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러시아를 어떻게 바꿨나
<월간말>푸틴의 '국가 자본주의'
러시아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을 시작한 지 올해로 17년이 되었다. 이 기간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에 비견되는 혼란과 격동의 시간들이었다. 90년 전 진행되었던 볼셰비키 혁명과정이 사회주의를 향한 열정의 용광로였다면, 1991년 이후 진행된 체제이행기는 사회주의를 청산하고 생존을 위해 자본주의를 배워야만 하는 시기였다.
특히 옐친 시기는 사회주의 복지제도가 붕괴되면서 냉혹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대다수 러시아인들이 불안과 좌절에 휩싸였던 시간이기도 했다. 국가로부터 집과 직장, 무료교육 등 모든 것을 보장받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러시아인들에게 이러한 갑작스런 상황변화는 받아들이기 힘든 시련이었다.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를 양분했던 대제국(帝國)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경제 원조를 구걸하는 초라한 국가로 전락하였고, 레닌의 묘가 굽어보고 있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는 빈곤에 지친 마스크비치(모스크바시민)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과거의 영화(榮華)는 간데없고 서늘한 제국의 잔영과 패배감만이 러시아 전역을 짓누르고 있었다.
서울, 러시아 무희들은 어디에?
한때 생활고를 탈피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던 러시아 무희들이 서울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전 세계 유명 휴양지는 돈 많은 러시아인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200~300달러에 불과하던 대졸 신입사원 초임이 1,500달러를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주가 총액이 우리나라 중견기업 규모에 불과하던 러시아 에너지 국영기업들이 어느덧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의 규모를 넘어서더니 이제는 세계 5위권에 진입했다.
한때 공무원과 군인들의 임금도 제때에 지급하지 못하던 러시아 정부가 이제는 출산장려금으로 둘째 아이를 낳는 가정에 약 1만 달러를 일시불로 지급하고 매달 별도의 육아보조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최근 1인당 GDP는 7년 전에 비해 여섯 배 가까이 성장했다. 러시아는 1998년 경제위기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파산 국가에서 지금은 외환보유고 세계 3위의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축이 될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 중 하나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가 다시 한 번 국제사회에서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푸틴이 늪에 빠진 러시아를 회생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먼저 2000년대부터 엄청난 오일달러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재정적 뒷받침이 되고 있다. 다음은 강력한 통치력으로 정치적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정국안정을 달성한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받는 요인은 푸틴이 통치이념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이다.
일반적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할 경우 취하는 가장 필수적인 조치 중의 하나이다. 1991년 냉전 붕괴 이후 대다수 동유럽 국가들이 그러했고, 러시아 역시 옐친 통치 시기 6,000개가 넘는 국영기업들이 사유화 정책에 따라 민영화되었다. 대규모 만성 적자로 인해 국가재정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함으로써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민영화되었던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들이 국가권력의 강압 정책에 따라 다시 국유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국유화된 국영기업체의 수장에 푸틴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임명되고 있다. 그런데 푸틴이 국영기업의 경영진에 임명한 측근 인사들이 대부분 러시아 정부의 주요 공직자들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가공직자가 국영기업의 경영까지 겸직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경제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마저 보내고 있다.
