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백인우월주의 "환경 위기는 인구 문제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생태학 멘토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우려스러운 사상
사르코지 대통령은 생태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탁월한 저서 ??문명의 붕괴??를 언급한다(1).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적어도 4회 이상 공개적으로 언급했다(2). ‘환경 그르넬’(환경과 지속성장을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해야 할 결정을 내리기 위해 2007년 10월 프랑스에서 조직된 정치모임 - 역주)의 점잖은 소음이 잦아드는 시점에, 프랑스 대통령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 저자의 사상을 검증해 보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저명한 생물지리학자이며 UCLA 대학 환경과학 교수이고, 뉴기니 조류전문가이며 저서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다이아몬드는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연합체 중의 하나인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집행위원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환경보호운동 투사이다.
이 저자의 ‘탁월한 저서’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사르코지 대통령만이 아니다. 그의 저서는 베스트셀러였고 현재도 그러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환경에 가한 파손 때문에 과거의 몇몇 문명들이 붕괴되었고, 이와 똑같은 과정이 오늘날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반복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경고조치를 취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환경의 붕괴가 하나의 위기를 훨씬 넘어섰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환경의 붕괴를, ‘오랜 기간 동안 광범위한 지리학적 영역에서, 그 규모면에 있어서 그리고(혹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복잡성으로 인해 야기된 인구수의 엄청난 감소’로 정의 한다. 마야문명 도시들, 이스터 섬 문명, 그린란드의 바이킹인들, 뉴멕시코의 아나사지(Anasazis) 문명의 몰락이 환경 붕괴와 생태계파괴의 몇몇 예가 될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오직 환경 손상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한 사회가 붕괴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항상 또 다른 요인들이 개입한다.”고 쓰면서 모든 단일 원인 대책을 거부한다. 그러나 온건한 듯 보이는 이 말은 실은 속임수다. 왜냐하면 사실상 그가 고려한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슈퍼요인에 종속되어 있고, 인구증가라는 슈퍼요인이 모든 것들을 조건 짓기 때문이다. 고대사회에 관한 그의 결론들을 종합해보면 이런 단계가 여러 번 반복되어 표현된다. “과거의 붕괴들은 상당히 유사한 경로를 따라 진행되었다. (...) 인구증가로 인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강력한 농업생산수단을 채택하게 되었고, 수없이 증가하는 굶주린 입들을 먹여 살릴 목적으로 경작지역을 넓혀야만 했다. 한도를 넘어선 활동은 환경에 피해를 입혔다. (...) 그 결과는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식량부족, 기아, 너무나도 적은 자원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의 전쟁, 환멸을 느낀 대중에 의한 엘리트지도층의 전복. 결국 기아, 전쟁 혹은 질병으로 인구는 감소되었고, 사회는 전성기에 발전시켰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복합성의 일부를 상실했다.”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인 것에 대해 연구된 문제를 세밀히 검토하다.
동시대의 위기에 대한 분석으로 넘어가면서 저자는 환경문제 리스트(자연환경시스템의 파괴, 과도한 자원채취, 생물학적 다양성의 쇠퇴, 토양의 침식과 악화, 재고 화석에너지의 무분별한 개발, 음용수의 과도개발, 화학오염, 침입종의 번식, 온실효과에 의한 기온상승 등)를 작성하는데, 기묘하게 여기에 인구증가 및 인구증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의 증대를 포함시키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인구증가가 ‘다른 모든 문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방식은 반박 받아야 마땅하다. 사실상 환경위기는 사회활동 방식에 기인하는데, 사회활동의 단 한 가지 차원만을 포함하는 ‘생태학적 문제’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 차원이 다른 모든 차원을 결정하는 ‘하나의’ 슈퍼문제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인구문제 대신 사회적 불평등을 비환경적 유일 요인으로 언급하는 리스트는 당연히 독자로 하여금 사회적 불평등이 다른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하나의’ 슈퍼문제라고 결론짓게 만들 것이다. 생물계 상태에 의미심장하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상황의 모든 양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증명방식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양상들 중에서 단 하나를 고정하는 것은 사실상 목록 속에 불청객 하나를 들여오는 것이고, 이 불청객을 골라내는 문제는 결국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선별의 정치적 결과는 매우 간단히 확인된다. 결국 ‘논의가 덜 추상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사는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앤젤레스라는 자신에게 익숙한 도시에서의 생활양식에 10여개의 환경문제가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채택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남반구-북반구 문제와 세계에 관계된 상당수의 결론을 끄집어낸다.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그를 한 걸음씩 쫓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기 지역의 환경상태와 관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단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스앤젤레스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불평은, 이미 증가했고 그리고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인구수와 직접 관련이 있는 불평들이다. 수백만 명이 몇 군데의 고용 중심지에서 일하는데, 그 중심지 주변의 주거 공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교통체증은 해결할 수 없게 되고 주택가격은 엄청나게 상승한다.”
그 다음으로 스모그, 관개농업에 기인한 토양의 산성화, 산불, 쓰레기 축적, 생물학적 다양성의 쇠퇴 문제가 인구프리즘을 통해 총체적으로 검토된다. 심지어 건강진료와 공립학교의 좋지 못한 질도 ‘이미 너무 증가했고 그리고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인구로부터 기인된 생태학 문제의 잡탕냄비 속에 집어 던진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낸다. “그러므로 환경과 인구문제들이 남부 캘리포니아의 삶의 질과 경제를 침식하고 있다. 결국 환경과 인구 문제로 인해 물 부족, 단전, 쓰레기 축적, 학교의 과밀학생, 주택부족, 생활비 상승, 교통체증이 상당부분 발생한다.”
