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코소보 독립의 도미노 효과
발칸 국경선, 판도라의 상자
코소보의 지위문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정치적 난제다. ‘국제공동체’가 15년 전부터 시행해온 정책 실패를 꾸짖는 새로운 지역 위기 발생요소들이 모두 결합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발칸반도의 국경선들을 다시 설정하려는 예전의 발상이 전면에 다시 떠오르고 있다. 주민들, 소수민족들과 요구사항들이 뒤섞인 상태에서 이런 식의 접근은 이 지역을 카오스에 빠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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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의 독립은 아마 이 지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 독립을 하나의 선례로 간주하여, 그들 역시 단 한 번도 실제로 진행된 적 없는 국가분리 독립권을 주장할 것이다. 코소보 독립은 또한 연쇄적으로 정국불안을 고조시키고 특히 마케도니아와 몬테네그로에 그 여파를 미칠 것이며, 결과적으로 발칸반도의 모든 국경선을 문제 삼을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과 외교관들이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암시하는 것처럼, 이 국경선들이라는 금기를 우리가 뛰어넘을 수 있을까? 90년대의 전쟁은 ‘대(大)’ 국가들의 이름으로, 즉 ‘대 세르비아’ 혹은 ‘대 크로아티아’란 이름으로 수행되었다. 코소보 독립 요구 뒤에 ‘대 알바니아’라는 유령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영토에 관한 요구사항을 검토하고,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인종분포와 일치한다는 이유로 ‘합당한’ 새로운 국경을 설정해야 할 때가 된 것인가? 이 지역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전 유럽에 지속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발칸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인가? 예전의 발상은 주기적으로 다시 불거져 나오곤 한다.
2001년 마케도니아 분쟁이 발생했을 당시, 알렉상드르 아들레 논설위원은 ‘유사요법 보다는 외과수술(1)’을 실시해 유고슬라비아 이후의 공화국을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같은 해 2001년, 구(舊)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국제회담 전 공동의장이었던 데이비드 오웬 경은 발칸 국경 재설정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개진했다(2). 마케도니아 내 알바니아민족주의의 역사적 인물인 아르벤 자페리는 이들의 말에 화답하며 ‘민족’국가 창설을 요구했다(3).
코소보의 미래에 대한 협상 실패와 세르비아-알바니아 간에 타협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오랫동안 ‘국제공동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해 온 이 지역 분할 발상이 다시 표면위로 떠올랐다. 코소보에 대한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외교 트로이카(미국, 유럽, 러시아) 중에서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독일 외교관 볼프강 이쉰저(Wofgang Ischinger)는 지난 8월 관계 당사자들 간의 협상에 의해 이루어진 어떤 선택도 배제되지 말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만약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가 코소보 분할에 동의한다면, 유럽연합은 그 분리를 승인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외관상으로는 대단히 상식적인 것이다. 만약 주민들이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민족구성에 맞춰 새로운 국경선을 일치시키고, 이를 위해서 ‘제한적으로’ 주민들을 이동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주민들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숙한 사람들의 계획이 실현되고, 평화롭게 협상이 진행돼 민족기반에 근거한 서구 발칸반도의 새로운 국경선들이 국제회담에서 허용된다고 한번 상상해보자. 그럴 경우 알바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북서부의 4분의 1, 세르비아 남부의 프레세보 지역, 몬테네그로의 동부 가장자리 같이 알바니아인이 주민 대다수를 이루는 모든 지역의 통합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끔찍하게 절단된 마케도니아는 친 불가리아 흐름이 우세하지 않는 한, 그리고 동쪽 이웃 국가인 알바니아에 합병되지 않는 한, 하나의 잔류 국가로 남게 될 것이다. 알바니아 내 소수민족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알바니아 남부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와의 합병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고, 반면에 알바니아인들이 사메리아라고 부르는 그리스의 북 에피르 지역에서 1945년에 추방된 알바니아인들은 짓밟힌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자 할 것이다.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소수민족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슈코드라(Shkodra)지역에서 보상을 요구할 것이고, 마케도니아는 오리스(Ohrid)와 프레스파(Prespa) 호수 주변에 있는 슬라브 마을들의 합병을 요구할 것이다.
당연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인들은 고국에 합병될 것이다. 이것은 보스니아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 될 것이며, 마찬가지로 동부 헤르체고비나, 중부 보스니아, 보산스카 포사비나(오르사예, 오자크)의 크로아티아인들은 크로아티아에 통합될 것이다. 기껏해야 사라예보, 제니카(Zenica), 투즈라(Tuzla) 주변에 집중된 미니 이슬람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1991년 이래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 대통령과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에 의해 밑그림이 그려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분할 계획이 실현될 것이다(4). 확실히 보스니아는 고라즈데 동부고립 지역의 방어에 집착할 것이고, 현재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나눠 가지고 있는 노비파자르(Novi Pazar)의 산자크(Sandjak) 지역의 합병을 요구할 것이다(5).