최근 고유가로 인해 막대한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있는 석유, 가스 산업은 물론 광물 분야의 국영기업들까지 장악해 가고 있는 푸틴의 측근 국가공직자들을 ‘국가 올리가르히(state oligarch)’라고 부른다. 원래 ‘올리가르히’의 사전적 의미는 ‘과두(寡頭) 지배’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올리가르히’라는 용어는 1990년대 옐친 대통령 시절의 사유화 과정에서 소수 재벌이 주요 국유재산을 독점하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면서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부정적인 의미가 되었다. 이 시기 올리가르히들은 그들의 자본을 토대로 정치권 핵심과 유착했고, 나아가 주요 언론사마저 소유하는 등 국가권력과 사회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올리가르히 계급의 해체를 공약으로 내걸고 2000년 3월 대통령이 된 푸틴은 사유화된 주요 기업을 다시 국유화하고 이들 기업의 수장자리에 자신의 측근 공직자들을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따라서 푸틴의 국가자본주의는 옐친 집권 시기 자본주의에 재빠르게 적응하면서 국영기업을 헐값에 사들이고 부를 독식했던 ‘민간 올리가르히’가 ‘국가 올리가르히’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푸틴의 이러한 통치방식을 일부에서는 ‘통제된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도적으로는 민주국가이나 국가의 철저한 통제 하에 관리되는 민주주의라는 뜻이다. 또한 경제정책에 비중을 둘 경우 ‘관리자본주의(Directed Capitalism)’라고 칭하기도 한다. 외형상 시장경제이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국가의 개입과 통제가 강한 자본주의라는 의미이다. 원래 ‘국가자본주의’의 원조는 구소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1년 레닌이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의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일부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신경제정책(NEP)을 도입하면서 이를 ‘국가자본주의’라 불렀다.
레닌의 신경제정책은 농민들에게 자신들의 생산품을 시장에 팔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경공업과 무역업에서 부분적으로 사유화를 허용했다. 그리고 국력과 직결되는 중공업 부문은 정부의 통제 하에 두었고 정부가 임명하는 관리자로 하여금 이윤추구와 상업적 원칙 하에 경영하게 했다. 이렇듯 자본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주의도 아닌 애매한 시스템을 레닌은 ‘국가자본주의’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서방의 다국적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거대 기업을 국영화하여 국가발전의 견인차로 삼는 방식을 지칭하는 일반화된 경제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푸틴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국가자본주의’는 정부가 국가발전을 위한 정치·경제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통치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며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개방 경제를 표방하는 등 자본주의라는 큰 틀은 고수하고 있다. 다만 주요 기업에 대한 국유화 정책과 경제 흐름을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놓기보다는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자본주의와는 다르다.
이러한 통치방식은 실행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약화되고 민주적 원칙들이 후퇴하면서 정권의 권위주의화가 강화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반면 국가자본주의는 혼란기에 국가의 기능 강화를 통해 최단 시일 내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는 효율적인 통치방식이라고 푸틴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푸틴과 대통령 행정실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집권 세력들은 이와 같은 통치방식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굳게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통치방식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에는 급작스런 소련 붕괴 후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시장경제로 내몰린 대다수 국민들이, 새로운 경쟁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했던 뼈아픈 경험들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의 공적 기능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국부가 무방비로 유출되던 옐친 시기의 혼란을 경험한 후 현 집권세력이 찾아낸 통치방식이 바로 ‘국가자본주의’였다. 게다가 옐친 시기 사유화 과정에서 국유재산을 독식한 소수 과두재벌(oligarch)에 의한 약탈경제와 만연한 불법적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강력한 국가 기능 회복을 통한 기강확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푸틴은 강압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에 대한 재(再)국유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구소련 붕괴 후 국가적 혼란기를 틈타 헐값에 민간에 넘어갔던 주요 국영기업들이 정치·경제·사법적 수단을 총동원한 푸틴에 의해 다시 국유화되었다.
국유화된 공기업의 경영진에는 부패를 방지하고 과감한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푸틴의 측근들이 임명되었다. 실재로 측근 인사들의 주요 요직 임명은 빠른 시일 안에 푸틴의 통치이념을 구현하고 일사분란한 통치권을 확립하는데 효과를 발휘했다.
2006년 상반기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중앙행정부 소속 고위 관료 11명이 러시아 주요 기업 6개의 회장직과 12개 국영기업의 이사회를, 15명의 장관이 6개 기업 회장직과 24개 기업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업체뿐만 아니라 천연가스, 원자력, 다이아몬드, 금속, 무기, 항공, 운송 등 국부와 관련된 전 사업 분야가 푸틴이 임명한 공직자들에 의해 직할 통치되고 있다.
