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냐 불출마냐 그것이 문제

[월간 말_특집]현장에서 본 진보진영 총선 성적표, 창원을

제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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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최초의 지역구 재선의원이 탄생했다. 실망스런 대선결과와 탈당으로 고사 직전에 까지 몰렸던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의원이 18대 총선에서 창원을 지역구 수성에 성공함으로써 숨통이 트였다. 당초 권영길 의원이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을 때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조차 그의 승리를 높게 점치지 않았다. 선거운동 초기 지역에서 만난 운동원이 “대선에서 3퍼센트 얻고 내려왔는데 잘된다면 그게 이상한 것 아니겠냐”고 멋쩍어 할 정도. 탈당과 진보신당 창당으로 인해 지역분위기도 처음엔 좋지 않았다. 노동현장 중심의 전직간부들이 대거 탈당해 기동력에 공백이 생긴 상태였고 당원들의 사기도 바닥을 맴돌았다. 권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 내놓을 수 있는 카드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재선을 도전하는 의원에게 늘 따라붙는 ‘실적론’을 멋지게 피해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면 진보정치인 권영길은 어떻게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출마냐 불출마냐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던 대선 이후부터, 총선이 치러진 지난 4월 9일까지의 주요 행보를 되돌아 봤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가 의자에 몸을 의지한 것은 채 20여분이 되지 않았다. 17대 대선투표 출구조사 방송을 청취한 권 후보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런 권 후보를 뒤따르던 당직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자신들의 얼굴표정을 권 후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저녁 7시경 약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권 후보는 “국민여러분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 “민주노동당은 미래에 대한 투자를 호소 드렸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국민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그 지지를 밑거름으로 해서 다시 비상하겠다”고 말한 뒤 당사를 조용히 떠났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과 지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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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지 이틀 뒤인 12월 21일. 권 의원의 한 보좌관이 중앙당 대변인실을 찾았다. “창당 정신으로 돌아가 백의종군하겠다”라는 권 의원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선거가 끝난 직후 지역에 내려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권 의원은 이날 오후 그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권영길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당원과 지지자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의사를 중앙당에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권 의원의 말 한마디에 대선 후유증으로 한동안 조용할 것 같았던 민주노동당에 후폭풍이 밀려왔다. ‘백의종군’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 일부 인사를 주축으로 ‘권영길 정계은퇴’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총선에 나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당내에서 이른바 평등파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평등사회로전진하는활동가연대(전진)’는 12월 23일 총회를 열고 ‘비례대표 불출마’를 결정한다. 명부별 1인2표제로 시행되는 비례대표선출방식을 비토하기 위해서다. 곧 이어선 이른바 평등파를 주축으로 “대선에 책임있는 지도부의 비례대표 불출마” 요구도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파워게임이 시작된 것이었지만 그 불똥의 거의 다수는 권영길 의원에게 집중됐다.
12월 29일 열린 중앙위원에서 권 의원은 대선 이후 처음으로 ‘동지’들 앞에 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죄송하다는 그 한마디 외에 떠오르지 않는다. 대선 기간 동안 ‘기호3번 권영길’을 외치던 당원동지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면서 시작한 그의 발언은 “정말 죄송하다. 어떻게 해야 될지 저에게 지혜를 불어넣어 주길 간절히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 됐다. 다음날 이른바 자주파를 대변해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한겨레>가 주최한 조승수 전 의원과의 간담회에서 “거취 문제 얘기하는 게 책임지는 거라고 하는데 이건 보수정당의 정적 제거 방식”이라며 “진보정당에서 수십 년 동안 함께 해 온 사람을 인적청산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되고 국민이 몇 석을 비례대표로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데 지도부들에게 비례대표 불출마 선언을 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없는 권리다”고 입장을 밝혔다. 권 의원을 최초로 변호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역에서 진로를 고심하고 있던 권 의원을 계속 압박했다.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이승필 전 위원장 등 경남지역의 평등파 당원 50여 명이 ‘종북주의 사과’ ‘도당 지도부의 차기 당직·공직 선거 불출마’ ‘권영길 총선 불출마’를 1월 11일 요구했다. 이들의 압박은 권 의원이 1월 22일 고 하영일 공무원노조 전 사무차장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당원들과 간담회를 가지자 다시 한 번 제기됐다. 이번에는 “권력에 대한 노욕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험한 말이 동원됐다. 관련 소식을 전해들은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발끈했다. 1월 30일 경 창원에 내려가 권 의원의 정계은퇴를 주장하는 노동관계자들과 면담을 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한 동안 발생되지 않았다.
2월 3일 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가 불신임을 받은 뒤, 설날 연휴기간 민주노총 전·현직 위원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석행 위원장의 제안으로 이뤄진 자리에 단병호·이갑용 전 위원장은 참가의사를 밝혔다가 결국 함께 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무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이던 권 의원은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놨고, 후배 위원장들은 격려를 했다. 이 자리에서 권 의원은 “조만간 최종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설 연휴가 지나고 민주노동당 탈당이 본격화 됐다. 2월 11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시도당 사무처장단 회의에서는 “창원을에서 권영길을 죽이기 위해 탈당파가 후보를 내겠다는 얘기가 많이 떠돌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오갔다.
권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최종 결심을 2월 20일 <한국방송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에서 밝혔다. 총선출마 의사를 어떤 방식으로 밝힐까를 고심하던 차에 방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이날 그는 “창원에 진보진영의 확고한 보루를 만들고 지방정권에 도전해야 한다”면서 “나의 불출마는 창원을 한나라당에 헌납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순 없다. 피할 생각이 없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따를 것이다”고 말했다.