이 단언들에 대해 하나씩 반론을 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다. 그러나 하나의 예만 들어도 충분할 것이다. “캘리포니아가 최근 고통을 겪었던 단전문제에 환경과 인구가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2000년과 2001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단전사태가 미국 전기시장의 자유화 탓이라는 사실은 완벽히 증명되었다(3). 의회에 제출된 한 보고서는 몇몇 전기생산업체들이 오직 가격을 상승시킬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전기부족 상태를 야기했다고까지 밝혔다. 캘리포니아 주민수가 에너지 공급능력을 초과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터무니없는 소리다.
캘리포니아 환경 상태에 대한 다른 여러 가지 비난도 이와 비슷한 종류에 속한다. 각각의 경우에 사용된 방법은, 이른바 환경적 요인들만을 존속시킬 목적으로,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것들에 대해 연구된 문제를 세밀히 검토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환경적 요인들을 이미 너무 증가했고 여전히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인구문제에 귀결시킨다. 결국 수많은 과학적 혹은 유사 과학적 기준들을 사용해 주입시키고 있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다른 모든 요인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지구 위에 훨씬 더 적은 인구가 존재하면 환경적 시련이 덜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진부한 설명이 캘리포니아나 다른 곳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르겠다. 반면에 우리는 이런 진부한 설명이 시민들의 이름으로 실시되는 정책들을 문제 삼지 못하도록 시민들의 시선을 돌리는데 어떻게 기여하는 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다이아몬드에게 설득당한 독자들은 아마 에너지 자유화 또는 교육 및 건강예산의 대폭 삭감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독자들에게 써 보라고 말하는 인구안경은 ‘사람이 어느 정도면 너무 많은 것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남겨 놓는다.
지구상의 인구가 더 적다면, 환경적 시련들은 덜 심각할 것이다
인구를 모든 생태학적 시련의 근원으로 삼는 것은, 훨씬 더 골치 아픈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제3세계에서 오는 이민과 제3세계 전체에 대해 매우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확실히 증명된 사실에서 출발한다. “캘리포니아 인구의 증가는 이민, 그리고 이민자들이 도착한 후 평균적으로 대가족을 이룬다는 사실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인구증가가 환경위기의 원인이라면, 캘리포니아 환경악화의 가속화가 본질적으로 이민에 기인한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런 결론을 명시적으로 내리지 않지만, ??문명의 붕괴??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명백하게 이러한 결론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평균을 내 볼 때, 제3세계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이동한 결과, 남부 캘리포니아가 주민 1인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상승시켰다는 사실은, 몇 해 전부터 캘리포니아 정책의 폭발성 있는 주제가 되고 있다.”
이 주제가 폭발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04년 미국의 가장 큰 자연 친구 환경연합인 시에라 클럽(Sierra Club, 회원 75만 명, 연 예산 9천만 달러 이상)은 다수의 지도부와 리처드 램(Richard Lamm, 콜로라도 민주당 전 주지사)과 폴 와트슨(Paul Watson, 그린피스 설립자 중의 한 명)이 이끄는 소수파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대립 때문에 크게 뒤흔들렸다. 미국의 인구 안정화를 위한 시에라 클럽인(SUSPS)이라 명명된 이 소수파에게 이민중지는 환경운동의 최우선적 요구사항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미국의 환경시스템이 인구의 과다유입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4). SUSPS가 이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고, 그들은 저지작업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어떻게 그리고 얼마동안에 걸쳐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를 반으로 줄일 것인가?
다이아몬드는 이 논쟁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는가? ??문명의 붕괴??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이민자들에 대해 말하는 톤은, 과도한 열정이란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넘어온 벌레들과 버섯들의 다양한 침입종에 의해 미국 산림이 황폐된 사실을 기술하는 단락의 결론 일부분을 예로 들어보자. “생태적,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엄청난 인구를 갖고 있으며, 엄청나게 수출하는 중국의 또 다른 종(種)은 바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예를 들어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 합법이민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고, 상당수의 합법적, 비합법적 이민자들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건너오고 있다.” 장담하건데 장 마리 르팽(Jean Marie Le Pen)은 중국이민자들을 원치 않는 벌레나 버섯 종과 결합시키면서 비난의 소리를 드높일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지칭한 것은 별 뜻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사실 그 몇 페이지 뒤에서 다이아몬드는 토끼나 여우같은 다양한 침입종으로 인해 야기된 피해에 대해 흥미로운 정보들을 잔뜩 적어놓고 있다. 그 페이지를 보자. “장기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오늘날의 인구를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현재 삶의 질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적당한 인구수는 8백만 명으로, 현재 인구의 절반보다 적은 수이다.” 이것은 중국 이민자들이 부적당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는 대략 2천만 명이다.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그리고 얼마 동안에 걸쳐 이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들에 대해 정확히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는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정치가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지 캔버라 정부는 투발루(Tuvalu) 주민 11,636명에게 기후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최근에 유명해 졌다. 태평양의 이 작은 섬나라는 지구의 온난화효과로 인해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투발루 주민을 수용하면 피난처를 찾는 또 다른 후보자들에 대한 ‘차별’이 될 것이라는 미명하에, 그 거부는 위선적으로 정당화됐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주민 당 가장 많은 온실효과가스를 배출하는 국가들 중 1위를 차지하면서도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거부는 사실상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지구의 붕괴를 막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특히 우리 사회의 ‘가치들’을 강력히 문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근대화를 지배해야 한다고 그가 주장하는 가치들에 대해 자문할 권리를 갖고 있다. 21세기 말까지 투발루의 인구가 다윈 딜레마에 부딪힐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 수상생활에 적응하거나, 이민 가거나 혹은 멸종되는 것이다. 이런 붕괴는 그 군도의 과잉인구 때문이 아니라, 산업화된 국가들에 의해 야기될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화된 국가들이 2세기 동안 수많은 화석연료를 불태운 결과, 환경시스템이 대기의 탄소 다이옥신을 완전히 재생시키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의 공동 책임자인 부유국 오스트레일리아가 그 결과들의 책임분담을 거부하고 투발루를 문전박대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유지능력’이란 명목으로, 중국산 침입종에 대한 의미심장한 은유를 통해, 다이아몬드는 캔버라 정부에 묵시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연대감과 인류애는 ??문명의 붕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가치들의 일부인가?
