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을 부른 사르코지의 연설
프랑스-아프리카는 끝나는가
프랑스-아프리카 관계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7월26일 다카르에 온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행한 연설은 현지에서 망연자실과 분개로 받아들여졌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검은 대륙의 언론과 지식인계는 "다른 세대"에 관한 연설대목에 관해 프랑스 국가원수를 비난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부차적 외교수사로 다루면서도 사르코지가 정말 그렇게 말을 했다고 진짜로 생각하는지를(1) 자문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은 특히 대통령의 언동에서 식민지에 관한 연설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사르코지는 수분 동안 여러 사태들을 정리하려 했다:만일 그가 이 시기를 "큰 과오"로 평가한다면, 아프리카대륙의 현재 관행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르코지는 미래를 향해 눈을 돌리라고 아프리카주민에게 권고했다. 과거를 되씹는 일은 언제나 좋은 것이 못 된다. 그러나 가해를 가한 나라의 대표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에 적절한 입장인가?
아프리카대륙에 충격을 준 것은 상식을 벗어난 대통령의 서술에 있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현실정치"를 상기하면서 19세기 가부장적(家父長的) 비전을 서술했다. 사르코지는 가장 낡아빠진 틀에 박힌 동작과 제일 얕잡아 보는 것 같은 편견을 보이면서도, 먼저 '사상과 문화'가 풍부했던 흑인문명에 관해 식민주의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에 아프리카대륙에 대한 서술이 민속학적 환상으로 돌아갔다:그는 "인간의 모험이 존재하지 않는" 거의 모두가 농촌의 세계에서, 본능이 이성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계절의 리듬"에 따라 생활함으로서 역사가 없는 과거 지향적 문명으로 묘사했다. 유럽의 우월성을 사실로 확인해주는 대목이다:유럽은 "부동(不動)"의 꿈을 추구하는 아프리카와는 반대로 "자유, 해방, 정의에 대한 절규, 이성과 우주차원의 인식에 대한 호소"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50년에 걸친 학문적 작업들, 특히 세네갈 역사학자 세이크 안타 디오프(그의 이름이 바로 대학이름인 대학에서 연설), 또한 역시 사회학자 조르쥬 바랑디에와 역사가 에렌느 다메이다 토포르의 업적들이 사르코지만 피해간 것 같다. 이들 학자들은 아프리카 사회의 현대성을 보여주면서 오랫동안 왜곡된 아프리카의 과거를 바로 잡았다. 사르코지는 유럽이 봉건사회였을 때, 아프리카가 오늘날 "좋은 통치"의 주창자임을 인정하고 반(反)권력을 부여한 입헌군주국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가. 현재 말리의 상코레 대학교는 이미 15세기에 2만5000명의 학생들이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았는가? '통북투(Tombouctou)'에서 발견된 수천의 귀중한 원고들이 백인이 들어오기 전에 아프리카 기술의 노하우를 무두 전파한 사실을 사르코지는 알았는가?
사르코지는 특히 "친구들에게 보이는 자유의 이름으로-부시 미대통령과 그의 계승자들이 이용하지 않을까?-강경한 이민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것이다. 결코 오지 않을 행복한 나날들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이민을 시도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감동적인 구절들을 선사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먼 나라들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가족과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용기와 결단력을 묘사했다. 당혹스런 청중들의 시선 앞에서 그는 "성실성"이 허용하는 깃발 밑에서 때때로 성서의 "내가 진실로 말하건데"를 상기시키는 강조점과 함께 젊은 세대는 그가 사는 바로 그 땅에서 그들의 "미래를 발견하라"고 훈계했다. 사르코지는 '자유의 신념'을 암송하듯이 "여러분의 운명은 여러분의 손안에 있다". "나는 여러분의 고통을 극복하라고 제안하기 위해 왔다", "누구도 여러분 대신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등등을 감정을 섞어 가며 강조했다.
