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장이 주고받은 서신

알랭 베르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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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9일부터 2008년 1월 7일까지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열리는 전시 「코레스퐁당스 Correspondances」는 '어린 시절'과 그 밖의 몇 가지 공통된 주제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영화감독 빅토르 에리스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 간의 대화를 선보이고 있다. 비디오 설치와 사진, 회화를 망라한 그들의 작업은 오늘날 영화감독이라는 위치가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빅토르 에리스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언젠가 조우하게끔 운명 지워 졌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비록 그들이 같은 해, 같은 주에 세상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에리스를 감독으로 키워냈던 스페인의 맥락과 키아로스타미로 하여금 자신의 길을 찾도록 만든 이란의 토양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 반면에 두 사람 다 어려운 시기를 겪은 것은 사실이었다:에리스에게는 그것이 프랑키즘의 말기였으며(그가 첫 장편 <벌집의 정령>을 찍은 것은 민주체제가 들어선 지 2년이 되는 1973년 이었으나 스페인에서 영화검열이 폐지된 것은 1977년에 이르러서였다.) 키아로스타미에게는 이슬람혁명 이었다. 왕조체제에서 샤왕(王)의 부인이 설립한 어린이 지능개발 연구소 '카눈'을 위해 교육영화를 찍으면서 영화를 배운 그였다.

판이하게 다른 문화 속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영화와 근본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그토록 가까웠던 것은 일종의 자연의 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영화라는 예술이 자신들의 뿌리이자 작품의 주제인 어린 시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벌집의 정령>, <남쪽>의 아이들, 그리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삶은 계속된다>속의 아이들은 세상을 하나의 수수께끼로 받아들인다. 그것을 푸는 열쇠란 눈에 보이는 세상 저편에 억눌려 있고 숨겨져 있다. 어른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 이란의 검열법이 금지해 놓은 것들이 너무나 많은 이유로, 까다로운 검열이 조장하는 미묘한 창의력을 동원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못 다 한 할 말을 하기 위한 감독의 주요한 대안이 되었다.

하지만 검열의 문제가 없었더라도 키아로스타미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직업적인 배우들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신만의 영화를 찾아낸 것은 바로 어린이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에리스의 경우는 ‘시민전쟁을 뒤이은 침묵과 황폐의 시간에 태어난’ 세대에 속한다는 느낌을 아주 일찍부터 가졌다. ‘영화는 실제로도 그리고 상징적으로도 고아가 되어버린 그들을 입양한 부모가 되어 엄청난 위로를 주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 속해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를 뒤흔들어 놓은 첫 번째 영화적 경험으로 부터 줄곧 영화가 그에게 선사했던 것들 - 고통과 위로, 뒤엉켜있는 비애와 기쁨 - 을 영화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어야 했다.

키아로스타미가 자주 인용했던 ‘모든 심오한 것에는 장막이 필요하다’는 니체의 말처럼 에리스는 이미지 속에는 신비함이 보존되어야 하며 보여 지는 것만큼이나 보여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공통적으로 ‘관객의 정책’ 을 취했는데 그것은 구멍과 빈자리들이 널려있는 열린 시나리오와 매듭지어지지 않은 영화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리를 찾게 하고 빈 곳을 스스로 메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이 그러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영화는 소박한 자연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을 매혹시킨 것은 땅속에 숨겨져 있는 것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나타날지 모르는 것들, 우리의 이성적 사고로는 알아볼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자연의 신비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그런 것들이었다. 어떤 신성한 입김이 그들의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남쪽>에서 지하수를 찾는 아버지만이 감지할 수 있는 땅밑의 수맥,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마술적인 장면에서 갑자기 일기 시작하는 이해할 수 없는 바람이 그것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의 기원에 근접해 있는 감독인 동시에 가장 급진적인 모더니티를 담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들은 조형예술이라 부를만한 작업들을 해왔으며, 초기시절부터 허구적인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풀어놓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대칭을 이루며 연속성을 잃지 않는 작품들을 생산해왔다.