이런 기만적 추론은 여러 가지 변형을 거치면 남북관계에도 전반적으로 적용된다. 사실상 현재 세계인구의 증가는 본질적으로 제3세계 여성들의 높은 출산율에 기인하고 있다. 이 말을 한 순간부터, 만약 인구가 결과적으로 환경위기의 원인이라면, 이 분야에서의 세계적 붕괴위험은 본질적으로 제3세계 국민들의 탓이라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내려야 할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명확히 이런 식의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이런 결론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니다.
이 점을 명확히 포착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저자의 또 다른 마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자가 작성하는 환경문제 리스트는 인구증가뿐만 아니라 주민 1인당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포함하고 있다. 첫 눈에 보면 이 환경영향평가개념이 절대인구의 크기를 상대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똑같은 수의 인구가 생산과 소비의 사회적 방식에 따라 매우 다른 환경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붕괴??는 사실상 생태학에 미치는 주민 1인당 영향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영향의 증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증가는 선진국들보다 몇몇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심이 남북관계의 불공정성에서 비켜나, 빈곤국들의 발전에 따른 생태학적 위협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이처럼 포착하기 힘든 강조점을 이동시킴으로써, 다이아몬드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세계 환경상황을 인식하게 만든다.
??문명의 붕괴??는 “미국, 서부유럽, 일본의 개개인이 평균적으로 제3세계의 주민들보다 화석연료 같은 자원을 32배 더 소비하고, 쓰레기를 32배 더 배출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북반구국가들의 남반구국가들에 대한 생태학적 부채 개념과 남반구국가들의 개발권리 개념을 도입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는 그 개념들을 모호하게 내버려 둔 채 중요한 환경문제가 바뀌고 있음을 강조한다. “환경에 적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환경에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제3세계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선진국으로 이민을 떠나 그곳의 생활수준을 따르게 되는 제3세계 시민들이 증가함으로써, 환경에 미치는 인간 전체의 영향력이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남반구국가들의 발전이 특히 기후측면에서 실제적으로 환경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술이전과 부의 분배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해결책들을 상기시키지 않고, 그 부정적 측면만을 주장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남반구 국가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다이아몬드는 부의 불공정한 세계적 배분과 생태학적 부채로부터 관심을 돌리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제3세계의 가장 가난한 국민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수단에 맞게 검소하게 조정하고 자신들의 인구수를 자신들 땅의 ‘자연’생산성에 맞추기보다는, 만성적으로 원조를 받는 후보자들로, 심지어 선진국들에게 영원히 구걸하는 쪽을 선호하는 기생충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전개시킨다.
이스터 섬 생태계파괴의 대규모 반복
식량안전에 대해 논의하면서, ??문명의 붕괴??의 저자는 이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식량문제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식량은 충분히 있다. 우리는 단지 식량이 필요한 장소로 식량을 운반하고 배분하는 문제를 풀면 된다.” 여기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대답하고자 하는 것에 스스로 반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식량생산과 배분의 사회문제를 단순한 운송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기아를 뿌리 뽑기 위해서, 과잉생산 될 수 있는 지역의 식량을 모자라는 지역으로 체계적으로 보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을 반대자들의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다.