몬테네그로가 현재의 국경상태로 존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알바니아와 보스니아 지역으로 분리되는 것 외에도, 세르비아 지역으로도 분리될 것이다. 보스니아인과 세르비아인들은 자주 섞여 살았기 때문에, 적당한 국경을 설정하고 주민들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1918년에 몬테네그로에 합병되었던 코토르(Kotor) 만을 획득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몬테네그로는 19세기 중엽의 국경선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이율배반적인 요구사항들과 주민들로 구성된 ‘잡동사니’
세르비아 역시 역설적인 상황에 처할 것이다. 알바니아와 보스니아 지역으로 나뉘겠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영토와 몬테네그로 북부의 세르비아 지역의 합병으로 확장된 세르비아는 보이보디나이라는 골칫거리를 관리해야 할 것이다. 세르비아 북부의 이 자치지역에는 20여개의 소수민족들이 늘 인구의 50%정도를 차지한다. 헝가리 인들이 주요 공동체(약 35만 명)를 형성하고 있다. 수보티차(Subotica), 젠타(Senta), 칸지차(Kanjiza) 행정구는 보이보디나가 독립을 요구하지 않는 한 당연히 헝가리에 귀속될 것이고, 독립을 요구할 시에는 광란에 빠진 발칸반도에서 다민족으로 구성된 작은 섬을 이루게 될 것이다.
국경 재조정은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이 된 국가들과도 연관이 있다. 그리스 내 소수인종 문제는 단지 알바니아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부 트라키아지역에 사는 터키족과 포마크족은 각각 터키와 불가리아로의 합병을 요구할 것인데 이것은 결국 1923년의 로잔 협정을 폐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6). 그리스 내에서 금기시되는 주제인 그리스 령 마케도니아의 슬라브족 문제 역시 마찬가지로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와 대립하고 있는 소(小) 영토분쟁에서 만족을 얻을 것이다(7). 슬로베니아는 1918년의 영토귀속 주민투표의 무효화를 요구할 것이고, 슬로베니아 소수민족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카린티(Carinthie)까지 영토가 확장될 것이다(8). 지역분쟁을 관리하는 데 있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령 프리울과 어쩌면 트리에스테(슬로베니아어로는 트르스트Trst) 시를 얻을 수도 있다(9).
국경선이 폭넓게 조정된다 해도 몇몇 소수 민족들의 요구는 당연히 무시될 것이다. 코소보의 고라니 족, 크로아티아 동부 슬라보니의 루덴 족 혹은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그리스의 아루마니아 족은 실질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서부 발칸반도에 사는 3, 4백만 명의 롬 족은 늘 그랬던 것처럼 국가 없는 민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국경선 조정이 반발 없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결국 중간강도의 무장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유럽군대가 평화회복을 담당할 것이다. 반면에 피할 수 없는 인구이동은 부수적인 손실이 아니라 전체 프로세스의 주목표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인구이동은 수많은 비정부기구들의 도움을 받는 유엔 난민고등판문관실(UNHCR)의 감독을 받을 것이다. 서부발칸반도에 지급될 긴급지원예산은 2004년 쓰나미 위기 때 풀린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지나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미래와 관계되든 혹은 ‘알바니아 민족문제’와 관계되든 간에, 관계된 여러 종류의 서류가 현재 공개되어 있다.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독립이 선례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 실현가능성 없는 소망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만약 다른 민족적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이 해결책을 그런 식으로 간주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선례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국경선 변경이 모든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민족적이기 때문에 ‘공정한’ 국경선이 존재할 것이라는 철저한 환상에 근거한 것이다. 단지 발칸반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국경선은 현실적으로 역사적 창조물이며, 정치, 군사 세력 관계의 결과물이다. ‘자연적’ 국경선 이외에 ‘공정한’ 국경선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발칸반도’라는 표현은 상당히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면서 19세기에 일반화되었다. ‘유럽의 병자(病者)’였던 오스만터키 제국이 점차 붕괴되면서, 주민들의 모순된 요구가 상충하기 시작했다. 발칸반도는 민족적 복합성, 끊임없는 분쟁, 분열과 분할의 동의어가 됐다. ‘발칸화’라는 용어가 발칸반도에 의미를 부여했고, 유럽 내에서 이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시가 되었다. 발칸반도라는 개념은 지리학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이다. 주민, 열망, 모순된 요구들이 뒤엉킨 ‘잡동사니’ 속에서 국경선을 두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국가들의 출현과 국경선의 설정은, 발칸반도가 정치적 모더니티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새로 등장한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민족적 개념에 근거해, 서구 유럽의 특별한 역사적 경험에서 탄생한 모델들을 계승, 적응시켜 세워졌다. 그리스와 세르비아는 ‘인종청소’, 특히 종교적으로 이민족으로 간주된 주민들을 추방시키거나 동화시키면서 19세기 초에 건국되었다. 터키족들(다시 말해 이슬람교도들과 슬라브족, 알바니아 족 혹은 터키어 사용민족)은 신생국가들에서 추방되었다.
