다.
사관학교에서 자라난 혁명적 군인들
중남미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의 입김이 센 곳이다. 게다가 수십 년간 미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며 쿠바를 적대시하는데 앞장서던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를 비롯한 진보적 성향의 군인들이 출현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 원인 중 하나로 1971년부터 시행된 ‘안드로스 벨로 플랜’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다른 중남미 여러 나라의 군인들과 달리 베네수엘라의 군인들은 SOA(School of the Americas)를 거치지 않고 국내의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럼으로써 미국에 우호적인 군인들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군인들을 양성할 수 있었다. 사관생도들은 쉬는 시간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또한 일반대학에서 민간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받음으로써 다양한 정치이론 뿐 아니라 학생들의 진보적인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존의 진급관행이라는 것이 인맥이나 연줄에 의해 좌우된 반면 이 프로그램이 도입되자 진급과정에서 각개인의 실력과 공적이 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청년장교들이 시민사회로 나와 좌익 게릴라 운동의 생존자들과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이 혁명적 장교들은 군대에서 점차적으로 진급해 가면서, 민중을 위한 혁명적 쿠데타를 언제 수행할지 신중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1983년 7월 24일, 차베스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지들을 규합하여 군내부에 볼리바르혁명군(Ejercito Revolucionario Bolivariano, EBR-200)이라는 비밀조직을 건설했다. 200이라는 숫자는 베네수엘라의 국민적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가 탄생한지 200주년인 1983년에 설립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조직의 목표는 혁명을 통해 남미해방이라는 시몬 볼리바르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EBR-200은 당시에 대부분이 차베스처럼 20대의 젊은 장교로 구성되어 있었다. 1989년 2월의 카라카소 이후부터 민간인들이 EBR-200에 처음으로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볼리바르혁명운동(Movimiento Bolivariano Revolucionario-200, MBR-200)이라고 명칭을 변경한다.
민중을 위해 군이 일어서다
1989년 2월, IMF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반대해 일어난 민중들의 봉기(카라카소)에 대해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해서 수천명의 사람을 죽였다. 당시 베네수엘라의 혁명세력은 민중들의 봉기를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상황은 결국 대량학살사태로 끝나게 된 것이다. 잘못된 경제정책에 항의해 거리로 나선 국민들에게 총을 쏘는 정권에 대해 베네수엘라 군부 내의 혁명세력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1991년, 차베스가 이끄는 MBR-200 지도부는 차베스가 주로 인용하는 전시대의 영웅 중 하나인 에세키엘 사모라의 이름을 붙여 자신들의 쿠데타에 ‘플랜 사모라’라는 코드명을 부여했다.
1992년 1월 말, 차베스가 콜롬비아 국경의 황폐한 작은 마을로 전출될 것이라는 급박한 소식이 들려왔다. 차베스가 변경의 외딴지역으로 간다면 MBR-200의 쿠데타를 지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차베스를 비롯한 쿠데타지도부는 마지막 회합을 갖고 차베스의 전출 전에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당시 1992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참석차 국외에 있는 페레스 대통령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MBR -200의 쿠데타군은 병력수를 증강했다.
결국 중령 5명, 소령 14명 대위 54명, 중위 67명, 소위 65명, 부사관 101명과 병사 2,056명이 쿠데타에 가담했다. 총 2,367의 병력이 10개의 각기 다른 부대에서 동원되었다. 베네수엘라 전체의 1/10에 해당하는 병력이었지만 공수부대와 전차부대를 비롯한 정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침내 쿠데타일이 최종 확정됐다. 1992년 2월 4일 화요일이었다.
2월 4일 화요일 아침, 마침내 차베스가 이끄는 5개 부대가 수도 카라카스로 진격했다. 차베스는 대통령궁 인근의 역사박물관으로 진입하여 전국적인 통신망을 갖고 쿠테타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레스대통령을 공항에서 생포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방송국을 점령하기로 했던 민간그룹도 역시 실패했다. 쿠데타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 이상의 유혈참사를 피하기위해 차베스는 텔레비전 방송연설로 쿠데타에 가담한 동료들에게 투항할 것을 권고하였다. 차베스의 방송출연은 1분정도밖에 안 됐다. 그러나 이 방송으로 인해 차베스는 민중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후 차베스를 비롯한 쿠데타 주동자들은 투옥된 반면 구체제의 정치인들은 극적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쿠데타이후 군대는 심각하게 분열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차베스를 비롯한 쿠데타 지도자들을 지지하게 되었다. 쿠데타기간 동안 14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50명이 부상당했으며, 80명의 시민이 교전으로 인해 부상당했다. 또한 쿠데타의 실패로 참여한 많은 군인들이 구속되었다.
