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군부의 경제 지배

계약, 보조금, 무역, 부패

아예샤 시디카(파키스탄 군사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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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5일,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했지만, 1월 8일의 총선은 여전히 삼엄한 경비 속에 치러 질 것이다. 정치적 갈등과 테러행위 외에도 - 이로 인해 2007년도에 최소한 760명이 사망했다 - 군 참모본부가 권력통제를 계속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몇 해 동안 군부의 경제적 역할은 증대했고 고위 장교들은 이로부터 큰 수입을 얻었으며 이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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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파키스탄 일간지에는 재계가 군부 지도체제를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문조사가 실렸다(1). 이에 대해 그다지 놀라는 사람은 없다. 다른 엘리트 집단과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의 대자본가들은 군부가 권력의 한 축을 이루는 상황에 매우 잘 적응해 있다. 군은 자신들의 임무가 현 권력에 저항하는 민간인들 - 그들이 보기에 당연히 이들은 자신들보다 덜 애국적이다 - 을 순종시키는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그것이 바로 11월 3일 무샤라프 대통령이 헌법효력을 정지시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때 군부가 원했던 것이다. 무샤라프 장군은 종교적 과격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로부터 국가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 결정은 보기 드문 군부의 정치권력과 특히 경제 권력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군부세력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국민총생산의 6% 이상을 차지하는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파키스탄의 역사는 쿠데타로 점철돼 있다. 하지만 한 명의 장군이 쿠데타를 2번 일으킨 것은 무샤라프가 처음이다. 무샤라프는 1999년 10월 12일, 민선 총리였던 나와즈 샤리프 총리를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다. 지난해 11월, 그는 아무도 축출하지 않았지만 비상사태를 선포함으로써 국가 경영에 있어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 되었다. 그는 1952년 제정된 군법을 개정해 군인들이 민간인을 체포할 수 있게 하고, 법원의 위임 없이 군사회의에 그들을 소환할 수 있게 했다. 재판은 비공개 밀실재판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런 특별 권한이 테러리즘과 종교적(이슬람) 과격주의자들과의 전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 달 전 부터 군인들을 겨냥한 자살 테러와 다른 테러들이 증가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샤라프 장군이 겨냥하는 것은 파키스탄 최고법원인 대법원이다. 정보국이 체포한 61명의 ‘테러리스트’들을 대법원이 석방해 과격주의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몇몇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경찰책임자를 소환하는 결정을 내려 기동대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평가해 왔다.

바뀐 체제

무샤라프 장군은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지만,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법관들의 독립과 일반적인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북와지리스탄과 남와지리스탄의 부족 구역 내 치안 유지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무장 행동대원들은 정보국의 지원을 받는다. 그들이 계속 번성하는 것은, 사법권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군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9월 5일에는 군대와 무장 행동대원들 사이에 협정이 체결돼, 무장행동대원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군대가 퇴각하기로 결정했다(2).

비상사태는 우선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군인들의 지배력 강화를 목표로 한 것이다. 여러 해 동안 굴복해 있던 대법원은 자신들의 특권을 방어하기 시작했고 군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2007년 3월 8일, 무샤라프 장군은 대법원장을 해임했다. 변호사들과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비종교적 운동들이 결집돼 그를 구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 운동은 정치 자유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다수 관측자들은 파키스탄을 군사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데 베나지르 부토 여사가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이나 군부 자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과 합의 - 부토 여사가 연루된 부패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하는 합의 - 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돌아온 부토 여사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판사 해임사태에 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비상사태를 규탄했다(비상사태는 12월 15일에 해제됐다). 인민당은 광범위하게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이 연루된 스캔들을 이유로, 그리고 그녀가 또 다시 입장을 바꾸지 않을까 의심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누군가가 독재에 도전할 능력과 수단을 가지게 되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군은 파키스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체제로 남아 있다. 과연 군은 무샤라프 대통령 축출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군부가 두 명의 참모총장을 포함해 민심을 얻지 못한 3명의 장군을 해임했다. 첫 번째 군사 독재자였던 아유브 칸은 1969년, 스스로 원수라 선포한 이후에 해임됐다. 그는 너무나도 인기가 없어서 군 지휘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최근 무샤라프도 군 지휘권을 이양했다. - 1971년, 참모본부는 군 통솔자였던 야히아 칸 장군에게 압력을 가해 민간인이었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에게 권력을 이양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파키스탄의 3번째 군사 독재자였던 모하마드 지아 울하크 장군은 1988년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따라서 군부가 국민의 소망에 부응해 무샤라프 정권을 뒤엎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1997년 4월 9일 미 록히드 마틴사가 개발한 신형 전투기인 F/A-22 랩터가 첫 선을 보이고 있다.
  • 1997년 4월 9일 미 록히드 마틴사가 개발한 신형 전투기인 F/A-22 랩터가 첫 선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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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부가 최종적으로 탄압 쪽을 택할 수도 있다. 군대라는 체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이제 중요한 경제 주역들이 되었고, 이 분야에서 보호해야 할 이익이 있다. 무샤라프 장군 덕에 고위 장교 집단은 국방예산 이상의 국가 세입을 흡수하게 되었다.