편견 없이 교환된 이들의 서신과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전시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Erice - Kiarostami. Correspondance」로 이름 붙여진 이 전시는 바르셀로나 현대 문화센터에서 시작되어 마드리드를 거쳐 파리의 퐁피두센터에 이르게 된다. 전시는 그 서신들만을 확인하는 데 머물지 않고 2년이 넘게 필름으로 기록된 10편의 영상편지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은 영화역사상 초유의 일이며, 전시 된 영상편지들은 이제 그들 각자의 필모그라피의 일부가 되었다.

많은 조형예술 작가들이 영화로부터 그들에게 필요한 영감과 형식, 그리고 재료를 구하고자 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 전시에서 에리스와 키아로스타미는 현대미술의 다른 영역들의 경계를 탐사하고자 영화를 벗어나고 있다:사진, 회화, 설치의 영역으로. 두 사람 모두 디지털방식이 근 15년 전부터 영화제작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한 세대에 속하고 그것을 결국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에리스는 이 전시를 계기로 영화를 발견하게 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인 에세이 <붉은 시체>를 찍기도 하였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키아로스타미의 기념비적인 설치작품인 <잎새 없는 숲 Forest Without Leaves> 속을 거닐 수 있으며 에리스는 스페인 화가인 안토니오 로페즈의 그림 앞에 선 관객의 시선과 귀를 완전히 혁신적인 방식으로 재배치시킨다. 거기서 두 감독은 늘어선 관객의 줄을 헝클어 놓으며 박물관의 전시공간을 향해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영화를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 다른 예술형식들과 영화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관 지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작품과 관객 간의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키아로스타미와 에리스가 바로 세대 간의 안내자이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두 감독 모두 각자의 나라에서 젊은 세대의 감독들에게 모범적인 ‘큰형님’들이자 우호적인 ‘거장’들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감독인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각기 자국을 대표하는 영화로 영화사에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며 두 사람 공히 자신들의 세대, 즉 황금기인 1960년대를 지나고 1970년대에 들어서야 영화를 시작한, 영화사에서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그런 세대의 대표자이기도 할 것이다.

이 전시가 지나는 각 나라에서는 두 감독이 시간에 구애됨 없이 자신들의 예술적 신념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한, 작가의 아틀리에와 같은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 파리에서는 Femis de Paris, 그리고 니스는 Villa Arson에서 학생들이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분명하게도 두 사람의 본질적인 행로는 동일했던 것이다. 그들의 여정은 창조와 대화의 공간으로 변모한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어린이가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면......


한 아이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는데 거기에는 자기 집 정원의 나무에 관한 하나의 질문이 담겨있었다. 일종의 자두와 같은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였다. 아주 맛있게 과일을 먹고 난 아이는 과연 이 나무가 자기에게 열리는 과일의 맛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 진 것이다. 얼핏 '아니란다.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는 단다.' 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지만 실은 그 질문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은 철학적이라고 할 만 한 것이었고 질문의 수준에 맞는 단순하고 정확하면서 뜻 깊은 답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내가 조금이라도 현명할 수 있다면 그건 순전히 어린이들과 일해 왔던 20년의 세월 덕분일 것이다. 그들은 내게 모든 것은 복잡하기도 하면서 아주 단순하기도 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여기서의 단순함이란 평범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영화가 현학적이고 신랄할 어조로 되는 이유는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은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효과적이며 실제적인 표현이 된다. 만일 어린이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 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에게 무언가 결함이 있다는 말이며 우리가 단순하게 한 가지 사고를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능한가를 확인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수학공식이 어느 누구에게나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예술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한 학년이 40명 정도가 되었다. 그중에 화가가 된 친구들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많은 정보를 얻거나 기술적인 향상을 이루고서 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들의 재능을 드러내는 기회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행하는 아틀리에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항 상상기시키는 말은, 그들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하여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거기에 온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들의 실험의 영역을 좀 더 넓힐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각자는 자신만의 궤적을 따라서 하나의 특수한 예술, 특정한 표현방법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디지털 카메라 하나로 일상 속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과학기술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초월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기술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가벼워진 제작방식에 의해 가능하게 된 예술적 실천행위들을 늘려갈 일이다. 그것은 굉장한 자유이자 시적이고 창조적인 저항의 한 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빅토르 에리스와의 영상편지와 비디오 작업들을 실현할 수 있었다. 물론,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여전히 또 하나의 영화일 따름이지만.