어려운 시기, 군이 사회사업에 앞장서다
차베스는 1994년 감옥을 나와서 MBR-200을 민간-군부의 연합체성격을 가진 전국조직으로 키워내고, 1998년 대통령선거에 참여하여 당선이 된다. 차베스의 집권 첫해인 1999년, 국영석유회사(PDVSA)는 아직 국내의 소수기득권층이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불황으로 사회복지정책에 쓰일 가용자원이 거의 없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빈민들을 위한 사회사업에 앞장선 곳이 바로 군대였다. 차베스는 중심병력을 제외한 모든 부대로 하여금 빈민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산해 내도록 명령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볼리바르 계획 2000(Plan Bolivar 2000)이라 이름지어졌다. 베네수엘라 군대의 각 부대는 이 거대한 프로그램 하에서 다양한 계획을 세워나갔다.
공군은 급히 국내 여행을 해야하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는 사람들을 무료로 운송하는 계획을 세웠다. 해군은 낚시 계획 2000(Plan Pescar 2000)을 세워 냉장고등 가전기기 수리, 협동조합 결성, 교육과정 이수 등에 도움을 주었다. 국가수비대는 경찰업무를 수행하였는데 특히, 정부의 영향력이 미미한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또다른 프로그램으로 아비스파 계획(Plan Avispa)도 역시 국가수비대에 의해 시행되었는데 빈민층에게 집을 지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레비바 계획(Plan Reviba)을 통해서는 낡은 집을 새로 지어주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외에 볼리바르 계획 2000(Plan Bolivar 2000)에서는 국가의 여러 지역에 음식물을 제공하는 계획도 있었다.
볼리바르 계획 2000을 통해 수천개의 학교, 병원, 보건소, 집, 교회, 공원이 재정비되었다. 2백만명 이상의 사람이 의료혜택을 받았고 거의 천여개의 공설시장이 문을 열었으며, 2백만명의 아이들이 예방주사를 맞았고 수천톤의 쓰레기가 수거되었다.
베네수엘라의 군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민간부분과의 공동사업을 통해 빈민을 위한 다양한 사회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반혁명 공세를 물리치는 혁명의 핵심역량
집권 후 차베스가 기득권 세력이 망쳐놓은 국가를 바로잡고 권력을 민중에게 돌리는 과감한 조치를 시행하자 미제국주의와 국내 기득권 세력들은 불만에 가득차서 차베스를 끌어내릴 음모만을 꾀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베네수엘라 권력의 핵심인 국영석유회사(PDVSA)의 부패한 이사진을 전원 해임시키고 새로운 이사진으로 교체한 사건을 계기로 반혁명세력들은 드디어 반혁명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2002년 4월 11일, 군부 내의 반혁명 세력들은 쿠데타를 일으켜서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차베스를 체포한다. 4월 12일 금요일 오후, 상공회의소장인 페드로 카르모나가 임시대통령에 취임했다. 카르모나는 취임하자마자 국회와 대법원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란 국명에서 ‘볼리바르’를 떼 버렸다. 또한 49개 개혁법안의 무효선언과 함께 앞으로 더 이상 쿠바로 석유를 보내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 발표했다.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기 전의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것이 그의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만들어온 아름다운 혁명의 과정이 반혁명세력에 의해서 폐기되는 것을 본 민중들과 애국적 군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차베스 지지자들이 대통령궁을 포위하였고, 차베스의 혁명동지인 바두엘장군이 마라카이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대통령궁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의 지휘관인 헤수스 모라오 까르도나 대령도 가세했다. 산동네 빈민촌의 주민들은 파도처럼 도심으로 밀고 내려와 차베스의 복귀를 요구하며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때가되자 모라오 대령은 휘하 병력에게 대통령궁을 장악할 것을 명령했다. 모라오 대령의 부대는 대통령궁으로 연결된 지하비밀통로를 빠져나와 까르모나의 지지자들을 체포했다. 잔당들은 그들의 차로 몸을 피해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까르모나는 반혁명 군부세력과 결합하기 위해 달아났다.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산재한 병영주변은 차베스를 지지하는 민중들로 가득했다. 빈민들과 차베스를 지지하는 군인들은 신속하게 결합할 수 있었다. 한편, 쿠데타수뇌부와 대책을 마련중이던 카르모나는 오후 7시경에 쿠데타측 군인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4월 14일 일요일 새벽, 라울 바두엘 장군의 지시로 마라카이에 주둔하고 있는 42공수여단 소속 헬기 3대에 나누어 탄 공수부대 병력이 차베스를 구출하기 위해 라 오르칠라 섬으로 파견되었다.