국경은 국민-국경-국가들을 일치시키면서 발칸반도의 ‘혼란’을 정리하고, 이상적인 유럽질서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정해졌다. 발칸반도를 특징지었던 언어적,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20세기 말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 가속화되었다.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인은 급격하게 감소했고(해당국가 전체 인구의 12%에서 약 4%로 감소), 보스니아인 집단은 해당국가의 3개 공동체 중 하나에 의해 각각 통제되는 광범위한 단일민족 지역으로 변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국가들 -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 은 발칸반도 주민들의 민족적 요구를 지지 내지 자극하면서, 오스만터키제국의 잔해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 강대국들의 정책은 이 지역을 대충 방문한 기자들이나 여행객들에 의해 전달됐다. 영국의 소설가 레베카 웨스트(Rebecca West)는 1930년대에 “벅스톤 형제가 그린 불가리아 사람들과 더럼 양이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알바니아 사람들의 모습은 조슈아 레이놀드 경이 그린 어린 사무엘의 초상화와 매우 비슷하다(10)”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민족주의적 대의명분을 포용하는 이 관찰자들의 ‘인본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선입견을 비웃었다.
러시아와 미국 간의 새로운 충돌 속에 있는 유럽의 졸개들
국경선은 몇 번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정해졌다. 우선 1878년. 러시아의 보호아래 ‘대(大) 불가리아’의 창설을 예견한 산 스테파노 조약과 더불어 ‘동방의 대위기’는 첫 번째 결말을 맞이했다. 세르비아와 루마니아가 피해를 보게 되는 이 계획은 거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몇 달 뒤 베를린 회담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노비파자르의 산자크 지역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위임통치하기로 하고 원래의 계획은 취소되었다.
1912-1913년의 발칸전쟁과 연이은 제 1차 세계대전은 이 거대한 영토 포커게임의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이었다. 1918년 세르비아와 루마니아는 연합군 진영에 합류한 대가로 막대한 보너스를 받았다. 세르비아의 카라조르제비치 왕조는 유고슬라비아의 전신인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새로 건설할 수 있었고 부쿠레슈티는 ‘대 루마니아’를 형성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제창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원칙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들은 스스로 결정할 주민들의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민족적 소수자의 상황에 처한 수많은 집단들을 통합해 버렸다. 코민테른은 1920년대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새로운 ‘민족들의 감옥’이라고 보았다.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의 지배하에 이룩된 중앙집권국가는 남부의 슬라브 민족들의 통일 혹은 ‘유고슬라비아’ 민족통일에 대한 낭만적인 꿈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다(11).
국경설정 중요 책임자이자 장차 분리주의자가 되는 밀로반 질라스(Milovan Djilas)는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의 내부국경선들이 ‘가능한 가장 덜 나쁜 타협’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유고슬라비아 시스템은, 20세기 초기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적 사고에서 유래한, 시민권과 국적의 분리에 그 기반을 두었다(12). 사람들은 거주지 연방공화국의 시민인 동시에 자신이 선택한 민족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유고슬라비아 인구센서스에서 국적 선언은 자유였다.
발칸반도의 경험은, 끊임없는 분쟁의 대가를 치루고 난 후에야 주민들이 국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두 가지 민족적 야심을 코소보에서 달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종류의 해결책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 대해 승리하는 해결책 - 이것은 틀림없이 좌절과 복수의 욕망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 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 공존과 공동주권을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만들어 내는 해결책이다. 유럽은 영토와 국경분쟁을 초월하는 새로운 정치형태를 상상해야만 할 것이다.
점진적으로 발칸반도의 국경들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초강대국들’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더디게 나아가고 있다. 코소보문제는 러시아와 미국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 세계적 대결에서 중요쟁점이 되어버렸다. 거인들의 싸움에서, 코소보에 거주하고 있는 알바니아인, 세르비아인과 모든 주민들의 실제적 이익은 당연히 망각되기 쉽다.
새로운 영토 분할에 의해 발칸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위험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새로운 영토분할과는 다른 대답을 상상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장-아르노 데랑/번역 · 김계영
(지도:필립 레카세비츠)
1) 알렉상드르 아들레(Alexandre Adler), ?발칸반도에 대하여 외과수술을 할 것인가 아니면 유사요법을 쓸 것인가??, <쿠리에 엥테르나시오날Courrier International>, 파리, 2001년 4월 12일.
2) 데이비드 오웬 경(Lord David Owen), ?발칸반도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르몽드>, 2001년 3월 21일.
3) 아르벤 자페리(Arben Xhaferi), ?다민족 국가는 해결책이 아니다?, <발칸통신>, 2003년 4월 28일, http://balkans.courriers.info/article3009.html
4) 1991년부터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투즈만(Franjo Tudjman)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보스니아 분할 비밀계획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
5) ?노비파자르의 산자크 지역, 남서유럽의 긴장 발생지?, ??동유럽 통신Le Courrier des pays de l'Est??, 1058호, 2006년 11월, p. 78-93 참조.
6) 1923년 7월 24일 서명된 이 협정은, 그리스 서부 트라키아 지역에서의 이슬람 소수민족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대규모 인구이동을 예견했다.
7) 이 분쟁은 피란(Piran)만(灣)과 무라(Mura) 지역과 관계된 것으로, 피란만의 국경선을 따라 슬로베니아가 공해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8) 문제가 된 국경영토가 오스트리아에 귀속되는지 혹은 슬로베니아에 귀속되는지 이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다.
9) 1947년 만들어진 트리에스테자유지역이 1954년에야 분할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도시자체를 포함하고 있는 A지역은 이탈리아에 반환되었고, 반면에 B지역은 유고슬라비아에 귀속되었는데, 현재는 슬로베니아에 속해 있다.