마치 승부수가 속임수인 것처럼! 때때로 프랑스대통령은 특히 충고를 할 경우에 솔직히 익살스럽기까지 하다:"여러분은 앞으로 더 이상 기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식량의 자급자족을 추구하시오. 그때는 식량조달의 문화를 발전시키시오" 마치 이러한 아이디어가 아프리카정신을 가볍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다만 국제금융기관들이 강제하는 국제시장에로 수출을 위한 최우선적 동의가 실행을 불가능하게 한다. 프랑스의 국가원수는 오늘 프랑스의 책임에 관해서는 침묵했다:파리는 작은 불이나마 진화할 경제적 충격요법을 아프리카 국가들이 채용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파리는 지금까지 최악의 부패정권들을 지지해왔다. 사르코지가 가봉을 방문하는 순간에, 40년 이래 권력을 잡고 있는 오마르 봉고 대통령은 7월27일 프랑스에서 수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무튼 환각에 사로잡혀 비전을 상실한 프랑스 국가원수는 아프리카 젊은이들에게 느닷없이 말했다.:"현대 세계에 대해 눈을 크게 뜨라!" 이상한 명령, 왜냐하면 북부의 부자국가들의 무례한 번영 그 자체를 세계라고 보기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은 점점 더 그들의 삶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정보들이 이민 가족을 통해서 TV나 인터넷으로 전파되고 있다. 가나의 북부 제일 오지(奧地) 마을의 직조공들도 그들의 경쟁자가 중국임을 잘 안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정보산업에 진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1990년대 민영화 파도의 후유증으로, 단전(斷電)된 사이에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데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미적지근하다는 평판에도 불구하고-불타는 파리교외지역(방리으)의 밑바닥에 확고부동한 경찰관 총수로 주름잡았던 사르코지 전 내무장관의 이미지가 아프리카 대륙을 일주하고 있는 것이다- 사르코지는 확실히 현지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대통령선거 기간에 "프랑스아프리카"에 종지부를 찍기 희망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는 상징적으로 프랑스어권 지역들보다 먼저 (영어권 지역인) 가나와 남아공을 방문해야만 했다. 아프리카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완전히 지쳐있다. (1981년5월10일-좌파 대통령 미테랑이 대선승리를 했던 시기- 서부아프리카의 거리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이 춤춘 것을 프랑스도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프랑스아프리카"가 끝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프랑스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의 무덤"(2)과 함께 과거의 관계지속을 중단하고, 근본적 변화도상의 아프리카대륙과 진정한 대표성을 보유한 파트너로서 대화할 것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급하다. 프랑스의 이미지는 루완다의 대량학살과 너무나 가혹한 제한적 이민정책의 모멸감으로 인해 퇴색하고 있다:프랑스기업들은 중국과 미국의 격렬한 공격을 받고 있다:프랑스의 오랜 친구인 독재자들은 이제 사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아마도 많은 이윤을 보는 시스템을 약간이나마 연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많은 기업가들을 친구로 갖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상당히 민주화된 나라 세네갈을 방문했다. 다음에 그는 프랑스기업들이 '프랑스아프리카'의 동네들에서 너무나 유명한 봉고대통령의 권위아래서 귀여움을 받고 있는 가봉에도 갔다.
사르코지는 (과거의) '서정적 종말'을 추구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과잉에 반대하는 프랑스-아프리카 동맹을 제안했다. 반(反)세계화의 불가능한 알약을 삼키게 하기 위해 그는 식민지시대의 가스통 드페르 전 내무장관과 레오폴드 셍고르 세네갈 전 대통령이 마련한 낡은 유로-아프리카 프로젝트를 들추어냈다. 세계화를 규제하기 위한 프랑스-유럽-아프리카의 연합? 만일 파트너들이 평등하고 또한 25년 이래 유럽과 프랑스가 열성적인 주창자가 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이 필요불가결한 아프리카전략은 보다 많은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사르코지는 그의 관행대로 변화의 깃발 아래에서 기존질서를 정당화하는 정책을 계속할 것이다. 대통령이 밝히고 있는 단절은 분명히 외교수사(外交修辭)를 새로운 말로 바꾸는 그의 업무스타일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세네갈의 몇몇 관찰자들이 추정한대로(3) 경제적 세계화의 진정한 성격과 남북관계를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설득해야만 하는 일에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번역-주섭일 본지고문)