차베스는 새벽 3시 45분을 기해 수많은 군중과 군인들의 환호속에서 대통령궁인 미라플로레스로 무사히 복귀했다. 차베스는 자신을 환영하는 수많은 인파들을 상대로 차분하게 얘기했다.
“여러분이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민중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혁명을 수호하는 반제국주의 군대
차베스는 미제국주의가 콜롬비아에 미군을 주둔시켜 베네수엘라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 등에서 최신식 무기를 도입하고 200만명의 예비군을 창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러시아 방문시기에 핵도 개발할 수 있음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미제국주의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이야말로 혁명을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는 원동력임을 차베스는 알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에 베네수엘라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최근 추진되고 있는 헌법 개정안에서는 베네수엘라 군대를 애국적이며, 인민의 군대이며, 반제국주의 군대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혁명 사업에 이바지하는 군대의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으로서 이전 헌법에 비해 혁명에 있어서의 군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의한 것이다. 개헌안에는 예비군의 역할을 확대강화해서 베네수엘라 군대의 중요한 한 축으로 세우며, 군을 현대화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사관학교에서 자라난 혁명적 군인들
중남미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의 입김이 센 곳이다. 게다가 수십 년간 미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며 쿠바를 적대시하는데 앞장서던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를 비롯한 진보적 성향의 군인들이 출현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 원인 중 하나로 1971년부터 시행된 ‘안드로스 벨로 플랜’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다른 중남미 여러 나라의 군인들과 달리 베네수엘라의 군인들은 SOA(School of the Americas)를 거치지 않고 국내의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럼으로써 미국에 우호적인 군인들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군인들을 양성할 수 있었다. 사관생도들은 쉬는 시간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또한 일반대학에서 민간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받음으로써 다양한 정치이론 뿐 아니라 학생들의 진보적인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존의 진급관행이라는 것이 인맥이나 연줄에 의해 좌우된 반면 이 프로그램이 도입되자 진급과정에서 각개인의 실력과 공적이 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청년장교들이 시민사회로 나와 좌익 게릴라 운동의 생존자들과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이 혁명적 장교들은 군대에서 점차적으로 진급해 가면서, 민중을 위한 혁명적 쿠데타를 언제 수행할지 신중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1983년 7월 24일, 차베스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지들을 규합하여 군내부에 볼리바르혁명군(Ejercito Revolucionario Bolivariano, EBR-200)이라는 비밀조직을 건설했다. 200이라는 숫자는 베네수엘라의 국민적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가 탄생한지 200주년인 1983년에 설립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조직의 목표는 혁명을 통해 남미해방이라는 시몬 볼리바르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EBR-200은 당시에 대부분이 차베스처럼 20대의 젊은 장교로 구성되어 있었다. 1989년 2월의 카라카소 이후부터 민간인들이 EBR-200에 처음으로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볼리바르혁명운동(Movimiento Bolivariano Revolucionario-200, MBR-200)이라고 명칭을 변경한다.
