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온통 사랑, 그것도 불륜 일색일까?

윤석진 | 충남대 국문과 교수, 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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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온통 사랑 타령일까? 그것도 정상적인 사랑이 아닌, 로맨스와 스캔들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불륜’ 일색이다. 물론 현실과 다른 드라마 속의 이야기이다. 그래도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SBS <조강지처 클럽>(문영남 극본, 손정현 연출)과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문희정 극본, 이태곤 연출)이 대표적이다.

조강지처 클럽


<조강지처 클럽>은 시청자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겠다며 주요 등장인물 모두를 불륜 관계로 엮어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장면을 주말마다 안방극장에 쏟아놓는다. 그리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열아홉 살의 마음으로 러브로망을 꿈꾸는 중년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뽀글뽀글 파머 머리 아줌마와 백마 탄 왕자님의 동화 같은 첫사랑 이야기로 주말 안방극장을 수놓는다. 추레한 현실에 지친 중년 여성들은 <조강지처 클럽>의 ‘나화신(오현경 분)’이나 ‘한복수(김혜선 분)’를 통해 자신을 여자로 대우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꿈꾸거나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홍선희(최진실 분)’와 동일시하면서 여고 시절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린다.

‘나화신·한복수·길억·한원수·이기적·구세주’ 등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중년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조강지처 클럽>은 애초 “‘남편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이라 여기며 일방적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조강지처와 맹목적이고 추종적인 학벌지상주의에 자녀들을 머나먼 유학길에 떠나보내고 오로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기러기 아빠”를 통해 “가정의 진정한 행복과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를 표방했다. 기획 의도만 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다. 가족 해체와 가정 파괴가 더 이상 남의 집 일이 아니고, 의지나 형편과는 상관없이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 현실에서 <조강지처 클럽>의 문제의식은 분명 시의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거운 이야기가 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시청자가 눈을 떼지 못할 현실적인 스토리에 작가 특유의 눈물과 감동, 웃음”을 절묘하게 버무린다는 제작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왜 꼭 불륜이었는지 의문스럽다. 게다가 아무리 집안 내력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현실이 아닌 드라마 속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주요 인물들을 온통 불륜으로 엮어 놓은 것은 지나친 극적 설정이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을 살펴보면 <조강지처 클럽>에서 불륜이 얼마나 일상적인 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나화신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친구 오빠와 눈이 맞아 결혼한 뒤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남편 ‘한원수(안내상 분)’에게 버림받는 인물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것도 서러운데 시어머니 ‘안양순(김해숙 분)’과 시누이이면서 오랜 친구 ‘한복수’마저 자기를 외면하자 나화신은 집을 나와 낮에는 의류 판매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가 재벌 2세로 의류회사 본부장인 ‘구세주(이상우 분)’의 도움을 받아 디자이너로서 자기 재능을 개발하면서 한원수에게 복수의 한 방을 날린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며 자기 오빠를 두둔하며, 오랜 친구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남의 일처럼 여기던 한복수 역시 남편 ‘이기적(오대규)’에게 버림받기는 마찬가지다. 한복수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시장에서 생선 팔아 번 돈으로 남편을 의대 교수로 만들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다가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고나서야 친구이자 올케인 나화신의 심정을 이해하는 인물이다.

나화신과 한복수가 조강지처(糟糠之妻) 대표선수라면, ‘길억(손현주 분)’은 ‘기러기 아빠’로 상징되는 조강지부(糟糠之父/夫) 대표선수이다. 중견 건설회사의 후계자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다가 자식 교육을 앞세워 조기 유학을 결정한 허영심 강한 아내 ‘정나미(변정민 분)’ 때문에 기러기 아빠 신세로 살던 길억은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설상가상 위암에 걸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한복수의 도움으로 겨우 기사회생한 뒤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각기 아내와 남편의 불륜 현장을 뒤쫓다 만난 길억과 한복수는 서로를 위로하다 시나브로 찾아든 사랑을 부인하지만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만큼은 숨기지 않는 순수한 인물들이다.