10) 레베카 웨스트, ??검은 양과 회색 매, 유고슬라비아 횡단여행??, L'Age d'homme, 로잔, 2001년.
11) 유고슬라비아란 국명에 대한 아이디어는 류데비트 가이(Ljudevit Gaj, 1809-1872)나 조지프 스트로스메이어(Josip Strossmayer, 1815-1905) 주교 같은 크로아티아 지식인들에 의해 우선적으로 개진되었다.
12) 이런 식의 분리는 1907년 오토 바우어(Otto Bauer)가 그의 저서 ??국적문제와 사회-민주주의??(EDI, 파리, 1988년)에서 이론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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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왼쪽 아래 지도:
제목:노비파자르의 산자크 지역의 주민
지도 오른쪽 아래 박스부분:
Nationalit?s:국적
Mont?n?grins:몬테네그로인
Bosniaques:보스니아인
Serbes:세르비아인
Albanais:알바니아인
Pourcentage par commune:행정구 별 비율
sources:Derniers recensement nationnaux disponibles et ?valuations de Jean-Arnault D?rens(Le courrier des Balkans)
출처:최근 국가별 인구센서스와 장-아르노 데랑의 추정치(<발칸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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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15에 걸친 위쪽 지도
Slov?nes:슬로베니아인
Croates ; 크로아티아인
Bosniaques1:보스니아인
Serbes:세르비아인
Mont?n?grins:몬테네그로인
Mac?doniens:마케도니아인
Albanais: 알바니아인 Allemands 독일인
Grecs:그리스인 Vlachs et Aroumains 블라흐족과 아루마니아족
Turcs:터키인 Pomaks 포마크족
Bulgares:불가리아인 Italiens 이탈리아인
Roumains:루마니아인 Ruth?nes 루덴족
Hongrois:헝가리인 TG 토르베시족과 고라니족
1. ?Musulmans?, selons le recensement yougoslave d'avant-guerre:전쟁 전 유고슬라비아 인구센서스에 따른 ‘이슬람교도’
지도 아래 설명부분
출처:??통계 가이드, 2000년 선거,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연방통계청 ; 유럽위원회, 소수민족 보호를 위한 협약 자문위원회, 국가보고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주재 유엔고등판문관실; 유고슬라비아 인구 민족별지도, 베오그라드 대학 지리학과; ??코소보의 소수민족 상황에 대한 9차 총회(2002년)??와 ??코소보 내 로마인, 아슈카에리아인, 이집트인, 보스니아인, 고라니인에 대한 최근상황(2003년)??, OSCE-UNHCR[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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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의 독립은 아마 이 지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 독립을 하나의 선례로 간주하여, 그들 역시 단 한 번도 실제로 진행된 적 없는 국가분리 독립권을 주장할 것이다. 코소보 독립은 또한 연쇄적으로 정국불안을 고조시키고 특히 마케도니아와 몬테네그로에 그 여파를 미칠 것이며, 결과적으로 발칸반도의 모든 국경선을 문제 삼을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과 외교관들이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암시하는 것처럼, 이 국경선들이라는 금기를 우리가 뛰어넘을 수 있을까? 90년대의 전쟁은 ‘대(大)’ 국가들의 이름으로, 즉 ‘대 세르비아’ 혹은 ‘대 크로아티아’란 이름으로 수행되었다. 코소보 독립 요구 뒤에 ‘대 알바니아’라는 유령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영토에 관한 요구사항을 검토하고,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인종분포와 일치한다는 이유로 ‘합당한’ 새로운 국경을 설정해야 할 때가 된 것인가? 이 지역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전 유럽에 지속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발칸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인가? 예전의 발상은 주기적으로 다시 불거져 나오곤 한다.
2001년 마케도니아 분쟁이 발생했을 당시, 알렉상드르 아들레 논설위원은 ‘유사요법 보다는 외과수술(1)’을 실시해 유고슬라비아 이후의 공화국을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같은 해 2001년, 구(舊)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국제회담 전 공동의장이었던 데이비드 오웬 경은 발칸 국경 재설정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개진했다(2). 마케도니아 내 알바니아민족주의의 역사적 인물인 아르벤 자페리는 이들의 말에 화답하며 ‘민족’국가 창설을 요구했다(3).