‘기름’ 끼얹은 푸틴의 개혁
뿐만 아니라 푸틴은 국영기업들의 덩치를 세계적인 규모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방의 글로벌 기업들을 견제하고 러시아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만들겠다는 전략에서이다. 러시아의 주요 국영기업들은 지금까지 축척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른 민간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은 물론 해외기업 사냥에도 적극 나서면서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실로 고유가 시대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 경제의 힘과 강대국으로 부활하고자 하는 푸틴의 야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예로 ‘가즈프롬’을 들 수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천연가스를 생산·유통하는 국영기업 가즈프롬은 민간 석유업체 ‘시브네프트(Sibneft)’를 인수한 후 ‘엑손모빌(Exxon Mobil)’과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에 이어 시가총액 세계 3위의 거대 기업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가즈프롬이 보유한 석유와 천연가스 양은 1,160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2,630억 배럴)와 이란(1,330억 배럴)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지난해 겨울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야기된 혼란은 이렇듯 거대해진 가즈프롬의 에너지 지배력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든 푸틴의 ‘국가자본주의’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비민주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추스르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 경제회생의 1등 공신은 세계적인 고유가추세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자원의 부족과 고유가는 국가 부도 상태에서 허덕이던 자원대국 러시아에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그러나 국가 주요 산업에 대한 강력한 국유화 정책과 국가주도의 계획 경영, 국영기업들의 규모 확대를 통한 단시간 내의 경제성장 추구, 강력한 중앙집권을 통한 정치안정과 일사 분란한 추진력 등으로 요약되는 푸틴 정부의 ‘국가자본주의’가 없었다면 러시아의 부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제 ‘국가자본주의’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국가경영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국가자본주의’에 의해 통치되는 러시아는 고유가로 인한 오일달러와 공룡처럼 거대해진 국영기업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신흥 경제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특히 옐친 시기는 사회주의 복지제도가 붕괴되면서 냉혹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대다수 러시아인들이 불안과 좌절에 휩싸였던 시간이기도 했다. 국가로부터 집과 직장, 무료교육 등 모든 것을 보장받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러시아인들에게 이러한 갑작스런 상황변화는 받아들이기 힘든 시련이었다.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를 양분했던 대제국(帝國)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경제 원조를 구걸하는 초라한 국가로 전락하였고, 레닌의 묘가 굽어보고 있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는 빈곤에 지친 마스크비치(모스크바시민)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과거의 영화(榮華)는 간데없고 서늘한 제국의 잔영과 패배감만이 러시아 전역을 짓누르고 있었다.

-
- 지난 여름 상테페테르부르그에서 열린 세계여자 비치발리볼 대회. 러시아의 개혁과 개방을 보여준다. ⓒ로이터뉴시스
- 사진 더 보기
- ⓒ 로이터뉴시스
서울, 러시아 무희들은 어디에?
한때 생활고를 탈피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던 러시아 무희들이 서울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전 세계 유명 휴양지는 돈 많은 러시아인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200~300달러에 불과하던 대졸 신입사원 초임이 1,500달러를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주가 총액이 우리나라 중견기업 규모에 불과하던 러시아 에너지 국영기업들이 어느덧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의 규모를 넘어서더니 이제는 세계 5위권에 진입했다.
한때 공무원과 군인들의 임금도 제때에 지급하지 못하던 러시아 정부가 이제는 출산장려금으로 둘째 아이를 낳는 가정에 약 1만 달러를 일시불로 지급하고 매달 별도의 육아보조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최근 1인당 GDP는 7년 전에 비해 여섯 배 가까이 성장했다. 러시아는 1998년 경제위기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파산 국가에서 지금은 외환보유고 세계 3위의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축이 될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 중 하나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가 다시 한 번 국제사회에서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푸틴이 늪에 빠진 러시아를 회생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먼저 2000년대부터 엄청난 오일달러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재정적 뒷받침이 되고 있다. 다음은 강력한 통치력으로 정치적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정국안정을 달성한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받는 요인은 푸틴이 통치이념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이다.