현재 파키스탄의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목표는 무샤라프 축출만이 아니다. 사법권과 다른 민간체제의 권한을 강화하고, 군사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이것은 대다수 장군들의 취향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군 참모부는 1958년 이래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그들이 장악한 권력들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정치권력을 독점한 최초의 인물인 아유브 칸 장군은 1969년에 야히아 칸 장군에게 권력을 승계하고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야히아 칸은 파키스탄 군대가 인도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그때까지 파키스탄의 동쪽 주였던 방글라데시가 분리 독립함으로써 군 사기가 저하되고 통치역량이 약화된 후인 1971년 사임했다.

당시 부토가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군부가 도와준 것은 ‘이슬람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부토가 군의 우파 민족주의 프로그램과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폭넓은 지지를 받은 정책 덕분에 부토는 1977년 7월 권좌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집권 몇 년 동안 민주주의가 강화되지는 못했다. 일단은 군인들이 은밀하게 나라를 계속 통치했고, 중요한 분야의 민간엘리트들이 여전히 군부에 충성을 바쳤기 때문이었다.

군 장성들은 무능력한 정치책임자들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의 첫 번째 개입(1968년 계엄령)은 권력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개입들 역시 정치적, 경제적 야심이 뒤섞여 나타난 것들이었다. 오늘날 군사평의회는 고위 장교들과 그들의 민간인 동맹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부를 재분배하는 주요 결정자이다. 이런 경제적 권력은 그들에게 직업군인들이 일반적으로 바라기 힘든 사회적 가시성을 부여했다.

군인들이 어느 정도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파키스탄의 중요 도시들의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된다. 물론 크고 작은 도시 한 가운데는 각종 유형의 탄도미사일을 상징하는 수많은 기념물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길가는 행인들은 그 지역 시장에서 군대가 관리하는 기업체들이 생산한 소비재들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업체들은 공격용 전차, 비행기, 대포들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얼, 오트밀, 락스, 생수, 시멘트, 화학비료 또는 니트 제품까지 생산한다. 사실 군은 군수품생산보다 소비재 생산에 더 능력이 있어 보인다. 심지어 군은 싱싱한 돈을 거둬들일 용도의 은행도 보유하고 있다. 군인들은 농업, 서비스 산업, 제조업의 경제 3대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자본이 합법적인 경제에 관계돼 있기도 하지만,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비공식적, 불법 분야에도 관계돼 있다. 파키스탄의 모든 기관들 중에서 국가 세입의 가장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군대다. 이러한 권력이 다른 정치세력들에 비해 군에 확실한 우위를 부여하고, 다른 경제관계자들 앞에서 그들의 지위를 강화시킨다.

국가 세입의 상당부분을 군이 차지하는 것은 파키스탄이 독립(1947년)한 초기 몇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은 인도와의 1차 전쟁으로 이어졌고 파키스탄 정부는 국가 예산의 7.5%를 국방비로 책정했다. 그 이후 군 세력은 국민총생산의 평균 30%를 가져가기에 이르렀다. 이 수치는 군인퇴직연금과 군인들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다른 지출이 포함된 수치다.

그러나 국방예산이 군사 경제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수익성 좋은 민간분야에 대한 투자도 포함된다. 이 경제구조는 지극히 복잡하다. 폭넓게 보면, 이 경제의 하부구조는 파악하기 힘들다. 참모본부에서는 퇴역군인이나 현재 활동 중인 사람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국가 세입을 횡령하는 수많은 테크닉을 사용한다.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등의 소유주들