뒤 늦게 알려지긴 했지만 총선 출마의사를 밝히기까지 권 의원은 불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불출마 기자회견의 내용과 그 날짜까지 내심 잡아뒀다. 이와 관련해 권 의원은 수성에 성공한 뒤 지난 4월 16일 서울에서 가진 ‘진보진영 대표단 간담회’ 자리에서 “권영길의 불출마가 당의 분열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분열 속에서 권영길이 출마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웠다”면서 “불출마를 결심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혀서 (불출마 결심) 이틀 만에 다시 번복하고 출마를 결정했다”고 힘들었던 그간의 논의과정을 짧게 설명했다. 권 의원의 한 보좌관은 출마와 불출마 결정이 오가던 당시를 떠올리며 “차라리 출마를 결심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더라. ‘그래. 죽어도 창원에 가서 정말 열심히 싸우고 죽자’고 의기투합 했었다”고 회상했다.
권 의원과 보좌진들은 전장으로 뛰어들며 ‘수성’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도전’의 각오를 다졌다. 승리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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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거가 만만치 않을 것임은, 당장 2월 27일 오전 창원시청 브리핑룸에서 총선 출마 기자회견 자리에서 느껴졌다. 분열사태, 4년간의 실적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느껴졌던 호의가 보이지 않았다.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송철원 보좌관은 “기자들이 예전만큼 호의적이지 않다”고 말했고, 지역신문에는 “민노당 권영길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을은 한나라당 현역의원이 없어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식의 기사가 넘쳐났다. 이미 이 지역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이들의 지지율 합계는 권 의원을 10퍼센트 이상 앞지르고 있었다. 출마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 권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진보진영의 목표는 생존이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다짐하는 목소리였을 테다.
출사표를 던진 권 의원이 제일 먼저 신경을 쏟은 것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권 의원은 특유의 헌신적인 모습으로 선거운동원을 격려했다. 장소를 이동할 때면 자동차를 버리고 3시간 넘게 걸어 다니며 유권자들을 만나 나갔다. 권 의원과 어쩔 수 없이(?) 동행하던 운동원들은 권 의원의 절박한 모습에 한 번 놀랐고, 예상보다 호의적인 유권자들의 반응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대선의 여파로 외면 받을 것 같았던 권 의원을 지역 유권자들은 반갑게 맞이해 줬다. “권영길이네”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악수하자고 덤벼드는 아이들과 지지자들은 04년에 비해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인지도의 힘이었던 셈이다. 적군인 한나라당조차 권 의원의 최고 강점을 높은 인지도로 꼽았다. “권영길 의원님은 전체 창원시민 손 한번은 다 잡아보지 않았냐”는 말도 풍문을 타고 들려왔다.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차츰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노동현장이었다. 창원을 남쪽 지역의 공단에는 중·대형 금속사업장이 즐비하다.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통일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이다. 경남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업장 47개 중 39개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사업장 중 다수가 탈당파와 정치적 이해가 일치하는 노조 집행부였다. 3월 10일,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이들이 세운 진보신당 경남도당이 기자회견에서 최재기 전 전국사회보험노조 부위원장을 창원갑 총선후보로 소개했다. 이어 3월 13일 민주노동당의 강영희 전 경남여성회 이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창원갑 총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맞붙게 된 것. 통합의 대명사 권 의원도 이 같은 경쟁사건에는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3월 1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 의원은 “총선 이후에는 재결합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전까지는 마지막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겹치기 지역구 출마를 피하자는 것으로 해석됐다.
권 의원이 후보선출대회에서 당원들에 의해 총선 후보로 결정되던 3월 18일, 진보신당 경남도당은 “17일 대책회의를 통해 창원을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민주노동당도 화답을 했다. 창원갑에 출마한 강영희 후보가 3월 24일 사퇴의사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강 후보는 “국회의원 권영길을 다시 한 번 시민들의 심부름꾼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와 관련해선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다. 강 후보의 사퇴는 기자회견 하루 전인 23일 경남도당 선거대책회의에서 갑자기 결정났다. 도당 관계자에 의하면 “지역의 노동계와 진보신당에서 권영길은 창원을, 신당은 창원갑으로 나가 경쟁을 피하자”는 비공식 제안을 했고, 민주노동당이 이 제의를 수용했다. 사정에 정통한 전국금속노동조합 중앙의 한 간부는 “강 후보의 사퇴는 권 의원 당선을 위해 적극적 조취를 취한 것”이라며 “진보신당 성향 사업장의 비토를 막기 위해서 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3월 24일 열린 금속경남지부운영위에서 진보신당 사람들이 민주노동당과 신당 둘 다 지지하자고 했는데 민주노총 방침위배라서 안된다고 겨우 저지했다”고 말했다.
선거 막판에는 한나라당이 돈봉투 사건 등으로 곤혹을 치르자 캠프가 잔뜩 긴장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두드려 맞을수록 영남은 오히려 단결하는, 이른바 ‘초원복집사건’이 재연될까하는 우려 때문.
이 같은 갖은 고초 끝에 권 의원은 4월 9일 총선에서 결국 승리하게 된다. 당일 선거사무실 관계자는 “십자가를 맨다는 심정으로 내려왔는데 많이 선전했고 결국 이겼다”라면서 “민주노총도 열심히 해주셨고, 노동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지역주민들도 권영길에 거부감을 안 가져서 승리했다”고 감격해 했다. 권 의원도 당선 소감에서 “전국에서 달려온 동지들의 눈물과 땀이 승리의 배경”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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