<조강지처 클럽>의 비정상적인 사랑, 즉 불륜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원수의 아버지 ‘한심한(한진희 분)’은 아내 ‘안양순(김해숙 분)’을 버리고 ‘복분자(이미영 분)’와 딴 살림을 차려 평생 아내를 속 썩이고, 한복수의 남편 이기적은 첫 번째 불륜이 발각되자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기면서 용서를 빌지만 출세를 빌미로 접근하는 의대 후배와 또 다시 바람이 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랑을 한다. 이처럼 <조강지처 클럽>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던 조강지처와 자식 교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져 기러기 아빠로 살던 조강지부의 통쾌한 복수보다 불륜 그 자체에 집착하면서 애초의 기획 의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남발하면서 시청자의 통속적인 호기심만을 유발하는 문제투성이 드라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도대체 중년 여성 시청자들은 왜 <조강지처 클럽>을 보는 것일까? 며느리도 모를 일이겠지만,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된 극적 상황들이 시청자로 하여금 거리를 두고 드라마를 시청하게 만들면서 마치 옆집의 부부싸움을 훔쳐보는 관음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외도와 불륜이 얼마나 비참하게 끝나는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말도 안 돼!”를 연발하면서 끝까지 채널을 고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강지처 클럽>의 높은 시청률은 과장된 극적 상황을 훔쳐보면서 그들이 지키고 싶은 가정을 파괴하는 외도나 불륜에 훈수를 두고 싶은 욕망이 발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억척 아줌마와 철부지 스타의 초대형 스캔들”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내용의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최초의 주부 트랜디 드라마’를 표방한 드라마이다. “젊음 앞에서 주눅 든 중년 여자들에게 당신도 젊음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매력이 충분하다”며 “내면까지 아름다운 여자, 그 이름 아줌마”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사”하겠다는 기획 의도는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억척 아줌마 ‘홍선희’와 인기 관리를 위해 나이까지 속이고 톱스타 자리에 오른 배우 ‘송재빈/장동철’의 로맨스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것 같다.

방청객 아르바이트는 물론 가사 도우미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달려들던 억척 아줌마 홍선희는 하늘 같이 믿고 따르던 남편 ‘안유식(김병세 분)’이 거액의 빚 때문에 교도소에 갇혀야 하는 날벼락을 맞는다. 남편은 사업 실패로 껴안은 거액의 빚을 갚아야만 자유의 몸이 된다. 하지만 평범한 아줌마가 거액의 돈을 만드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 여자 잘못 만나 똑똑한 아들 신세 망쳤다고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돈이 있어도 빌려주지 않는 시누이의 구박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홍선희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 사이 남편 안유식은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여자의 도움으로 구치소를 나와 아내 홍선희와 이혼한다. 물론 홍선희는 거액의 빚 때문에 위장 이혼하는 것이라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속은 것을 알고 절망한다.

그래도 홍선희는 외롭지 않다. ‘송재빈’이란 이름으로 톱스타가 된 고등학교 동창 ‘장동철(정준호 분)’이 옆에서 왕자처럼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동철의 형이자 매니지먼트 대표이사 ‘장동화(정웅인 분)’도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홍선희에게 호감을 갖고 챙겨주기까지 한다. 이만하면 홍선희는 ‘아줌마’와 ‘신데렐라’라는 단어를 합성시켜 만든 ‘줌마렐라’의 대표선수로서 자격이 충분하다. 첫사랑이라면서 어찌 저렇게 구박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홍선희에게 까칠하게 구는 송재빈/장동철의 행동이 실은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아줌마들의 판타지는 300% 충족되면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나타나 풋풋한 첫사랑을 나누던 학창시절을 재현하는 장동철의 행동은 일상에 함몰되어 힘겹게 살아가던 홍선희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시에 드라마를 시청하던 중년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 톱스타 장동철이 홍선희를 위해 준비한 카세트, 못난이 삼형제 인형, 캔디, 딱지, 로보트 태권V, 사이다와 찐 계란, 도시락 등 학창 시절의 아이콘들이 중년 여성 시청자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여고 시절 추억 속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이처럼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동화 같은 이야기로 중년 여성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 줌마렐라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만약 드라마에서처럼 추레한 일상에 지친 중년 여성에게 첫사랑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난다면, 그래서 드라마 속 홍선희처럼 톱스타와의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게 된다면 아무래도 그 대상은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도 여전히 미혼으로 남아 있는 ‘장동건·이병헌·배용준·정우성·이정재·안재욱·정준호’ 등과 같은 남자 배우들이 아닐까? 이들은 분명 중년 여성들이 한창 달콤한 연애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시절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손꼽았을만한 톱스타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다. 만에 하나라도 드라마를 현실과 착각한다면, 중년 여성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지키고 싶어 했던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불륜이 넘쳐나는 줌마렐라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드라마가 현실이 아니라지만, 그리고 아무리 사랑이 삶의 원동력이자 인간의 존재감이라지만 그래도 어쩌다 한 번쯤은 이랜드 그룹의 홈에버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쫓겨난 아줌마들의 눈물어린 일상에 관심을 기울인 드라마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저 일상의 피곤을 덜어낼 수 있는 오락일 뿐인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과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비판하지는 말자. 그러기엔 드라마의 사회적 영향력이 너무 강력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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