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없는 공동체를 꿈꾸는 안성 의료생협

[월간 말]

문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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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의료생협

올해 예순 넷의 정정순 할머니는 일주일에 세 번 안성시내의 ‘농민의원’을 찾는다. 정 할머니는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이지만 나들이를 하듯이 2년째 농민의원에서 주관하는 체조교실에 나간다.
취재팀이 안성의 농민의원을 찾은 건 지난 6월 13일, 안성 시외버스터미날에서 시장골목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니 일반 병원과 다름없는 제법 규모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전원카페나 작은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아늑함마저 감돈다.
진료 대기실 벽으로는 농민의원의 14돌 ‘생일’을 기념하는 축하메시지가 소박하다.

“지금처럼 끝까지 안성 주민을 위해 존재합시다”
“의료생협아! 14번째 생일축하해♡ 앞으로도 무럭무럭 자라거라”
“형님 생일 축하합니다. 그런데 선물은 없어요.”

안성시에서 농민의원으로 유명한 이 곳의 정식 명칭은 ‘안성의료생협’이다. 지역민들에게 안성의료생협이 농민의원으로 익숙한 까닭은 첫 개원 당시에 걸었던 이름이 안성농민의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의료생협 추진위는 이 이름 때문에 환자가 덜 오더라도 “농민이 소외된 나라에서 농민들이 농민의원을 갖는다는 큰 의미”를 생각해서 이같은 간판을 걸었다고 한다.
안성의료생협이 태어난 날은 1994년 4월 24일, 한국 최초의 의료생협이었다. 의료생협은 지금까지도 다소 낯선 편인데,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병원도 운영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는 자치조직이면서 공동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정정순 할머니가 활동하는 체조교실은 매주 월, 수, 금 2시부터 시작된다. 유치원 복도처럼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복도 끝에 자리한 ‘무지개 회의실’에서는 10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간식시간을 갖고 있었다. 체조교실은 체조와 탁구를 주로 하는데 한시간 가량 체조를 하고나면 준비해온 간식을 먹는다. 이날의 메뉴는 속이 꽉 찬 웨스턴 핫도그와 삶은 달걀. 간식거리는 간혹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들어오기도 하고 바쁠 땐 사다 먹는다고. 정 할머니는 핫도그 하나를 다 드시고 나서 “여기 다니면서 배가 쏙 들어갔어”라고 말한다. “운동하는 것보다 먹는 게 더 많은 거 같은데..”라는 생협 사무국장 김보라 씨의 말에 좌중은 금새 웃음바다가 된다.
안성의료생협

간식을 다 먹고 메트리스를 치우면 탁구대가 펼쳐진다. 순발력과 유연성이 필요한 탁구를 평균 나이 60세의 노인들이 칠 수 있겠냐 싶지만, 다들 거짓말처럼 놀라운 실력을 자랑하신다. 이용희 할아버지의 강력한 스매시도 웬만해선 테이블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무리없이 돌아온다.
일흔 셋의 김정길 할아버지는 7년 가까이 의료생협을 다니고 있다. 그는 “나같이 덕 보는 사람이 없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잔병도 없고 건강하다”고 말한다. 김 할아버지는 7년 전에 치과에 왔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탁구를 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탁구 치고 싶은데’라고 말을 꺼냈다고 한다.
체조교실에서는 젊은 편에 속하는 이용희(49년생) 씨는 초창기 멤버이지만 “중간에 변덕이 생겨서” 한 1년 정도를 쉬었다고 한다. “오고 가고 1시간 보내는 것보다 집에서 하자 했는데, 집에서 하다가 안되서 다시 나왔지” 지금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머리 속에 ‘월수금 오후’는 입력을 시켜놓고 가능하면 시간을 비워놓는다고 한다.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건강생활이지. 공직에도 있고 회사도 하면서 젊었을 땐 위장약, 감기약.. 약으로 살았는데 축산업하고 생협 다니면서 절로 끊게 됐지”
안성의료생협은 언뜻 보면 의료와는 관계가 없어보이는 사업들을 많이 한다. 심심축구단은 축구를 좋아하는 주민들이 만든 소모임으로 현재 30여명의 조합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안성의료생협이사장배 직장인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지역의 반응이 좋아 올해에는 20개팀이 모여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숫자만 되면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축구대회이니, 축구는 좋아하지만 대회에 참여할 기회가 없던 직장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주최측(?)에 의하면 ‘처녀출전하는 팀도 다수여서 보호대가 없거나 팀 축구복이 없어 옆 팀에게 빌려 참여하였던 1회 대회의 열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심심축구단 외에도 ‘블랙이글즈’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유소년축구단과, 포크댄스 소모임인 ‘바람난 가족’, 풍물교실인 ‘해오름’, ‘목요산행’, ‘미술로 자라는 아이들’ 생활재공동구매모임인 ‘깊은 생협’ 같은 소모임들도 활발하다.
이처럼 소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는 이유는 안성의료생협의 목적이 ‘좋은 의료 서비스의 제공’이 아니라 ‘건강한 삶’이고 ‘공동체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안성농민의원 이인동 원장의 말대로 “질병이 생기기 전에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계속 유지하고 증진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 “건강한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의료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성의료생협에서 주민들과 의료인들이 활동하는 이유는 어쩌면 ‘의료’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포크댄스를 하는 소모임인 ‘바람난 가족’의 조합원들은 지난 6일에도 모임을 가졌다. 원래는 현충일이라 모임이 없는 날이었지만, 이 모임을 제일 좋아하시는 할머니 조합원이 ‘빨간날’에도 모임에 나오고 싶어하셔서 그랬다는 것이다. 김보라 사무국장은 “건강한 마을 만들기가 앞으로 의료생협이 가야할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 ‘건강’이라는 게 폭넓게 사고될 필요가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주변환경의 관계가 얼마나 건강해질 수 있겠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안성의료생협