이런 식의 희화를 통해 그는 경쟁에 의한 농업비즈니스가 개발도상국의 농업을 파괴하고 있는 방식을 은폐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경제학적 요소가 분석에서 일단 제외되면, ‘미국과 같은 몇몇 선진국들은 자국민이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식량을 생산하고,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그리고 몇몇 제3세계 국가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게 되고, 이 두 가지 경우가 강우량이나 토양의 질과 같은 자연조건과 관계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도달하게 된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으면, 그때 우리는 자연이 자신들에게 부과한 물리적 조건들을 존중하기 위해 스스로 분수를 지키는 것을 몇몇 국민들이 거부함으로써 기아가 야기된다는 사상을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반구 국가들의 수백만 소농들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경쟁희생물의 지위에서 자기 자신들의 비참함에 대해 스스로 책임이 있는 자들의 지위로 이동하게 된다.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인구안경을 통해 보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은 ‘붕괴’라는 그들의 드라마는, 수백만 소농들이 전통적 가치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한 결과이지 그 이외의 다른 원인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되도록 빨리 자신들의 전통을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이 그들을 벌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므로 결과적으로 ‘그들의 문제’인 것이다(5).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토머스 로버트 맬더스는 산업혁명 초기의 희생자들을 자신들의 불행에 대한 책임자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완전히 뒤집어서, ‘자신들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도움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가치들’을 문제 삼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구걸하는 제3세계에 대한 신화를 창조했던 다이아몬드는 ‘도와주지 마라!’는 맬더스의 결론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개인적, 조건부적 자선을 제외하고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말라고 ??인구론??(6)이 영국정부에 권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진국들이 가끔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히 재앙이 발생한 경우에 식량을 주지만, 그들을 계속 부양할 수는 없다고 말하도록 ??문명의 붕괴??는 선진국들을 부추기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해 그는 다음의 글을 쓰기 위해 ‘선진국 국민들’의 의견 뒤로 숨는다. “몇몇 제3세계국가에서 어떤 위기들(가뭄이나 전쟁)에 의해 야기된 기아를 완화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식량을 가끔 수출하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선진국 국민들이 제3세계의 수십억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정한 기준을 정해 돈을 지불하는 데에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들 국가에서 가족계획에 대한 효과적 프로그램도 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결과는 정확히 맬더스의 딜레마 즉 가용할 수 있는 식량의 증가에 비례해 인구증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그의 전개방식을 인식했으므로, 다이아몬드가 캘리포니아나 제3세계의 층위에서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층위에서 사실 관계를 거꾸로 뒤집고 있다는 점을 보고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묘사한 그대로의 세상은 풀기 어려운 카오스다. 사실상 이 세상은, 우리의 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카오스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라크 전쟁, 1965년 수하르토에 의한 인도네시아 공산당원 50만 명 학살, 르완다의 인종학살, 실업, 테러리즘 등과 같은 다양한 사건들을 마구잡이로 뒤섞어서 ‘환경과 인구 압력’의 발현으로, 이스터 섬 생태계파괴의 대규모 반복으로, 말하자면 지구붕괴의 전조로 지목하고 있는 이 책의 한 구절에서 우리가 명백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혼란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탁월한 저서’에 대해, 붕괴에 근거한 그의 말세론에 대해, 그의 말세론을 뒷받침하는 상당수 자료들이 과학적으로 반박될 수 있는 성격에 대해, 다른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용어로 중요한 것은, 그가 제안하는 세상에 대한 비전이다. ??문명의 붕괴??의 저자는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보라고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여러 사건들을 ‘환경문제들’로 변질시키기 위해, 그것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실체가 체계적으로 제거됐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른바 ‘환경문제들’의 궁극적 원인이 인구증가에 있다고, 결과적으로 남반구 국가들에 있다고 전개한다. 그 모든 것이 다소 과학적인 엄청나게 많은 사실들로 뒤덮여 있고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담론으로 포장돼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을 매료시켰던 것이 바로 이 시스템인가? 우리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신의 전반적인 정치방식과 잘 일치하는 첫 번째 단계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번째 단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프랑스는 ‘오염하는 권리’를 구매하는 선진국들에게 부여된 의무와 ‘생식하는 권리’를 구매하는 개발도상국들에게 부여된 의무의 맞교환을 제안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지금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거기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시기이다.
다니엘 타뉘로/번역·김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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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문명의 붕괴. 사회가 어떻게 자신의 소멸과 존속을 결정하는가??, 갈리마르, 파리, 2006년. 원본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eed, 펭귄북스, 런던, 2005년. 이 기사는 영어판을 참조함. 인용부분은 기사 작성자가 번역한 것임.
2) 미래의 프랑스를 위한 협약에서의 연설, 2006년 10월 18일. 제 4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포럼에서의 연설, 2006년 12월 7일. 생태협정과 관련해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에게 보내는 서한, 2006년 12월 22일. 생태협정 서명 시의 연설, 2007년 1월 31일.
3) 에르네 앙트완(Ernest Antoine), ?유럽 전기 대 바겐세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6월호 참조.
4) ?이민에 대한 시에라 클럽의 쓰라린 분열?, <더 뉴욕타임스>, 2004년 3월 16일.
5) 남반구 국가들에 대해 다이아몬드는 ‘그들의 문제’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표현은 북반구 국가들에게 모든 구조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6) 토머스 로버트 맬더스(Thmas Robert Malthus), ??인구론??, 플라마리옹, GF 총서, 파리, 1999년.
저명한 생물지리학자이며 UCLA 대학 환경과학 교수이고, 뉴기니 조류전문가이며 저서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다이아몬드는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연합체 중의 하나인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집행위원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환경보호운동 투사이다.
