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들고 있는 맨발의 쿠바 의사들

<월간말> SBS스페셜-'맨발의 의사들', 방송에 나오지 않은 몇가지 장면들

이광호 / S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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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들고 있는 맨발의 쿠바 의사들


SCENE #1, 메모지

쿠바의 가정의를 취재할 때였다. 정성껏 환자를 치료한 의사는 책상위에 놓인 작은 메모지에 처방전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특별한 규격이 있는 메모지가 아니라 의약품회사나 의료기기 회사에서 판촉용으로 주는 메모지에 2차 진료소에서 필요한 처방 내용을 적고 사인해서 환자에게 주는 것이었다. 메모지를 처방전으로 쓴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내 눈 으로 보니까 약간 민망해지기도 하고, 어렸을 때 우리 집의 가난을 친구들에게 들켰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래, 여긴 1차 진료소니까 그럴거야’하고 생각했는데 쿠바 어느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쿠바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이라는 종합병원에서도 여지없이 메모지는 애용되고 있었다. 엑스레이, MRI, 혈관조영기 등 치료에 필요한 장비들은 가장 최신의 것으로, 그것도 미국의 경제 봉쇄에 막혀 먼 길을 돌아 비싼 값에 수입해 쓰면서 처방전은 그 기계들이 들어올 때 덤으로 오는 판촉용 메모지를 쓰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이 메모지 처방전에서 쿠바의 정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컴퓨터에서 깔끔하게 인쇄되어 나오는 처방전을 쓰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쿠바 의사들이 메모지를 쓰는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봉쇄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부분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고 환자들 치료에 필요한 약품이나 설비에 집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상 의료의 가치를 지키는 작은 노력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모여 경제 위기 때 의료 분야의 후퇴를 막기 위해 국방비를 대폭 삭감해서 그 돈을 의료 분야에 투입하는 결정을 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기적을 만들고 있는 맨발의 쿠바 의사들


혹시 쿠바에 여행 가서 병원에 갈 일이 생긴 분들이 있으시다면 메모지에 쓴 처방전을 받았을 때 나처럼 민망해 하거나 메모지 때문에 의사들의 실력을 깎아보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 메모지에도 쿠바 혁명 50년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SCENE #2, 보건부 차관

베네수엘라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직 베네수엘라의 쿠바 의사를 취재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주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을 통해 협조를 부탁해 놓은 상태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취재진을 먼저 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사실 쿠바의 의료를 취재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쿠바의 음악이나 유기농을 취재하는 것과 달리 의료 분야는 쿠바 사회주의를 직접적으로 취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워낙 많은 서방 언론들이(한국의 한 방송국도 포함해서) 이런저런 감언이설로 취재 허가를 받은 후 쿠바를 비난하는 뉴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쿠바 당국으로서도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미국과 혈맹 관계’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에서 온 피디를 무엇을 보고 믿을 수 있겠는가?

약속 장소는 쿠바에서 온 관리들이 묵고 있는 호텔. 베네수엘라에 파견 나온 의사들의 일을 봐주는 본부로 쓰고 있는 호텔은 우리나라 모텔만도 못한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만나러 나온 사람은 후줄근한 청바지에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친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통역을 통해 우리의 기획 의도를 듣고 난 이 아저씨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내일부터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취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일이 잘 안 풀릴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싱겁게 허가를 받은 것이다.

기적을 만들고 있는 맨발의 쿠바 의사들


그런데 정말 ‘모든 것’이었다. 취재하고 싶었던 쿠바 의사나 바리오 아덴뜨로 병원, 라틴 아메리카 의과대학 졸업생 등 취재원을 소개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이 다니며 밥까지 챙겨 주었다(!) 우리가 병원을 취재하고 있는 동안 진료가 없는 쿠바 의사들은 병원 식당에서 우리에게 줄 점심을 만들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벗어던진 의사들이 나를 위해서 밥을 해주다니~ 상상도 못했던 호의를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쿠바 의사, 간호사들에게 격의없이 “알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아저씨는, 후줄근한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입고 우리가 뭐 하나 불편해 할까봐 꼼꼼히 챙겨주시던 이 아저씨는…, 쿠바의 보건부 차관이었다!

얼마 전에 누군가 내게 “구소련이나 동구권 나라들처럼 관료들이 특권을 누리고 부패하지는 않으냐”고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알도 같은 아저씨가 보건부 차관을 하고 있다는 건 쿠바의 사회주의에 희망을 가져도 좋을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SCENE #3, 인간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내가 가진 의문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이었다. 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면서 남들을 도와주는 걸까? 왜 이 사람들은 의사가 되고서도 힘든 길을 택할까? 라틴아메리카의과대학 졸업생들은 고국에 돌아가면 의사가 되어 돈도 벌고 잘 살 수 있을 텐데 왜 오지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는 걸까?

쿠바에서, 베네수엘라에서 나는 이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연대 의식은 우리 혁명의 정신입니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라고 배워 왔습니다.”, “우리의 연대 의식은 동양인들이 어른 공경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몸에 배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기적을 만들고 있는 맨발의 쿠바 의사들


나는 그들의 대답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면서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고, 이윤 추구가 최고의 가치라고 세뇌되고 있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배우고 사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혁명 후 50년 만에 이뤄졌다. 가치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이윤 추구의 동기를 없애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게을러서 주민들에게 거부당한 의사도 있고 해외에 나왔다가 안 돌아가고 망명한 의사도 있다. 달러를 벌기 위해 길에 나선 사람들도 있고, 정부 물건을 빼돌리는 사람도 있고, 자기 일을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관료주의에 빠진 공무원도 있다.

그 사회의 사람들은 다 이상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또 다른 환상일 뿐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쿠바기행문에 쓴 ‘가난하지만 행복이 얼굴에 가득한 사람들’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그 말은 결국 우리의 희망사항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한 달이 채 안 되는 취재 기간 동안 내가 본 것만으로 한 사회를 얘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애당초 내가 풀려던 의문은 풀지 못할 숙제였을 것이다.

기적을 만들고 있는 맨발의 쿠바 의사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다. “도덕적 동기로 행동하는 인간이 가능하다” 이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져볼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희망을 우리 사회에서 현실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만들 프로그램은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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