코소보의 미래에 대한 협상 실패와 세르비아-알바니아 간에 타협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오랫동안 ‘국제공동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해 온 이 지역 분할 발상이 다시 표면위로 떠올랐다. 코소보에 대한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외교 트로이카(미국, 유럽, 러시아) 중에서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독일 외교관 볼프강 이쉰저(Wofgang Ischinger)는 지난 8월 관계 당사자들 간의 협상에 의해 이루어진 어떤 선택도 배제되지 말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만약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가 코소보 분할에 동의한다면, 유럽연합은 그 분리를 승인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외관상으로는 대단히 상식적인 것이다. 만약 주민들이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민족구성에 맞춰 새로운 국경선을 일치시키고, 이를 위해서 ‘제한적으로’ 주민들을 이동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주민들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숙한 사람들의 계획이 실현되고, 평화롭게 협상이 진행돼 민족기반에 근거한 서구 발칸반도의 새로운 국경선들이 국제회담에서 허용된다고 한번 상상해보자. 그럴 경우 알바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북서부의 4분의 1, 세르비아 남부의 프레세보 지역, 몬테네그로의 동부 가장자리 같이 알바니아인이 주민 대다수를 이루는 모든 지역의 통합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끔찍하게 절단된 마케도니아는 친 불가리아 흐름이 우세하지 않는 한, 그리고 동쪽 이웃 국가인 알바니아에 합병되지 않는 한, 하나의 잔류 국가로 남게 될 것이다. 알바니아 내 소수민족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알바니아 남부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와의 합병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고, 반면에 알바니아인들이 사메리아라고 부르는 그리스의 북 에피르 지역에서 1945년에 추방된 알바니아인들은 짓밟힌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자 할 것이다.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소수민족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슈코드라(Shkodra)지역에서 보상을 요구할 것이고, 마케도니아는 오리스(Ohrid)와 프레스파(Prespa) 호수 주변에 있는 슬라브 마을들의 합병을 요구할 것이다.
당연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인들은 고국에 합병될 것이다. 이것은 보스니아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 될 것이며, 마찬가지로 동부 헤르체고비나, 중부 보스니아, 보산스카 포사비나(오르사예, 오자크)의 크로아티아인들은 크로아티아에 통합될 것이다. 기껏해야 사라예보, 제니카(Zenica), 투즈라(Tuzla) 주변에 집중된 미니 이슬람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1991년 이래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 대통령과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에 의해 밑그림이 그려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분할 계획이 실현될 것이다(4). 확실히 보스니아는 고라즈데 동부고립 지역의 방어에 집착할 것이고, 현재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나눠 가지고 있는 노비파자르(Novi Pazar)의 산자크(Sandjak) 지역의 합병을 요구할 것이다(5).
몬테네그로가 현재의 국경상태로 존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알바니아와 보스니아 지역으로 분리되는 것 외에도, 세르비아 지역으로도 분리될 것이다. 보스니아인과 세르비아인들은 자주 섞여 살았기 때문에, 적당한 국경을 설정하고 주민들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1918년에 몬테네그로에 합병되었던 코토르(Kotor) 만을 획득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몬테네그로는 19세기 중엽의 국경선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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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칸 국경선, 판도라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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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적인 요구사항들과 주민들로 구성된 ‘잡동사니’
세르비아 역시 역설적인 상황에 처할 것이다. 알바니아와 보스니아 지역으로 나뉘겠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영토와 몬테네그로 북부의 세르비아 지역의 합병으로 확장된 세르비아는 보이보디나이라는 골칫거리를 관리해야 할 것이다. 세르비아 북부의 이 자치지역에는 20여개의 소수민족들이 늘 인구의 50%정도를 차지한다. 헝가리 인들이 주요 공동체(약 35만 명)를 형성하고 있다. 수보티차(Subotica), 젠타(Senta), 칸지차(Kanjiza) 행정구는 보이보디나가 독립을 요구하지 않는 한 당연히 헝가리에 귀속될 것이고, 독립을 요구할 시에는 광란에 빠진 발칸반도에서 다민족으로 구성된 작은 섬을 이루게 될 것이다.
국경 재조정은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이 된 국가들과도 연관이 있다. 그리스 내 소수인종 문제는 단지 알바니아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부 트라키아지역에 사는 터키족과 포마크족은 각각 터키와 불가리아로의 합병을 요구할 것인데 이것은 결국 1923년의 로잔 협정을 폐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6). 그리스 내에서 금기시되는 주제인 그리스 령 마케도니아의 슬라브족 문제 역시 마찬가지로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와 대립하고 있는 소(小) 영토분쟁에서 만족을 얻을 것이다(7). 슬로베니아는 1918년의 영토귀속 주민투표의 무효화를 요구할 것이고, 슬로베니아 소수민족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카린티(Carinthie)까지 영토가 확장될 것이다(8). 지역분쟁을 관리하는 데 있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령 프리울과 어쩌면 트리에스테(슬로베니아어로는 트르스트Trst) 시를 얻을 수도 있다(9).