민중을 위해 군이 일어서다
1989년 2월, IMF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반대해 일어난 민중들의 봉기(카라카소)에 대해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해서 수천명의 사람을 죽였다. 당시 베네수엘라의 혁명세력은 민중들의 봉기를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상황은 결국 대량학살사태로 끝나게 된 것이다. 잘못된 경제정책에 항의해 거리로 나선 국민들에게 총을 쏘는 정권에 대해 베네수엘라 군부 내의 혁명세력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1991년, 차베스가 이끄는 MBR-200 지도부는 차베스가 주로 인용하는 전시대의 영웅 중 하나인 에세키엘 사모라의 이름을 붙여 자신들의 쿠데타에 ‘플랜 사모라’라는 코드명을 부여했다.
1992년 1월 말, 차베스가 콜롬비아 국경의 황폐한 작은 마을로 전출될 것이라는 급박한 소식이 들려왔다. 차베스가 변경의 외딴지역으로 간다면 MBR-200의 쿠데타를 지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차베스를 비롯한 쿠데타지도부는 마지막 회합을 갖고 차베스의 전출 전에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당시 1992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참석차 국외에 있는 페레스 대통령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MBR -200의 쿠데타군은 병력수를 증강했다.
결국 중령 5명, 소령 14명 대위 54명, 중위 67명, 소위 65명, 부사관 101명과 병사 2,056명이 쿠데타에 가담했다. 총 2,367의 병력이 10개의 각기 다른 부대에서 동원되었다. 베네수엘라 전체의 1/10에 해당하는 병력이었지만 공수부대와 전차부대를 비롯한 정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침내 쿠데타일이 최종 확정됐다. 1992년 2월 4일 화요일이었다.
2월 4일 화요일 아침, 마침내 차베스가 이끄는 5개 부대가 수도 카라카스로 진격했다. 차베스는 대통령궁 인근의 역사박물관으로 진입하여 전국적인 통신망을 갖고 쿠테타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레스대통령을 공항에서 생포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방송국을 점령하기로 했던 민간그룹도 역시 실패했다. 쿠데타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 이상의 유혈참사를 피하기위해 차베스는 텔레비전 방송연설로 쿠데타에 가담한 동료들에게 투항할 것을 권고하였다. 차베스의 방송출연은 1분정도밖에 안 됐다. 그러나 이 방송으로 인해 차베스는 민중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후 차베스를 비롯한 쿠데타 주동자들은 투옥된 반면 구체제의 정치인들은 극적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쿠데타이후 군대는 심각하게 분열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차베스를 비롯한 쿠데타 지도자들을 지지하게 되었다. 쿠데타기간 동안 14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50명이 부상당했으며, 80명의 시민이 교전으로 인해 부상당했다. 또한 쿠데타의 실패로 참여한 많은 군인들이 구속되었다.
어려운 시기, 군이 사회사업에 앞장서다
차베스는 1994년 감옥을 나와서 MBR-200을 민간-군부의 연합체성격을 가진 전국조직으로 키워내고, 1998년 대통령선거에 참여하여 당선이 된다. 차베스의 집권 첫해인 1999년, 국영석유회사(PDVSA)는 아직 국내의 소수기득권층이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불황으로 사회복지정책에 쓰일 가용자원이 거의 없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빈민들을 위한 사회사업에 앞장선 곳이 바로 군대였다. 차베스는 중심병력을 제외한 모든 부대로 하여금 빈민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산해 내도록 명령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볼리바르 계획 2000(Plan Bolivar 2000)이라 이름지어졌다. 베네수엘라 군대의 각 부대는 이 거대한 프로그램 하에서 다양한 계획을 세워나갔다.
공군은 급히 국내 여행을 해야하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는 사람들을 무료로 운송하는 계획을 세웠다. 해군은 낚시 계획 2000(Plan Pescar 2000)을 세워 냉장고등 가전기기 수리, 협동조합 결성, 교육과정 이수 등에 도움을 주었다. 국가수비대는 경찰업무를 수행하였는데 특히, 정부의 영향력이 미미한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또다른 프로그램으로 아비스파 계획(Plan Avispa)도 역시 국가수비대에 의해 시행되었는데 빈민층에게 집을 지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레비바 계획(Plan Reviba)을 통해서는 낡은 집을 새로 지어주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외에 볼리바르 계획 2000(Plan Bolivar 2000)에서는 국가의 여러 지역에 음식물을 제공하는 계획도 있었다.