1) Achille Mbembe의 '카메룬정치학비판'을 참조하라
www.africultures.com/index.asp/menu=affiche_article&no=6819
2) "니콜라 사르코지의 공개편지" 리베라시옹, 파리 2007년8월10일
3) "니콜라 사르코지의 용납할 수 없는 연설"
Boubacar Boris Diop Le Quotidien, 다카르, 2007년8월11일
프랑스 언론은 특히 대통령의 언동에서 식민지에 관한 연설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사르코지는 수분 동안 여러 사태들을 정리하려 했다:만일 그가 이 시기를 "큰 과오"로 평가한다면, 아프리카대륙의 현재 관행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르코지는 미래를 향해 눈을 돌리라고 아프리카주민에게 권고했다. 과거를 되씹는 일은 언제나 좋은 것이 못 된다. 그러나 가해를 가한 나라의 대표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에 적절한 입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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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아프리카대륙에 충격을 준 것은 상식을 벗어난 대통령의 서술에 있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현실정치"를 상기하면서 19세기 가부장적(家父長的) 비전을 서술했다. 사르코지는 가장 낡아빠진 틀에 박힌 동작과 제일 얕잡아 보는 것 같은 편견을 보이면서도, 먼저 '사상과 문화'가 풍부했던 흑인문명에 관해 식민주의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에 아프리카대륙에 대한 서술이 민속학적 환상으로 돌아갔다:그는 "인간의 모험이 존재하지 않는" 거의 모두가 농촌의 세계에서, 본능이 이성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계절의 리듬"에 따라 생활함으로서 역사가 없는 과거 지향적 문명으로 묘사했다. 유럽의 우월성을 사실로 확인해주는 대목이다:유럽은 "부동(不動)"의 꿈을 추구하는 아프리카와는 반대로 "자유, 해방, 정의에 대한 절규, 이성과 우주차원의 인식에 대한 호소"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50년에 걸친 학문적 작업들, 특히 세네갈 역사학자 세이크 안타 디오프(그의 이름이 바로 대학이름인 대학에서 연설), 또한 역시 사회학자 조르쥬 바랑디에와 역사가 에렌느 다메이다 토포르의 업적들이 사르코지만 피해간 것 같다. 이들 학자들은 아프리카 사회의 현대성을 보여주면서 오랫동안 왜곡된 아프리카의 과거를 바로 잡았다. 사르코지는 유럽이 봉건사회였을 때, 아프리카가 오늘날 "좋은 통치"의 주창자임을 인정하고 반(反)권력을 부여한 입헌군주국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가. 현재 말리의 상코레 대학교는 이미 15세기에 2만5000명의 학생들이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았는가? '통북투(Tombouctou)'에서 발견된 수천의 귀중한 원고들이 백인이 들어오기 전에 아프리카 기술의 노하우를 무두 전파한 사실을 사르코지는 알았는가?
사르코지는 특히 "친구들에게 보이는 자유의 이름으로-부시 미대통령과 그의 계승자들이 이용하지 않을까?-강경한 이민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것이다. 결코 오지 않을 행복한 나날들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이민을 시도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감동적인 구절들을 선사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먼 나라들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가족과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용기와 결단력을 묘사했다. 당혹스런 청중들의 시선 앞에서 그는 "성실성"이 허용하는 깃발 밑에서 때때로 성서의 "내가 진실로 말하건데"를 상기시키는 강조점과 함께 젊은 세대는 그가 사는 바로 그 땅에서 그들의 "미래를 발견하라"고 훈계했다. 사르코지는 '자유의 신념'을 암송하듯이 "여러분의 운명은 여러분의 손안에 있다". "나는 여러분의 고통을 극복하라고 제안하기 위해 왔다", "누구도 여러분 대신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등등을 감정을 섞어 가며 강조했다.