이 저자의 ‘탁월한 저서’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사르코지 대통령만이 아니다. 그의 저서는 베스트셀러였고 현재도 그러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환경에 가한 파손 때문에 과거의 몇몇 문명들이 붕괴되었고, 이와 똑같은 과정이 오늘날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반복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경고조치를 취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환경의 붕괴가 하나의 위기를 훨씬 넘어섰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환경의 붕괴를, ‘오랜 기간 동안 광범위한 지리학적 영역에서, 그 규모면에 있어서 그리고(혹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복잡성으로 인해 야기된 인구수의 엄청난 감소’로 정의 한다. 마야문명 도시들, 이스터 섬 문명, 그린란드의 바이킹인들, 뉴멕시코의 아나사지(Anasazis) 문명의 몰락이 환경 붕괴와 생태계파괴의 몇몇 예가 될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오직 환경 손상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한 사회가 붕괴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항상 또 다른 요인들이 개입한다.”고 쓰면서 모든 단일 원인 대책을 거부한다. 그러나 온건한 듯 보이는 이 말은 실은 속임수다. 왜냐하면 사실상 그가 고려한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슈퍼요인에 종속되어 있고, 인구증가라는 슈퍼요인이 모든 것들을 조건 짓기 때문이다. 고대사회에 관한 그의 결론들을 종합해보면 이런 단계가 여러 번 반복되어 표현된다. “과거의 붕괴들은 상당히 유사한 경로를 따라 진행되었다. (...) 인구증가로 인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강력한 농업생산수단을 채택하게 되었고, 수없이 증가하는 굶주린 입들을 먹여 살릴 목적으로 경작지역을 넓혀야만 했다. 한도를 넘어선 활동은 환경에 피해를 입혔다. (...) 그 결과는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식량부족, 기아, 너무나도 적은 자원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의 전쟁, 환멸을 느낀 대중에 의한 엘리트지도층의 전복. 결국 기아, 전쟁 혹은 질병으로 인구는 감소되었고, 사회는 전성기에 발전시켰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복합성의 일부를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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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디아 페렌켐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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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인 것에 대해 연구된 문제를 세밀히 검토하다.
동시대의 위기에 대한 분석으로 넘어가면서 저자는 환경문제 리스트(자연환경시스템의 파괴, 과도한 자원채취, 생물학적 다양성의 쇠퇴, 토양의 침식과 악화, 재고 화석에너지의 무분별한 개발, 음용수의 과도개발, 화학오염, 침입종의 번식, 온실효과에 의한 기온상승 등)를 작성하는데, 기묘하게 여기에 인구증가 및 인구증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의 증대를 포함시키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인구증가가 ‘다른 모든 문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방식은 반박 받아야 마땅하다. 사실상 환경위기는 사회활동 방식에 기인하는데, 사회활동의 단 한 가지 차원만을 포함하는 ‘생태학적 문제’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 차원이 다른 모든 차원을 결정하는 ‘하나의’ 슈퍼문제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인구문제 대신 사회적 불평등을 비환경적 유일 요인으로 언급하는 리스트는 당연히 독자로 하여금 사회적 불평등이 다른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하나의’ 슈퍼문제라고 결론짓게 만들 것이다. 생물계 상태에 의미심장하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상황의 모든 양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증명방식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양상들 중에서 단 하나를 고정하는 것은 사실상 목록 속에 불청객 하나를 들여오는 것이고, 이 불청객을 골라내는 문제는 결국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선별의 정치적 결과는 매우 간단히 확인된다. 결국 ‘논의가 덜 추상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사는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앤젤레스라는 자신에게 익숙한 도시에서의 생활양식에 10여개의 환경문제가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채택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남반구-북반구 문제와 세계에 관계된 상당수의 결론을 끄집어낸다.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그를 한 걸음씩 쫓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기 지역의 환경상태와 관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단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스앤젤레스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불평은, 이미 증가했고 그리고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인구수와 직접 관련이 있는 불평들이다. 수백만 명이 몇 군데의 고용 중심지에서 일하는데, 그 중심지 주변의 주거 공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교통체증은 해결할 수 없게 되고 주택가격은 엄청나게 상승한다.”
그 다음으로 스모그, 관개농업에 기인한 토양의 산성화, 산불, 쓰레기 축적, 생물학적 다양성의 쇠퇴 문제가 인구프리즘을 통해 총체적으로 검토된다. 심지어 건강진료와 공립학교의 좋지 못한 질도 ‘이미 너무 증가했고 그리고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인구로부터 기인된 생태학 문제의 잡탕냄비 속에 집어 던진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낸다. “그러므로 환경과 인구문제들이 남부 캘리포니아의 삶의 질과 경제를 침식하고 있다. 결국 환경과 인구 문제로 인해 물 부족, 단전, 쓰레기 축적, 학교의 과밀학생, 주택부족, 생활비 상승, 교통체증이 상당부분 발생한다.”
이 단언들에 대해 하나씩 반론을 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다. 그러나 하나의 예만 들어도 충분할 것이다. “캘리포니아가 최근 고통을 겪었던 단전문제에 환경과 인구가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2000년과 2001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단전사태가 미국 전기시장의 자유화 탓이라는 사실은 완벽히 증명되었다(3). 의회에 제출된 한 보고서는 몇몇 전기생산업체들이 오직 가격을 상승시킬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전기부족 상태를 야기했다고까지 밝혔다. 캘리포니아 주민수가 에너지 공급능력을 초과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터무니없는 소리다.