볼리바르 계획 2000을 통해 수천개의 학교, 병원, 보건소, 집, 교회, 공원이 재정비되었다. 2백만명 이상의 사람이 의료혜택을 받았고 거의 천여개의 공설시장이 문을 열었으며, 2백만명의 아이들이 예방주사를 맞았고 수천톤의 쓰레기가 수거되었다.
베네수엘라의 군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민간부분과의 공동사업을 통해 빈민을 위한 다양한 사회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반혁명 공세를 물리치는 혁명의 핵심역량
집권 후 차베스가 기득권 세력이 망쳐놓은 국가를 바로잡고 권력을 민중에게 돌리는 과감한 조치를 시행하자 미제국주의와 국내 기득권 세력들은 불만에 가득차서 차베스를 끌어내릴 음모만을 꾀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베네수엘라 권력의 핵심인 국영석유회사(PDVSA)의 부패한 이사진을 전원 해임시키고 새로운 이사진으로 교체한 사건을 계기로 반혁명세력들은 드디어 반혁명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2002년 4월 11일, 군부 내의 반혁명 세력들은 쿠데타를 일으켜서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차베스를 체포한다. 4월 12일 금요일 오후, 상공회의소장인 페드로 카르모나가 임시대통령에 취임했다. 카르모나는 취임하자마자 국회와 대법원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란 국명에서 ‘볼리바르’를 떼 버렸다. 또한 49개 개혁법안의 무효선언과 함께 앞으로 더 이상 쿠바로 석유를 보내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 발표했다.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기 전의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것이 그의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만들어온 아름다운 혁명의 과정이 반혁명세력에 의해서 폐기되는 것을 본 민중들과 애국적 군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차베스 지지자들이 대통령궁을 포위하였고, 차베스의 혁명동지인 바두엘장군이 마라카이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대통령궁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의 지휘관인 헤수스 모라오 까르도나 대령도 가세했다. 산동네 빈민촌의 주민들은 파도처럼 도심으로 밀고 내려와 차베스의 복귀를 요구하며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때가되자 모라오 대령은 휘하 병력에게 대통령궁을 장악할 것을 명령했다. 모라오 대령의 부대는 대통령궁으로 연결된 지하비밀통로를 빠져나와 까르모나의 지지자들을 체포했다. 잔당들은 그들의 차로 몸을 피해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까르모나는 반혁명 군부세력과 결합하기 위해 달아났다.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산재한 병영주변은 차베스를 지지하는 민중들로 가득했다. 빈민들과 차베스를 지지하는 군인들은 신속하게 결합할 수 있었다. 한편, 쿠데타수뇌부와 대책을 마련중이던 카르모나는 오후 7시경에 쿠데타측 군인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4월 14일 일요일 새벽, 라울 바두엘 장군의 지시로 마라카이에 주둔하고 있는 42공수여단 소속 헬기 3대에 나누어 탄 공수부대 병력이 차베스를 구출하기 위해 라 오르칠라 섬으로 파견되었다.
차베스는 새벽 3시 45분을 기해 수많은 군중과 군인들의 환호속에서 대통령궁인 미라플로레스로 무사히 복귀했다. 차베스는 자신을 환영하는 수많은 인파들을 상대로 차분하게 얘기했다.
“여러분이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민중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혁명을 수호하는 반제국주의 군대
차베스는 미제국주의가 콜롬비아에 미군을 주둔시켜 베네수엘라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 등에서 최신식 무기를 도입하고 200만명의 예비군을 창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러시아 방문시기에 핵도 개발할 수 있음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미제국주의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이야말로 혁명을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는 원동력임을 차베스는 알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에 베네수엘라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최근 추진되고 있는 헌법 개정안에서는 베네수엘라 군대를 애국적이며, 인민의 군대이며, 반제국주의 군대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혁명 사업에 이바지하는 군대의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으로서 이전 헌법에 비해 혁명에 있어서의 군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의한 것이다. 개헌안에는 예비군의 역할을 확대강화해서 베네수엘라 군대의 중요한 한 축으로 세우며, 군을 현대화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7-10-24 15:40:12
- 최종편집: 2007-10-31 1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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