마치 승부수가 속임수인 것처럼! 때때로 프랑스대통령은 특히 충고를 할 경우에 솔직히 익살스럽기까지 하다:"여러분은 앞으로 더 이상 기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식량의 자급자족을 추구하시오. 그때는 식량조달의 문화를 발전시키시오" 마치 이러한 아이디어가 아프리카정신을 가볍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다만 국제금융기관들이 강제하는 국제시장에로 수출을 위한 최우선적 동의가 실행을 불가능하게 한다. 프랑스의 국가원수는 오늘 프랑스의 책임에 관해서는 침묵했다:파리는 작은 불이나마 진화할 경제적 충격요법을 아프리카 국가들이 채용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파리는 지금까지 최악의 부패정권들을 지지해왔다. 사르코지가 가봉을 방문하는 순간에, 40년 이래 권력을 잡고 있는 오마르 봉고 대통령은 7월27일 프랑스에서 수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무튼 환각에 사로잡혀 비전을 상실한 프랑스 국가원수는 아프리카 젊은이들에게 느닷없이 말했다.:"현대 세계에 대해 눈을 크게 뜨라!" 이상한 명령, 왜냐하면 북부의 부자국가들의 무례한 번영 그 자체를 세계라고 보기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은 점점 더 그들의 삶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정보들이 이민 가족을 통해서 TV나 인터넷으로 전파되고 있다. 가나의 북부 제일 오지(奧地) 마을의 직조공들도 그들의 경쟁자가 중국임을 잘 안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정보산업에 진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1990년대 민영화 파도의 후유증으로, 단전(斷電)된 사이에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데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미적지근하다는 평판에도 불구하고-불타는 파리교외지역(방리으)의 밑바닥에 확고부동한 경찰관 총수로 주름잡았던 사르코지 전 내무장관의 이미지가 아프리카 대륙을 일주하고 있는 것이다- 사르코지는 확실히 현지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대통령선거 기간에 "프랑스아프리카"에 종지부를 찍기 희망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는 상징적으로 프랑스어권 지역들보다 먼저 (영어권 지역인) 가나와 남아공을 방문해야만 했다. 아프리카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완전히 지쳐있다. (1981년5월10일-좌파 대통령 미테랑이 대선승리를 했던 시기- 서부아프리카의 거리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이 춤춘 것을 프랑스도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프랑스아프리카"가 끝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프랑스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의 무덤"(2)과 함께 과거의 관계지속을 중단하고, 근본적 변화도상의 아프리카대륙과 진정한 대표성을 보유한 파트너로서 대화할 것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급하다. 프랑스의 이미지는 루완다의 대량학살과 너무나 가혹한 제한적 이민정책의 모멸감으로 인해 퇴색하고 있다:프랑스기업들은 중국과 미국의 격렬한 공격을 받고 있다:프랑스의 오랜 친구인 독재자들은 이제 사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아마도 많은 이윤을 보는 시스템을 약간이나마 연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많은 기업가들을 친구로 갖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상당히 민주화된 나라 세네갈을 방문했다. 다음에 그는 프랑스기업들이 '프랑스아프리카'의 동네들에서 너무나 유명한 봉고대통령의 권위아래서 귀여움을 받고 있는 가봉에도 갔다.
사르코지는 (과거의) '서정적 종말'을 추구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과잉에 반대하는 프랑스-아프리카 동맹을 제안했다. 반(反)세계화의 불가능한 알약을 삼키게 하기 위해 그는 식민지시대의 가스통 드페르 전 내무장관과 레오폴드 셍고르 세네갈 전 대통령이 마련한 낡은 유로-아프리카 프로젝트를 들추어냈다. 세계화를 규제하기 위한 프랑스-유럽-아프리카의 연합? 만일 파트너들이 평등하고 또한 25년 이래 유럽과 프랑스가 열성적인 주창자가 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이 필요불가결한 아프리카전략은 보다 많은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사르코지는 그의 관행대로 변화의 깃발 아래에서 기존질서를 정당화하는 정책을 계속할 것이다. 대통령이 밝히고 있는 단절은 분명히 외교수사(外交修辭)를 새로운 말로 바꾸는 그의 업무스타일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세네갈의 몇몇 관찰자들이 추정한대로(3) 경제적 세계화의 진정한 성격과 남북관계를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설득해야만 하는 일에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번역-주섭일 본지고문)
1) Achille Mbembe의 '카메룬정치학비판'을 참조하라
www.africultures.com/index.asp/menu=affiche_article&no=6819
2) "니콜라 사르코지의 공개편지" 리베라시옹, 파리 2007년8월10일
3) "니콜라 사르코지의 용납할 수 없는 연설"
Boubacar Boris Diop Le Quotidien, 다카르, 2007년8월11일
-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 기사입력: 2007-12-02 19:31:54
- 최종편집: 2007-12-14 1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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