캘리포니아 환경 상태에 대한 다른 여러 가지 비난도 이와 비슷한 종류에 속한다. 각각의 경우에 사용된 방법은, 이른바 환경적 요인들만을 존속시킬 목적으로,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것들에 대해 연구된 문제를 세밀히 검토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환경적 요인들을 이미 너무 증가했고 여전히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인구문제에 귀결시킨다. 결국 수많은 과학적 혹은 유사 과학적 기준들을 사용해 주입시키고 있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다른 모든 요인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지구 위에 훨씬 더 적은 인구가 존재하면 환경적 시련이 덜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진부한 설명이 캘리포니아나 다른 곳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르겠다. 반면에 우리는 이런 진부한 설명이 시민들의 이름으로 실시되는 정책들을 문제 삼지 못하도록 시민들의 시선을 돌리는데 어떻게 기여하는 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다이아몬드에게 설득당한 독자들은 아마 에너지 자유화 또는 교육 및 건강예산의 대폭 삭감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독자들에게 써 보라고 말하는 인구안경은 ‘사람이 어느 정도면 너무 많은 것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남겨 놓는다.
지구상의 인구가 더 적다면, 환경적 시련들은 덜 심각할 것이다
인구를 모든 생태학적 시련의 근원으로 삼는 것은, 훨씬 더 골치 아픈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제3세계에서 오는 이민과 제3세계 전체에 대해 매우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확실히 증명된 사실에서 출발한다. “캘리포니아 인구의 증가는 이민, 그리고 이민자들이 도착한 후 평균적으로 대가족을 이룬다는 사실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인구증가가 환경위기의 원인이라면, 캘리포니아 환경악화의 가속화가 본질적으로 이민에 기인한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런 결론을 명시적으로 내리지 않지만, ??문명의 붕괴??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명백하게 이러한 결론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평균을 내 볼 때, 제3세계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이동한 결과, 남부 캘리포니아가 주민 1인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상승시켰다는 사실은, 몇 해 전부터 캘리포니아 정책의 폭발성 있는 주제가 되고 있다.”
이 주제가 폭발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04년 미국의 가장 큰 자연 친구 환경연합인 시에라 클럽(Sierra Club, 회원 75만 명, 연 예산 9천만 달러 이상)은 다수의 지도부와 리처드 램(Richard Lamm, 콜로라도 민주당 전 주지사)과 폴 와트슨(Paul Watson, 그린피스 설립자 중의 한 명)이 이끄는 소수파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대립 때문에 크게 뒤흔들렸다. 미국의 인구 안정화를 위한 시에라 클럽인(SUSPS)이라 명명된 이 소수파에게 이민중지는 환경운동의 최우선적 요구사항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미국의 환경시스템이 인구의 과다유입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4). SUSPS가 이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고, 그들은 저지작업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어떻게 그리고 얼마동안에 걸쳐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를 반으로 줄일 것인가?
다이아몬드는 이 논쟁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는가? ??문명의 붕괴??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이민자들에 대해 말하는 톤은, 과도한 열정이란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넘어온 벌레들과 버섯들의 다양한 침입종에 의해 미국 산림이 황폐된 사실을 기술하는 단락의 결론 일부분을 예로 들어보자. “생태적,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엄청난 인구를 갖고 있으며, 엄청나게 수출하는 중국의 또 다른 종(種)은 바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예를 들어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 합법이민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고, 상당수의 합법적, 비합법적 이민자들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건너오고 있다.” 장담하건데 장 마리 르팽(Jean Marie Le Pen)은 중국이민자들을 원치 않는 벌레나 버섯 종과 결합시키면서 비난의 소리를 드높일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지칭한 것은 별 뜻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사실 그 몇 페이지 뒤에서 다이아몬드는 토끼나 여우같은 다양한 침입종으로 인해 야기된 피해에 대해 흥미로운 정보들을 잔뜩 적어놓고 있다. 그 페이지를 보자. “장기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오늘날의 인구를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현재 삶의 질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적당한 인구수는 8백만 명으로, 현재 인구의 절반보다 적은 수이다.” 이것은 중국 이민자들이 부적당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는 대략 2천만 명이다.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그리고 얼마 동안에 걸쳐 이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들에 대해 정확히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는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정치가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지 캔버라 정부는 투발루(Tuvalu) 주민 11,636명에게 기후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최근에 유명해 졌다. 태평양의 이 작은 섬나라는 지구의 온난화효과로 인해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투발루 주민을 수용하면 피난처를 찾는 또 다른 후보자들에 대한 ‘차별’이 될 것이라는 미명하에, 그 거부는 위선적으로 정당화됐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주민 당 가장 많은 온실효과가스를 배출하는 국가들 중 1위를 차지하면서도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거부는 사실상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지구의 붕괴를 막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특히 우리 사회의 ‘가치들’을 강력히 문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근대화를 지배해야 한다고 그가 주장하는 가치들에 대해 자문할 권리를 갖고 있다. 21세기 말까지 투발루의 인구가 다윈 딜레마에 부딪힐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 수상생활에 적응하거나, 이민 가거나 혹은 멸종되는 것이다. 이런 붕괴는 그 군도의 과잉인구 때문이 아니라, 산업화된 국가들에 의해 야기될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화된 국가들이 2세기 동안 수많은 화석연료를 불태운 결과, 환경시스템이 대기의 탄소 다이옥신을 완전히 재생시키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의 공동 책임자인 부유국 오스트레일리아가 그 결과들의 책임분담을 거부하고 투발루를 문전박대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유지능력’이란 명목으로, 중국산 침입종에 대한 의미심장한 은유를 통해, 다이아몬드는 캔버라 정부에 묵시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연대감과 인류애는 ??문명의 붕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가치들의 일부인가?