일반적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할 경우 취하는 가장 필수적인 조치 중의 하나이다. 1991년 냉전 붕괴 이후 대다수 동유럽 국가들이 그러했고, 러시아 역시 옐친 통치 시기 6,000개가 넘는 국영기업들이 사유화 정책에 따라 민영화되었다. 대규모 만성 적자로 인해 국가재정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함으로써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민영화되었던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들이 국가권력의 강압 정책에 따라 다시 국유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국유화된 국영기업체의 수장에 푸틴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임명되고 있다. 그런데 푸틴이 국영기업의 경영진에 임명한 측근 인사들이 대부분 러시아 정부의 주요 공직자들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가공직자가 국영기업의 경영까지 겸직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경제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마저 보내고 있다.
최근 고유가로 인해 막대한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있는 석유, 가스 산업은 물론 광물 분야의 국영기업들까지 장악해 가고 있는 푸틴의 측근 국가공직자들을 ‘국가 올리가르히(state oligarch)’라고 부른다. 원래 ‘올리가르히’의 사전적 의미는 ‘과두(寡頭) 지배’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올리가르히’라는 용어는 1990년대 옐친 대통령 시절의 사유화 과정에서 소수 재벌이 주요 국유재산을 독점하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면서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부정적인 의미가 되었다. 이 시기 올리가르히들은 그들의 자본을 토대로 정치권 핵심과 유착했고, 나아가 주요 언론사마저 소유하는 등 국가권력과 사회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
- 푸틴 러시아 대통령ⓒ로이터뉴시스
- 사진 더 보기
- ⓒ 로이터뉴시스
이러한 부정적인 올리가르히 계급의 해체를 공약으로 내걸고 2000년 3월 대통령이 된 푸틴은 사유화된 주요 기업을 다시 국유화하고 이들 기업의 수장자리에 자신의 측근 공직자들을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따라서 푸틴의 국가자본주의는 옐친 집권 시기 자본주의에 재빠르게 적응하면서 국영기업을 헐값에 사들이고 부를 독식했던 ‘민간 올리가르히’가 ‘국가 올리가르히’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푸틴의 이러한 통치방식을 일부에서는 ‘통제된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도적으로는 민주국가이나 국가의 철저한 통제 하에 관리되는 민주주의라는 뜻이다. 또한 경제정책에 비중을 둘 경우 ‘관리자본주의(Directed Capitalism)’라고 칭하기도 한다. 외형상 시장경제이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국가의 개입과 통제가 강한 자본주의라는 의미이다. 원래 ‘국가자본주의’의 원조는 구소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1년 레닌이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의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일부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신경제정책(NEP)을 도입하면서 이를 ‘국가자본주의’라 불렀다.
레닌의 신경제정책은 농민들에게 자신들의 생산품을 시장에 팔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경공업과 무역업에서 부분적으로 사유화를 허용했다. 그리고 국력과 직결되는 중공업 부문은 정부의 통제 하에 두었고 정부가 임명하는 관리자로 하여금 이윤추구와 상업적 원칙 하에 경영하게 했다. 이렇듯 자본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주의도 아닌 애매한 시스템을 레닌은 ‘국가자본주의’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서방의 다국적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거대 기업을 국영화하여 국가발전의 견인차로 삼는 방식을 지칭하는 일반화된 경제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푸틴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국가자본주의’는 정부가 국가발전을 위한 정치·경제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통치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며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개방 경제를 표방하는 등 자본주의라는 큰 틀은 고수하고 있다. 다만 주요 기업에 대한 국유화 정책과 경제 흐름을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놓기보다는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자본주의와는 다르다.