안성의료생협은 농민운동과 연세대 학생(의대, 치대, 간호대)들의 농촌진료봉사활동이 만나 탄생했다. 이들은 1987년부터 고삼면 가유리에서 주말진료소 활동을 시작했는데, 91년부터는 지역의료기관을 설립하자는 고민으로 발전한다. 안성 한의원은 92년 의료인들의 공동 출자로 만들어졌다. 이어 93년에는 농민회와 지역민, 의료인들이 출자운동을 통해 1억 3천만원을 마련, 94년 4월 24일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창립 총회를 열게 된다. 94년 5월 2일에 안성농민의원 개원하고 안성한의원을 이전해 안성의료생협이 탄생하게 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강대곤 씨도 학생 때 주말진료에 참여했고 전문의까지의 과정을 마치고는 안성농민의원으로 직행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의료생협에 뜻을 둔 의료진들은 일반적인 의사들에 비해 상당한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강씨는 안성에서의 활동이 “봉급 차이를 상쇄할 만큼 재미있다”면서 “처음 80평 짜리 공간에서 200평으로 이사올 때 조합원들이 다들 트럭을 몰고 와서 의료기도 나르고 청소도 하고 이런 일들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강대곤 씨가 의사로써 안성에 온 것도 12년 째, 그동안 한국사회의 의료 환경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강씨는 “가정방문이나 무료 검진 등 우리가 처음에 남다르게 하고자 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기관들이 늘어난 게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의료기관이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같이 만들어가는 게 의료생협의 의의”라고 말했다.
안성의료생협은 이사장들의 면면도 남다르다. 1대 이사장이었던 이수청 씨는 한 눈에 봐도 농사꾼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안성군 농민회의 회장으로 안성의료생협을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그는 여전히 젖소를 키우는 농사꾼이다. 현재의 이사장인 3대 이정찬 이사장 역시 돼지를 키우는 농사꾼이다. 특이하게도 2대 송창호 이사장만이 농사꾼이 아니라 수의사가 직업인데, 이수청 전 이사장이 젖소가 아프면 찾아가던 그런 사이였다. 송창호 씨는 이수청 씨의 손에 이끌려 의료생협에 가입하게 됐는데, 지금도 거의 매일 건강진료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의료생협에서 소모임 활동을 하거나 이사직이나 동·면 대의원을 맡은 사람들 역시 누구보다 조합활동에 열정적이다. ‘결정하면서 실천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안성의료생협은 현재 7명의 의사(한의사 3, 치과의 2)와 20여명의 간호사 그리고 사무국까지 포함하면 40명 가량이 근무하는 상당한 규모의 조직으로 발전했다. 조합원 규모로 치자면 3천 세대, 1만명을 훌쩍 넘는다. 안성의료생협은 과잉진료 등 기존 의료에 대한 불신의 문제도 있겠으나, 건강한 삶을 위한 ‘의료’가 이윤추구에 의해 지배받지 않아야 한다는 지역주민들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건강한 공동체’라는 젊은 의료진들의 꿈은 그저 꿈으로 끝났을 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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