국경선이 폭넓게 조정된다 해도 몇몇 소수 민족들의 요구는 당연히 무시될 것이다. 코소보의 고라니 족, 크로아티아 동부 슬라보니의 루덴 족 혹은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그리스의 아루마니아 족은 실질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서부 발칸반도에 사는 3, 4백만 명의 롬 족은 늘 그랬던 것처럼 국가 없는 민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국경선 조정이 반발 없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결국 중간강도의 무장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유럽군대가 평화회복을 담당할 것이다. 반면에 피할 수 없는 인구이동은 부수적인 손실이 아니라 전체 프로세스의 주목표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인구이동은 수많은 비정부기구들의 도움을 받는 유엔 난민고등판문관실(UNHCR)의 감독을 받을 것이다. 서부발칸반도에 지급될 긴급지원예산은 2004년 쓰나미 위기 때 풀린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지나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미래와 관계되든 혹은 ‘알바니아 민족문제’와 관계되든 간에, 관계된 여러 종류의 서류가 현재 공개되어 있다.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독립이 선례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 실현가능성 없는 소망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만약 다른 민족적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이 해결책을 그런 식으로 간주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선례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국경선 변경이 모든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민족적이기 때문에 ‘공정한’ 국경선이 존재할 것이라는 철저한 환상에 근거한 것이다. 단지 발칸반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국경선은 현실적으로 역사적 창조물이며, 정치, 군사 세력 관계의 결과물이다. ‘자연적’ 국경선 이외에 ‘공정한’ 국경선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발칸반도’라는 표현은 상당히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면서 19세기에 일반화되었다. ‘유럽의 병자(病者)’였던 오스만터키 제국이 점차 붕괴되면서, 주민들의 모순된 요구가 상충하기 시작했다. 발칸반도는 민족적 복합성, 끊임없는 분쟁, 분열과 분할의 동의어가 됐다. ‘발칸화’라는 용어가 발칸반도에 의미를 부여했고, 유럽 내에서 이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시가 되었다. 발칸반도라는 개념은 지리학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이다. 주민, 열망, 모순된 요구들이 뒤엉킨 ‘잡동사니’ 속에서 국경선을 두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국가들의 출현과 국경선의 설정은, 발칸반도가 정치적 모더니티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새로 등장한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민족적 개념에 근거해, 서구 유럽의 특별한 역사적 경험에서 탄생한 모델들을 계승, 적응시켜 세워졌다. 그리스와 세르비아는 ‘인종청소’, 특히 종교적으로 이민족으로 간주된 주민들을 추방시키거나 동화시키면서 19세기 초에 건국되었다. 터키족들(다시 말해 이슬람교도들과 슬라브족, 알바니아 족 혹은 터키어 사용민족)은 신생국가들에서 추방되었다.
국경은 국민-국경-국가들을 일치시키면서 발칸반도의 ‘혼란’을 정리하고, 이상적인 유럽질서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정해졌다. 발칸반도를 특징지었던 언어적,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20세기 말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 가속화되었다.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인은 급격하게 감소했고(해당국가 전체 인구의 12%에서 약 4%로 감소), 보스니아인 집단은 해당국가의 3개 공동체 중 하나에 의해 각각 통제되는 광범위한 단일민족 지역으로 변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국가들 -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 은 발칸반도 주민들의 민족적 요구를 지지 내지 자극하면서, 오스만터키제국의 잔해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 강대국들의 정책은 이 지역을 대충 방문한 기자들이나 여행객들에 의해 전달됐다. 영국의 소설가 레베카 웨스트(Rebecca West)는 1930년대에 “벅스톤 형제가 그린 불가리아 사람들과 더럼 양이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알바니아 사람들의 모습은 조슈아 레이놀드 경이 그린 어린 사무엘의 초상화와 매우 비슷하다(10)”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민족주의적 대의명분을 포용하는 이 관찰자들의 ‘인본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선입견을 비웃었다.
러시아와 미국 간의 새로운 충돌 속에 있는 유럽의 졸개들
국경선은 몇 번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정해졌다. 우선 1878년. 러시아의 보호아래 ‘대(大) 불가리아’의 창설을 예견한 산 스테파노 조약과 더불어 ‘동방의 대위기’는 첫 번째 결말을 맞이했다. 세르비아와 루마니아가 피해를 보게 되는 이 계획은 거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몇 달 뒤 베를린 회담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노비파자르의 산자크 지역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위임통치하기로 하고 원래의 계획은 취소되었다.
1912-1913년의 발칸전쟁과 연이은 제 1차 세계대전은 이 거대한 영토 포커게임의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이었다. 1918년 세르비아와 루마니아는 연합군 진영에 합류한 대가로 막대한 보너스를 받았다. 세르비아의 카라조르제비치 왕조는 유고슬라비아의 전신인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새로 건설할 수 있었고 부쿠레슈티는 ‘대 루마니아’를 형성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제창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원칙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들은 스스로 결정할 주민들의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민족적 소수자의 상황에 처한 수많은 집단들을 통합해 버렸다. 코민테른은 1920년대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새로운 ‘민족들의 감옥’이라고 보았다.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의 지배하에 이룩된 중앙집권국가는 남부의 슬라브 민족들의 통일 혹은 ‘유고슬라비아’ 민족통일에 대한 낭만적인 꿈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다(11).
국경설정 중요 책임자이자 장차 분리주의자가 되는 밀로반 질라스(Milovan Djilas)는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의 내부국경선들이 ‘가능한 가장 덜 나쁜 타협’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유고슬라비아 시스템은, 20세기 초기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적 사고에서 유래한, 시민권과 국적의 분리에 그 기반을 두었다(12). 사람들은 거주지 연방공화국의 시민인 동시에 자신이 선택한 민족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유고슬라비아 인구센서스에서 국적 선언은 자유였다.
발칸반도의 경험은, 끊임없는 분쟁의 대가를 치루고 난 후에야 주민들이 국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두 가지 민족적 야심을 코소보에서 달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종류의 해결책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 대해 승리하는 해결책 - 이것은 틀림없이 좌절과 복수의 욕망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 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 공존과 공동주권을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만들어 내는 해결책이다. 유럽은 영토와 국경분쟁을 초월하는 새로운 정치형태를 상상해야만 할 것이다.
