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온 것을 환영해, 최악의 시기에”

저자인터뷰 -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 유재현

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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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현
보도자료를 받은 바로 그날,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했을 때 유재현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떠날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했다. 이번엔 몽골이었다. 무엇이 그를 자꾸 ‘떠나게’ 하는 것일까. 그것도 소위 말하는 ‘분쟁지역’으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을 사로잡은 질문이었다.
유재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치며 ‘혁명’을 꿈꾸던 청년기의 그는, 동구사회주의권 몰락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현장을 떠났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순 없다”고 느낀 40대의 그는 “늦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성과가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원점에 섰다.
이번에 출간된 유재현의 책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창비)’는 2003년 시작된 ‘10개년 계획’ 6년차의 결실이다. 그동안 그는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느린 희망’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등을 통해 부지런히 기록을 남겨왔다.
유재현의 ‘10개년 계획’은 무엇일까. 그는 “아시아에 천착하자,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 탐방 두 가지였다”고 말한다.
“20년간 지속된 세계 자본주의가 고유가, 곡물가 급등, 인플레이션 등 ‘파열음’을 내고 있고 미 패권주의가 약화되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파열음이 어디서부터 분출할까. 내가 볼 때는 아시아다.” 유재현은 ‘아시아에 천착하는 까닭’을 이렇게 이어간다. “아시아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와 별 상관없게 보이지만, 50년 한국전쟁과 2차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전, 지금의 이라크 전쟁까지 물려서 계속돼왔다. 박정희 독재정권과 인도네시아 수하르트 독재, 말레이시아도 그렇고 흡사하게 진행돼왔다.”
개별 국가의 경험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역사적 경험만은 아니다. ‘아시아의 동시대’도 세계자본주의의 파열음을 함께 듣고 있다. “인플레이션, 빈곤층 문제, 유가인상 등 예외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97년 태국발 아시아 경제위기가 재현되는 분위기다. 또 이것이 우리의 촛불과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아시아가 경험을 공유하면서 세계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유재현이 하고 있는 기록의 의미다. 또한 쿠바,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를 돌아보는 작업은 “고전적 사회주의는 왜 망했는가, 무엇이 대안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질문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왜 그는 ‘떠나야’ 하나. 서방발 외신기사가 전달하지 않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일까. “지식,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만 몇 번 클릭해도 알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다.” 오히려 유재현은 “냄새를 맡기 위해서” 떠난다고 말한다.
“직접 가서 냄새를 맡지 않으면 흘리는 게 많다. 직접 가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가늠이 된다. 사람들, 시간과 공간... 고요하지만 들끓고 있기도, 돌이 날아다니지만 썩은 냄새가 나기도 한다. 책과 문건만 봐서는 정리할 수 없는 냄새를 직접 가서 맡아야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냄새 맡을 수 있다.”
중반을 막 넘어서고 있는 그의 ‘10개년 계획’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는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이번 책 ‘샬롬과 쌀람...’에서 머문 곳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다. 올해가 요란했던 이스라엘 건국 60년, 즉 팔레스타인 재앙 60년이 된 해라는 점은 퍽이나 의미심장하다.

나는 노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인은 반쯤 감긴 눈이 스르르, 천년의 시간이라고 생각될 만큼 천천히 내리깔렸다. 그의 감긴 두 눈에서 메마른 습기가 검고 어두운 볼로 흘러나와 번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핫산은 나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고향인 팔루자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팔레스타인은 두 가지 모습이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각고의 노력(?)을 들이고 있는 이-팔 평화협상, 그리고 하마스로 대변되는 테러... 하지만 유재현은 70일간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이면의 ‘진실’에 접근한다.
이스라엘은 M16소총을 덜렁거리며 들고 다니는 청년들, 703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벽, 인종 간의 차별정책, 철조망과 콘크리트 감시탑, 무장한 경비원과 경비견의 모습이다. 그는 유대인 대량학살의 경험을 안은 이스라엘이 ‘피해자’의 얼굴을 한 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60년간 난민으로 떠돌게 하는 상황을 보면서 “다시는 홀로코스트를 겪지 않겠다는 각오가 누군가의 홀로코스트를 불러올 수 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 참극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혹독히 비판한다.
그가 팔레스타인에서 목격한 것은 “패배감으로 충만한 무기력”이었다. 또한 “하루에도 최소한 대여섯 번은 통과해야 하는 검문소, 어린 병사들의 희롱, 무시로 울려대는 총소리, 좀비처럼 보이는 서안 주민들, 광기가 흐르는 유대인들”과 같이 “빌어먹을 동네가 주는 심리적인 황폐함”이었다. 공포와 절망, 차별이 ‘일상’이 된 이들의 삶은 차라리 ‘지옥’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가야 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발걸음이 선뜻 떼어지지 않았던 ‘난민캠프’에 도착했을 때, 그는 비로소 팔레스타인의 참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들의 처지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뿌리 뽑힌 자로서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다. 곧 끝날 것이라 믿었던 난민살이가 이제 60년을 헤아리고 있다. 유엔이 제공한 사방 3미터의 흙벽돌집에 임시로 올려 지은 건물이 4층을 넘어서고 있고, 그 안에서는 지금 난민1세대가 숨을 거두는 동시에 4세대가 탄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네팔, 홍콩, 쿠바, 팔레스타인......유재현은 이제 또 어디로 떠나려는 걸까. “중국에서는 좀 살아볼까 한다. 중국이 (여정의)마지막쯤이 되지 않을까. 지금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에 이어 동시대의 아시아를 담은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를 쓰고 있다. 또 ‘영화로 보는 아시아’를 준비해 보려고 영화 40~50편을 골라놓은 상태다.”
유재현의 긴 여정의 끝이, 분명하게 보이는 ‘해답’은 아니더라도, 끝이 없어만 보이던 세계자본주의가 붕괴되고 있는 틈 사이로 보이는 어떤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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