현대미술에서 우리가 ‘설치’라고 부르는 것은 영화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집밖으로 나오는 순간 우리는 설치작품들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길을 건널 때 눈에 들어오는 차선과 나무들, 지나가는 자동차들, 교통체증, 변화무쌍한 하늘...... 하지만 나의 최고의 설치작업보다 최악의 영화가 더 사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예술적 형식이 어떻든 간에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 주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것을 예술로 간주하지 않는다. 거기에 관객이 그 일부가 되는 순간부터 그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의 예술작품이 여러 가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는 것을 허락하는 순간 그것은 현대적인 것이 된다. 고전성과 모더니티를 가르는 차이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정리 ; 마리안 칼릴리-로메오)

빅토르 에리스


타고난 예술가들- 우리가 되고자해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인으로서의 나의 작업을 계속해오면서 어린 시절이라는 주제를 역사나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다루었던 적은 없었다. 내 영화 속에서 어린이들은 하나의 저항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그들이 나의 시각을 변화시켰다기보다는 이미 그것을 초월해 있었다. 내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어른의 덜 익은 닮은꼴로서의 어린이가 아니라 진짜 어린애들이었다. 그들의 투박함, 불행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반항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상상력을 사용하는 방법, 이런 것들이 나를 가장 감동하게 했다. 결정적으로 이 사회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들을 둘러싼 채 엮어내는 가짜 같은 삶을 단번에 뒤엎어 버리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들이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느 누구보다 진정한 예술가들이라고 할 만 하다. 어떠한 목적도 추구하지 않으며 그저 놀고 있을 뿐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진지하다.

예술가란 우리가 되고자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예술가’는 더더욱 그렇다. 어찌됐든 우리는 작업을 하면서 이미 있어왔던 이런저런 전형들을 따라간다. 그럴 때에도 물론 항상 개인의 의지가 개입되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러한 의지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의지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기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미 오래전에 독립적 예술로서의 지위를 잃은 채 텔레비전에 기대어 생존하고 있을뿐더러 영상매체라는 큰 틀에 편입되면서부터 아주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나아가서, 문화에 있어서의 유럽식 모델조차 그 사회적 역할이 완전히 수정되게 되었다. 유토피아적이면서도 비판성을 잃지 않았던 유럽모델의 전통적인 자율성은 창의적 작업의 산물이 시장의 논리에 의해 다루어지는 제품으로 변모되는 공간, 각각의 상품들이 담당하는 기능에 의해 그 존재가 허락되는 또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었다. 예술이 바로, 고다르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풍경 속에서 유일한 예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예술의 가치가 이제 서양문명의 중심에서 이탈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서 만일 정치적인 논의에서조차 그러한 가치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자유주의가 결국 승리하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예술이야말로 문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의 기원이었으며 세상을 향해 눈을 뜨게 된 인간의 첫 번째 걸음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위의 상황이 가져올 결과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영화도 현대미술의 한 부분이다. 그 둘 간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각적 표현 형식들 사이의 대화 속에서 생겨난, 영화와 미술전시장 사이의 새로운 관계는 지금으로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영화가 전시공간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저런 종속적 제약에서 벗어난 공공의 공간을 점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공간이 20세기의 예술을 전체 속에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시장은 영화감독으로 하여금, 영화적인 시 공간에 대한 개념뿐 아니라 관람객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아직 남아 있다:영화가 전시장 속으로 들어가는데 따르는 모든 결과들을 생각해 볼 때 어쩌면 그 대가로, 어떤 의미에서, 영화의 죽음을 담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키아로스타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한 주제에 대하여 충분히 성찰해 보지 않았다. 그의 작업에 대한 내 존경심이 나로 하여금 전시에 참여하도록 했다. 파리에서 전시될 내 작품 중에서 안토니오 로페즈와 직접 관련된 작업을 제외한 대부분은 전시장에서 소개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들이 왠지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고향은 영화관이지 전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산업이 강요하는 법칙에 복종하지 않는 영화들이 극장에 상영되는 것이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니다.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을 건드리는, 혹은 앞으로 건드려야 할 그런 상황인 것이다.
- 빅토르 에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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