점진적으로 발칸반도의 국경들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초강대국들’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더디게 나아가고 있다. 코소보문제는 러시아와 미국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 세계적 대결에서 중요쟁점이 되어버렸다. 거인들의 싸움에서, 코소보에 거주하고 있는 알바니아인, 세르비아인과 모든 주민들의 실제적 이익은 당연히 망각되기 쉽다.
새로운 영토 분할에 의해 발칸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위험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새로운 영토분할과는 다른 대답을 상상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장-아르노 데랑/번역 · 김계영
(지도:필립 레카세비츠)
1) 알렉상드르 아들레(Alexandre Adler), ?발칸반도에 대하여 외과수술을 할 것인가 아니면 유사요법을 쓸 것인가??, <쿠리에 엥테르나시오날Courrier International>, 파리, 2001년 4월 12일.
2) 데이비드 오웬 경(Lord David Owen), ?발칸반도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르몽드>, 2001년 3월 21일.
3) 아르벤 자페리(Arben Xhaferi), ?다민족 국가는 해결책이 아니다?, <발칸통신>, 2003년 4월 28일, http://balkans.courriers.info/article3009.html
4) 1991년부터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투즈만(Franjo Tudjman)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보스니아 분할 비밀계획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
5) ?노비파자르의 산자크 지역, 남서유럽의 긴장 발생지?, ??동유럽 통신Le Courrier des pays de l'Est??, 1058호, 2006년 11월, p. 78-93 참조.
6) 1923년 7월 24일 서명된 이 협정은, 그리스 서부 트라키아 지역에서의 이슬람 소수민족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대규모 인구이동을 예견했다.
7) 이 분쟁은 피란(Piran)만(灣)과 무라(Mura) 지역과 관계된 것으로, 피란만의 국경선을 따라 슬로베니아가 공해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8) 문제가 된 국경영토가 오스트리아에 귀속되는지 혹은 슬로베니아에 귀속되는지 이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다.
9) 1947년 만들어진 트리에스테자유지역이 1954년에야 분할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도시자체를 포함하고 있는 A지역은 이탈리아에 반환되었고, 반면에 B지역은 유고슬라비아에 귀속되었는데, 현재는 슬로베니아에 속해 있다.
10) 레베카 웨스트, ??검은 양과 회색 매, 유고슬라비아 횡단여행??, L'Age d'homme, 로잔, 2001년.
11) 유고슬라비아란 국명에 대한 아이디어는 류데비트 가이(Ljudevit Gaj, 1809-1872)나 조지프 스트로스메이어(Josip Strossmayer, 1815-1905) 주교 같은 크로아티아 지식인들에 의해 우선적으로 개진되었다.
12) 이런 식의 분리는 1907년 오토 바우어(Otto Bauer)가 그의 저서 ??국적문제와 사회-민주주의??(EDI, 파리, 1988년)에서 이론화시켰다.
- 알바니아의 불확실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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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파자르의 산자크(Sandjak de Novi Pazar, 옆의 지도 참조)라는 이름 자체는 상당히 ‘이국적인’ 무게를 지니고 있다. 산자크는 오스만터키제국의 영토구획을 이르는 말이었다. 노비파자르의 산자크는 행정단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확실하게 식별되는 영토를 지칭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1878년 산자크에 대한 군사적 위임 통치권을 획득했다. 오스트리아의 근심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사이의 영토합병을 막는 것이었다.
산자크는 발칸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이론적으로 오스만터키제국의 주권 하에 남아 있었다. 산자크는 1913년 북부의 세르비아와 남부의 몬테네그로로 분할되었다. 이 지역은, 산자크의 반파시스트민족자유위원회가 2차 세계대전 동안 존속했던 만큼,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한 실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 산자크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연방공화국들 사이에 분할되었다.
노비파자르는 발칸반도에서 오랫동안 대상(隊商)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이 도시는 그 상업적 자질 덕택에 번영했고, 현재 방치되어 있는 유태인 무덤이 나름의 방식으로 이런 사실을 증명해 준다. 산자크에는 세 종류의 민족공동체가 살고 있다. 지금은 보스니아인으로 불리는 슬라브족 이슬람교도가 이 지역 50만 인구 중의 약 55%를 차지한다. 정교도들은 산자크의 북부지역에서 세르비아인으로, 남부지역에서는 세르비아인 혹은 몬테네그로인으로 규정된다.