군사 경제는 3가지 단계로 작용한다. 1단계는 군인들이 경영진으로 활동하는 기업체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도 이와 비슷한 기업들이 있다. 파키스탄에서 이 단계의 기업체로는 3대 기업을 들 수 있다. 파키스탄 국경사업기구(Frontier Works Organization, FWO)는 건설, 토목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로 특히 고속도로와 댐 건설을 담당하고 있다. 내셔널 로지스틱스 셀(National Logistics Cell, NLC)은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를 담당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운송회사로 대규모 건설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스페셜 커뮤니케이션(Special Communications Organization, SCO)은 파키스탄 북부지역과 카슈미르 지역에서 전화통신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이 기업들은 군부와의 관계를 활용해 정부보조금을 얻어내고 계약을 따낸다. 일례로, 신축 도로 건설사업의 대부분은 민간업체보다 덜 부패하고 더 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해진 FWO와 NLC에게 할애된다. 파키스탄 방방곡곡에서 FWO와 군을 칭송하는 수많은 포스터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평범한 광고가 아니다. 이 광고포스터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로를 너무나도 잘 건설해 놓은 군인회사를 축하하도록 사용자들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캠페인은 이 기관들 내부에서 커져만 가는 설명할 길 없는 부패와 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일례로, NLC가 카라치에 건설한 다리는 개통 1주일 만에 붕괴되어 7명의 사망자를 냈다. 파키스탄과 중국 사이에 위치한 카라코룸고속도로 공사를 위해 1966년에 창설된 FWO에게 라와핀디의 도로 10km 건설 공사가 맡겨졌다. 이 계약은 공개입찰 없이 낙찰되었고, 총 공사비는 188억 루피(1100만유로)로 터무니없이 과도한 액수로 여겨지고 있다. 이 도로 건설로 FWO는 도로 1km 당 18억 루피(2100만 유로)를 받았지만 중요한 영업이 되어야 할 카라코룸 고속도로 유지 보수 사업은 포기했다.

이 3대 기업 외에도 군인들은 주유소, 베이커리, 식품점, 레스토랑, 심지어 미용실 같은 소규모 사업체 100여개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사업체들은 국가 세입에서 돈을 끌어다 쓰고 통제라고는 전혀 받지 않는다.

2단계에는 군 체제와 관련된 5대 자회사를 들 수 있다. 파우지 재단(Fauji Foundation)은 육해공 3군의 사회 서비스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국방장관이 경영한다. 군 복지 신용금고(Army Welfare Trust), 바흐리아 재단(Bahria Foundation), 사힌 재단(Saheen Foundation)은 각각 육군, 공군, 해군에 속한 재단들이다. 마지막으로 파키스탄 군수품공장(Pakistan Ordnance Factories)이 있다. 이 재단들은 시멘트, 비료, 곡물 생산에서 은행, 보험사, 부동산, 교육기관 등과 민간 항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요 기업체 100개 이상을 경영한다. 중공업에서 군이 차지하는 비율은 33%에 달한다.

대부분의 고위 장교들은 이런 관계를 인정하기 꺼린다. 그들에 의하면, 이 회사들은 단지 퇴역 군인들을 고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자회사들은, 연기금을 가지고 수백 개의 소규모 사업체를 경영하는 터키의 군 재단 오약(Oyak)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 이러한 경제활동은 퇴역 군인들의 단순한 직종변경 이상을 의미한다. 여기서 군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투명성 한 가지만을 갖추지 못한 상업제국을 구축하는 데 사용된다. 이 사업체들은 은밀하게 국가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전체 공공 서비스에 부과되는 재정책임의 원칙과 통제 절차를 빠져나간다. 재무조사관들이 발행한 많은 회계감사를 보면 이 사업체들이 국가 세입에서 유용하는 액수가 어느 정도일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례로, TWA의 계열사로 헬리콥터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아스카리 항공은 공군장비를 이용하면서 국가에 대해서는 한 푼도 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덜 불투명한 군사자본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재단들의 재정 비중은 2500억 루피(28억 유로)에 달하지만 이 재단에 속해있는 사업체들의 상대적 투명성은 그 지위에 의해 설명된다. 10여개의 계열사들이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데 그 회사들의 회계는 다른 두 단계의 기업체들에 비해 훨씬 가시적이다.

3단계에는 가장 불투명하면서도 군 패밀리 구성원들에게 이익을 불려준다. 퇴역 혹은 현직 장교들은 연금이나 사회급부 명목으로 국가로부터 수십억 루피를 받고, 농경지 형태로 도시의 땅(박스 기사 참조)이나 다른 현물 급부를 받는다. 민간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기도 한다. 이런 급부는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엘리트 장교들이 그 주요 수혜자들이 된다. 일례로, 퇴역 장성은 자기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집사나 운전사들을 가질 권리를 누린다. 이것은 하찮은 이익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 증여다. 모든 고위 장교들은 파키스탄 내에 6-7개의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무샤라프 장군은 10여개를 소유하고 있는데 모두 고가의 것들로 그가 군에 몸담았던 덕택에 획득한 것들이다. 그래도 조금은 양심적인 장교들은 1-2개 정도의 저택을 소유하는 데 그친다.