이러한 통치방식은 실행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약화되고 민주적 원칙들이 후퇴하면서 정권의 권위주의화가 강화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반면 국가자본주의는 혼란기에 국가의 기능 강화를 통해 최단 시일 내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는 효율적인 통치방식이라고 푸틴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푸틴과 대통령 행정실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집권 세력들은 이와 같은 통치방식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굳게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통치방식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에는 급작스런 소련 붕괴 후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시장경제로 내몰린 대다수 국민들이, 새로운 경쟁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했던 뼈아픈 경험들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의 공적 기능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국부가 무방비로 유출되던 옐친 시기의 혼란을 경험한 후 현 집권세력이 찾아낸 통치방식이 바로 ‘국가자본주의’였다. 게다가 옐친 시기 사유화 과정에서 국유재산을 독식한 소수 과두재벌(oligarch)에 의한 약탈경제와 만연한 불법적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강력한 국가 기능 회복을 통한 기강확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푸틴은 강압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에 대한 재(再)국유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구소련 붕괴 후 국가적 혼란기를 틈타 헐값에 민간에 넘어갔던 주요 국영기업들이 정치·경제·사법적 수단을 총동원한 푸틴에 의해 다시 국유화되었다.
국유화된 공기업의 경영진에는 부패를 방지하고 과감한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푸틴의 측근들이 임명되었다. 실재로 측근 인사들의 주요 요직 임명은 빠른 시일 안에 푸틴의 통치이념을 구현하고 일사분란한 통치권을 확립하는데 효과를 발휘했다.
2006년 상반기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중앙행정부 소속 고위 관료 11명이 러시아 주요 기업 6개의 회장직과 12개 국영기업의 이사회를, 15명의 장관이 6개 기업 회장직과 24개 기업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업체뿐만 아니라 천연가스, 원자력, 다이아몬드, 금속, 무기, 항공, 운송 등 국부와 관련된 전 사업 분야가 푸틴이 임명한 공직자들에 의해 직할 통치되고 있다.
‘기름’ 끼얹은 푸틴의 개혁
뿐만 아니라 푸틴은 국영기업들의 덩치를 세계적인 규모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방의 글로벌 기업들을 견제하고 러시아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만들겠다는 전략에서이다. 러시아의 주요 국영기업들은 지금까지 축척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른 민간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은 물론 해외기업 사냥에도 적극 나서면서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실로 고유가 시대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 경제의 힘과 강대국으로 부활하고자 하는 푸틴의 야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 \'푸틴의 청년 친위대\'라 불리는 러시아의 청년단체 \'나쉬\'의 집회 장면. 러시아의 국가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로이터뉴시스
- 사진 더 보기
- ⓒ 로이터뉴시스
대표적인 예로 ‘가즈프롬’을 들 수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천연가스를 생산·유통하는 국영기업 가즈프롬은 민간 석유업체 ‘시브네프트(Sibneft)’를 인수한 후 ‘엑손모빌(Exxon Mobil)’과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에 이어 시가총액 세계 3위의 거대 기업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가즈프롬이 보유한 석유와 천연가스 양은 1,160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2,630억 배럴)와 이란(1,330억 배럴)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지난해 겨울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야기된 혼란은 이렇듯 거대해진 가즈프롬의 에너지 지배력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든 푸틴의 ‘국가자본주의’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비민주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추스르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 경제회생의 1등 공신은 세계적인 고유가추세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자원의 부족과 고유가는 국가 부도 상태에서 허덕이던 자원대국 러시아에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그러나 국가 주요 산업에 대한 강력한 국유화 정책과 국가주도의 계획 경영, 국영기업들의 규모 확대를 통한 단시간 내의 경제성장 추구, 강력한 중앙집권을 통한 정치안정과 일사 분란한 추진력 등으로 요약되는 푸틴 정부의 ‘국가자본주의’가 없었다면 러시아의 부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제 ‘국가자본주의’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국가경영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국가자본주의’에 의해 통치되는 러시아는 고유가로 인한 오일달러와 공룡처럼 거대해진 국영기업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신흥 경제대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 ©월간 말
- 기사입력: 2007-10-24 14:53:06
- 최종편집: 2007-10-31 09:57:40
컨텐트 링크
민중의소리를 후원하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 컨텐트 링크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 Copyright 2000~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