이런 기만적 추론은 여러 가지 변형을 거치면 남북관계에도 전반적으로 적용된다. 사실상 현재 세계인구의 증가는 본질적으로 제3세계 여성들의 높은 출산율에 기인하고 있다. 이 말을 한 순간부터, 만약 인구가 결과적으로 환경위기의 원인이라면, 이 분야에서의 세계적 붕괴위험은 본질적으로 제3세계 국민들의 탓이라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내려야 할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명확히 이런 식의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이런 결론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니다.
이 점을 명확히 포착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저자의 또 다른 마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자가 작성하는 환경문제 리스트는 인구증가뿐만 아니라 주민 1인당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포함하고 있다. 첫 눈에 보면 이 환경영향평가개념이 절대인구의 크기를 상대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똑같은 수의 인구가 생산과 소비의 사회적 방식에 따라 매우 다른 환경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붕괴??는 사실상 생태학에 미치는 주민 1인당 영향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영향의 증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증가는 선진국들보다 몇몇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심이 남북관계의 불공정성에서 비켜나, 빈곤국들의 발전에 따른 생태학적 위협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이처럼 포착하기 힘든 강조점을 이동시킴으로써, 다이아몬드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세계 환경상황을 인식하게 만든다.
??문명의 붕괴??는 “미국, 서부유럽, 일본의 개개인이 평균적으로 제3세계의 주민들보다 화석연료 같은 자원을 32배 더 소비하고, 쓰레기를 32배 더 배출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북반구국가들의 남반구국가들에 대한 생태학적 부채 개념과 남반구국가들의 개발권리 개념을 도입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는 그 개념들을 모호하게 내버려 둔 채 중요한 환경문제가 바뀌고 있음을 강조한다. “환경에 적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환경에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제3세계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선진국으로 이민을 떠나 그곳의 생활수준을 따르게 되는 제3세계 시민들이 증가함으로써, 환경에 미치는 인간 전체의 영향력이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남반구국가들의 발전이 특히 기후측면에서 실제적으로 환경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술이전과 부의 분배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해결책들을 상기시키지 않고, 그 부정적 측면만을 주장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남반구 국가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다이아몬드는 부의 불공정한 세계적 배분과 생태학적 부채로부터 관심을 돌리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제3세계의 가장 가난한 국민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수단에 맞게 검소하게 조정하고 자신들의 인구수를 자신들 땅의 ‘자연’생산성에 맞추기보다는, 만성적으로 원조를 받는 후보자들로, 심지어 선진국들에게 영원히 구걸하는 쪽을 선호하는 기생충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전개시킨다.
이스터 섬 생태계파괴의 대규모 반복
식량안전에 대해 논의하면서, ??문명의 붕괴??의 저자는 이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식량문제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식량은 충분히 있다. 우리는 단지 식량이 필요한 장소로 식량을 운반하고 배분하는 문제를 풀면 된다.” 여기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대답하고자 하는 것에 스스로 반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식량생산과 배분의 사회문제를 단순한 운송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기아를 뿌리 뽑기 위해서, 과잉생산 될 수 있는 지역의 식량을 모자라는 지역으로 체계적으로 보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을 반대자들의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다.
이런 식의 희화를 통해 그는 경쟁에 의한 농업비즈니스가 개발도상국의 농업을 파괴하고 있는 방식을 은폐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경제학적 요소가 분석에서 일단 제외되면, ‘미국과 같은 몇몇 선진국들은 자국민이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식량을 생산하고,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그리고 몇몇 제3세계 국가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게 되고, 이 두 가지 경우가 강우량이나 토양의 질과 같은 자연조건과 관계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도달하게 된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으면, 그때 우리는 자연이 자신들에게 부과한 물리적 조건들을 존중하기 위해 스스로 분수를 지키는 것을 몇몇 국민들이 거부함으로써 기아가 야기된다는 사상을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반구 국가들의 수백만 소농들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경쟁희생물의 지위에서 자기 자신들의 비참함에 대해 스스로 책임이 있는 자들의 지위로 이동하게 된다.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인구안경을 통해 보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은 ‘붕괴’라는 그들의 드라마는, 수백만 소농들이 전통적 가치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한 결과이지 그 이외의 다른 원인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되도록 빨리 자신들의 전통을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이 그들을 벌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므로 결과적으로 ‘그들의 문제’인 것이다(5).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토머스 로버트 맬더스는 산업혁명 초기의 희생자들을 자신들의 불행에 대한 책임자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완전히 뒤집어서, ‘자신들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도움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가치들’을 문제 삼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구걸하는 제3세계에 대한 신화를 창조했던 다이아몬드는 ‘도와주지 마라!’는 맬더스의 결론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개인적, 조건부적 자선을 제외하고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말라고 ??인구론??(6)이 영국정부에 권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진국들이 가끔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히 재앙이 발생한 경우에 식량을 주지만, 그들을 계속 부양할 수는 없다고 말하도록 ??