그 외에도 군인들이 관리하는 회사나 민간분야, 국가의 여러 다른 부처로부터 장교들에게 수백 개의 직책이 제공된다. 무샤라프가 권력을 장악한 이래 1200여명의 장교들이 공공분야 요직에 임명되었다. 일례로, 파키스탄의 12개 전기회사 중 9개를 군인들이 경영하고 있다. 고위 장교들은 대사로 임명되기도 하고, 심지어 대학 부총장으로 임명되기도 한다. 이런 직책들에 외에 앞에서 언급한 군인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덧붙여진다.

민간 분야는 정부 측과의 우호관계와 접촉 때문에 장교들이 특히 즐겨 찾는 분야다. 상당수 퇴역 고위 장교들이 군수산업으로 직종을 옮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거래 이익을 올리기 위해 그들이 가진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아유브 칸 총사령관이 자신의 아들을 산업계 거물로 만들었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최근에는, 지아 울하크 장군과 아크타 압둘 레만 장군(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정보국장)의 아들들은 달러 백만장자였다. 문제는 사회적 기능을 가져야 할 이런 군사 자본들이 약탈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강력하지만 명백하게 불투명한 기관이 특정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수입을 횡령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군 조직을 자신들의 이익, 특히 상당한 재정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연합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공공연한 목표다. 그러니, 자신들의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재계에 진입하고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는 군인들이 권력의 민간이양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을 보고 놀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예샤 시디카/번역 · 김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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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파키스탄은 민주주의를 혐오하는가”, <여명>, 카라치, 2007년 8월 5일자.
2) 시에드 살림 샤흐자드(Syed Saleem Shahzad), “알카에다 대 탈레반”,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07년 7월호 참조.

신 지주들


  • 작렬하는 태양 아래 사막의 도시 아바하왈푸르, 10여년 넘게 이곳에 살아온 20명의 농부들은 정부가 그들을 이 땅에서 쫓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정부에 귀속된 이 땅은 최근 군 관계자들에게 양도되었고 이들은 서둘러 이 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추방된 농부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하등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내 줄 것이 없다면, 차라리 우리를 인도로 보내달라”고 한 농부의 아내는 불평한다.

    파키스탄에는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민이 2백만 명이나 되지만 지자체 소유의 땅 3760만 헥타르의 땅을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군 소유의 468만 헥타르 중에서 280만 헥타르는 군 관계자들에게 넘어갔다. 이렇게 공공 토지를 증여하는 관례는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은 특정 단체를 단골손님으로 만들고 군대에게 상을 주기 위해 이런 방법을 시작했다.

    인도와 달리 파키스탄은 장교는 물론 일반 사병들에게도 체계적으로 토지를 수여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물론 장교들에게는 가장 좋은 몫이 주어졌다. 그들은 예를 들면 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특혜를 받는다거나 시장을 개척하는데 유용한 도로에서 인접한 형태로, 일반 사병들이 누리지 못하는 국가의 간접 지원도 받았다. 이러한 간접 지원은 회계감독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일반 사병들과 달리 장교들은 도시 내 토지도 받는다. 이들은 이렇게 증여받은 토지를 개인 부동산으로 개발한다. 공공토지에는 군사훈련장이나 사격장 등이 포함돼 있다. 장교들은 국가의 토지를 분산시키는 데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을 위한 부동산 개발계획이 28개나 있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군은 민간 소유 토지를 싼 가격으로, 또는 정부보조금을 얻어 사들인 후 장교들끼리 나누어가지기도 한다. 이 땅들은 군인들의 재력에 힘입어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하고, 따라서 대부분의 장성들은 백만장자가 된다.

    군인들에게 넘어간 농촌지역 토지의 총액은 대략 1조 4천억 파키스탄 루피(156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지역 토지의 가치는 참조할 수 있는 수치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산출해내기 더 힘들다. 하지만 라왈핀디에 세워진 291헥타르 규모의 디펜스 하우징 건설이 주주들에게 240억 루피(2억 6천만 유로)의 수익을 올려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략 얼마가 될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부터, 장군 1명의 평균 재산을 440만 유로로 평가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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