산자크는 코소보와 보스니아를 연결하는 통로구실을 한다. 몇몇 선전자들은 산자크를, 발칸반도를 가로지르는 ‘녹색 대각선’의 중요 축으로 보고자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서교역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슬람 주민들은 산자크의 동부(세르비아에 있는 노비파자르, 시예니카(Sjenica)와 투틴(Tutin), 몬테네그로에 있는 로자예(Rozaje))에 집중되어 있다. 이슬람 주민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과 체트니크(Tchetniks, 오스만터키제국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옛날 이름-역주)에 의해 산자크의 서부지역에서 대부분 축출되었다. 1990년대 전쟁에서는 새로운 ‘인종청소’가 발생했다(몬테네그로의 플레블라(Pljevlja)와 세르비아의 프리보(Priboj)에서). 드리나 계곡에서 이슬람주민들을 ‘청소하는 것’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항구적인 목표다. 공동체 상호간의 긴장이 격렬한 반면, 소외되었지만 활동이 활발한 와하브 운동(Wahhabites, 이슬람 통합운동-역주)은 이슬람의 불확실한 정체성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산자크는 마피아의 이권 교차로가 되고 있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알바니아 범죄조직들이 노비파자르에서 충돌하는 것이다. 하지만 산자크는 유럽의 일원으로 국경이 개방된 평화로운 발칸반도에서 교역중심지의 소명을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아르노 데랑
[표시작/제목:알바니아의 불확실한 경계]
1878년 베를린 회담에서 재상 비스마르크는 알바니아가 ‘지리학적 표현’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같은 해 프리즈렌(Prizren) 연맹은 오스만터키제국의 모든 알바니아인 지역에서 온 유력자들을 소집했다. 이들은 최초로 근대 국가를 표방했다. 그다음 시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동맹국들인 세르비아와 그리스에 대항하기 위하여, 알바니아인들의 주장을 옹호했다(1).
1912년 최초의 알바니아 공화국이 이스마일 케말(Ismail Qemal)에 의해 브로라(Vlora)에서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이었다. 일 년 후 런던회담에서 알바니아 왕국의 건설이 결정되지만, 이것은 알바니아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 중 반만을 통합한 영토 위에 세워지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알바니아인들이었던 코소보는 이때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분할되었다. 알바니아인들이 보기에 자신들에게 커다란 불공정이 행해진 것이었다. 현재의 민족주의자들은 이 ‘역사의 불공정’을 ‘수정’하고자 한다.
알바니아 국가의 존속은 평탄치 않았다. 알바니아는 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사라질 뻔 했다. 알바니아 국경은,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에 따라 임의적으로 1926년에야 확정되었다. 결국 자코비카(Djakovica/Gjakov?)란 도시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에 넘겨졌는데, 이때 여기 사는 세르비아인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유서 깊은 도시 데바(Debar/Dibra)의 영토는 슬라브 왕국과 알바니아 사이에 분할되었다. 오늘날 그 도청소재지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에 속해 있지만, 그 ‘후배지’는 알바니아에 위치해 있는 페쉬코피(Peshkopi)라는 작은 마을주변이다.
두 가지 문제가 교차된다. 알바니아의 영토는, 이웃국가들(몬테네그로, 세르비아, 그리스)과 이탈리아를 포함해, 알바니아 측의 요구를 오랫동안 지지해 왔던 강력한 후원국가들 사이의 힘 관계에 의해 결정돼 왔다. 또한 ‘알바니아인 지역들’ 혹은 ‘알바니아 주민 영역’이라는 개념들에도 문제가 있다. 관계된 지역들에서 알바니아인들은 다른 민족공동체들과 접촉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알바니아인들이 인구의 50%, 60% 혹은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어떠어떠한 도시가 알바니아에 속하게 되는 것인가? 대체 몇 퍼센트에 달해야 할 것인가, 특히 어떤 수치 등급을 고려해야 할 것인가?
1) 나탈리 클레예(Nathlie Clayer), ??알바니아 민족주의의 기원, 유럽에서의 이슬람 국가의 탄생??, 카르탈라, 파리, 2007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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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왼쪽 아래 지도:
제목:노비파자르의 산자크 지역의 주민
지도 오른쪽 아래 박스부분:
Nationalit?s:국적
Mont?n?grins:몬테네그로인
Bosniaques:보스니아인
Serbes:세르비아인
Albanais:알바니아인
Pourcentage par commune:행정구 별 비율
sources:Derniers recensement nationnaux disponibles et ?valuations de Jean-Arnault D?rens(Le courrier des Balkans)
출처:최근 국가별 인구센서스와 장-아르노 데랑의 추정치(<발칸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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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15에 걸친 위쪽 지도
Slov?nes:슬로베니아인
Croates ; 크로아티아인
Bosniaques1:보스니아인
Serbes:세르비아인
Mont?n?grins:몬테네그로인
Mac?doniens:마케도니아인
Albanais: 알바니아인 Allemands 독일인
Grecs:그리스인 Vlachs et Aroumains 블라흐족과 아루마니아족
Turcs:터키인 Pomaks 포마크족
Bulgares:불가리아인 Italiens 이탈리아인
Roumains:루마니아인 Ruth?nes 루덴족
Hongrois:헝가리인 TG 토르베시족과 고라니족
1. ?Musulmans?, selons le recensement yougoslave d'avant-guerre:전쟁 전 유고슬라비아 인구센서스에 따른 ‘이슬람교도’
지도 아래 설명부분
출처:??통계 가이드, 2000년 선거,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연방통계청 ; 유럽위원회, 소수민족 보호를 위한 협약 자문위원회, 국가보고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주재 유엔고등판문관실; 유고슬라비아 인구 민족별지도, 베오그라드 대학 지리학과; ??코소보의 소수민족 상황에 대한 9차 총회(2002년)??와 ??코소보 내 로마인, 아슈카에리아인, 이집트인, 보스니아인, 고라니인에 대한 최근상황(2003년)??, OSCE-UNHCR[표끝]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기사입력: 2008-03-19 19:14:33
- 최종편집: 2008-03-21 11: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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