문명의 붕괴??는 선진국들을 부추기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해 그는 다음의 글을 쓰기 위해 ‘선진국 국민들’의 의견 뒤로 숨는다. “몇몇 제3세계국가에서 어떤 위기들(가뭄이나 전쟁)에 의해 야기된 기아를 완화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식량을 가끔 수출하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선진국 국민들이 제3세계의 수십억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정한 기준을 정해 돈을 지불하는 데에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들 국가에서 가족계획에 대한 효과적 프로그램도 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결과는 정확히 맬더스의 딜레마 즉 가용할 수 있는 식량의 증가에 비례해 인구증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그의 전개방식을 인식했으므로, 다이아몬드가 캘리포니아나 제3세계의 층위에서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층위에서 사실 관계를 거꾸로 뒤집고 있다는 점을 보고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묘사한 그대로의 세상은 풀기 어려운 카오스다. 사실상 이 세상은, 우리의 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카오스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라크 전쟁, 1965년 수하르토에 의한 인도네시아 공산당원 50만 명 학살, 르완다의 인종학살, 실업, 테러리즘 등과 같은 다양한 사건들을 마구잡이로 뒤섞어서 ‘환경과 인구 압력’의 발현으로, 이스터 섬 생태계파괴의 대규모 반복으로, 말하자면 지구붕괴의 전조로 지목하고 있는 이 책의 한 구절에서 우리가 명백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혼란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탁월한 저서’에 대해, 붕괴에 근거한 그의 말세론에 대해, 그의 말세론을 뒷받침하는 상당수 자료들이 과학적으로 반박될 수 있는 성격에 대해, 다른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용어로 중요한 것은, 그가 제안하는 세상에 대한 비전이다. ??문명의 붕괴??의 저자는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보라고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여러 사건들을 ‘환경문제들’로 변질시키기 위해, 그것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실체가 체계적으로 제거됐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른바 ‘환경문제들’의 궁극적 원인이 인구증가에 있다고, 결과적으로 남반구 국가들에 있다고 전개한다. 그 모든 것이 다소 과학적인 엄청나게 많은 사실들로 뒤덮여 있고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담론으로 포장돼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을 매료시켰던 것이 바로 이 시스템인가? 우리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신의 전반적인 정치방식과 잘 일치하는 첫 번째 단계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번째 단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프랑스는 ‘오염하는 권리’를 구매하는 선진국들에게 부여된 의무와 ‘생식하는 권리’를 구매하는 개발도상국들에게 부여된 의무의 맞교환을 제안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지금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거기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시기이다.
다니엘 타뉘로/번역·김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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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문명의 붕괴. 사회가 어떻게 자신의 소멸과 존속을 결정하는가??, 갈리마르, 파리, 2006년. 원본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eed, 펭귄북스, 런던, 2005년. 이 기사는 영어판을 참조함. 인용부분은 기사 작성자가 번역한 것임.
2) 미래의 프랑스를 위한 협약에서의 연설, 2006년 10월 18일. 제 4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포럼에서의 연설, 2006년 12월 7일. 생태협정과 관련해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에게 보내는 서한, 2006년 12월 22일. 생태협정 서명 시의 연설, 2007년 1월 31일.
3) 에르네 앙트완(Ernest Antoine), ?유럽 전기 대 바겐세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6월호 참조.
4) ?이민에 대한 시에라 클럽의 쓰라린 분열?, <더 뉴욕타임스>, 2004년 3월 16일.
5) 남반구 국가들에 대해 다이아몬드는 ‘그들의 문제’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표현은 북반구 국가들에게 모든 구조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6) 토머스 로버트 맬더스(Thmas Robert Malthus), ??인구론??, 플라마리옹, GF 총서, 파리, 1999년.
- 제레드 다이아몬드-젊은이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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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마야, 아나사지, 이스터 문명의 문제들이 현대세계에서 반복되고 있다. 정확히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환경스트레스, 과잉인구 스트레스 혹은 이 두 가지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는 국가들은 정치적 스트레스를 받아 정부 붕괴의 위험에 처해 있다. 사람들이 절망할 때, 영양실조에 걸릴 때, 그리고 희망이 없을 때, 그들은 정부를 비난하고, 정부가 문제해결 능력이 없거나 혹은 그 문제들의 책임자로 간주한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민을 가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땅을 얻기 위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인다. 그들은 내전을 일으킨다.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되고 혹은 테러리즘을 지지하거나 용인한다. 이런 명백한 사실들이 결합되면, 방글라데시, 부룬디, 인도네시아, 르완다에서 이미 폭발했던 것과 같은 인종 학살이 발생한다. 인용된 대부분의 국가에서처럼 내전이나 혁명이 발생한다. 아프가니스탄, 아이티, 인도네시아, 이라크, 필리핀, 르완다, 솔로몬군도, 소말리아에서처럼 선진국들에게 군대파견을 요청한다. 소말리아와 솔로몬군도에서처럼 정부가 전복된다. 인용된 모든 나라에서처럼 빈곤이 만연한다. 따라서 ‘근대국가들의 실패’ - 예를 들어 혁명, 폭력적인 체제변화, 정부당국의 붕괴, 인종 학살과 같은 - 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높은 아동사망률, 빠른 인구증가, 인구에서 청소년층 또는 젊은 층, 그리고 불투명한 고용전망 때문에 민병대에 지원하기 쉬운 젊은이 무리들이 차지하는 높은 비율 등, 인구 압력과 환경 압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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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기사입력: 2008-03-19 18:53:54
- 최종편집: 2008-03-20 08: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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